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회슬레: 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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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사 - ![]() 비토리오 회슬레 (지은이),이신철 (옮긴이)에코리브르 |
한국어판 독자들에게
01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독일 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02 영혼에서 신의 탄생: 중세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독일어로 철학함의 시작.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중세 사유의 완성과 돌파
03 종교 개혁에 의한 철학적 상황의 변화: 파라켈수스의 새로운 자연철학과 야코프 뵈메의 신에게서의 아님
04 신에게는 오로지 최선의 것만이 충분히 좋다: 라이프니츠의 스콜라 철학과 새로운 과학의 종합
05 독일의 윤리 혁명: 임마누엘 칸트
06 종교적 과제로서 정신과학: 레싱, 하만, 헤르더, 실러, 초기 낭만주의와 빌헬름 폰 훔볼트
07 체계에 대한 동경: 독일 관념론
08 그리스도교 교의학에 대한 반란: 쇼펜하우어의 인도 세계 발견
09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반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10 보편주의 도덕에 대한 반란: 프리드리히 니체
11 도전으로서 정밀과학과 분석철학의 부상: 프레게, 빈학파와 베를린학파, 비트겐슈타인
12 신칸트주의와 딜타이에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근거짓기 시도 및 후설에서 의식의 해명
13 독일의 재앙에 철학의 공동 책임은 존재하는가? 하이데거, 겔렌, 슈미트: 결의성과 강력한 제도 그리고 정치의 본질로서 적의 제거
14 서유럽의 규범성에 대한 연방공화국의 적응: 가다머와 두 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한스 요나스
15 왜 계속해서 독일 철학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가?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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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독일 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11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아이는 독일인이 작가와 사상가의 민족이라는 것을, 최소한 그랬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 철학은 전 세계에 독일의 음악과 문학작품 못지않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독일어로 말하는 수많은 철학자가 존재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들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이 P로 시작되는 수많은 철학자가 존재하지만, '이름이 P로 시작되는 철학자들의 역사'는 특별히 의미 있는 기획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거기에는 정신적 유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개별적 대상, 가령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인 것과 논리 정연한 발전을 인식함으로써만 그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다수의 사람이 공동 주제로 연계되어 있어야만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8/7-BC348/7)에서 프로클로스에 이르는 고대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플라톤에 대한 특수한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 및 제도와 구별되는 사람과 제도의 역사다. 그러나 모든 독일 철학자에게 그리고 오로지 그들에게만 공통된 어떤 것, 예를 들어 하나의 방법과 하나의 주제가 존재하는가? 최소한 독일 철학의 발전은 고유한 법칙을 지닌 자기 내부에서 완결된 생기 사건이었는가?
마지막 물음에서 시작하자면, 대답은 명백히 부정적이다. 철학사에서 의미와 연관을 추구하는 사람, 철학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유럽 철학사를 하나의 통일로서 고찰해야만 한다. <근세철학의 역사에 대하여>라는 자신의 1827년 뮌헨 강의를 '철학에서 국민적 대립에 관하여'라는 장으로 끝을 맺은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은 분명히 종교적 진지함과 선험주의(Apriorismus)를 독일 철학이 두 개의 매우 중요한 이웃 철학, 그러니까 프랑스 철학 및 영국 철학과 구별되는 점으로 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참으로 보편적인 철학은 하나의 개별 국만의 소유물일 수 없다. 어떤 하나의 철학이 여전히 참된 철학이 아니라고 가정해도 좋을 것이다."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 1770~1831)과 셸링을 프랑스에 알린 프랑스 철학자 빅토 쿠쟁'은 애국주의적 촌뜨기들로부터 적을 조국에 끌어들인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 정당하게도 철학에는 진리 이외에 다른 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는 카탈루냐 사람 라이문두스 룰루스 없이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는 프랑스 사람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와 네덜란드 사람 바뤼흐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없이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스코틀랜드 사람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과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사람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이 세 사람 모두는 서로 다른 형식으로긴 하지만 고대 철학의 고유한 사유와도 관련이 있었다. 아니, 그리스도교 중세 철학과 관련해서는 이슬람과 유대 사유의 영향도 중요했다. 이를테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28)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와 똑같이 자주 마이모니데스 및 아베로에스와 대결하지만 또한 페르시아 사람 아비켄나'와도 대결하며, 지구화한 우리 세계 대부분의 현대철학자보다 더 자주 다른 문화권사상가들에 대해 논의한다. 요컨대 독일 철학의 고유한 역사를 박제화하는 것은 사유의 세계 공화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시 연관들을 보지 못하게끔 하거니와, 그렇게 만들어진 독일 철학의 역사는 분명히 오직 세계 수학의 비자립적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는 독일 수학의 역사와 비슷하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독일 철학자들에게만, 또는 최소한 그들 모두에게만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확실히 18세기의 독일 철학 거의 전부는 계몽의 결정적 이념을 수용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의식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계몽은 그 분야 최고의 새로운 역사학자인 조너선 이즈라엘이 보여주듯 철저히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그러한 이념은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향작용사적인 연관과 실재적인 이념사적 상호 관계는 여러 국민을 포괄했다. 역으로 개별적인 독일 철학자들은 서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가령 무엇이 칸트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결합하는가? 두 사람 각각을 흄과 결합하는 것이 둘을 서로 결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17 보편적 학문어인 영어의 발생 덕분에 현대는 많은 측면에서 19세기보다 중세에 더 가깝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흄은 독일어를 못했고, 칸트는 영어를 못했다. 1820년대에도 오로지 아주 소수의 영국 지식인만이 독일어를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근대 언어 중에서 프랑스어는 물론 중세의 라틴어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지배적이지는 않았지만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교양인들의 공용어였다. 