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5. 11. 27.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듣고 정리한다.
2025.11.26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2
2025.11.26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2
일시: 2025. 11. 26.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246
강의 자료: https://litt.ly/booklistalk
강의자료 5페이지를 보자. ‘뜨거운 전쟁’의 시작, 냉전을 Cold War라고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Cold War가 일어난 적이 없고 열전Hot War이었다. "1975.4.30. 사이공 함락"은 한국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사건이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민주화와 평화화를 추진하였으나 1948년 이후 기존의 민주화정책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냉전구도로 편입[이른바 ‘역코스’(逆コース, reverse course)]", 냉전구도로 편입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본이 역코스가 되고 미국 입장에서는 롤백이라고 한다. "냉전 개시는 일본의 혁신 진영에도 영향", 악영향이겠는데 일본 공산당은 이때 멸망한다. 그리고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는 일본은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 체제를 구축해 왔다고 얘기했다. 사실상 자기네가 얼마나 빨갱이 사냥에 능한지, 그러니까 일본 제국 군대가 빨갱이 사냥에 관한 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특화된 군대라는 얘기를 계속 했다. 일본에서 벌어진 역코스는 그대로 데칼코마니처럼 한반도에서도 퍼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서 퍼뜨린 미국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서사를 그대로 가면 안 되고, 우리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이 사태를 봐야 될 필요가 있다. "탈냉전과 탈식민지화의 고착", 한국 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 한국은 탈식민화 과정에서 발발한 한국 전쟁은 '열전이 된 냉전'이라는 구도에 포섭이 되었다. 그리고 인도차이나는 "미국이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 동아시아 지역에서 프랑스가 힘이 떨어져 가니까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오다시 정권 승인하고 전비 원조 개시하고, 그다음에 1975년까지 내전을 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냉전이라는 맥락에서 전개"했고,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곳에서도 냉전과 탈식민지화 과정이 뒤얽혔다." 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냉전과는 다른 외교 노선을 맺어 갔는데, 그게 바로 비동맹 노선이다. 베트남 전쟁 항목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전쟁이고, 미국의 패배와 사회주의 베트남의 승리는 20세기 동아시아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하나다.
그 다음을 보면 "동아시아의 전환기(1975-1990)"이다. 이 시기는 1975년에 베트남 전쟁이 끝나기도 했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1975년은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나는 때이다. 개발독재체제, 우리나라도 여기에 포함이 된다, "높은 경제성장 비공산국가 7개국(일본, 홍콩, 타이완,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여기서 당연히 일본이 먼저이다. 미국에서 이 나라들을 다 관리하는 게 아니라 일본에 시키고 홍콩, 타이완,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은 말하자면 일본의 재하청을 받는 방식으로 간다. 그다음에 독재, 일당지배, 권위주의 체제를 동반한 개발주의 식으로 발전한다. 그다음에 1950년대의 체제 간 경쟁인 냉전의 산물이고, 공업화를 위한 물적·인적· 자원의 집중적 동원과 관리를 행하고, 후발국 공업화, 위기 관리 체제의 구축이라는 정치적 요청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로 성립했다. 그러니까 박정희 개발독재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성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80년대 이후 ‘아시아태평양경제권’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영 제국은 완전히 여기서 퇴장을 했다.
그다음에 "이전 세계, 즉 독립운동을 주도해온 내셔널리스트 세대로부터 국가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빼앗거나 권력의 양도로 수립", 이런 나라들이 대체로 보면 타이완이나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이다. 그리고 "자기긍정적 민족·사회상의 부정"했고, "보편주의적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의 유효성을 부정하면서 민족이나 사회 고유의 상황에 맞춰 그 부정적인 면을 개혁함으로써 성장과 안정을 실현한다는 논리"를 가졌다. 그다음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은 미국에서 하라고 해서 한 것이다.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 미국, 일본이 보조를 맞춘 결과이고, 한국의 베트남 파병과도 하나가 된 움직임이고, 한국은 미국의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1968년에 5만 명을 보냈다. 급여 전액을 미국이 지급했고, 베트남 파병 군인 가족에게는 이민 우대 조치를 적용했고, 1970년대 미국 이민이 그래서 급증한다.
