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6
- 2026. 2. 18.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듣고 정리한다.
2026.01.19 📖 종교란 무엇인가(2)
콰메 앤서니 아피아의 종교에 관한 논의, 지난번에는 전반적인 개요를 말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번역을 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읽어보겠다. 오늘은 종교에 관한 아주 다양한 용어 정의들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처음에 보면 "We tend to think of religion as an age-old feature of human existence."라고 문장이 시작이 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종교를 인간 존재의 태고적 특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종교라는 개념 자체는 근대 초기early modern에 시작된 개념이다. 원문을 보면 중간쯤에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의 책 De veritate religionis Christianae, 라티움어로 쓰여져 있다. 후고 그로티우스가 1627년에 출간한 책. 1627년이면 굉장히 나중이다. early modern은 대개 요즘의 세계사 책을 보면 1500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면 적어도 이제 여기서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다. religion이라고 하는 말은, 종교라고 하는 말은 라티움어 religio에서 온 말인데 이것을 가져다 써야 되겠다라고 할 때는 유럽 사람들, 적어도 비잔티움 사람들까지는, 그들도 자기네들이 유럽 사람이라고, 유럽이라는 개념 자체도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에 적어도 기독교 국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religion이라고 하는 것을 개념 규정할 때 사실은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로티우스의 역사 책이 나왔다라고 하는 것은, De veritate religionis Christianae, 번역본 제목으로 기독교의 진리, 그러니까 여기서 religion이라는 말을 쓴다라고 할 때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신념 체계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지 Religion이라는 개념을 따져 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라는 얘기이다.
그러면 근대 초기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근대 초기는 어떤 시대인가. 오늘날 유럽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기네들과는 다른 세계를 만나기 시작하던 때이다. 다시 말해서 이 글에 넷째 문단에 보면, 오늘날 학자들은 근대적 범주로서의 종교에 도달하려면 그것의 세속적secular 영역, 즉 종교적이지 않은 영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단어의 근대적 비교적 의미comparative sense는 17세기가 되어서야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이때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되었을 때 relig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지난 시간에 이 책 하나만 읽으면 될 거다 라고 했던 책,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 보면 종교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자고 얘기를 한다. 종교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을 가리킬 때 신앙이라는 말을 쓰고, 여럿이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cumulative tradition, 번역본은 축적적 전통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누적적 전통이라고 번역이 된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말을 쓰지 말고cumulative tradition와 faith를 쓰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냥 혼자 방에 앉아서 인격체적인 사적인 종교적인 체험이나 내적인 종교적인 체험이나 이런 걸 한다고 하면 신앙이라고 부르고, 그다음에 어떤 공동체 속에서 과거의 관행이라든가 역사적인 축적을 바탕으로 해서 사원을 꾸리고 경전을 만들고 신학적 체계들을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이제 기도하는 양식이라든가 또는 종교적 제의, 사회 제도, 관습 이런 것들은 cumulative tradition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꼭 그것이 종교라고 하는 말로 묶일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가 종교라고 하는 말을 할 때는 사적인 체험의 영역을 가리킬 때도 있고 제도화된 측면을 가리킬 때도 있다. 저는 제도화된 측면에서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사적인 측면의 영역에서는 탄허 스님의 《선학강설》을 공부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반드시 기독교 또는 가톨릭 교회의 어떤 신앙 체계만을 저의 체험으로 갖지는 않는다. 심지어 당시를 읽으면서도 어떤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말은 애초에 규정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애써서인지 한번 따져보는 것이 이 글이다.
원래 종교라는 말은 다시 정리를 해서 말을 해 보자면 초기 근대의 초기 근대early modern에 시작된 말이다. 그리고 초기 근대라고 하는 이 시기는 유럽 사람들이 자기네들과는 다른 곳을 만나기 시작하는 때이다. 그때 자기네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어떤 신성한 것들에 관한 믿음 체계와 다른 종류의 것을 만났을 때 이것을 어떻게 규정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져다가 쓴 로마의 개념인 religio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를 한번 보겠다. 첫째 문단에 그렇게 되어있다. 우리가 그 단어를 빚지고 있는 로마인들은 어떤가. 라티움어 religio라고 하는 이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양심의 가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엄격한, 똑바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scruples 또는 exactingness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scrupulous observance of rules or prohibitions, 규칙이나 룰이나 또는 금기를 꼼꼼하게 지키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을 잘 지키면 religio이고, 경건한 것이다. 그 단어가 어디로까지 확장되었는가. extending to worship practices, 예배 실천의 준수까지도 가리키게 되었다. 로버트 루이스 윌켄의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와 같은 책들을 보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religio라고 하는 것은 doing the right thing in the right way,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것 없다. 그리고 religio라는 단어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cultus, ritus, superstitio 이런 단어들도 있었다. 이런 단어들은 그냥 다 관습, 의례, 의무, superstitio는 미신이라는 말로 오늘날에는 사용이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인데, 로마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사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하고 공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구별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로마가 해외 정복을 많이 하면서, 특히나 3차 포에니 전쟁 이후에는 지중해 세계 여기저기로 간다. 다른 지역에 가보니까 다른 방식으로 뭔가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eccentric versions of cultic life, 제의적 삶이 다소 기이하게 변형된 것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고 어떻게 할 것이다. 저 동네는 저 동네대로 믿는 거지, 저 동네에서는 저 동네에 걸맞은 것을 믿는 거지하는, 그러니까 의외로 뭐가 더 옳고 뭐가 더 그르다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너네 동네는 너네 동네에 알맞은 제의를 갖고 우리는 우리 동네, 그다음에 로마 사람들은 필요한 것은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로마의 이른바 종교적 관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은 큰 분류genus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해보겠다 라고 하는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브렌트 농브리Brent Nongbri라는 사람이 쓴 Before Religion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번역본은 없다. 