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6) ─ 資治通鑑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6
- 2026. 2. 2.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를 듣고 정리한다.
2026.01.31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6) ─ 資治通鑑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0
정통正統의 핵심적 내용
• 대일통大一統: 충분히 넓은 영토를 가져야 한다.
• 예악禮樂의 제정制定
• 종족간種族間의 이합집산離合集散 관계처리
→ 거정居正 (정도正道를 지키다)과 일통一統(공간)이 해진 말
정위正位 / 윤위閏位(여분의 지위, 비정통적非正統的 지위地位
• 남송南宋 이전以前까지는 중원中原을 획득했는가, 즉 공간空間 점유占有를 기준으로 판별
남송南宋 이후以後 도통승계道統承繼와 영토領土 점유占有(통統)의 관계를 규정해야 할 필요성 대두.
남송南宋 시기에는 내외종족內外種族의 구별도 부각되었으며, 이후 점차로 도통道統의 보유保有가 광대한 영토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 남송南宋에서 성립된 도통론道統論
북송北宋 이래로 사대부士大夫가 예禮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남송南宋은 영토를 상실하면서 '영토'를 정통正統의 일부로 삼을 수 없게 되었고 도통道統만을 근원으로 삼았다.
이 정통론正統論을 극복해야, 즉 사대부士大夫에게서 도통道統의 소유권所有權을 빼앗고 도통합의道統合意에 대한 해석권解釋權을 가져오는 문제
청대清代 통치자統治者들
• 직면한 문제. '포악한 진秦' 개념, 즉 도道에 어긋났다고 하는 것. 내외종족內外種族의 구별區別
• 강남江南 사대부士大夫들의 정통관正統觀 파괴
대일통이념大一統理念을 구축하면서 종족적種族的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가졌던 남송南宋이 아닌 한당漢唐의 정통관을 숭상, 즉 남송南宋 정통관正統觀을 우회하며 한당漢唐 정통관正統觀을 수용하고, 동시에 남송南宋 정통관正統觀을 계승繼承한, 즉 강남江南 사대부士大夫들의 이하지변夷夏之辨 사상을 파괴하려는 시도.
남송南宋-명말明末 역사관 일소가 '새로운 정통 구축'의 관건. 대일통大一統 구축에 포함되는 '문화전쟁'
• 세勢와 이理의 관계
현명한 통치자는 둘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치에 근거하여 때를 얻어야 하고, 추세를 따름으로써 이치를 따라야만 한다."
• 이하지변夷夏之辨의 논쟁을 없애는 과정에서 건륭제乾隆帝(1735-1796)의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이 이루어졌다.
• 고증학考證學의 성행盛行문제
- 건륭제가 의도하여 만들어 낸 결과, 건륭제의 대일통大一統 기획과 관련
- 사인士人들이 핍박을 받아 선택한 사상적 전향轉向
• 왕부지王夫之(1619-1692) 이하지변夷夏之辨.
cf. 《강남은 어디인가》
명청교체기 사대부 연구, 《증오의 시대》, 《생존의 시대》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를 읽겠다. 지난주에 정통론에 대해서 얘기했다. 사마천司馬遷이 정통正統의 시작인데, 정통 사관이 논란이 되어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책을 쓴 것이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네 나라가 잘 나가고 그럴 때는 특별히 정통을 따지지 않는다. 송나라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민감했던 이유는 송나라가 국력이 쇠약했기 때문이다. 국력이 강성한 나라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심란하게 붙들고 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무엇이 정통이냐 무엇이 정통이 아니냐 하는 얘기는 중국도 청나라를 거치면서 이 문제가 거의 완전히 해소되었다 라고 볼 수도 있다.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를 아주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최소한 서너 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여해서 읽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목 선생은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국부천대를 할때 따라왔는데, 지금 현재 타이완에서 전목 선생을 어느 정도 읽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전목 선생의 학문적인 업적을 이어받아서 뭔가를 하는 것이 있는가, 전목 선생이 읽으라는 방법대로 읽지 않더라도 어쨌든 무엇가를 읽고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다.
