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5) ─ 資治通鑑

 

2026.01.24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5) ─ 資治通鑑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0

 

중국사中國史에 있어서 정통正統의 문제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 "누가 중국을 만들었는가(だれが中国をつくったか)", 《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 '중국中國'이라고 하는 단어
  - 현대에는 국가 개념으로 사용된다 ─ 일반적 용법 중화민국中華民國(1912)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1949)
  - 현대 이전에는 국가개념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송나라, 진秦 · 한漢 · 당唐 · 송宋 ─ 특정 지역의 명칭을 차용한 것 원元 · 명明 · 청淸 ─ 특정한 의미를 담은 낱말 
  - '중국中國'이라는 개념
          사국四國에 대응하는, 중심적中心的인 위치를 차지하는 성읍국가城邑國家 一 공간적空間的 의미意味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황하黃河 중하류 유역 지칭 
          시황제始皇帝는 이 지역의 국가들을 병합함으로써 '통일統一'
          이로써 질적質的 변화變化가 이루어졌다. 
            지역 통일이라는 공간空間을 넘어 문화文化, 풍속風俗, 생활발식生活方式, 문자文字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共同體 지칭 
            ⇒ 이로써 공간空間 · 문화文化의 '일통一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의 중국中國 천하天下
            중국의 역사는 체제 존속의 정당화 수단으로서 성립, 정사正史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 정사正史의 시작始作
•  근본 성격. 천하天下를 통치統治하는 천자天子, 즉 황제黃帝의 계보系譜. 구체적으로는 황제黃帝에서 한무제漢武帝 치세治世로의 전개과정 
•  전개(서술) 방식. 오제본기五帝本紀, 천하통치天下統治의 근거로서의 천명天命 천명天命 유지의 덕목으로서의 덕치德治
•  결과적으로 무력과 권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한무제漢武帝의 치세治世를 정당화하고 이를 정통正統으로 세우는 방식
•  한계限界. 역사 서술의 목적이 체제 정당화에 있으므로 정통正統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사실들을 배제하고 변화를 도외시하는 서술이 지속될 가능성. 
•  사기史記에에는 아직 '중국中國'이라는 관념이 등장하지 않으며 중화사상中華思想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중국中國 아닌 것'을 대면對面할 때에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의 '정통正統' 
•  위서魏書, 촉서蜀書과 오서吳書를 구성하여 '삼국지三國志'라 하였다. 이는 표면상으로는 삼국병립三國竝立때 구조이지만 내용상 차이가 있다. 즉 위서魏書에는 '본기本紀'에 해당하는 '기紀'가 있고 생전에 황제가 되지 않았던 조조曹操를 '무제武帝'라 칭한다. 촉蜀과 오吳에는 전傳만을 할당. 유비劉備는 선주전先主傳 손권孫權은 오주전吳主傳 촉蜀은 스스로는 '한漢'이라 하였는데 이것도 무시. 이를 인정한다면 촉蜀이 후한後漢을 계승한 것을 인정하게 되므로, 위魏를 계승한 진晉에서 관리를 지낸 진수陳壽의 입장에서는 촉蜀의 정통성正統性을 부인하게 된다.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정통正統'
선행사先行史, 정통이론正統理論유지의 어려움
•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304-439)
    오대(북방의 5개 종족), 십국(화북華北 지방에 세워진 나라들)
•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439-509) → 수隋에 의한 통일
                                                               ↓ 
                                                     당唐(618-907)    북방민족이 세운 왕조
                                                     →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 (907-960)
     북송北宋(960)  ↔  거란족의 요遼(916-1125)
     송宋의 패배, 전연의 맹澶淵之盟(1004)
             • 거란 황태후에게 숙모의 예를 갖춘다.
             • 매년 10만냥의 은, 20만 필의 비단을 바친다. (세폐歲幣)
             • 진종眞宗이 성종聖宗의 형이 된다.
            정통 황제를 자칭하던 북송北의 황제가 자신 이외의 통치자를 황제로 인정한 것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서술방식 ─  '정통正統'에 근거한 왜곡
• 남북조南北朝 시대를 다루면서 자신이 정통으로 간주하는 남조南朝의 연호年號만을 표기.
• 남조南朝의 황제들은 '황제皇帝''라 부르고, 북조의 황제들은 '위주魏主', '제주齊主', '주주周主'라 부른다. 
• 588년까지는 북조北朝에 속하는 진隋나라 문제文帝를 '진주陳主'라 하고 남조南朝에 속하는 진陳나라 마지막 황제 장성공長城公을 '황제'라 칭하다가, 589년부터는 진陳나라 황제를 '진주陳主'라 부르고, 진陳 나라 문제文帝를 황제라 부른다. 이는 정통正統이 남조南朝에서 북조北朝로 넘어갔음을 보이기 위한 선택. 이렇게 해야만 북송北宋듯이 정통이 되기 때문.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성립
군사력이 강대하여 넓은 지역을 지배한다 해도 이적夷狄은 문화를 갖지 못한 인간 이하의 존재이며, 중화中華만이 참된 인간이라는 문화중심文化中心으로의 확장 