어쨌든 에드워드 기번도 자신의 첫 번째 책을 프랑스어로 썼다. 홈이 비로소 자기의 주요 저서를 영어로 집필해야겠다고 확신한 것은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후 영어의 중요한 미래를 예언한 셈이다. 국민이 일차적 동일성 요소로 떠오름에 따라 의도적으로 강화된 언어 장벽이 국민국가의 시기에 철학적인 국민 문화를 산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연적이다. 이런 점은 철학이 복잡한 방식으로 전체로서 문화와 결합되어 있는 만큼 더욱더 그러하다. 왜냐하면 개별 인간의 최종 목표의 해명은 물론 집단의 그것도 철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의 계몽철학이 분명히 유럽의 계몽철학과 공동의 특징을 지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독일어 사용을 넘어서 그것을 이웃 나라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특수한 형태화를 획득했다는 작업가설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런 점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독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인구가 가장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종교적 신앙 고백, 즉 독일 정신을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게 주조해낸 루터교 출신인 만큼 더욱더 개연적이다. 그들의 성장 배경인 루터교는 또한 칸트와 니체에게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9 이것으로 이 책의 관심사를 설명했다. 목표는 독일 철학에 대한 간결한 개관, 이를테면 항공사진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러면서 이 철학을 다른 유럽 국민의 철학과 구별 짓는 특유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 정신에는 결정적으로 정신 개념(Geistbegrift)에 대한 추사유(Nachdenken)가 속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일 철학의 모든 전환에서는 그것 없이는 역사를 현실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럼직한 발전 노선이 명백해야 한다.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독자는 일차적으로 전문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교양 시민이다. 이 책은 예를 들어 수학자와 법학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까닭에, 그때그때마다 그런 분과에 속하는 어떤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해를 포기했으며, 비록 내가 이차 문헌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인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용문의 정서법을 현대화했다. 사후에 출간한 텍스트의 경우 비록 잘 알려져 있는 제목이 나중의 사람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잘 알려진 제목에 따라 인용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박식한 세부 사항이 아니라 커다란 노선이다.
20 이 책은 철학사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념사학적이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철학이 불러일으키거나 개념화한 의식사적 변화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책을 독문학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여기서 독문학은 단순히 독일 문학만이 아닌 독일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학문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또한 언제나 거듭거듭 독일 문화의 다른 성취, 특히 다른 문화의 그것과 다르고 독일 철학과 어렵지 않게 연관시킬 수 있는 문학과 정신과학의 다른 성취도 참조한다. 그에 못지않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독일 철학사와 정치적 역사의 연결이다. 독일 정신의 종교적 전제는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데, 나는 독일 신비주의로부터 종교개혁으로의 도정과 루터교의 고전 독일 철학으로의 변형 및 19세기에 이루어진 독일의 탈그리스도교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은 또한 서유럽 근세의 틀 안에서 독일 문화의 특수한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23 우리는 독일의 역사를 1871년의 독일 통일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1800년 이래로 강력한 독일 국민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많은 이들이 공동의 국가를 열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한편으론 이웃 나라들의 발전에 의해 환기되었고, 다른 한편으론 가령 1760년 이래로 독일어권 문화가 그것을 다른 유럽 문화와 구별해주는 길을 발견했다고 하는 느낌을 표현했다. 이 새로운 길은 독일 역사의 이전 시기를 다시 수용함으로써 생겨난 게 아니었다. 독일 중세나 심지어 초기 게르만에 대한 포괄적 관심은 19세기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괴테(Jolhann Wolfgangvon Goethe. 1719-1832)는 중고지 독일어 문학보다 그리스, 라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문학에 대해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잘 알았다. 아니, 그는 엄청나고도 천부적인 언어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중고지 독일어 읽기를 배우는 수고를 무시했다. 독일 정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도발적으로 그것이 1750년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그 이전 것 위에서, 특히 루터교 위에서 구축되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비록 루터교가 종교적인 것을 중세에는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국민적인 것과 결합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운동이며 단지 이차적으로만 국민적 운동이었다. 독일 정신과 관련해 여기서 주장하는 연대는 또한 외부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19세기 초 이후에야 비로소 (1813년 독일에 관한 스탈 부인의 유명한 책이 출간되었다) 유럽은 단지 중세의 숭고한 유물인 신성로마제국의 전통적 담지자로서 독일 민족에 대해서가 아니라, 특수하게 독일적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독일이 프랑스, 에스파냐 또는 영국의 양식에 따른 근대 국민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담지자라는 그러한 영예로운 특수 역할이었다.
27 더 이상 유럽의 것이 아닐 천년의 첫머리에서도 어째서 독일 철학사 헬라스의 새로운 이야기가 의미 있는지에 대한 본래적 근거는 오로지 그리스인들의 그것만이 능가할 수 있는 이 철학적 전통의 비상한 질이다. 물론 이는 강력하지만 거친 가치 판단이므로 독자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즉 독자는 이 책에서 독일 철학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겠지만, 반은 에세이고 반은 역사학인 이 책은 독일 철학을 의식적으로 그 정점으로서 독일관념론에 비추어 해석하며, 불가피하게 지금 이 저자의 철학에 의해 각인되어 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선택해야만 하거니와, 내 두 번째 선택 기준은 사실상 철학의 질이다. 여기서 완전성은 결코 추구하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것들에 집중하고자 하며, 그저 자신의 시대에서만 영향력이 컸던 학교 철학자들을 무시하고자 한다. 호라티우스가 시인들에 관해 말하는 것, 즉 사람들도 신들도 그들에게 평범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더 높은 수준으로 철학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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