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생각의 역사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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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 ![]()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은이),홍정인 (옮긴이)교유서가 |
서문
제1장 물질에서 나온 정신: 아이디어의 주요 원천
제2장 생각을 채집하다: 농경 이전의 사고
제3장 정착된 정신: ‘문명화된’ 사고
제4장 위대한 현자들: 이름을 남긴 최초의 사상가들
제5장 신앙을 생각하다: 종교적인 시대의 아이디어들
제6장 미래로의 회귀: 흑사병과 추위를 통과한 생각
제7장 전 지구적 계몽: 연합된 세계의 연합된 사상
제8장 진보의 전환기: 19세기의 확실성
제9장 카오스의 역습: 확실성을 풀어헤치다
제10장 불확실성의 시대: 20세기의 망설임들
전망: 아이디어의 종언?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역자 후기
서문
7 우리의 정신에서 나온 생각들은 우리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일부 우리의 강력한 아이디어들은 이성, 통념적 지혜, 상식을 넘어선다. 이 아이디어들은 깊은 땅속에 도사리다 과학으로 접근할 수 없고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우묵한 지점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나쁜 기억력은 그것들을 왜곡한다. 뒤틀린 이해, 광기 어린 경험, 주술적 환상, 순전한 망상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의 역사는 여기저기를 미친듯이 덧댄 포장도로다. 이곳을 주파할 직선로가 있을까? 그러니까 이 모든 긴장과 모순을 끌어안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수긍할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을까?
그러한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디어는 역사에서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양을 빚는다. 진화, 기후, 유전, 카오스, 무작위로 돌연변이한 미생물, 지각 변동 같은 비인격적인 힘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우리 능력의 한계를 정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힘들은 세계를 다시 상상하고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를 멈출 수 없다. 아이디어들은 어떠한 유기체보다 굳건하다. 사상가들을 사살하고 불태우고 매장해도 그들의 생각은 남는다.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고 가능한 미래들을 끌어내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왜 생각하는지에 관한 참된 서술이 필요하다. 즉, 우리가 아이디어라고 부르는 재상상(reimaginings)을 촉발하는 인지과정, 아이디어를 전파한 개인·학파·전통·네트워크, 아이디어를 채색하고 조건 짓고 미조정하는 외부 영향으로서의 문화와 자연이 설명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서술을 제공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이 책에 모든 아이디어를 담으려는 의도는 없다. 이 책은 과거에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세계에 형태를 부여하고 지식을 제공하며 우리의 세계를 만들고 오도하는 아이디어만을 다룬다. 내가 "아이디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는 생각이고 그것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생각은 경험을 능가하며 단순한 예측보다 탁월하다. 아이디어는 평범한 생각과 다르지만, 이는 그것이 그저 새로운 것이어서만이 아니라 예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는 일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는 아이디어는 환영이나 영감의 형태를 띨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정신적 '환각'지리멸렬한 도취상태나 황홀감이나 머릿속의 음악(가사가 없거나 가사가 붙기 전까지의 음악)과는 다르다. 아이디어는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모델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에는 "우리의 생각(What We Think)"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나는 진지한 의도로 이 말을 썼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을 '현재주의 (presentism)'로 여기고 개탄할지 모르나 나는 이것을 오로지 선별의 원칙으로만 사용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쏘아진 빛을 현재에 맞게 굴절시키는 렌즈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이라는 말로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모든 정신적 사건이나 과정을 통칭하지 않았음을 밝혀두어야 하겠다. 그것은 과거에 시작된 아이디어 중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각되는 것만을 가리킨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거나 우리 시대에 새로 등장한 문제에 대처하도록 우리가 물려받은 정신적 무기고라는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라고 쓴 것은 아이디어가 기원한 지역을 초월해 호소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의 모든 ㅡ 또는 거의 모든 ㅡ 사람에 의해 모든 ㅡ 또는 거의 모든-문화에서 채택된 아이디어를 가리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느 아이디어나 추종자가 있듯이 반대자도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아이디어에 반대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에 선별된 아이디어들을 대체로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들은 심지어 그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 지혜 또는 우몽의 배경을 이룬다.
12 이 이야기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아이디어는 인류의 공통 자산으로 보일 것이다. 즉 그것들이 기원한 어느 하나의 문화로부터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채 이주자들의 변화무쌍한 환경의 구석구석으로 옮아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ㅡ 그 이유는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ㅡ 몇몇 특정 지역과 문화가 특별히 풍부한 창의성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초점은 뒤로 갈수록 좁아진다. 처음에는 유라시아의 특별히 혜택받은 몇몇 지역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이후 우리가 관행적으로 "서양"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옮겨간다. 책의 끝부분에서 세계의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유럽과 북미에서 기원한 아이디어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지역으로서만 등장한다. 나는 이것을 저자의 근시안적 시각이나 선입견 탓으로 오해하는 독자가 없기를 바란다. 이것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슷하게 앞서 등장하는 장들에서 내가 전 세계적인 관점을 취하고 초점을 자주 이동하는 것도 정치적 올바름이나 문화적 상대주의 또는 반(反)유럽중심주의 때문이 아니다. 당시 세계의 문화적 교류가 다양한 방향에서 발생했기에 이를 있는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 흔히 또는 적절하게, 서양에서 기원했다고 간주되는 아이디어나 지적 운동에 비서양 지역이 기여한 바를 연구하기 위해 내가 바친 노력을 독자들이 알아보고 인정해주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점은 자주 서양에 맞춰지지만, 이 책은 일차적으로 서양의 아이디어들에 관한 책이 아닌, 어디에서 기원했든 널리 확산되어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인류의 지적 유산의 일부로서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아이디어들에 관한 책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언급하는 사상가들은 대체로 남성이지만 그 이유는 이 책이 한 가지 성별이 불균형적으로 우위를 점한 인간의 활동 분야를 다루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아이디어를 다룰 역사가들은 이 주제를 충분한 거리를 두고 돌아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려 마땅히 많은 여성을 언급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흔히 함께 떠올리는 범주들을 확실히 구분하고자, 정치 및 도덕 사상, 인식론 및 과학, 종교 및 초이성적 또는 준이성적(subrational) 개념들을 각 장에서 개별적으로 다루었다. 대부분의 맥락에서 이러한 구분은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이러한 구분은 편의를 위한 전략이며, 나는 매 단계에서 구분된 범주 간의 교차와 중첩, 모호한 경계들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압축과 선별은 필요악이다. 선별은 저자에게보다 일부 독자에게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이 생략되었을 때 분노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독자들이 부디 관용을 베풀어주기를 부탁한다. 내가 파악해 선별한 아이디어들은 다른 역사가들이 이러한 책을 쓰려고 했다면 포함하고 싶었을 후보군과는 최소한 작은 부분이라도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모든 작가가 누리는 특권에 기대겠다. 어느 작가나 다른 작가를 위한 책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압축은 어떤 면에서는 자멸적인 장치다. 책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독자들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더 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의 시간을 장황함으로 낭비하기보다는 간명함으로 채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내가 적용한 선별의 원칙을 하나 더 밝혀야겠다. 이 책은 오로지 정신적 사건으로서 이해되는 아이디어에 관한 책이다(여기서 정신적 사건이란 어쩌면 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후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나는 이 표현을 최소한 잠정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정신과 뇌를 분명하게 구분할 것이다). 나는 각각의 아이디어가 어째서 중요한지에 관해서도 설명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주로 아이디어들이 촉발한 기술이나 그것들이 영감을 준 운동에 더욱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다른 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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