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0) ─ 文獻通考

 

2026.02.28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0) ─ 文獻通考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2

 

마단림馬端臨, 문헌통고文獻通考
• 송宋 이수 원초元初사람. 송대사학宋代史學의 성과로 보는 것이 타당

 

• '문헌文獻'의 의미
 문文은 전적典籍, 헌獻은 현자賢者.
 "사실에 대한 서술은 경사經史에 근본했으며, 역대의 회요會要와 백가百家 · 전기傳記 등을 참조했다." ─ 문文
 "당시 신료臣僚들의 주소奏疏", "근대 여러 사람들의 평론", "명류名流의 연담燕談(한가로운 담론)과 패관稗官의 기록" ─ 헌獻 

 문文은 책冊을 가리키고, 헌獻은 사람을 가리킨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하나라의 예는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의 기나라의 문물제도가 그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하고, 은나라의 예는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의 문물제도가 그것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왈子曰 하례夏禮 오능언지吾能言之 기부족징야杞不足徵也 은례殷禮 오능언지吾能言之 송부족징야宋不足徵也 문헌文獻 부족고야不足故也 족즉오능징지의足則吾能徵之矣) 
헌獻. 커다란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현인賢人. 문文, 즉 전적典籍이 있다해도 가르침을 줄 사람이 없다면 학문學問이 완성完成하지 못한다는 것. 

• 구성. 24개 분야. 정치제도
전부田賦    ┐   ─ 통전通典에 근거한 부분들
전폐錢幣   
호구戶口      식화食貨   
직역職役
정각征榷      
시조市糶
토공土貢
국용國用   ┘   
선거選舉   ┐
학교學校   ┘ 선거選舉
직관職官   ┐
교사郊祀       예전禮典 
종묘宗廟      
왕례王禮   ┘
낙樂
병兵
형刑

여지輿地
사예四裔: 변방 너머의 종족들. 동이東夷 · 서융西戎 · 남만南蠻 · 북적北狄

경적經籍
제계帝系
봉건封建
상위象緯
물이物異

후세 사람들은 통전通典과 비교하여 
"간결하고 엄격한 면은 부족하고, 상세하고 풍부한 면은 지나치다." (간엄부족簡嚴不足 상담과지詳贍過之) 


토요일이니까 중국사학명저를 읽겠다. 오늘은 송나라 말, 남송 말기에 태어난 사람인데, 살기는 원나라 때, 책을 낸 게 원나라 때인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읽는다. 전목 선생이 문헌통고를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한다. 책 자체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 책이 만들어지는 것들에 많이 하는데 그것에 관해서 한 것은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문헌통고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단림馬端臨은 송나라 사람인데 송나라가 망한 이후에 원나라 초에 이것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전목 선생은 송대사학宋代史學의 성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원나라 때는 유학자들이 사람 대접을 못 받았는데, 몽골 사람들이 들어와서 지배를 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나라 초에는 여전히 몇몇 큰 학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왕응린王應麟이라는 사람이 쓴 옥해玉海라는 책이 있고 또 곤학기문困學紀聞이라는 책을 지었고, 호삼성胡三省이라는 사람은 자치통감주資治通鑑注를 남겼고 그보다 조금 전에는 황동발黃東發이라는 사람이 황씨일초黃氏日鈔를 썼다고 한다. 훌륭한 성과라고 하는데 전목 선생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언젠가 중국사상사 책을 읽으면서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까지 읽어볼 만한 그런 것은 없고,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는 들어본 적이 있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을 근거로 해서 문헌통고文獻通考가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정초鄭樵의 통지通志, 그리고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 이 세 가지를 묶어서 삼통三通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 이 책 이름을 문헌文獻이라고 했는가. 문헌文獻이라고 하는 이 말은 익숙한 단어이다. 문헌의 근거가 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전목 선생이 이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 문헌文獻이라고 하는 것이 헌獻 자라고 하는 것은 모르는 글자가 아닌데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목 선생은 이 단어를 먼저 설명을 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굉장히 의미 있는 설명이라고 본다. 우리가 문헌이라고 하는, 역사문헌, 철학 문헌이라고 할 때의 문헌은 오로지 문서만을 가리킨다 또는 책만을 가리킨다 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단림馬端臨은 서문에서 "문文은 전적典籍이요, 헌獻은 현자賢者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마단림馬端臨의 규정이 아니라 이 글자가 원래부터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文은 전적典籍이다 라고 하면 전적典籍은 문서이다. 그리고 헌獻은 현자賢者이다. 현명한 사람이다 라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앞서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문헌이라고 하면 그게 모두 다 문서를 가리키는 걸로 이해를 하고 있었는데, 헌獻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것을 사전을 찾아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렇게 하면서 배우게 됐습니다. 우리는 헌신獻身한다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시다 라고 할 때의 헌신獻身, 그다음에 성당에 가서 헌금獻金을 낸다고 할 때는 돈을 바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헌주獻酒한다고 하는데,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 헌獻자라고 하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런 뜻이 있다. 그런데 문헌文獻할 때 헌獻자는 문서를 바친다는 뜻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 현자賢者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헌文獻이라는 단어는 문文은 전적典籍, 헌獻은 현자賢者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단림馬端臨은 서문에서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에 대한 서술은 경사經史에 근본했으며, 역대의 회요會要와 백가百家 · 전기傳記 등을 참조했다." 회요會要는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그다음에 "당시 신료臣僚들의 주소奏疏", "근대 여러 사람들의 평론", "명류名流의 연담燕談과 패관稗官의 기록"을 참조했다. 이런 것을 헌獻이라고 이야기한다. 연담燕談이라고 하는 것은 한가로운 담론이다. 이런 것들을 왜 헌獻이라고 하는가. 이런 것들도 문서 아니겠는가. 주소奏疏 그다음에 연담燕談 그다음에 기록 이런 것들도 다 문서인데 이런 것들을 왜 헌獻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이 사람들이 남겨놓은 말들을 헌獻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문헌文獻이라고 하는 두 글자는 논어論語에 처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논어論語의 용법에 따르면 문文은 책을 가리키고 헌獻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전목 선생이 써놓은 이 구절을 논어論語에서 찾아보니까 팔일편八佾篇에 있다. 팔일八佾이라는 것은 여덟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황제의 제사를 지낼 때 팔일무八佾舞를 춘다고 한다. 가로로 8명, 세로로 8명, 8 × 8 = 64, 64명이 추는 춤을 팔일무八佾舞라고 한다.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을 보면 "하나라의 예는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의 기나라의 문물제도가 그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하고, 은나라의 예는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의 문물제도가 그것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 공자 자신이 말을 할 수는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막연히 알고 있지만 기나라의 문물제도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기나라의 문물제도가, 문물제도라는 것은 제도화된 것, 기록된 것을 말하는데, 그런 것이 하나라의 예가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충분히 증명해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일단 문서 자료가 없고, 그다음에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가르쳐 주는 현명한 사람을 헌獻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헌獻은 커다란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현인, 즉 전적典籍이 있다 해도 그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면 학문이 성립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문헌이 부족하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후로 이것을 몰랐던 분들은 문文이라고 하는 것은 문서 자료이고, 헌獻이라고 하는 것은 그 문서 자료를 가르쳐 줄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을 하면 되겠다.  

