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 지옥·연옥·천국 / 귀스타브 도레 삽화 수록본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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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단테 알리기에리 - ![]() 단테 알리기에리 (지은이),귀스타브 도레 (그림),김운찬 (옮긴이)열린책들 |
개역판에 부쳐
지옥
연옥
천국
역자 해설: 단테와 『신곡』에 대하여
단테 알리기에리 연보
연옥 제33곡
「하느님, 이방인들이 왔습니다.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셋이, 때로는 넷이 달콤한 성가를 번갈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한숨을 지으면서 경건하게 듣고 있었는데,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서 안색이 변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여인들이 그녀에게 말할 겨를을 주자. 똑바로 일어나더니 불과 같은 홍조를 띠면서 대답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못 볼 것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또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일곱 여인을 모두 앞세우더니, 남아있던 현자와 여인과 나에게 눈짓만으로 자신을 뒤따르게 하였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는데, 아마 땅바닥에서 열 걸음 정도 옮겼을 때 자신의 눈으로 내 눈을 바라보면서
평온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조금 빨리 오세요. 그대와 말할 때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오.」
내가 시키는 대로 곁에 다가가자 말했다. 「형제여, 이제 나와 함께 가면서도 왜 나에게 질문하려고 하지 않나요?」
마치 자기 손윗사람 앞에서 말할 때 너무나도 존경하는 마음에 입 밖으로 또렷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도 그랬으니, 온전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이여, 나에게 필요한 것과 유용한 것을 그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모두 벗어 버리기 바랍니다. 그래야 꿈꾸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뱀이 부서뜨린 그릇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지만, 그 죄인들은 알아야 해요. 하느님의 복수는 수파를 두려워 않는다는 것을.
수레에 깃털을 남겨, 수레가 괴물로 변하고 이어서 먹이가 되게 만들었던 독수리는 계속하여 후예가 없지 않을 것이오.
내가 분명히 보고 있기에 이야기하니, 온갖 장애와 방해물에서 벗어난 별들이 이미 가까이 있어 우리에게 시간을 주니,
그동안 하느님께서 보내신 5백과 열과 다섯이 창녀와, 그리고 그녀와 함께 죄를 지은 거인을 같이 죽일 것입니다.
혹시 내 말이 테미스나 스핑크스처럼 모호하고 그들처럼 지성을 흐리게 하여 그대에게 설득력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제 곧 사실들이 나이아데스가 되어 양떼나 곡물들에 피해를 주지 않고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줄 것이오.
그대는 내가 말한 이 말을 그대로 기억하여, 죽음을 향한 달리기에 불과한 삶을 살아가는 산사람들에게 전하시오.
또한 그 말을 쓰게 될 때, 그대가 보았듯이 여기서 방금 두 번이나 약탈당한 나무를 숨기지 않도록 마음속에 잘 기억하시오.
누구든지 그 나무를 약탈하거나 꺾으면, 오직 당신만 사용하도록 성스럽게 창조한 하느님께 실제적인 모독을 하게 되지요.
그 열매를 먹은 최초의 영혼은 5천 년 이상이나 고통과 열망 속에서, 그 죄의 형벌을 몸소 받으신 분을 기다렸지요.
이 나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높고 꼭대기가 뒤집혀 있다는 것을 모르면 그대 지성은 잠들어 있는 것이오.
헛된 생각들이 엘사의 물처럼 그대 마음을 가두지 않고, 오디를 물들인 피라모스처럼 그 쾌락이 그대 마음을 적시지 않았다면,
그런 특이한 상황만 보고도 그대는 나무를 금지시키신 하느님의 정의에서 도덕적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대의 지성은 단단하게 돌이 되고 흐릿하게 물들어 있어서 내 말의 빛에 눈부셔 하는 것으로 보아,
다시 한번 바라니, 글로 쓰지 못하겠으면, 지팡이에 종려 잎을 감아 가져가듯이 최소한 그림이라도 간직해 가져가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봉인하는 밀랍이 찍힌 모양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이제 내 뇌리에 당신 모습이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열망하던 그대의 말은 왜 이렇게 내 지성의 눈 위로 날아가 이해하려 할수록 더 놓치는 것일까요?」
그녀가 말했다. 그대가 지금까지 추종한 학파를 알고, 그 이론이 얼마나 나의 말을 따를 수 있는가보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땅에서 가장 높이 도는 하늘까지만큼 그대들의 길은 성스러운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도록 하기 위함이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내가 혹시라도 그대에게서 멀어진 적이 있는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대가 기억할 수 없다면, 그대가 오늘 레테의 강물을 마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오.
또한 연기를 보고 불이 있음을 알듯이 그런 망각은 그대의 마음이 다른 곳에 몰두했었다는 잘못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진정으로 이제부터는 나의 말이 벌거벗은 것처럼 투명하여, 그대의 무딘 눈도 분명히 이해할 것이오.」
더욱 눈부신 태양은 더욱 느린 걸음으로, 보는 관점에 따라 이쪽저쪽 움직이는 자오선의 둘레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마치 앞장서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이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는 것처럼, 일곱 여인이
희미한 그늘의 끝부분에 멈추었는데, 높은 산의 초록 잎들과 짙은 가지들이 차가운 개울 위에 드리운 것 같았다.
그녀들 앞에는 하나의 샘물에서 나온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헤어지기 싫어하는 친구처럼 보였다.
「오, 빛이여, 인류의 영광이여, 여기 하나의 원천에서 시작하여 서로 떨어져 흘러가는 이 물은 무엇입니까?」
그런 내 부탁에 그녀는 말했다. 「마텔다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해요.」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은 마치 잘못에서 벗어나는 사람처럼
대답하였다. 이것과 다른 것들에 대해 내가 이미 말해 주었지요. 레테의 강물이 분명 그걸 잊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지나친 관심이 때로는 기억을 빼앗기도 하는데, 그래서 마음의 눈이 흐려진 모양입니다.
어쨌든 저기 흐르는 에우노에를 보아요. 그대가 늘 하는 대로 저곳으로 데려가 그의 희미해진 능력을 되살려 주시오.」
훌륭한 영혼은 핑계를 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지가 어떤 표시로 드러나면 곧바로 자신의 의지로 삼듯이,
아름다운 여인은 곧바로 움직여 나를 붙잡았고, 스타티우스에게 우아하게 말했다. 「이 사람과 함께 오세요.」
독자여, 더 길게 쓸 공간이 있다면, 아무리 마셔도 배부르지 않을 달콤한 물을 조금이라도 내가 노래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 둘째 노래편에 정해진 모든 종이가 이미 가득 찼기에 예술의 고삐는 더 가게 허용하지 않는구려.
나는 그 성스러운 물결에서 돌아왔고, 마치 새로운 잎사귀로 새롭게 태어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로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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