그다음에 "베트남전쟁 시대는 1차 오일쇼크까지의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거의 중첩"된다. 일본은 "베트남전쟁 특수로 혜택을 누린 후방의 생산기지"이고,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그다음에 "개발체제로 이행해가는 동아시아 나라들의 기러기 떼형(雁行型) 경제발전의 선두에 있던 기러기", 일본을 선두로 해서 홍콩, 타이완,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이 뒤따라가는, 그리고 미국이 가라는 대로 가는, 그래서 "일본의 55년 체제와 동아시아의 개발 체제는 동시대의 불가분한 존재"였다. 그때 이후로 일본은 55년 체제가 무너지지 않았다. 일본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이 여기 다 있다. "개발체제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전환하는 동아시아 나라들", 그중에 유일한 나라 한국이다. 일본은 1960년 안보투쟁을 마지막으로 다른 국가들과는 양상을 달리하는데, "1960년 안보투쟁과 같은 민중을 동원하는 포섭력을 가진 운동이 일본 사회에서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본이 거기서 끝난 것이다. "일본인 과격파의 지속적인 테러와 해외의 반일폭동, 우치게바(内ゲバ, 학생운동에서 의견이 다른 각파 간의 폭력투쟁)의 유혈사건, 1970년대에 자라난 청년과 학생들을 모든 ‘운동’의 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무관심하게 만들어 순종적인 국민을 만들었다." "연합적군 아사마 산장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뉴스가 되었다.
강의자료 6페이지를 보면 "중국의 대두와 일본", 1977년에 신일본제철과의 제휴로 상하이에 제철소 건설, 이것을 기억해 두어야 하는데 일본이 망조에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중국의 외자 도입이 허용되고 14개 도시가 1984년에 개방이 되었다. 그다음에 1985년에 플라자합의, 각국의 협조와 개입에 의해 높은 달러 가치를 엔고와 낮은 달러 가치로 유도한다는 합의, 진짜 중요한 사건이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하는 것이 1970년대부터 삐끗했는데 1985년에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 되었을 때 플라자합의가 단행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일본 경제와의 결부되어 있고, 제품을 수출할 거대한 미국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베트남전쟁 특수가 있고 미국 생활용품 수요를 거기다 채워주었고, 그다음에 미국은 베트남 전쟁 전비로 재정파탄에 빠졌지만 국채를 발행해 일본에게 구입하도록 함으로써 재정을 유지하고, 미국 경제에 자금이 돌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제조하는 상품을 소비했다.
"전후처리와 역사 인식 문제"를 보겠다. 전후처리는 협의의 동아시아와의 관계가 있고, 근대 일본의 가해성을 전후 일본이 법적·정치적·경제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 다음에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대동아공영권 시기 동남아시아와의 관계가 있다. 일본의 지불능력 결여를 이유로 연합국 측이 대일 배상청구권의 포기를 결정함으로써 우리도 어영부영 포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은 국제법상 주체로 인정되는 특별한 법 영역에 속하고,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 간 조약 등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다." 한일기본 조약에 의해서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계속 우리는 청구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역사인식문제는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 일본 국내에 걸쳐있다."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문식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본에서 반성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파에 속하는 집단과 지식인들은 대동아공영권이 동남아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했고 독립을 향한 중요한 충격체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감사하고 있다는 역사해석을 견지"하고 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일본에 대한 자긍심 회복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의 강제적 부식. 협량한 애국심과 일체화된 해방사관은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본중심사관"이다.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만듦으로 해서 너네들이 서구 열강에게 지배받고 있던 것을 해방시켜주지 않았느냐 라고 얘기하는 게 바로 해방 사관이다. 가장 완고하게 저항하고 있는 건 당연히 우리나라하고 중국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는 중국하고 힘을 합해서 대응을 해야 된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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