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5)

 

2026.01.26 📖 종교란 무엇인가(5)


지난번에는 명명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숄 크립키Saul Kripke의 《이름과 필연Naming and Necessity》에 대해서, 지금 이 얘기는 철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사회과학이나 역사학 이런 것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한다. 크립키의 Naming and Necessity은 자연종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에 관한 얘기이다. 그래서 인과적 지식 이론을 지난 번에 말했는데, 보충 설명을 해보자면, 인과적 지식 이론이라고 할 때 인과causal라고 하는 말은 명명되는 대상, 그러니까 우리가 호랑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 그 호랑이라고 하고 이름을 붙여지는 대상과 우리가 이름을 붙이는 행위, naming하는 행위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명칭을 도입할 때 두 가지 정도를 고려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데, 겉모습이 비슷한 것에 대해서 이름을 붙일 때 그렇게 한다. 그래서 외적 유사성external resemblance라는 범주가 사용되는데, 이 외적 유사성이라는 게 명칭을 도입할 때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겉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우락부락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우락부락이라는 단어가 원래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에게 우락부락이라고 하는 말을 쓰는 것이 우락부락이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물에다가 H2O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물의 내부 구조에 대한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 명칭 자체가 자연종에서 나를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아니다. 어쨌든 자연종natural kind은 우리 인간이 이름을 붙여주는 대로 그냥 그 이름을 고스란히 naming을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이 비슷하다든가 또는 이론적인 기술을 통해서 밝혀진 내적인 구조의 속성을 가지고 이름을 붙인다든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우연적인 것임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필연성은 아니다. 따라서 인과적 지식 이론이라고 할 때 인과적causal이라고 하는 단어는 그 이름이 붙여지는, 그러니까 피명명체, 이름 붙임을 당하고 있는 것과 이름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져서 그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명료하게 해둬야 한다.  

그런데 왜 거기다가 인과적 지시 이론이라고 하는가. causal이라는 말을 왜 쓰는가. 그것은 일단 이름이 붙은 다음에 그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뭐냐 하면 저렇게 생긴 것을 또는 이러이러한 구조를 가진 것을 우리가 이렇게 이름을 붙이자 라고 일단 규약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규약을 왜 만드는가. 우리 인간 공동체에서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 규약을 만든다. 이름을 붙이는 그 이름을 가지고 우리가 그 대상을 지칭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우리가 라고 하는 게 인간 공동체이다. 그러니까 왜 인과적이라는 말이 붙었는가. 일단 이름이 붙은 다음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일단 붙었으니 계속 써야지 하는, 이제 그다음부터 결과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과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쇄의 사건들을 가리키기 위해서 그 말을 쓰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좀 더 확장되면, 역사적 사회적 영역으로 이동할 때는 문제가 까다로워진다. 혁명이니 민족이니 화폐니 결혼이니 종교니 이런 것들은 자연종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종social kind이라고 부른다. historical kind라는 말도 있다. social kind에서 좀 더 그것의 범위를 넓혀서 말하면 사회적 역사적 종이라고도 한다. 사회적 역사적 종을 사용하는 존재는 인간 종human kind이다. 그러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또는 셸리 헤슬랭어Sally Haslanger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적으로 기초 지어진, 사회적으로 정초된, socially founded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 종social kind이라고 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종교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종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이름을 붙일 때 그냥 종교라고 이렇게 되지만, 자연종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인간 공동체에서 통용될 것을 전제로 이름이 붙여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사회적 종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혁명, 민족, 화폐, 결혼, 종교 이런 것들은 사회적 종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콰메 앤서니 아피아의 말을 보면, like ‘wedding’, depend on shared recognition, 결혼식이라고 하는 것은 공유된 인정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5월에 결혼해요 라고 누군가가 얘기를 한다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최소한 결혼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shared recognition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인정, 승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 이런 것들을 따져 묻는 것은 사회학자의 연구이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서 작동하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 존재론적인 위상이 있다. 공유된 인정이 굉장히 세지면 사회적인 동조 압력이라는 것까지도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저런 것을 종교라고 해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을 벗어났다고 하면 종교가 아니고 사이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종교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유된 인정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일단 어떤 것이 종교라는 위상을 획득하게 되면 그리고 또 사람들이 공유된 인정을 갖게 되면, 저런 것도 종교야 라고 하게 되면 종교인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reflexive power이다. 일단 유통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과정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과정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이론은 이언 해킹Ian Hacking의 역동적 명명론dynamic nominalism이다. 역동적 유명론이라고 얘기도 하기도한다. nominalism이라는 말은 유명론인데, 서양 중세의 보편 논쟁이라고 할 때 실제론과 유명론의 논쟁이 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할 때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름일 뿐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유명론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보면 윌리엄 수도가 바로 주장한 바이다. 이름일 뿐이다. 이데아라는 것도 이름일 뿐이고 신도 이름일 뿐이다. 이름뿐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힘도 주지 못해 라고 말을 하는 것인데 이언 해킹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dynamic nominalism은 역동적 명명론이라고 했는데, 여기 맥락에서 보면 숄 크립키Saul Kripke의 《이름과 필연Naming and Necessity》과의 연속선상에서 보면 명명론이라고 하는 게 맞고, 예전에는 역동적 유명론이라고 배웠다. nominalism을 유명론이라고 번역할 것인지 명명론이라고 번역할 것인지를 가지고 저처럼 80년대 철학을 배운 사람과 요즘에 배우는 학생들하고의 한국어 번역어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공유된 인정이 달라진 것이다.  

지금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역동적 명명론이라는 말을 가지고 이렇게 얘기를 한다. 설명을 보면, "분류와 분류된 사람들이 서로를 재형성합니다. 범주는 종을 만들어냅니다. 과음자는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고 자신을 그렇게 봅니다. 현상에 레이블을 붙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것을 해킹은 dialectical realism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습니다." 이 사람이 요약을 잘했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정말 긴 얘기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고 골치 아픈 현상인가. 역동적 명명론은 자연종의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역사적 사회적 현실 속에서 이름 붙이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철학적으로 궁리해 보는 것이다. 일단 이를 역사적 존재론historical ontology이라고 한다. 그 문단에 보면 변증법적 실재론dialectical realism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이언 해킹에 가면 historical ontology라는 말로까지 간다. 그러니까 nominalism을 realism으로 이제 변화시켰고 그것을 다시 ontology로까지 변화시키는 이 과정, 굉장히 설명이 많아야 된다. 구글에 들어가서 역동적 명명론을 검색해보면 making up people, looping effect, moving targets, 그다음에 historical ontology까지 이렇게 4개의 항목이 나온다. 이언 해킹의 논의를 책 한 권을 가지고 촘촘하게 보고싶다면 《우연을 길들이다The Taming of Chance》을 보면 된다. 

다음 주에는 역동적 명명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게 도움이 되는 게 뭐냐 하면 그다음 문단에 나오는 "니케아 신경이나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명제들은 난해하고 논리적으로도 불일치해 보일 수 있지만 고백하는 행위는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문장과 관련이 있다. 어떻게 신경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고백하느냐가 달라진다. 그러면 무엇을 고백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행위가 달라진다. 역동적 명명론이라는 게 그것이다. 무엇을 고백하느냐에 따라서 행위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백의 내용을 정밀하게 잘 만들 필요가 있다 라는 얘기이다. 그 얘기는 다음 주에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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