폴리비오스의 책을 읽는다든가 타키투스를 읽는다든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읽는다든가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 자체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그런 체제는 아니다. 분명히 유럽에 기원을 둔 체제이다. 유럽에 기원을 둔 이 체제가 그 기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유럽에서 온전하게 만들어져서 직수입된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많이 변형을 거쳤다. 유럽에서도 아주 다양한 변종 형태들이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것을 그렇게 간단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 누리고 있는 또는 애써 지키고자 하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regime이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려면 결국 유럽의 정치 체제들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정치 체제들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해야 되는 것은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버려서는 안 되는 그런 것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여튼 송나라가 워낙 약한 나라이다 보니까 그렇다. 당나라는 북방에서 온 종족들이 세운 나라이긴 해도 당나라 사람들이 호환胡漢 통합 체제였기 때문에 굳이 자기가 정통이다 아니다 하는 것을 따져 물을 그럴 이유가 별로 없었는데 송나라에서 유독 정통론이 등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정통이라고 하는 말은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었다. 대일통大一統, 충분히 넓은 영토를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라고 말할 때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영토를 다 병합했다 라는 점에서 대통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충분히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되면 대일통大一統, 통일이라는 말을 쓰게 된다. 그다음에 예악禮樂을 제정制定한다. 이 예악禮樂이라고 하는 게 나중에 오면 도道라고 하는 것, 사상의 정통성을 가리키게 된다. 정통이라고 하는 말은 거정居正과 일통一統이라는 말이 합해진 말이다. 거정居正, 정도를 지킨다는 말이다. 거주하다 할 때 거居이니까 올바름에 머무른다, 정도를 지킨다 라는 뜻의 거정居正 그리고 일통一統은 공간의 의미이다. 그런데 남송南宋 이전까지는 중원中原을 획득했는가, 즉 공간空間 점유占有를 기준으로 판별을 했다. 북송北宋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기네가 중원中原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주에 얘기했던 것처럼 전연의 맹澶淵之盟으로 요나라에 쫓겨서 남송南宋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땅이 없는, 일통一統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정통이라고 하는 것에서 일통一統 부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거정居正, 자기네가 올바름은 갖고 있다 라는 생각, 올바름이라고 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여전히 정통이라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도덕을 승계하고 영토領土 점유占有의 관계를 규정해야 할 필요가 생겨나게 된다. 땅이 없어도 일통一統의 공간이 없어도 정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칫하면 정위正位, 정통의 자리가 아니라 윤위閏位, 여분의 지위, 즉 비정통적 지위로 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의문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남송南宋 사람들이 보기에 정통正統이라고 하는 것에서 도덕을 승계했고 정正은 확보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영토 문제가 이렇게 생긴 것이다. 일단 거기서 어떻게 했는가. 대외 종족의 구별을 시작한다. 중원中原을 지금 외종족이 점거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시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단계로 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일통一統은 없어도 되는 것으로 가는 게 아니다. 그러다가 점차로 도통道統의 보유가 광대한 영토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게 바로 정신 승리이다. 그러면서 남송南宋에서 성립된 도통론道統論이라고 하는 게 북송北宋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대부士大夫가 예禮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라고 있는데, 영토라고 하는 요소를 정통의 일부로 삼을 수 없게 되었고, 도통道統만을 근원으로 삼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정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강력하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영토를 이제 누락시키게 된다. 그러면 남송南宋을 거치면서부터 일단 영토라고 하는 것이 정통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탈각된다. 그러면 이제 도통道統만을 근원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니까 여기다가 지난번에 오카다 히데히로 교수가 얘기한 것처럼 사마광司馬光의 정통론에 화이론華夷論이 들러붙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대부士大夫가 도통道統의 이것을 갖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중화민족이다 라는 것이 붙는다. 영토 대신에 중화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결합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통론正統論이 성립한다.
