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림: 불멸의 지휘자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 안동림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 안동림 - 10점
안동림 (지은이)웅진지식하우스

프롤로그 _ 지휘봉이 그리는 음악예술의 세계
1. 엄격하고 건강한 절제의 힘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
2. 낭만적인 독재자 | 빌렘 멩겔베르크 Willem Mengelberg
3. 거침없이 유영하는 정밀한 지휘봉 | 삐에르 몽뙤 Pierre Monteux
4. 행복을 그리는 따뜻한 지휘자 | 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5.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부 | 툴리오 세라휜 Tullio Serafin
6. 음악계의 위대한 괴짜 신사 | 토머스 비챰 Thomas Beecham
7. 전통의 감성을 잃지 않는 지휘자 | 카알 슈리히트 Carl Schuricht
8. 춤사위를 이끄는 리듬의 신 |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Ernest Ansermet
9. 지휘대의 불사조 | 오토 클렘페러 Otto Klemperer
10. 시대를 초월해 타오르는 혼불 | 빌헬름 후르트뱅글러 Wilhelm Furtw?ngler
11. 고귀함과 천박함을 아울러 갖춘 야인 | 한스 크나퍼츠부슈 Hans Knappertsbusch
12. 긴장감 넘치는 엄격한 장인 | 후리츠 라이너 Fritz Reiner
13. 오르간 음향에 심취한 소리의 마술사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ski
14. 약동하고 노래하는 생명의 지휘 | 에리히 클라이버 Erich Kleiber
15. 독일적 구성력, 불란서적 감성의 거장 | 샤를르 뮌슈 Charles Munch
16. 흔들림 없는 떡갈나무 같은 음악 | 카알 뵘 Karl B?hm
17. 장식을 버리고 음악만으로 승부하다 | 죠지 셀 George Szell
18. 무개성의 개성 |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
19. 그윽하고 인간적인 선율의 따스함 | 죤 바비롤리 John Barbirolli
20. 당당하고 건전한 독일적 낭만 | 오이겐 요훔 Eugen Jochum
21.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독재 지휘자 |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Evgenii Mravinskii
22. 그 음악은 흐르지만 행진은 하지 않는다 | 앙드레 끌뤼탕스 Andr? Cluytens
23, 부드럽고 폭넓은 오케스트라 트레이너 | 안탈 도라티 Antal Dorati
24. 20세기의 마지막 완벽주의자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rt von Karajan
25. 타협을 거부한 이단적 독설가 |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26.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담금질 | 게오르그 숄티 Georg Solti
27. 예리한 시선, 예민한 본능 | 키릴 콘드라신 Kiril Kondrashin
28. 유연한 배려, 고상한 품격 |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 Carlo Maria Giulini
29. 본질에 충실한 깊고 큰 음악 | 라화엘 쿠벨리크 Rafael Kubelik
30. 바로크와 고전의 지적인 해석자 | 카알 뮌힝거 Karl Munchinger
31. 음악의 피터팬, 지휘대의 르네상스맨 |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32. 바흐 음악의 영혼을 꿰뚫다 | 카알 리히터 Karl Richter
33. 황홀한 도취경, 타고난 명지휘자 |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34. 오페라와 인간, 그 치열한 내면의 탐구 | 쥬제뻬 시노폴리 Giuseppe Sinopoli

참고문헌
지휘차 찾아보기
에필로그

 


프롤로그
11 사선을 그으며 허공을 가르는 조그만 지휘봉의 카리스마, 순간 굳게 다물었던 침묵을 깨트리고 일제히 포효하는 소리의 함성, 팽팽히 당겨졌던 악단원과 청중의 긴장은 한꺼번에 풀려서 봇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해방감을 온몸으로 맛본다. 갖가지 형태의 음향, 그 조화로운 융합의 눈부신 아름다움, 지휘자가 엮어내는 음악에서 황홀한 순간을 맛본다. 

지휘자가 직접 지휘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선 뒤부터였다. 그 이전의 지휘 활동은 분명한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합창이나 합주의 통일을 꾀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임시로 택했을 뿐이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합창을 발장단으로 지휘하거나 중세에는 교회 합창단의 제일 가수가 손뼉 박자를 치기도 했다. 그 손뼉 박자 대신에 손동작으로 속도나 박자를 지시하게 되고 문예부흥기의 다성음악 전성기에는 악보를 말아 쥐고 박자를 쳤고 또 마루를 두들겨 박자를 맞추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기악의 발달과 함께 합주가 많아지면서 그것을 통일하기 위해 하프시코드의 통주저음이 깔렸는데 교회에서의 오르간과 같은 작용으로 지휘의 역할을 했다. 또 통주저음 대신 기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겨 지휘를 한 일도 있었다. 18세기 후반부터 관현악의 조직이 정비되자 콘서트 매스터가 지휘권을 쥐게 되면서 하프시코드는 지휘권을 바이올린에게 넘겨주었다. 콘서트 매스터가 바이올린을 켜며 지휘하고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활을 휘둘러 지시를 했다. 또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에는 모짜르트처럼 본인이 직접 독주하면서 지휘했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인 동시에 후리드리히 대황의 궁정악장으로서 지휘를 맡은 요한 후리드리히 라이하르트는 바이올린의 활로 지휘했다고 전한다. 이 무렵의 지휘는 '인간 메트로놈'에 지나지 않았으며 템포를 알려주고 리듬을 지시하면 되었다. 