지난 주까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자치통감은 어떤 체제를 갖추고 있고, 자치통감에 있어서 서술은 어느 정도의 특징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자치통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얘기했다. 그 문제점 중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게 바로 자치통감이 세팅해놓은, 자치통감이 정착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정착된 것은 자치통감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중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판단되고 평가되고 있는 자치통감에 있어서 정통正統의 문제를 오늘은 그 부분만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다음 주에는 주희朱熹가 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할 텐데, 주희가 대강의 범례만을 쓰고 제자가 아마 조사연趙師淵이라는 제자가 세부적으로 다듬어 놓은, 주희가 보기에는 사마광이 내놓은 정통이라고 하는 게 옳지 않고 촉한蜀漢이 정통이다 라고 해서 써놓은 것이 자치통감강목이다. 다음 주에는 그것을 얘기를 할 텐데 그전에 중국 사회에 있어서 정통의 문제를 간단하게라도 짚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번 주에는 그 얘기를 해보겠다. 

이 얘기를 하는 데 있어 참조하는 게 오카다 히데히로의 《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이다. 원래 제목은 누가 중국을 만들었는가(だれが中国をつくったか), 여기서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것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여하였는가 또는 중국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성, 중국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중화사상으로, 중화사상의 개념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 하는 얘기를 오카다 히데히로가 그 얇은 책에서 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中國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사실 중국이라는 말이 원래 나라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근현대 이후에 이르러서이다. 1912년에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대륙에서 건국이 되고 그다음에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지금 현재 중국 대륙을 통치하고 있는 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 줄여서 중국이라고 한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을 쓴다.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자기네 나라 이름을 세우고 그다음에 타이완을 마저 정복을 하려고 하던 터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한국전쟁에다가 힘을 쏟는 바람에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계속 중화中華, 하나의 중국이라고 하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중국이라고 하는 말은 1912년 이전에는 나라 이름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예전에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진秦 · 한漢 · 당唐 · 송宋은 특정 지역의 명칭을 국가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다음에 원元 · 명明 · 청淸, 원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자기네가 있던 지역의 명칭을 가져다가 사용하기에는 좀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특정한 의미를 담은 낱말이 된다. 원元은 으뜸 원, 근원이라는 뜻이고, 명明이라고 하는 건 밝을 명자인데,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고, 청淸이라고 하는 것도 맑을 청자인데, 주역이라든가 이런 데서 따온 단어들로, 특정한 맥락 속에서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원래의 명칭은 근원을 가리키는 말 또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나라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근현대 이후지만 개념 자체는 꽤 오래되었다. 중국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어제까지는 종교religio라는 개념을 썼다. 이러한 개념의 역사를 추적해서 보면 1912년 이전에 중국 사람들이 중국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강호제현江湖諸賢의 질정質正을 바란다"라고 나오는데, 강호江湖는 강과 호수라는 말로, 온 세상에 그런 뜻이다. 그런 것처럼 중국이라는 말도 사방의 나라들이 있다고 해서 사국四國이고, 한가운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성읍국가城邑國家를 가리킬 때 중국이라고 썼다. 그러니까 중국이라는 말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라 추상명사이다. 중국에서 관중關中이라는 말을 쓰는데 수도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공간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는 황하黃河 중하류 유역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황하 상류 유역은 주나라의 도읍이 있던 호경鎬京이라든가 낙양洛陽이라든가 그쪽이고, 중하류 유역을 전국시대에 가리키면서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이 지역의 국가들을 병합해서 통일統一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천하의 제왕이 되었다. 그게 통일統一이다. 통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 대륙에 있는 땅들을 다 자기의 지배 아래 두었다 라는 의미를, 그러니까 그 땅을 지정학적으로 관철해서 내 휘하에 두었다 라는 의미도 되지만 이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역 통일이라는 공간을 넘어서서 7개의 나라들을 자기 휘하에 두면서, 그것만이 아니라 문화와 풍속과 생활 방식, 문자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도량형을 통일했다. 이런 건 통일이 되었는데 중국 사람들의 말은 통일이 안 되어 있다. 진시황에 대해 생각하기를 문화적 다양성을 억압한다 라는 얘기를 하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렇다. 진시황을 보면 통치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통치의 극한 상황인 것 같다. 문화와 풍속과 생활 방식, 문자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서 이로써 중국이라는 말 자체가 공간적 범주이자 문화적 개념이 되었다 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중국이라는 말과 천하라는 말이 그렇게 사용된다. 

