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8) ─ 通鑑紀事本末

 

2026.02.14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8) ─ 通鑑紀事本末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1

 

원추袁樞,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
• 42권. 주희朱熹는의 평가 "사마광의 책을 섞어 헝클어지게 한 여전히 국어와 같은 류" (착종온공지서錯綜溫公之書 내국어지류乃國語之流)
 •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서史書의 출발점
• 사실事實을 중심中心으로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만 적고 있다.
    말[言]과 사실[事]의 기록이 역사라면 말은 기록하지 않은 것. 국어지류國語之流는 사실만 기록한 것을 지적한 것

 

• 이후에 등장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서史書들
  송사기사본말宋史記事本末, 원사기사본말元史記事本末, 명사기사본말明史記事本末, 좌전기사본말左傳記事本末, 청사기사본말清史記事本末, 요사기사본말遼史記事本末.. 
  구조기사본말九朝記事本末(아홉 종류로 쓰인 것을 묶어서 이르는 명칭)

• 청초淸初, 마숙馬驌, 《역사繹史》 ─ 천지개벽天地開闢부터 진말秦末
  원추袁樞의 책은 사마광司馬光의 책을 근거로, 그 안의 사실을 나누어서 서술
  마숙馬驌은 고서古書속의 자료를 모두 조사하여 정리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자료가 다르게 기록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안어按語)를 덧붙여 놓았다.

"그러나 원추는 실제로는 역사가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 또한 사학명저라고 할 수는 없다. 기사본말체라는 새로운 체제로서의 가치를 제외하고 그의 책은 실제로 그다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단점은 바로 사실의 기록에 있었다." 

기전체紀傳體, 편년체編年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 세 체제의 비교, 장단
• 청대淸代, 사고전서제요四庫全書提要
"기전체는 한 가지 사실이 여러 편에 중복하여 보이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기 어렵다. 편년체는 한 가지 사실이 여러 권에 따로 떨어져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살피기 어렵다. 편년과 기전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으로 실제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체제이다." (기전지법紀傳之法 일사이복견수편一事而複見數篇 빈주막변賓主莫辨 편년지법編年之法 일사이격절수권一事而隔絶數卷 수미난계首尾難稽 편년기전관통위일編年紀傳貫通爲一 실전고소미견實前古所未見) 

• 기전체紀傳體
본기本紀. 군주의 통치統治 관련 기록
열전列傳. 신하들의 전기傳記
지志와 표表. 제도와 문물
→ 삼원적三元的 역사. 하나의 사건을 사람, 제도에 따라 나누어 기록. 연대가 불분명한 사태도 기록. 총체적 이해의 어려움

• 편년체編年體
연대기 형식. 기록 집약 가능. 연대가 불분명한 사건을 기록하지 않는다. 동일한 사건이 여러 해, 여러 날로 나뉜다.

•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건별로 나누어 원인, 경과, 결과를 기록.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 즉 주제 선정의 자의성恣意性

➞ ☆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의 경우
• 제1권. 
  "진이 셋으로 나누어짐" (삼가분진三家分晉)
  "진이 육국을 병합함" (진병육국秦併六國)
  "호걸이 진을 멸망함" (호걸망진豪傑亡秦)
  전국시대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6국을 멸한 사실로 넘어감. ─ 전국戰國의 역사歷史를 소홀히 하였다. 또한 진시황秦始皇이 황제가 된 후 정치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는가에 대한 서술이 없고, 곧바로 진승陳勝, 오광吳廣, 항우項羽, 유방劉邦 등의 '호걸'이 진을 멸망시킨 것으로 넘어갔다. 

• 제2권. 
  "고조가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고조멸초高祖滅楚)
  "여러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제장지반諸將之叛)
  한고조漢高祖는 평민平民으부터 천자天子가 된 인물로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일. 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 소하蕭何, 한신韓信도 평민平民 출신이다. 새로운 평민정부平民政府의 의의가 서술되지 않았다. 이는 역사상의 변동變動만을 서술하였을 뿐, 상常에 대한 고찰은 결여되었다. 여타의 기록들도 변變과 난亂을 기록할 뿐 항恒과 상常은 서술하지 않는다.
→ 변變을 중시하고 상常을 중시하지 않았음.
    외부를 중시하고 내부를 중시하지 않았음.
    제도와 사람에 대한 서술이 없음.

