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7) ─ 資治通鑑綱目

 

2026.02.07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7) ─ 資治通鑑綱目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1

 

주희朱熹,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 근거자료.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목록目錄, 통감거요력通鑑舉要曆
  호안국胡安國, 거요보유舉要補遺

 

• 편찬내력.
  범례凡例, 서序 ─ 주희朱熹가 43세때 작성
  사후死後 20년 후, 송宋 영종寧宗 가정嘉定 12년, 각본刻本
  현재 통용되는 것은 조사연趙師淵이 편찬한 것. 59권
  그렇다면, 통감강목通鑑綱目은 조사연趙師淵의 저작이므로 주희朱熹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 43세에 서문을 썼다
    - 이 책을 쓸 당시의 견해들이 주자어류朱子語類등의 문집文集에서 발견된다.
  이 점은 주희朱熹의 다른 저작들, 논어집주論語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시집전詩集傳, 역본의易本義들도 마찬가지다. 주희가 직접 간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몰래 간행하며 전해온 것 

저술의 기본원칙
"세를 그 해의 첫머리에 적고 연으로써 통을 드러내며 큰 글자로는 대강을 나타내며 주를 통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적는다"
표세이수년表歲以首年 인년이저통년因年以著統年 대서이제요大書以提要 분주이비언分註以備言 
  • 세를 첫머리에 적는다 ─ 60갑자甲子를 적는다. 예) 병오丙午 
  • 연으로써 통統을 드러내며 ─ 편년編年 예) 대한민국大韓民國 30년 1948.9.1 관보 제1호(1919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1년으로 계산), 1948.9.25 이후 단기檀紀, 1962.부터 서기西紀
  • 큰 글자를 쓰는 것이 강綱
    작은 글자로 주를 다는 것이 목目

춘추春秋
• 춘추를 모방하여 강綱에 포폄褒貶을 넣었다.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을 드러내기 위함.
   자치통감, 위기魏紀 태화太和 오년五年 "제갈량 장입구諸葛亮 將入寇"라는 서술(제갈량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해왔다) 
• 사차북벌四次北伐,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
• 촉한蜀漢 정통正統 선례先例
  진대晉代 습착지習鑿齒, 한진춘추漢晉春秋
• 통統을 무엇으로 정하는가는 사사寫史의 문제(역사의 올바른 서술)


오늘은 2026년 2월 7일 토요일이다. 지금 유독 오늘 날짜를 말했는데,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얘기하면서 왜 이렇게 날짜를 말하는가는 오늘 하는 얘기와 관계가 있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이라고 하면 서력기원西曆紀元이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캘린더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가령 이슬람도 이슬람 달력이 있다. 이슬람 달력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오늘은 그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2026년이라고 하는 숫자가 통용되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사용하는 이슬람 달력하고 그다음에 서력西曆, 서양 캘린더를 쓰면 될 것이다. 지금 이런 식으로 뭔가 쓴다 하는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 서력기원을 사용한 것은 1962년부터이다.  