공간과 문화의 일통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의 중국, 천하, 무력으로써 나라를 통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통일이 되는 게 아니고 권위로써 뭔가 비어 있는 틈을 조밀하게 메꿔야만 한다. 우리가 벽돌을 쌓아서 집을 짓는다 할 때 벽돌만 쌓아 올릴 수는 없고 그 사이 사이를 모르타르로 채우는데, 하나의 체제, Regime을 유지하는 두 개의 축은 무력과 권위인데, 권위라는 것은 체제의 통치권 행사를 피지배자들이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해주는 정당성이다. 권위의 핵심을 담고 있는 canon, 정전正典이 헌법이다. 중국의 역사는 그러니까 체제 존속의 정당화 수단으로서 성립을 했고, 중국에서 역사라고 하면 우리가 《세계사의 탄생 - 전통과 주제와 서술 방식 | 케임브리지 세계사》를 보면 온갖 종류의 역사 설명이 쭉 이렇게 되어 있는데, 중국은 그런 역사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체제 존속의 정당화 수단이 역사이고 그런 점에서 정사正史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 무엇을 세워야 역사가 서술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공자가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썼다고 하면 역사 서술의 엄밀함을 얘기한 게 아니라 무엇을 정통으로 할 것이냐를 둘러싼 논점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을 정통으로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춘추春秋에서 유가적 가치, 자기가 재창하는 가치를 내세운 사람을 정통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그런 말을 했는데, 맹자는 제齊나라가 정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식의 얘기를 했다고 했는데, 맹자는 자기가 공자의 적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국 시대에는 쟁투를 벌이고 서로 시끄럽게 떠드는 백가쟁명의 시대인데, 맹자가 공자의 직계 정통라고 한 것은 주희가 만든 것이다. 유가에서도 끊임없이 정통론이 만들어지는데, 사실 한국 사람들은 정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민감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를 읽을 때는 뭐가 정통인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은 가치론적으로 역사를 그렇게 따져 묻지 않는다.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 중국은 그게 아니다. 이것이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론이라고 하는 것은 북송北宋에서 이게 아주 많이 논쟁이 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사실 사마광은 송나라 때 사람으로, 그러니까 사마광 때부터 정통론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치열한 논쟁의 자리로 등장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진시황 때부터 되었고 그다음에 사마천의 사기가 이것에 씨앗을 심기는 했는데 왜 사마광 때에 왔는가. 지금부터 살펴볼 얘기이다. 사마천의 사기라는 것이 정사의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사람 이외의 사람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한족 이외의 사람을 사마천이 배척하기 위해서 정통론을 시작한 건 아니다. 일단 사마천은 한무제漢武帝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신약성서에서 제일 먼저 쓰여진 게 마르코의 복음서인데, 텍스트의 순서를 보면 마태오의 복음서부터 나온다. 마태오의 복음서 1장 1절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정통론이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의 이 부분은 루가의 복음서 3장 23절에 있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루가의 복음서는 이것을 3장에서 얘기한다. 루가의 복음서 1장 1절은 "존경하는 데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읍니다."이다. 루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3장 23절부터 얘기를 한다. 이게 바로 정통론을 만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이렇게 가져다 쓰는 것이다. 족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다. 