이는 편년체 서술이 가진 기본적인 결함. 본말체도 사전 중심을 더했으나 편년체의 결함을 가짐.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장점長點
•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마천은 기록했다"
논어論語에는 수많은 대화가 있지만 안회顏回와의 대화는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공자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 모두 기록하기가 좋지만 안회의 경우는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역사상 매우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업적이 없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 열전列傳. 백이伯夷 · 숙제叔齊.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기록되었다.


원추袁樞라는 사람이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이라고 하는 것을 썼다. 통감通鑑이라고 하는 것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사마광司馬光이 썼던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편년체編年體, 연대기를 쭉 쓴 것이고, 그다음에 기사본말記事本末은 본本과 말末, 즉 시작과 끝이다.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라고 하는 형식을 갖춘 사서의 출발점이 된 책이다. 이것에 대해서 주희朱熹는 뭐라고 했는가. 주희朱熹는 혹평을 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안 읽은 책 중에 하나이다. "사마광의 책을 섞어 헝클어지게 한 여전히 국어와 같은 류(착종온공지서錯綜溫公之書 내국어지류乃國語之流)"라고 말을 했다. 착종온공지서錯綜溫公之書, 그러니까 온공綜溫의 책을 착종했다, 이리저리 섞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국어지류乃國語之流, 다시 말해서 국어와 같은 종류이다. 국어 같은 종류라는 것이 무엇인가. 국어國語와 전국책戰國策은 앞에서 우리가 한번 했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쭉 적는, 사건만 적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문 기사와 같은 것이다. 사실은 신문이라고 하는 것은 탐사 보도도 중요하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밝혀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들어 군사반란이라고 하는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만 보도하면 안 되고 이 사건의 연원을 따져서 보도를 해야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투퀴디데스가 엄청난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편년사, 연도별로 쭉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투퀴디데스는 사실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말을, 연설들을 기록했다. 사건이 아닌데 연설문 내용을 왜 기록을 했을까. 투퀴디데스도 그러니까 기사본말記事本末을 시도를 하긴 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건만이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은 말로도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원추袁樞의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은 사실 그게 결여되어 있다. 아주 본래적인 기사본말記事本末은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만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전목 선생도 그렇고 저도 사실의 기록이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원추袁樞의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은 말이 없다. 이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사실만을 쭉 기록을 해서 신문 기사만 만든 것이다.  

이후에 등장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서史書들이 쭉 있다. 송사기사본말宋史記事本末, 원사기사본말元史記事本末, 명사기사본말明史記事本末, 좌전기사본말左傳記事本末, 청사기사본말清史記事本末, 요사기사본말遼史記事本末, 그다음에 구조九朝, 9개 왕조의 기사본말, 구조기사본말九朝記事本末, 아홉 종류로 쓰인 것을 묶어서 이르는 명칭이다. 그러니까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이 나온 다음에 기사본말記事本末이 유행이었던 모양이라 그렇다. 기사본말記事本末은 사실 좋은 점이 있다. 사건별로 나눠서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경과,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점이 있다. 사건사를 다루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벽혁》이 있는데, 이 책은 기사본말記事本末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역사 분류를 보면 사건사, 특수부문사 이런 것들, 또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제1권 《세계사의 탄생》에서 8장 인류 역사 속 불과 연료에서는 불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하다. 불을 조절하는 능력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태들을 얘기하고 있다. 