예를 들어서 조선시대만 해도 이런 게 없었다. 당연히 서양하고 교류가 없었고 이게 사용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시, 두시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두시언해杜詩諺解이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두시언해가 처음이다. 세종하고 성종 시대에 쭉 걸쳐서 번역이 되다가 1481년에 간행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뭔 일이 있었던 것들은 "1481년(성종 12년)"이라고 쓰는데, 성종이 왕이 된 지 12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가령 중국 같은 경우에는 올해부터 병오년丙午年인데, 가령 병오년(가경嘉慶 14년), 황제가 연호를 채택한 해를 1년이라고 한다. 이렇게 쓰는 것에 되게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2026년의 시작은 입춘立春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는데 사주 명리학에서는 입춘에서 간지干支가 바뀐다고 본다. 그러니까 병오년丙午年은 다음 다음 주 설날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시작이 되었다. 올해는 2026년 2월 4일 수요일이 입춘이었기 때문에 병오년丙午年이 시작되었다. 욱십갑자六十甲子를 병오년丙午年을 하는 건 맞다. 그런데 2026년 병오년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병오년이라고 하는 것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사용하는 갑자이다. 그리고 2026년은 서력, 서양 캘린더이다. 그러면 동아시아 캘린더와 서양 캘린더는 아무런 연결이 없다. 그러면 올해를 딱 짚어서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병오년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를 흘러가면서 한 번만 있는 건 아니다. 60년을 한 바퀴 돌면 다시 온다. 제가 임인년壬寅年생인데, 1962년이 임인년壬寅年이었다. 임인년壬寅年에 태어났는데 다시 임인년壬寅年이 또 왔다고 하면 환갑還甲이다. 갑이 한 번 돌아왔다는 말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육십갑이 돌아오면 환갑還甲이다. 그러니까 10개의 갑干과 12개의 지支이 조합을 이루어서 60개가 만들어지고 그 60개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상하이에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온 것을 환국還國, 임정환국臨政還國이라고 한다.   

환갑이 오고나서 60년이 더 지나면 환갑이 또 온다. 그러면 그것은 돌고 도는 것, 순환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직선의 것은 안 되니까 그때는 어떻게 했는가, 옛날에는 왕의 연호를 따져서 쓴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가 병오년丙午年인 건 맞다. 입춘 지났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60년 전에도 병오년丙午年이 있었다. 그러면 60년 전의 병오년丙午年과 지금의 병오년丙午年을 구별하려면 직선으로 쭉 더 이상 겹치지 않는 뭔가가 하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뭐라고 할 것이다. 요즘엔 서양 캘린더를 쓰니까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라고 쓰는데, 사실 원래 격식에 맞게 쓰려면 병오년丙午年 2026년이라고 쓰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서력기원이 없었는데 어떻게 썼는가. 병오丙午 성종 11년 이런 식으로 하면 병오丙午라고 하는 것은 돌고 도는 해이고 성종 11년은 두 번 다시는 안 온다. 그러면 유일무이한 해가 된다.  

오늘 읽게 되는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이런 식의 연호를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과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에 정통성 문제하고 연결이 되어있다. 누구의 연호를 쓰는가, 나라가 하나밖에 없을 때는 연호가 하나이지만 가령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이면 나라가 여기저기 있다. 그러면 어떤 특정한 날을 지칭할 때, 가령 766년을 지칭할 때 가령 그 해가 병오년丙午年이면 병오년丙午年이라는 건 누구나 다 갖다 쓸 수 있다. 766년이라고 하는 해에 나라가 세 개가 있었다고 해보겠다. 그러면 세 개의 나라 중에 누구의 연호를 가져다가 그 날을 지칭할 것인가 하는 것은 특정한 나라의 연호를 가져다 쓰면 그것을 정통으로 인정한다 라는 말이 된다. 우리는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 三國演義를 읽어서 유비, 관우, 조조, 제갈량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이제 정통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에 사마광司馬光은 위魏 나라를 정통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을 기록을 할 때 똑같은 사건에 얽혀 있는 나라가 세 나라가 있다고 할 때 그 세 나라는 각각의 왕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세 나라마다 연호가 다르다. 그때 세 나라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병오년丙午年, 임인년壬寅年의 갑자이다. 그러면 갑자를 쓰고 그다음에 그 세 나라 중에 어떤 나라의 연호를 가져다 쓰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기록한 역사가가 어느 나라를 정통으로 삼았느냐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 그러한 애기를 하는가.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그런 것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그런 책이다. 오늘날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 라이트New Right와도 관계가 있다. 아주 케케묵은 얘기인데 그렇게 낡은 얘기도 아닌 그런 얘기이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라고 하는 역사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책으로는 그다지 가치가 없는 책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나라이니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많이 읽었다. 중국의 역사를 잘 알고 싶어 가지고 읽었다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정통에 대해서 우리가 대응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읽었던 것이다. 먼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대한 서지적 사항을 말해보자면 이 책은 일단 주희朱熹가 창작을 한 게 아니다. 사마광司馬光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 그다음에 덧붙여서 목록目錄이라는 것을 쓰고 그다음에 통감거요력通鑑舉要曆이라고 하는 것을 썼다. 이렇게 자료가 많다. 그리고 호안국胡安國이라는 사람이 거요보유舉要補遺라고 하는 것을 썼다. 사마광司馬光의 통감거요력通鑑舉要曆을 또 보완하는 것이다. 보유補遺는 덧붙인다는 것이다. 예전에 헤겔 원전 강독을 할 때 본문이 있고 그다음에 Anmerkung이라는 게 있고 Zusatz라는 게 있다. Anmerkung을 보유補遺라고 하고, Zusatz를 주註라고 했다.  

