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39 | 마르틴 루터 - ![]() 마틴 루터 (지은이),황정욱 (옮긴이)길(도서출판) |
옮긴이의 말 9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그리스도인 신분의 개선에 대하여」 21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139
면죄부는 로마 아첨꾼들의 허접스러운 것이다 142
교황청은 로마 주교의 힘센 사냥 집단이다 143
세례의 성례전에 대하여 199
고해 성사에 대하여 229
견신례에 대하여 242
혼인에 대하여 244
서품에 대하여 263
최후 도유(塗油)의 성례전에 대하여 278
「교황 레오 10세에게 드리는 루터의 서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291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독일어 판 서문] 306
마르틴 루터의 논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307
바이마르 판의 사용 판본 목록 353
부록: 95개조 반박문 369
해제: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 핵심을 보여주는 3대 논문의 의미 379
연보 411
찾아보기 415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독일어 판 서문]
307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은 쉬운 일로 보였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보편적 능력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어떤 경험으로도 신앙을 입증할 수 없고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습하는 고통 가운데서 신앙의 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신앙에 대해 잘 서술하거나 올바로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경험한 자는 그것에 대해 충분히 글을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들을 수 없다. 즉 그리스도가 「요한복음」 4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용솟음치는 생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다양한 유혹에 시달린 가운데 신앙의 맛을 약간 볼 수 있었으니, 저 학문적이고 섬세한 논쟁가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주장했던 것보다는 신앙에 대해 우아하지는 못할지라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지한 자들에게 (나는 그들만을 섬기기 때문인데) 더 쉬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 영의 자유와 종살이에 대해 두 가지 주제를 전제한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한 자유로운 주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예속된 종이며, 누구에게나 예속되어 있다.
이 두 가지는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짝을 이루고 있을 때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줄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에서 양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만사에 있어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13장에서는 "너희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라고 말했다. 사랑은 본성적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것에 순종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일지라도 여자에게서, 또한 율법 아래 태어났으니, 자유인인 동시에 종이며, 신의 형상과 종의 형상 속에 있다.
311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신의 말씀은 그렇게 많은데, 그런 큰 은혜를 주는 말씀은 어떤 것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도가 「로마서」 1장에서 이것을 설명했으니, 곧 신의 복음은 성화하는 영을 통해 화육하고, 고난 받고, 부활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이다. 영혼이 말씀을 믿으면 그리스도는 영혼을 치고, 의롭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건강해졌음을 선포한다." 「로마서」 10장에서 말한 것처럼 믿음만이 신의 말씀을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네가 입으로 예수가 주임을 고백하고 마음으로 신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믿으면 네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또한 「로마서」 10장에서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계명의 끝마침이요 성취다" 라고 말했으며, 「로마서」 1장에서는 "의로운 자는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영혼이 생명과 의를 위해 오직 말씀을 필요로 하고, 따라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것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말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말씀이나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행위와 함께 결코 존립할 수 없으니, 즉 행위를 통해서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행위와 더불어 의롭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312 「로마서」 10장에서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른다"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은 속사람 안에서만 지배할 수 있고 오직 믿음만이 의롭게 만들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속사람이 결코 외적 행위나 일로는 의롭게 되거나 자유롭고 완전할 수 없으며 어떤 행위도 속사람과는 무관하다. 반대로 외적인 죄나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불경건과 불신앙으로 죄인이 되고 저주받을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그의 첫 번째 관심사는 행위에 대한 생각을 접어놓고 오직 신앙을 점차 굳건하게 하고, 이것을 통해 행위에 대한 지식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자신을 위해 고난을 받고 부활했음을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315 이런 신의 약속은 거룩하고 참되고 의롭고 자유롭고 온화하고 모든 선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올바른 믿음으로 이 말씀에 매달리는 영혼은 그 말씀과 전적으로 하나가 되고 완전히 흡수되어 말씀의 모든 능력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배부르고 취하게 된다. 인간이 그리스도에 사로잡힘으로써 건강해진다면 영이 연약한 자는 더욱 그러하리니, 말씀에 흡수된 영혼은 말씀에 속한 것을 모두 함께 공유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한 것처럼 영혼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행위 없이 신의 말씀에 의해 의롭고 거룩하고 참되고 온화하고 자유롭게 되고, 모든 선으로 가득하고 진실로 신의 자녀가 된다. '신은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신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여기서 왜 믿음이 그처럼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어떤 선행도 온갖 선행도 그것과 견줄 수 없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선행도 신의 말씀에 매달리지 않으며 또한 영혼 안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과 말씀만이 영혼을 지배한다. 마치 철이 불과 결합될 때 불꽃처럼 빨갛게 되는 것처럼 영혼도 말에 의해서 말씀처럼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모든 것을 위해 충분하며, 의롭게 되기 위해 어떠한 행위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는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고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그가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모든 율법에서 자유롭다. 또한 "의인에게는 율법이 부과되지 않았다"라는 말은 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악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와 안녕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율법도, 행위도 필요치 않게 만든다.
325 누구의 마음이 이것을 들으면서 골수에서부터 기쁘지 않고 위로를 받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달콤해지지 않겠는가? 율법이나 행위로써는 결코 이런 사랑에 도달할 수가 없다. 누가 이러한 마음에 해를 끼치거나 놀라게 할 수 있으랴? 그는 죄의식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때 주 안에서 소망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고, 이런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자기 원수를 멸시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가 자기 것이 되고 자신의 죄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의 앞에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사도에게서 죽음과 죄에 도전해 "죽음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 침이 어디 있느냐? 네 침은 죄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신께 찬양과 감사를 돌릴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을 배운다." 죽음은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승리에 삼켜졌으니, 믿음을 통해 그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고 그 승리 안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속사람에 대해 율법이나 선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의 자유, 신앙의 중심적 의에 대해 말한 것이다. 누군가 율법이나 행위를 통해 의로워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해로울 것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6'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커스 J. 보그: 새로 만난 하느님 (0) | 2026.01.13 |
|---|---|
| C. 케빈 로우: 이 놀랍고도 새로운 (0) | 2026.01.13 |
| 크리스토퍼 클라크: 혁명의 봄 (0) | 2026.01.04 |
| 고익진: 불교 이야기 (0) | 2026.01.04 |
| 로버트 젠슨: 종교개혁의 표어들 (1) | 2026.01.04 |
|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945 이후 (0) | 2025.12.26 |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3 ─ 황혼기 (0) | 2025.12.26 |
| 대니얼B.클린데닌: 동방 정교회 신학 (0) | 2025.12.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