송나라 다음에 원나라 그다음에 명나라이다. 명나라 때까지는 괜찮았다. 명나라 때는 중원中原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정통론의 문제가 부각된다. 가장 심각하게 정통론이 논의된 게 명말청초明末淸初,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이것은 사실 조선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명나라를 계속해서 중화로 모시고 조선에서 청나라를 끝까지 업신여기던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청나라 통치자들이 이것을 간과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일단 중원中原으로 들어와보니 명나라 지식인들이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를테면 왕부지王夫之가 명말청초明末淸初 시대의 사람인데 이하지변夷夏之辨이라고 하는 것을 얘기한다. 이夷라는 게 오랑캐이고, 하夏라는 게 화하족華夏族이다. 그러니까 화이사상華夷思想하고 똑같은 것이다. 서로 분별된다 라는 얘기를 하게 된다. 《강남은 어디인가》라는 책이 있는데, 강남은 양자강 이남을 가리키는 말이다. 명말청초 시기에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은 명나라의 지식인들의 분노를 다룬 책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책은 《명청교체기 사대부 연구》라고 하는 원서인데.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증오의 시대》, 《생존의 시대》 이렇게 두 개로 나눠서 번역된 책이 있다. 《강남은 어디인가》는 강남에 있던 사대부들과 청나라 초의 황제들이 어떻게 교류했는가, 그러니까 청나라 왕조가 정통관을 수립하는 과정, 그리고 자기네들이 도통을 이어받았다 라고 생각했던 명나라의 사대부들이 계속해서 청나라 황제들의 도통관을 빼앗아 오려고 했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통론을 극복해야 된다는 것이다. 명나라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던 도통道統論의 소유권을 빼앗아서 그것에 대한 해석의 문화 권력을 청나라 황제들이 쥐어야 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좀 더 조밀하게 이것을 연구한 게 《명청교체기 사대부 연구》라는 책이다. 한국어판은 《증오의 시대》와 《생존의 시대》 이렇게 둘로 나눴는데, 《증오의 시대》는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명예에서 청으로 넘어가기 직전 직후를 다루고 있는데, 증오의 시대는 엄청 미워하는 시대이고, 생존의 시대는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청나라에 도움을 주고 청나라에서 정통을 세우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청나라 황제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자칫 이 정통을 자기네가 가져오지 않으면 포악한 진나라나 다를 바 없는, 이 사람들을 우리가 문화적으로 승복시키지 못하면 중국 주권 통치가 어렵게 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이하지변夷夏之辨, 즉 내외 종족의 구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남 사대부들의 정통관을 파괴해야 될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이 사람들은 유가를 받아들이고 남송南宋이 아니라 한나라와 당나라의 정통관을 숭상한다. 그리면서 남송南宋 정통관을 개수한, 그러니까 강남 사대부들의 이하지변夷夏之辨 사상을 파괴하려고 시도를 한다. 남송南宋과 명말 역사관을 일소하는 것이 새로운 정통 구축의 관건이 되어서 청나라가 대일통을 했다. 특히나 건륭乾隆 황제 때에는, 지금 현재 중국의 영토가 건륭제乾隆帝 때 확정해 놓은 것하고 거의 다를 바 없다, 대일통이라고 하는 것을 했고, 거기에 덧붙여서 도통道統까지 가져와야 되는 문제를 시도했던 것이다. "현명한 통치자는 둘의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이치에 근거하여 때를 얻어야 하고, 추세를 따름으로써 이치를 따라야만 한다." 여기서 추세라고 하는 것이 바로 대일통의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래서 왕부지王夫之가 세워놓은 이하지변夷夏之辨의 논쟁을 없애는 과정에서 건륭제乾隆帝가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업적이 바로 사고전서四庫全書라고 하는 것이고, 건륭제가 의도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건륭제乾隆帝의 대일통 기획과 관련된 것, 그러면서 《명청교체기 사대부 연구》를 보면 아주 엄청난 힘겨루기라든가 이런 것이 나온다.
물론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대해서는 사대부들이 핍박을 받아서 선택한 사상의 전향이라는 해석도 있고, 건륭제乾隆帝가 의도하여 만들어낸 결과이지 사대부들의 무슨 전향이라는 것은 있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 해석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고,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은, 사실 현대 중국에서도 이런 것들이 있다. 현대 중국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네가 정통이라고 하는 것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을 하기 위해서 청산이라고 하는 철저하게 절차를 밟아갔다.
도통道統의 문제, 올바름의 문제 이런 것에 굉장히 집착하고 끝까지 버텨내는 것, 이런 것들이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요상한 특징이 아닌가, 바로 그러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냥 편하면 됐지라고 해서 독재에 항거할 필요가 없다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올바름에 대한, 도통론道統論에 대한 민감한 민족이 아닌가 한다. 정통론은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주희朱熹가 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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