거요보유舉要補遺와 같은 자료들을 놓고 주희朱熹가 일단 범례凡例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43살 때 서문序文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걸쩍지근한 것이다. 주희朱熹의 제자들이 송宋 영종寧宗 때 가정嘉定 12년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연호를 쓴 것이다. 주희朱熹가 죽은 지 20년이 되어서 각본刻本이 되었는데, 각본刻本이라는 것은 인쇄를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희朱熹가 출간한 건 아니다. 사실 주희朱熹가 살아생전에 출간한 책들은 논어집주論語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시집전詩集傳, 역본의易本義 등이다. 이런 것들도 직접 간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몰래 간행해서 전해 내려온 것이다. 끊임없이 주희朱熹는 계속 고쳐 쓴다. 여기서 전목 선생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주희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있었다. 항상 서문을 먼저 다 쓰고 나서도 책을 계속 고쳐 썼다. 책을 완성하기 전에 서문을 썼던 것이지 책을 완성하고 나서 비로소 서문을 쓴 것이 아니었다." 이게 주희朱熹의 습관인 것이다. 이를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서문이 있다. Vorrede가 있고 Einleitung이 있고 그다음에 본문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Vorrede, Einleitung, 본문을 보면 Einleitung을 쓰고 그다음에 본문으로 들어간 것 같다. 문맥의 흐름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Vorrede는, 이른바 정신현상학 서문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다 쓴 다음에 Vorrede을 쓴 것 같다. 그러니까 Vorrede을 나중에 썼지만 책의 형식상 Vorrede을 맨 앞에 놓는다. 그래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을 때는 Einleitung부터 읽고 다 읽은 다음에 Vorrede를 읽는 게 내용상 맞다.  