브렌트 농브리의 책에서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는데, 가능하면 이 책을 읽어라 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우리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구할 수 있는, 요새는 번역이 많이 돼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참조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오히려 중요한 글은 락탄티우스Lactantius가 vera religio오하고 falsae religiones를 대비시켰다라고 하는 거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로마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cultus, ritus, superstitio 이런 단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오늘날 우리가 종교라고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의례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 사람들이 최상위의 종교 개념을 갖고 이런 종교, 저런 종교, 그 아래로 뭘 넣지는 않았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락탄티우스Lactantius가 4세기에 vera religio와 falsae religiones를 구별해서 말했는데, 이것은 진정한 종교와 거짓 종교로 이해하기가 쉬운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사이비 종교 것이 아니라. 의례를 똑바로 하거나 예배를 똑바로 드리느냐 안 하느냐 그런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성을 따져 묻고 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고대 후기 사람들은, 즉 Late Antiquity 사람들은 종교라는 개념을 생각하지는 않고 우리는 올바른 것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한다 라고 생각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종교라는 말로서 이해하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쟤네들은 뭔가 글러 먹은 것 같아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게 말하자면 17세기 되어서부터 제국주의적인 심성이다. 그러면 종교라는 건 뭐냐 라고, 우리가 어떤 것이 무엇인지 규정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규정하는 데 필요한 가장 치명적이고도 핵심적인 것은 그게 아닌 것을 따져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철학 아닌 것을 말해야 규정하기가 쉬운 경우가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철학사를 읽어봐도 이것을 철학사에다 넣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을 한다. 철학 아닌 게 그러면 무엇일까. 냉정하게 말해서 어떤 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그게 아닌 것을 규정하는 일을 반드시, 즉 배척하는 일을 반드시 함축하기 마련인데, 아닌 것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렵다.
유럽 사람들이 왜 여기서 이렇게 고민을 했는가. 인도, 아프리카, 중국 혹은 고대 지중해를 바라볼 때 기독교적인 요소들을 골라내려고 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앙 체계, 신앙 체계의 권위를 정초하고자, anchor라는 말을 써 있다, 어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러는가. 쟤네들을 야만인이라고 규정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은 자기네들이 진출한 세력에 대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19세기가 되면서부터는 좀 더 강력해졌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게 될 텐데, 그것들을 쭉 이렇게 보면 일단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있다. 그리고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에드워드 B. 타일러Edward B Tylor, 그다음에 도이치의 종교학자라고 하는 막스 뮐러Max Müller, 그 다음에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William Robertson Smith 그리고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지금 이런 사람들은 케임브리지 세계사 제1권 《세계사의 탄생》에서 보면 사상의 역사에도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내놓은 정의가 다 옳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시작을 했는데, 이것은 다음 번에 말할 것인데, 에밀 뒤르켐 같은 사람이 조금 별종이다. 에밀 뒤르켐은 종교적 삶의 근본 형식들에서 어떠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들을 종교라고 부르자, 이게 기능주의적 관점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얘기를 한다. 예를 들어서 여기 나온 것처럼 성스러운 텍스트, 기원을 서사화하는 예언자적 창시자 그다음에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신학 교리 묶음 그리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의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종교를 규정하고 이런 것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교가 이런 것들하고 굉장히 안 맞아 떨어지는 지점들에 있는 종교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잘 안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한계에 다달았을 때 불교는 이러한 노력에 한 시험 사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을 갖다가 규정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설명을 하기는 어려우니까 차라리, 에밀 뒤르켐은 사회학자인데, 어떠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들을, 그러니까 효능을 보고 그것을 종교다 아니다라고 해보자는 것이다. 사람들을 묶어주고 그다음에 일정한 정도로 도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 그러면 굳이 기원을 서사화하는 예언자적 창시자 이런 것들은 필요치 않다. 그런 것을 기능주의적 정의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는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했고, 허버트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고, 에드워드 타일러는 이렇게 얘기했고, 막스 뮐러는 뭐라고 했고, 이런 것들은 그냥 쭉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을 내놓다 보니까 이 사람들 사이에 서로 충돌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이 나온다. 단 하나의, 그러니까 열려라 참깨Open Sesame), 단 하나의 definition을 가지고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나 제인 엘런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이런 사람들도 아예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보면 아예 종교를 정의할 때 이러이러한 경험을 하면 그냥 종교적 경험이라고 하자 라는 식으로까지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기능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내가 이것을 경험하면,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가 말한 거와 비슷한데, 내가 이런 것을 경험하면 그것을 종교적인 것이라고 해보자 하는 데까지 가게 된다. 물론 다음번에는 뒤르켐 추종자들이 기능을 전면에 내세워 종교를 규정한 것을 말한 것인데, 오늘은 종교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규정을 하려다 보면 서로 충돌된다, 그러다 보니 게오르크 짐멜이 딱 한마디로 종교를 규정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를 했고, 그것에 대해서 아예 제인 앨런 해리슨 이런 사람 같은 경우에는 그냥 아예 정의하지 말자 라는 얘기했다는 것을 정리해 두면 되겠다.
'강의노트 > 책담화冊談話 2021-26'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1) (0) | 2026.02.18 |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8) ─ 通鑑紀事本末 (1) | 2026.02.15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7) ─ 資治通鑑綱目 (0) | 2026.02.09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6) ─ 資治通鑑 (0) | 2026.02.02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5) ─ 資治通鑑 (1) | 2026.01.26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4) ─ 資治通鑑 (1) | 2026.01.20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3) ─ 資治通鑑 (0) | 2026.01.11 |
| 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2) ─ 新五代史, 新唐書 (0) |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