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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긴다 | 랍 벨 - ![]() 랍 벨 (지은이),양혜원 (옮긴이)포이에마 |
추천의 글 1
추천의 글 2_ 바람아, 불어라!
한국어판 서문
서문: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일
제 1 장: 선교지로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주저앉으면 어찌할 것인가?
제 2 장: 이 세상이 바로 새로운 저 세상이다
제 3 장: 지옥
제 4 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될 것인가?
제 5 장: 살기 위해 죽다
제 6 장: 지천에 널린 바위
제 7 장: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제 8 장: 이제 끝이 왔다
감사의 말
더 읽을 것들
오피니언 리더들의 리뷰
35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밖에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고 그 점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그 메시지인가? 인생의 핵심이 그것이란 말인가? 다른 어딘가로 가는 것 말이다. 그것이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라면, 사람들을 다른 어딘가로 가게 하는 것이 예수가 하시는 일이라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 메시지와 이생의 관계는 고작 다음 생애에 필요한 것을 손에 쥐어주는 것밖에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선이란 말인가?
이쯤 되면 이제는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니까, 정답대로 말하거나 기도하거나 믿기만 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또한 그렇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둘러싸여 산다면, 이 세상의 현재 고통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 다른 어딘가로 가서 예수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복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예수의 메시지는 다른 어딘가로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128 예수가 '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본문들을 읽으면서 놀라게 되는 사실은 사람이 바른 것을 믿느냐 틀린 것을 믿느냐가 예수의 요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수는 분노와 탐욕과 무관심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는 청자들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대해서, 이웃과 어떻게 지내느냐에 대해서, 그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는 '교도'와 '이방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하려고, 그래서 그들이 죽어서 불에 타는 일이 없게 하려고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라고 하신 소명과 정체성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기 위해서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을 향해 지옥을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지옥이 날카롭고 긴급한 경고가 아니라거나 우리가 실제로 믿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예수는, 자신은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지적하려 할 뿐이다. 예수는 그들의 굳은 마음이 '그들이 안에 있다는 정체성'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경고하셨다. 그리고 '선택받음'이 무엇을 의미하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특권에 가까운 지위를 누린다고 믿건, 관건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살과 피를 입으면 어떤 모습인지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보여주실 수 있도록, 그들이 변화된 사람, 자비롭고 사랑 많은 사람들이 되는 것임을 그것이 전부임을 상기시키셨다.
168 하나님이 특정한 행동들을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을 새 창조에서 추방하시고, 올바르고 지속적인 정의를 이루시는 동시에, 그렇게 추방된 사람들과 화해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바라시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러니까 대문을 열어놓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하나님과 화해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해석한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비참한 왕국을 다스리는 스스로의 신이 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선택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히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 긴장들을 우리는 그대로 내버려둘 자유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하거나 이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그 긴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이 요구하는 자유를 위한 자리만 만들 따름이다.
237 첫째, 지옥에 대한 나의 견해 하나는 이렇다.
지옥은 하나님이 해석해서 들려주시는 우리의 이야기를 믿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아닌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자신의 미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스스로 해석하고, 자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해석한다. 그렇게 내린 해석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롭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죄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폭력, 배신, 중독, 부정 등 수년 동안 감추고 있는 비밀 때문에 괴로워한다. '머리 위로 지붕이 무너져내릴까 봐' 혹은 '번개를 맞을까 봐' 교회에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모른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는 결함, 실패, 수치. 영혼의 원초적 차원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은 자격 미달이라는 신념.
240 예수가 들려주시는, 두 아들을 둔 한 남자에 대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무척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 구원하게 하셨는데, 이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믿지 않으면, 올바른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러니까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말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그러다가 그날 자동차에 치여 죽으면,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히 의식적인 고통을 받는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다는 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말하자면,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신다. 그들에게는 영원히 다른 존재가 되신다.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시는 사랑 많은 하늘 아버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꼼짝없이 갇혀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게 하는, 잔인하고 야비하고 사악한 존재가 된다.
이 땅에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우리는 당국에 신고할 것이다. 그렇게 변덕스러운 인간 아버지가 실제로 있다면 우리는 곧바로 아동 보호 담당국을 부를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기어를 바꾸실 수 있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존재 방식을 완전히 바꾸실 수 있다면, 그런 존재가 선한 것은 둘째 치고, 과연 믿을 만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서 숱한 의문이 일 것이다.
사랑하다가도 이내 사악해진다.
친절하고 정이 많다가 순식간에 잔인하고 무자비해진다.
우리가 죽는 순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시는 것일까?
242 왜냐하면 당신의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면,
당신의 하나님이 사랑이 많다가도 순식간에 잔인해진다면,
당신의 하나님이 짧은 몇 년 동안의 인생에서 지은 죄에 대해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면,
아무리 똑똑하게 마케팅을 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도.
그 단 하나의 진실하고, 확연하고, 옹호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실재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은 믿기를 거부하는 것인데, 믿기를 거부하는 것은 종종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다. 때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예수 뒤에 어른거리는 하나님이 안전하거나 사랑 많거나 선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조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와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47 예수가 말씀하신 이 하나님은 늘 동반자를 찾으셨다. 계속되는 이 세상의 창조에 열정을 가지고 동참할 사람들을 찾으셨다.
따라서 복음이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축소되면 기쁜 소식은 문지기를 지나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티켓으로 축소된다.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다 지옥에 가지만 자신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그리스도인이 벌이는 잔치는 재미가 없다.
복음을 즐거운 참여가 아니라 천국 입장권으로 이해하면, 폭발적이고 해방감 넘치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기쁨과 창조의 끝없는 순환이신 이 하나님을 말이다.
인생이 단순히 '들어가는 것'의 문제였던 적은 없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의 문제다. 잘 산다는 것은 고요함과 평화, 그리고 영혼이 안식을 누리는 그런 느낌이면서, 동시에 질문하고, 배우고, 창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선한 세상에서 같이 살면서 같은 기쁨을 발견하는 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248 복음을 천국에 입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좋은 예술이 나오지 않는다. 혁신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천박한 세계관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천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쭈그러든 상상력이다.
염소의 복음이다.
이러한 복음은 두려움과 결핍에 휩싸인 복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재밌게 살면서 정말로 인생을 즐기는 것같아 보이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지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한다. 특히 선교사들이나 목회자 가정 혹은 하나님은 노예 감독관이라는 생각을 습득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희생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슬며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만족스런 설명 방법으로 지옥이 등장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저 사람들은 파티에 다니면서 재미나게 사는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언젠가 우리는 천국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지옥에 가서 엄청 고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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