주희朱熹은 일단 서문을 썼다. 서문을 먼저 썼다는 것은 야망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까 결국 완결을 못하고 초고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주희朱熹의 제자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황간黃榦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강목을 모두 보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주희朱熹의 모든 텍스트가 그렇다. 그래서 사실 주희朱熹의 텍스트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읽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처음으로 간행한 사람은 이방자李方子와 진덕수陳德秀였는데, 이방자李方子는 주희朱熹의 학생이었고, 진덕수陳德秀는 주자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방자李方子가 각본刻本을 처음으로 내놓았는데, 이방자李方子는 "주자가 만년에 이르러서도 다시 정리하여 더욱 상세하게 하려 했지만 여력이 미치지 못했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 하면 안 된다. 자기가 손을 대서 마무리를 한 것만을 출간을 해야 했다. 대체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주희朱熹와 조사연趙師淵이 낸 것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 통용되는 것으로 조사연趙師淵이 편찬한 것이 59권이다. 조사연趙師淵 역시 주희朱熹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뜻에 따라서 정리해서 간행을 했다. 주희朱熹가 도대체가 나이가 들어서 간행할 힘이 없어 보이니까 조사연趙師淵이 여러 권을 써서 주희朱熹에게 보냈는데, 단지 좋다고 할 뿐 고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원고를 보냈는데 주희朱熹는 좋기는 한데 자세히 볼 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주희朱熹가 조사연趙師淵이 보낸 원고가 마음에 안 든 것이다. 아니면 자기의 야망이 있거나 한 것이다. 그래서 저는 주희朱熹가 훌륭한 선생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전목 선생도 그랬다. "조사연이 쓴 것을 주희가 자세히 읽었던 것 같지 않으며 수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사연趙師淵은 사실 급이 안 되는 것이다. "조사연의 학문을 말하자면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할 당시 그를 도왔던 유반 · 유서 · 범조우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사마광司馬光은 어떤 점에서는 잘한 것이다. 일단 수준이 있는 제자가 있었다. 유반劉攽, 유서劉恕, 범조우范祖禹가 있고 그다음에 사마광司馬光이 코멘트를 하고 고쳤다. 그래서 주희朱熹가 썼다고 하는 주자어류朱子語類 이런 것들 외에는 그다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비록 마지막 교정을 한 책도 아니고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조사연趙師淵이 편찬한 것인데 이게 인기가 매우 있었다. 전목 선생님 말씀으로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시되었다." 그리고 이제 갈수록 더 많이 간행되었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조사연趙師淵이 간행을 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과연 주희朱熹의 의견이 얼마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러니까 주희朱熹의 뜻이 오해되기 쉽게 만들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보고 대조를 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라는 것은 말씀 어語와 모음이라는 뜻의 류類이다. 이게 왜 그러는가 하면 일단 43세의 서문을 썼다. 서문을 보고 대강 이런 식으로 하겠구나를 우리가 알 수 있는데, 특히 이 책을 쓸 당시의 견해들이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의 문집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어류語類라고 하는 것은, 말씀 어語가 있고 말씀 언言이 있다. 언류言類는 없다. 어류語類는 누구를 찍어서 말하는 것이다. 혼잣말은 언言이다. 자왈子曰이라고 할 때 왈曰은 일반적으로 마할 때, 언言과 어語를 다 어우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주자가 제자들한테 한 말이다. 그러니까 들은 사람이 확실한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들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주자어류朱子語類가 사실 핵심 포인트이다. 사실 그러니까 우리가 주자의 학문을 공부한다고 하면 주자어류朱子語類를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라고 하는게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들어있기 때문에 주희朱熹의 그것이 들어 있다 라고 말은 할 수 있다. 

이제 저술의 기본을 보면 "세를 그 해의 첫머리에 적고 연으로써 통을 드러내며 큰 글자로는 대강을 나타내며 주을 통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적는다"라고 되어 있다. 표세이수년表歲以首年 인년이저통년因年以著統年 대서이제요大書以提要 분주이비언分註以備言, 이게 말하자면 핵심 포인트이다. 앞서서 전목 선생이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가 역사는 서술한다(사사寫史). 그다음에 연구하고 살핀다(고사考史). 그다음에 평론을 한다(평사評史).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려면 일어난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 이벤트를 조사하는 것이 고사考史, 연구하고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쓰는 게 사사寫史이고, 사사寫史를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고사考史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놓고 어떻게 평가를 하는 가는, 즉 고사考史를 한 다음에 이제 평사評史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사사寫史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사評史라고 하는 것은 미리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항상 역사를 우리가 연구할 때는 일단 순서를 보면 고사考史)를 하고 그다음에 평가를 하고 서술을 한다. 서술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통을 갖추어 서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서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다. 뉴 라이트New Right는 대한민국 건국절이라고 얘기를 한다. 사건은 똑같다.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러니까 1948년 8월 15일에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1948년 8월 15일에 정부를 수립했다. 그때 대통령인 이승만도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이라고 얘기했다. 8월 15일에 정부 수립행사를 마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공식적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하니까 관보 제1호를 펴내는 게 1948년 9월 1일이다. 그때 대한민국 1948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다. 연호 표기를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게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그때로부터 계산을 해서 대한민국 30년이다. 그러면 그 표기로 하면 올해는 대한민국 108년이다. 우리가 서양 캘린더를 아직 안 쓰고 있으면 병오丙午 대한민국大韓民國 108년 이렇게 쓰게 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쓰다가 1948년 9월 25일에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쓰자고 해서 단기 4281년이라고 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부터 서양 캘린더를 썼다.  

