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1)

 

2026.01.16 📖 종교란 무엇인가(1)


지난번까지는 《비잔티움의 역사》를 앞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큰 줄기만 따져서 읽어보았다. 올해 들어서 비잔티움 제국사로 시작을 했는데 《비잔티움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 나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황제 그리고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 그런 것들이고 두 번째로는 종교이다.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를 기독교화하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자기가 로마 단독 황제 노릇을, 그전까지는 Tetrarchia, 즉 4명의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였다가 다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단독 황제가 되면서 어쨌든 권력욕이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면서 힘을 받아야 되는데 옛날에는 뭐가 있었겠는가. 오늘날에는 민주정 국가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그게 정당성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절차적 어떤 의미도 확보한다. 민주적인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일을 하면 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말하자면 자기의 지세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라고 하는 것에서, 또 비잔티움 제국이 140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기독교 국가였다라고 하는 것, 그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종교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기독교라는 게 무엇인가. 신라에서는 이차돈의 순교 이후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라는 얘기를 하고, 조선시대 같은 경우는 성리학 국가였다고 하는데, 성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인가, 유교라는 게 종교냐 아니냐 이런 논란이 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로마의 초대 황제라고 하는 아우구스투스도 종교의 힘을 굉장히 빌렸다. 타키투스의 《역사》, 《연대기》를 읽어보면 아우구스투스는 Pontifex Maximus, 즉 대제관 대제사장이었다. 대제사장의 칭호를 가지고 정당화 노릇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로마 대주교,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가리키는 라티움어 명칭이 Pontifex Maximus이다. 로마 황제들이 가지고 있던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칭호를 라틴 교회 교황도 가지고 있다. Papa라고 하는 것보다는 Pontifex Maximus가 훨씬 더 정식 명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포괄적으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2025년 크리스마스 날에 인터넷 잡지 aeon에서 Undefinable yet indispensable이라고 하는 글이 하나 실렸다. 가나 출신인 콰메 앤서니 아피아Kwame Anthony Appiah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세계시민주의: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를 썼다. 소개를 보니까 Silver Professor of Philosophy and Law, New York University, US, 뉴욕 대학의 교수이다. 최근에 쓴 글은 《Captive Gods: Religion and the Rise of Social Science》, 2025년에 쓴 책이 있는 모양이다. 쭉 읽어보니까 내용이 썩 내용이 썩 좋아서 이것을 좀 살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콰메 앤서니 아피아Kwame Anthony Appiah는 《세계시민주의》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있는데 그 책은 올해 안에 읽고 소개를 하려고 한다. 세계시민주의라는 게 사실 내용이 없는 그런 이념이기는 하다. 

일단 Undefinable yet indispensable에서 중요한 내용만 요약 정리를 하면서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원문을 참조해 가면서 읽어보면 또 제가 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읽어보면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종교라고 하는 게 굉장히 오래된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도 종교가 있었고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면 종교적인 심성을 볼 수 있다 라는 얘기도 있다. 《생각의 역사》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종교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그것을 설명한다 라고 하면 꽤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라는 것과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리가 종교라는 말로 지칭하는 어떤 그런 것하고는 내용상 많이 다를 수 있다. 앞서 비잔티움 제국사도 얘기도 했는데 비잔티움 제국이 14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100년 전쯤에 비잔틴 제국이 망했다는 말이다. 1392년 조선 건국, 1592년에 임진왜란 연대를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 금방 언제쯤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종교라는 개념은 사실 거의 20세기 되어서도 개념 정의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20세기 초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단 하나의 단어로 종교를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헛된 꿈이라고 얘기를 한다. 게다가 종교 연구에 관한 아주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또 한 사람이 있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도 그렇게 얘기를 한다. 그다음에 콰메 앤터니 애피아가 인용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 이 책이 사실 좋다. 이 책 하나만 읽으면 끝난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와 있는데, 종교에 대한 책은 옛날 책이라 해도 여전히 읽을 만하다. 사회과학책이 아니라서 새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없는 점이 있다. 유럽에서 종교라는 개념이 뒤늦게 등장하게 된 과정을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가 굉장히 면밀하게 분석을 한다. 그래서 이제 종교라는 말을 쓰지 말자 라는 얘기를 한다. 이게 1962년에 나온 책인데, 그러니까 20세기 중반이 넘어서 이미 종교라는 개념은 포기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이 책은 굉장히 좋은 책이다. 종교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누적된 전통이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religion이라는 단어 대신에 cumulative tradition이라는 말을 쓰자는 것이다. 20세기에 그렇게 얘기를 했으면 1450년대에 비잔티움 제국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 규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종교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복잡할 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말은 도대체 어떻게 규정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여러 가지 분류를 또는 개념 정의들을 내놓는다. 우선 로마 시대 라티움어 religio라는 말에서 기인을 하는데, 로마 사람들은 도대체 이 religio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썼는가. 또 비슷한 말이 꽤 많다. cultus, ritus, superstitio, superstitio는 미신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우리가 말하는 미신과 종교의 차이가 뭔지 알기 어렵다. 오히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교리 체계라든가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꼼꼼하게 뭔가를 좀 제대로 하는 사람, 오늘날로 치면 믿음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또는 활동 이런 것을 가리키는데 썼다. 그렇다면 로마 사람들은 기독교하고 유대교하고 마니교하고 이슬람교 이런 것들과 어떻게 다른 지도, 사실은 어떤 단어를 가지고 구별하지 못했다. 게다가 제국주의 시대가 되었을 때 서양 사람들이 불교를 만났을 때 불교는 신이 없는데 신이 없는 종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에 와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정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까지 얘기하는데, 예전에 postype에서 개념 설명하면서 클리퍼드 기어츠의 문화 개념과 종교 개념을 얘기한 바 있다. 그다음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옥스퍼드 세계사》에서 거론이 되었었다. 로빈 던바의 개념 규정도 있고, 이런 것들을 쭉 정리를 한 다음에 이 글의 제목처럼 종교라고 하는 것은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필요한 구석이 있다. 그렇게 하면서 종교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 최근의 언어지칭 이론이라든가 이언 해킹이라든가를 이용해서 규정을 한다. 자연종natural kind에 관한 논의들도 있는데 그것도 좀 살펴보고, 그다음에 콰메 앤서니 아피아가 마지막에는 이렇게 얘기한다. 종교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것은 단어가 여전히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학문 연구도 종교에 대해서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보면 문단 3개 정도가 그런 얘기를 한다. 현재로서는 종교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의존하고 있는 일종의 지도와 같은 그런 관심 행위로 여전히 있다. 그러니까 종교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어보면 "For now, religion endures as a shared act of attention: one of those serviceable maps by which we try to find our bearings, and to keep faith with the world." 지금 종교는 여전히 [여럿이] 공동으로 관심을 가진 행위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 세계에 대해 신뢰를 지키고자 할 때 사용하는 쓸 만한 지도들 가운데 하나. 

계몽주의자들은 종교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고, 그다음에 쇼펜하우어 같은 사람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계몽주의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 종교에 대해서 한번 어떤 것인지 그리고 종교가 종교의 영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사람들도 그렇고 로마공화정res publica romana 사람들도 그렇고 로마 제국imperium romana 시대의 사람들도 그렇고, 종교가 없는 것을 가지고는 뭐를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 종교가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것, 새 점을 쳤다는 애기도 있고, 키케로가 쓴 책 중에 《예언에 관하여》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한번 보면서 번역문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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