오늘날처럼 지휘봉을 쓴 것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였다.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겸 작곡가인 이그나쯔 모젤이 1813년경 빈의 음악가 협회 연주에서 지휘봉을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아 있다. 독일에서는 같은 무렵 베버가 지휘봉을 썼고 영국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가였던 슈포어가 1820년 런던 휠하모니 관현악단을 지휘봉으로 지휘했다. 처음에는 악단원도 청중도 이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지휘법에 불만이었으나 속도가 정확해짐과 동시에 악기의 균형이 잘 잡혀 이윽고 만족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험적 단계 위에 서서 하나의 지휘법을 만들어낸 사람이 멘델스존이다. 1835년부터 그가 지휘한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였다. 멘델스존의 지휘는 '고전파' 또는 '우미파'라고 하며, 지휘가 단순히 속도와 악기의 나갈 차례를 지시하거나 잘못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악곡의 정신을 탐구하고 지휘자의 생각을 추가하여 악곡을 재창조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멘델스존은 작곡가이지 직업적인 지휘자는 아니었다. 

순수한 최초의 직업적 지휘자는 한스 폰 뷜로우였다. 뷜로우는 베를리오즈와 바그너가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정열적인 해석을 내리고 올바른 템포와 후레이징으로 명쾌하고 안정된 표현을 이룩했다. 그는 거의 암보로 지휘했다. 근대의 지휘법은 어떤 형태로든 뷜로우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브루노 발터도 뷜로우의 연주를 듣고 지휘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뒤이어 독일 낭만파의 극적인 기복을 살린 표현법을 확립한 형가리 지휘자 니키쉬의 공적은 위대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바인가르트너가 나타남으로써 그때까지의 지휘에 큰 수정이 가해졌다. 즉 낭만파의 지휘가 지나치게 주정적인 해석에 치우쳐 무작정 극적으로 과장되기 일쑤였으나 바인가르트너는 고전적인 조화를 존중한, 중용과 기품을 간직한 지휘를 해서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기운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베토벤의 교향곡 지휘에 관해 직접 책을 써서 베토벤 연주의 표준을 예시했다. 그의 지휘 활동은 유럽에 널리 퍼졌으며 그 영향은 매우 컸다. 니키쉬와 바인가르트너는 지휘자란 작곡가의 사상을 옳게 해석해야 하며 작품을 통해 지휘자의 의지나 감정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휘자는 작곡가가 말하게 해야 하며 지휘자 자신이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이 낭만적인 주관적 지휘법을 바로잡아 이지적으로 분석하는 객관적 지휘법으로 옮겨놓은 힘은 많건 적건 오늘의 지휘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지휘자가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작품을 해석하느냐에 따른다. 지휘자는 관현악 및 관현악보에 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자기가 재창조한 연주를 구축해야 한다. 오늘날의 지휘자에게는 고전 파라든가 낭만파 또는 현대파 등 유파적인 구별은 거의 의미가 없다. 지휘자의 인간성이나 음악성이 그 특성으로 인정된다. 거장적 존재가 된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지휘자는 지휘를 전문으로 삼고 작곡은 2차적인 존재로 물러났다. 오늘날 직업적인 지휘자는 관현악을 자기의 악기로 여기는 연주가가 되었다. 또 애호가도 지휘자의 미학적인 음악성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되어버렸다. 

네덜란드의 멩겔베르크 그리고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 및 독일의 후르트벵글러 등은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지휘자의 거장적 존재를 확립한 사람들이다. 멩겔베르크의 개성 강한 재창조력은 과거의 작품에 새로운 상상을 주고 그 해석에는 다분히 낭만적인 특징이 있는 깊은 음악성을 지니고 있었다. 개성에는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지만 발터도 낭만적인 생각을 음악에 살린 서정적인 지휘자였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말러의 찬양자였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공통된 예술관을 갖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멩겔베르크가 낭만적인 건축가'라면 발터는 '낭만적인 시인'이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와 독일의 후르트벵글러는 20세기 전반의 쌍벽을 이룬 두 거장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후르트벵글러의 주정적인 해석과 토스카니니의 객관적 표현은 분명 대조적이지만 그것은 결과로 본 입장이고 이 두 사람은 지휘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즉 지휘자는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작품 내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결국 대조적으로 되는 것은 그들의 음악관과 국민성의 차이에 의거한다.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이라는 피의 차이는 작곡가의 뜻을 느끼는 방법에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지휘자 중 이 두 사람에게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위대한 존재였다. 

그 후 적극적인 활동을 하며 현대의 표준이 된 지휘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라얀, 불란서의 끌뤼탕스, 구소련의 므라빈스키, 미국의 번스타인이었다. 이 4명의 지휘자는 20세기의 지휘법을 제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민성 및 개성의 차이에 따라 표현법이 다르지만 토스카니니가 보여준 작곡가의 의도를 엄격하게 재현하려는 생각을 기초로 하여 거기에 극단적으로 비인간화되지 않도록 후르트벵글러의 서정성을 아울러 갖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따라서 깨끗한 표현 속에 풍부한 정서가 깃들어 있으며 또한 현대인의 세련된 감각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현대성 속에 교묘하게 살려낸 지휘자였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들어와서 헤아릴 수 없는 각양각색의 지휘자들이 전 세계의 악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위의 네 지휘자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소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다양한 자기의 개성에 따라 어떻게 새로운 음악을 펼쳐나갈지는 앞으로의 흥미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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