위魏 나라, 촉蜀 나라, 오吳 나라가 있었다. 사마광司馬光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 어떻게 표현했는가. 가장 대표적인 중요한 사건 중이 무엇인가. 제갈량이 남긴 글 중에 유명한 것이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써서 올린 출사표出師表이다. "선제창업미반先帝創業未半 이중도붕조而中道崩殂하시고 금천하삼분今天下三分에 익주파폐益州罷弊하니"라는 구절이다. 제갈량이 군사를 거느리고 위魏 나라를 쳐들어 가는데 사마의하고 싸움을 하는 것으로 4차 북벌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갈량이 4차 북벌을 떠나던 해가 서역 기원으로 치면 231년이다. 그때 중국의 나라가 세 개가 있었다. 위魏 나라는 연호는 태화太和, 241년은 태화太和 5년이고, 촉蜀 나라는 유선劉禪인데 연호는 건흥建興이다. 그때가 건흥建興 8년이다. 오吳 나라는 황무黃武 6년이다. 그러니까 사건은 하나이다. 그 해가 가령 병오년丙午年이라고 해보면, 건흥建興 8년이라고 할 지 태화太和 5년이라고 할 지 황무黃武 6년할 지, 어떤 것을 가져다 쓰느냐에 따라서 누구를 정통으로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다가 태화太和 5년으로 기록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주희朱熹은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생각한 것이다.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한 선례가 있는데, 진晉 나라 때 습착지習鑿齒라는 사람이 한진춘추漢晉春秋라는 것을 썼다. 대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라고 말할 때, 조조가 세운 위魏 나라 위나라를 정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위진魏晉이라고 한다. 그런데 습착지習鑿齒라는 사람은 한진춘추漢晉春秋라고 썼다. 공자의 춘추春秋를 모방해서 썼는데, 이 사람은 한漢을 정통으로 봤기 때문에 한진춘추漢晉春秋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위기魏紀 태화太和 오년五年에다가, 위魏 나라를 본기本紀로 썼는데, "제갈량 장입구諸葛亮 將入寇"라고 썼다. 장將이라는 게 군사를 거느리고 입구入寇는 침략해 왔다는 것이다. 위나라 입장에선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해 온 것이다. 주희朱熹는 촉한蜀漢을 정통이라고 했기 때문에 저술의 기본 원칙을 그렇게 삼았던 것이다. 

"세를 그 해의 첫머리에 적고 연으로써 통을 드러내며 큰 글자로는 대강을 나타내며 주을 통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적는다." "세를 그 해의 첫머리에 적고"는 누구나 다 쓸 수 있다. "연으로써 통을 드러내며"가 포인트이다. 그러니까 건흥建興을 쓰느냐 태화太和를 쓰느냐 황무黃武를 쓰느냐, 주희朱熹은 이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다가 태화太和 5년으로 쓴 것을 한漢 본기本紀에다 넣고 건흥建興 8년이라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을 정통으로 삼느냐의 문제 정도가 아니라 이제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포폄褒貶을 해야 될 것이다. "큰 글자로는 대강을 나타내며", 이게 강綱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정통은 누구다 라고 해놓고 그 밑에다가 포폄을 해서 크게 누가 좋은 놈 누가 나쁜 놈 이런 식으로 대강大綱을 하고, 즉 강목綱目의 강綱의고 목目에다가 그 사건들을 쭉 적는 것이다. 이게 쉽겠는가. 뜻은 원대하나 그게 잘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보면서 이게 어떻고 저게 어떻고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얘기를 하고 다음 시간에 다른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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