청나라 초에 마숙馬驌이라는 사람이 역사繹史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천지개벽天地開闢부터 진秦 나라 말末까지 다뤘었는데, 원추袁樞의 책은 마숙馬驌과는 좀 다르다. 원추袁樞는 일단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그대로 가져다가 말하자면 리라이팅rewriting을 한 것이다. 체제를 바꿔서 그 안에 사실들을 나누어서 주제사가 아니라 사건사 중심으로 쓴 것이다.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벽혁》은 엄밀하게 말하면 주제사, 테마사이다. 테마사가 좋은 점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 그게 언제부터 시작되어서 그동안 어찌 되었는지를 쭉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마숙馬驌은 고서古書속의 자료를 모두 조사하여 정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또 덧붙여 놓기도 했다고 한다. 안어按語라는 말을 거기다 해놓았다는 말이다. 안按은 어루만지다, 누르다, 당기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가 손을 본 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전목 선생에 따르면 "원추는 실제로는 역사가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 또한 사학명저라고 할 수는 없다. 기사본말체라는 새로운 체제로서의 가치를 제외하고 그의 책은 실제로 그다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단점은 바로 사실의 기록에 있었다." 사실을 기록한 것이 원추袁樞의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의 장점인데, 이게 왜 단점인가. 장점이 곧 단점인지를 한번 봐야 되겠다 . 

그러려면 기전체紀傳體, 편년체編年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이 3개의 체제를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 기전체하고 편년체는 앞에 많이 나왔는데, 흔히 중국 사학에서 세 가지 체제라고 하면 편년체, 기전체, 기사본말체라고 얘기를 한다. 전목 선생도 그것을 지적을 하고 있다. "유지기가 사통에서 말한 육가六家와 이체二體 가운데 이체二體란 기전체와 편년체를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전에 읽은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에서 이체二體란 기전체와 편년체이다. 그런데 유지기는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을 보기 전 사람, 당나라 때 사람이니 몰랐던 것이다. 중국 사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기전체, 편년체, 기사 분말체가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먼저 청나라 때 만들어진 사고전서제요四庫全書提要에 들어있는 말을 한번 보겠다. 사고전서제요四庫全書提要는 전체의 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전체는 한 가지 사실이 여러 편에 중복하여 보이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기 어렵다(기전지법紀傳之法 일사이복견수편一事而複見數篇 빈주막변賓主莫辨)." 이것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를 조금 칭찬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다. 기전체의 단점은 한 가지 사실이 여러 편에 중복하여 보이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기 어렵다. 그다음에 "편년체는 한 가지 사실이 여러 권에 따로 떨어져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살피기 어렵다(편년지법編年之法 일사이격절수권一事而隔絶數卷 수미난계首尾難稽)." 그러니까 편년지법은, 즉 편년체로 쓰는 방법은 하나의 사건이 여러 권에 떨어져 있어서 수미首尾를 식별해 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는 "편년과 기전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으로 실제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체제이다(관통위일編年紀傳貫通爲一 실전고소미견實前古所未見)." 이게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로 서술하는 게 좋은데, 문제는 어떤 주제를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는 서술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어떤 주제를 선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변변치 않은 역사가라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선정할 수도 있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로 쓰면 사건별로 나누어서 연대도 서술을 하고 그다음에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밝혀 보이니까 좋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 주제 선정의 자의성이 들어갈 수가 있다. 기전체紀傳體는 제왕의 통치를 관련된 것을 기록한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전기를 다룬 열전列傳 또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는 세가世家가 있다. 그다음에 제도와 문물을 다룬 지志와 표表가 있다. 그래서 삼원적三元的 역사라고도 하는데, 하나의 사건을 사람 중심으로도 다루고 제도에 따라서도 나누어서 기록을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똑같은 사태이다. 그래서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좋은 점은 연대가 모호한 것도 기록을 한다. 그리고 총체적 이해는 좀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데 편년체編年體는 연대기 형식으로 쓰니까 하나도 남김없이 그날 일어난 거 쭉 쓸 수 있다. 일기를 쓰듯이 쓰는 것이다. 문제는 연대가 불분명한 사건은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관찰해서 기록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는 사건별로 나누어서 원인과 경과와 결과를 기록을 하는데, 그 대신에 연대를 따지니까 청대淸代의 사고전서제요四庫全書提要에 나온 것처럼 편년과 기전을 하나로 꿰뚫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전목 선생은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에 있는 그 사례들을 들어서 얘기를 하고 있다. 제1권은 3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진이 셋으로 나누어짐" (삼가분진三家分晉), "진이 육국을 병합함" (진병육국秦併六國), "호걸이 진을 멸망함" (호걸망진豪傑亡秦)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다. 그런데 "진이 셋으로 나누어짐"이라고 하면서 그런 다음에는 전국시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진시황秦始皇의 진秦 나라가 여섯 나라를 멸한 사실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면 전국 시대의 역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전국시대에 수없이 많은 사상가들을 전부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전국시대에 대해서 궁금한 것은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다음에 진시황秦始皇이 황제가 된 다음에 정치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는가 이런 것은 서술을 안 한다. 바로 그런 것들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등장한 역사 부문들이 생활사라든가 변함없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심성 구조가 무엇인가 라는 심성사라든가 이런 것들이 오늘날에 등장했다.  