사마천이 생각하기에 한무제를 치켜세우고 싶으니까 신화시대의 황제黃帝로부터 시작을 해서 한무제로 이어지는 족보를 만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의 1장 1절처럼 만들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사마천이 쓴 게 바로 사기이다. 여기서는 오랑캐들에 대한 생각은 아직 없던 때이다. 사기에는 아직 중국이라는 관념도 중화사상도 등장하지 않는다. 중화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오랑캐를 만났을 때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오랑캐들한테 치명적으로 난타를 당한 게 송나라 때이다. 그래서 송나라 때부터, 사마광의 자치통감부터 이런 것이 있었다 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논의이다. 사마천은 천하를 통치하는 자를 천자라고 하고 그다음에 황제의 계보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게 신화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라고 해서 한무제 치세로 이어지는 전개 과정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제본기五帝本紀, 천하 통치의 근거로서의 천명을 세팅한 다음에 천명을 유지하려면 덕치를 해야 된다 라고 하는 역사관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천자가 통치하는 세계 라고 하는 역사관을 만들고, 그렇다 보니까 한무제한테는 딱 들어맞는다. 한무제漢武帝가 일단 싸움을 잘하니까 무제武帝이고, 권위를 사마천이 세팅을 해주고 치세를 정당화하고 이를 정통으로 세우는 방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역사책인가, 그건 아닌 것이다. 이게 문제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역사를 쓴다고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라든가 지난번에 《비잔티움의 역사》를 얘기할 때도 얘기했듯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역사처럼 과거의 사실이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이런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다. 영국에서의 휘그Whig 사관도 사실 오늘날에는 역사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이다. 역사 서술의 목적이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서 후세의 교훈을 삼게 한다 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계몽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마천만 해도 정사의 시작인데, 사마천만 해도 체제 정당화에 있는 것이다. 한무제漢武帝가 얼마나 대단한 황제인지, 그리고 신화시대의 황제黃帝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조금이라도 그 정통하고 잘 안 들어맞는다고 하면 사실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카다 히데히로 교수는 그렇게 말을 한다. "변화를 도외시하는 서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변화를 기입하는 게 역사가 아니라 천자의 정통성을 확정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고양시키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다는 말이다. 역사의 목적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게 뭐냐하면, 왜 사람들이 역사를 쓴다고 하면서 이런 것을 할까. 체제 정당화의 도구로서 역사를 사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변화를 도외시할 서술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변화를 서술하는 게 역사인데, 이것이 심각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에 우리 공동체가 저질렀던 잘못 또는 우리 공동체가 받았던 고통을 어떻게 우리가 대면하는가, 그런 태도가 한국하고 중국하고 일본과는 다르다. 

누구를 정통이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게, 전목 선생도 그 얘기를 했는데,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서의 정통 문제가 나온 것이다. 한 나라 다음에 삼국 시대가 되는데, 삼국시대 말기에 위魏 나라, 촉蜀 나라, 오吳 나라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표면상으로는 삼국지라고 했으니까 삼국병립의 구조지만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 전목 선생도 지적을 했다. 위서魏書에는 본기本紀에 해당하는 기紀가 있고, 생전에 황제가 되지도 않았던 조조曹操를 무제라고 칭하는데 촉蜀과 오吳에는 전傳만을 할당했다. 그래서 유비를 서술하는 부분은 선주전先主傳, 그래서 선주는 유비劉備를 가리키는 말이고, 유비 다음에 2대 촉한의 황제 유선劉禪을 후주後主라 한다.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에 보면 "선제창업미반先帝創業未半 이중도붕조而中道崩殂하시고 금천하삼분今天下三分에 익주파폐益州罷弊하니"라는 구절이 있다. 선제창업, 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선주先主傳전이라고 해놓았다.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전목 선생님도 지적을 했다시피 촉蜀이라고 하는 나라는 사실 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데, 촉蜀이라고 나라의 유비가 자기네가 후한을 계승했다고 하여 한漢이라고 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쓴다면 촉한蜀漢이라고 해야 될 텐데 진수는 그냥 촉蜀라고 불렀다. 후대의 역사가가 그 나라가 스스로를 가리킬 때 사용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써놓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위魏를 정통으로 삼고 본기本紀를 두었다. 손권孫權은 오吳 나라의 군주였다고 그래서 오주전吳主傳이라고 했다.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제목은 삼국지三國志라고 했는데 실제로 내용을 보니까 위魏를 정통으로 했다. 위魏 나라 조조만을 황제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했는가. 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 자기네가 살고 있는 나라는 위魏를 계승했다는 말이다. 진수陳壽는 진晉 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자기가 이것을 서술을 하면서 위魏를 계승한 나라인 진晉 나라의 관리로서 서술을 한다. 이게 관찬사서官撰史書가 되는 것이다. 위魏의 정통성을 이렇게 고양시키려고 하다 보니 촉蜀 나라는 당연히 한漢 나라를 계승했다는 흔적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오카다 히데히로 교수는 변화를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마저 왜곡하는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수의 삼국지 서술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나라 이름이다. 그러니까 진수에서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이제 정통 이론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되는데,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는 북방의 다섯 개 종족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한족이 아닌 어떤 종족들이 화북 지방에 16개의 나라를 세우다 보니까 이들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고 그러고 나서 남조南朝와 북조北朝가 이렇게 나뉘게 된다. 그런데 북방민족이 세운 왕조가 수隋 나라하고 당唐 나라이다. 수隋에 의해서 통일이 되고 당唐 나라까지는 왔는데 이때는 어떻게 되겠는가. 중국 정통의 역사관과는 무관한 역사서들을 편찬했다. 그런데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를 지나서 북송北宋이 되었는데, 이제 구당서舊唐書가 있고 구양수歐陽脩의 신당서新唐書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다 송나라 사람들이다. 송나라 사람들은 오카다 히데히로 교수 말에 따르면 원래 북방민족인데 남쪽으로 이민 와 있던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자기네가 한족이라는 걸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남조南朝를 정통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서술을 하고 싶은데 사실은 이때 북송北宋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전연의 맹澶淵之盟이라고 하는 것이다. 거란족이 세운 나라가 요遼 나라이고, 이 요遼 나라하고 북송北宋하고 전쟁을 벌이는데, 송나라가 진다. 그래서 북송北宋의 진종眞宗과 거란 요遼 성종聖宗과 화친을 맺는데, 사실은 졌기 때문에 매년 10만 양의 은과 20만 필의 비단을 해마다 납품을 한다. 그래서 세폐歲幣라고 불리는 것을 하게 되고 거란 황태후에게 숙모의 예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진종眞宗이 나이가 많아서 성종聖宗의 형이고, 형제의 의를 맺는데 형이 동생한테 세폐歲幣를 바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정통 황제를 자칭하던 북송北의 황제가 이 사람하고 형제가 되어 버리게 되어서, 중원 대륙의 남쪽에도 황제 하나, 북쪽에 거란도 황제 하나, 이렇게 황제가 둘이 된 것이다. 여기서 사마광은 심각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정통 황제가 남쪽에 있다고 생각해서 남조의 연호만을 표기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북송北은 남조南朝를 이어받았으니 남조의 황제들은 황제라 부르고 북쪽의 황제들은 또 주主라고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위魏 나라, 제齊 나라, 주周 나라는 위주魏主, 제주齊主, 주주周主라고 부르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수나라 당나라 그다음에 송 나라이다. 원래 수隋 나라의 황제 문제文帝가 588년까지는 아직 황제가 안 되었을 때이다. 그러니까 수주隋主라고 했다. 그것은 맞다. 남조南朝에 속하는 진陳 나라 마지막 황제 장성공長城公은 황제라고 하면 된다. 588년까지의 서술에는 황제라고 하다가 589년부터는 진주陳主라고 부르고, 또 588년까지는 수나라가 왕이라고 해서 수주隋主라고 부르다가 589년부터는 문제文帝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실이 이러저러 해서 이때부터는 황제를 칭한다 라고 말을 하면 되는 것인데, 황제라는 명칭을 누구에게 붙이느냐 가지고 온갖 난리 법석을 부린다. 정통을 누구로 할 것이냐의 문제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있다 보니, 머릿속에 있는 정통 개념이 구체적으로 그 왕들이 자기를 뭐라고 불렀는가에 대해서는 서술을 도외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명칭을 바꿈으로써 정통이 남조에서 북조로 넘어갔다, 그렇게 해야만 또 북송이 정통이 된다. 이렇게 되니까 이때부터는 관념이 구체적으로 벌어졌던 역사적인 사태들을 왜곡하는 심란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쓸데없는 정통론만 난무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니까 군사력이 강대해서 넓은 지역을 지배한다 해도, 이게 요遼 나라이다, 너네들이 우리를 이겼다 하더라도 이적夷狄이기 때문에 문화를 갖지 못한 인간 이하의 존재이고, 중화만이 참된 인간이라는 것, 문화 중심으로 개념이 확장되기 시작한다. 힘이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문화를 갖고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무력과 권위,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되는데 이 중에 하나를 갖추지 못하면, 무력만 있는 나라는 어떻게 해서든지 거짓 문화를 꾸며내려고 하고, 문화는 무성한데 무력이 없는 나라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문화를 가지고 판타지 소설을 쓰려고 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치통감이라고 하는 게 정통에 근거한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또 주희가 보기에 못 마땅한 것이다. 위魏 나라를 정통으로 하는 것이 못 마땅하니까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한 서술을 우리가 한번 해볼까 해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라는 것을 내놓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역사책이 아니라 끊임없는 정통론의 어떤 논쟁이 역사책에 담기는 수밖에 없는, 그런 아주 황량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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