한국의 역사를 이렇게 볼 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렇게 쭉 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는 태종 이방원의 사병혁파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각각의 힘센 귀족들이 자기네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전기》 때처럼 사병을 혁파했다. 고대사에서 이제 근대사로 넘어오는 정말 문민통치로 가는 길을 열었던 사람, 그 첫 단추를 끼운 사람이 태종 이방원이다.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 그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1592년에 조선건국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문민통치의 심성 구조이다. 그런 것들은 항상 있었던 일이다. 항상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변동의 차원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常이라고 하는 것과 변變이라고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태를 보게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변동된 일들만을 사람들은 열심히 보기 쉽다.  

게다가 제2권을 보면 7개의 주제가 돼 있다 라고 하는데 "고조가 초나라를 멸망시켰다(고조멸초高祖滅楚)." 그다음에 "여러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제장지반諸將之叛)." 초나라를 멸망시킨 사건 그다음에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 이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전목 선생이 얘기한 것은 이것이다. 한고조漢高祖는 평민平民으부터 천자天子가 된 인물로는 중국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중요한 사건인데 이것은 안 다룬다. 그래서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게다가 한고조의 부하, 흔히 말하는 한 나라에 세 명의 호걸이 있다 할 때 한나라 삼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소하蕭何, 한신韓信, 장량張良이다. 소하蕭何, 한신韓信은 평민 출신이다. 이게 역사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데 새로운 평민정부의 의의가 서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상 변동變動만을 서술하였을 뿐 상常에 대한 고찰은 결여되었다. 항상 있는 것들, 변變과 난亂을 기록할 뿐 항恒과 상常은 서술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결함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목 선생이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을 보면, "예를 들어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면서 그 사람이 병들어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그 사람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러분들이 일기를 쓰면서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늘 하던 대로 세끼 밥을 먹는 일은 기록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긴다. 그러나 어느 날 배가 아파 병원에 달려갈 정도가 되면 이는 큰 사건으로 당연히 일기에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상의 상황은 결코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본말체도 사건 중심을 더하긴 했었는데 편년체의 결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편년체 서술이 가진 기본적인 결함은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날마다 있었던 일을 안 쓴다. 올해 있었던 일을 모조리 쓰겠는가. 그래서 느닷없이 일어난 일만 기록하는 것은 역사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까 일상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의 편지를 발굴해 가지고 연구를 한다든가 하는, 그렇게 해서 Mentalité의 역사, 심성사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다. 그에비하면 기전체 역사가 가지고 있는 아주 좋은 장점이 있다.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마천은 기록했다"고 전목 선생은 얘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투퀴디데스가 엄청난 역사가라고 생각한다. 투퀴디데스는 명백하게 형식은 편년체를 취하고 있고 헬라스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변고가 일어났기 때문에 자기가 기록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편년체 역사이면서도 변고를 기록하겠다고 했는데 거기다가 말을 기록을 했다. 논어에는 수많은 대화가 있지만 안회와의 대화는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굉장히 심상치 않은 지적이다. 공자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 모두 기록하기가 좋다.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회는 특별하게 기록할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하여도 그가 나의 말에 이의를 내세워 반박함이 없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역사상 매우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업적이 없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업적이 없어도 기록해 둘 만한 것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사기열전에 백이와 숙제전을 보면, 열전의 첫머리에 나와 있는데, 백이와 숙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냈던 사람들도 아닌데 기록을 해놓은 것이다. 오늘은 기사본말체 얘기가 나와서, 중국의 역사는 세 가지 형식 체제가 있다. 유지기의 사통에서 다루지 않았던 게 기사본말체인데, 이것까지 해서 역사 서술에 있어 오늘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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