따라서 문헌文獻이 부족하다 그러면 1차적으로는 문서 자료와 그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라는 뜻인데, 만약에 문헌이 완비되어서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뭐라고 가르쳐 줬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이 남긴 말도 문서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문서화될 수 있겠고 문서화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신료臣僚들의 주소奏疏가 되는 것이고 그다음에 여러 평론이 되는 것이고 명류名流의 연담燕談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명류名流들의 연담燕談, 패관稗官의 기록, 신료臣僚들의 주소奏疏, 근대 여러 사람의 평론 이런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은 문서이지만 본래는 그들이 헌獻으로서, 즉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서 말을 했던 것들이겠다. 따라서 그런 것들을 헌獻이라고 한다. 헌獻이라고 하는 것은 문서를 지칭할 수도 있는데 그 문서가 만들어진 연원은 현명한 사람들이 말로 가르친 것 또는 그런 현명한 사람이 있어야 말로 가르칠 수 있다 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이 문헌文獻이라고 하는 말은 문서로서 확정된 내용과 그 확정된 내용을 가르쳐 주는 사람, 요즘의 지식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보면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명시적 지식은 문文이고 그다음에 암묵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헌獻이니까 그 사람이 만들어낸 지식까지도 헌獻이라는 단어로 포괄할 수 있지 않겠나 라고 생각을 해볼 수 있겠다. 어쨌든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문헌文獻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알고 지나가자 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다음에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하면, 이 구성까지만 얘기하면 문헌 통고가 어떤 내용인지는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 24개의 고찰, 전부고, 그다음에 전페고, 호구고, 고찰考察 할 때의 고考 자를 뒤에 붙여야 한다.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는 정치 제도사이다. 따라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라든가 이런 데서 나오는 표表 이런 것들을 특화해 놓은 부문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 이런 업적을 남겼다 라고 하는 왕의 일대기를 기록한 본기本紀도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가 오늘날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부한다고 할 때는 이런 정치 제도사가 중요하다. 더군다나 저처럼 정치 사상을 연구하는 정치철학 연구자 또는 법철학 연구자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정치 제도사가 굉장히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전부田賦는 밭 전 田자가 쓰여져 있으니까 농지에 관한 얘기일 것이고, 전폐錢幣는 화폐 그런 것들에 관한 것이겠다. 그다음에 호구戶口는 인구 구성에 관한 얘기일 것이고, 직역職役은 사람들의 직업과 그 일들에 관한 것일 테이고, 그다음에 정각征榷은 세금을 매기는 것이고, 그다음에 시조市糶는 쌀을 수매하는 것에 관한 그런 것이고, 그다음에 토공土貢은 땅에서 곡물을 받는 것, 그다음에 국용國用은 경제 활동에 관련된 다양한 것들을 세부적으로 쪼개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통전通典에 나와 있는 어떤 분류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나눠서 24개의 분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선거選舉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으로 여러 번 나왔었다. 학교學校, 그다음에 교사郊祀는 제사 지내는 것이다. 제사 지내는 것에 곧바로 이어서 종묘宗廟, 그다음에 거기까지는 전부田賦 이하 국용國用까지는 통전通典에 나와 있는 식화전食貨典을 잘게 쪼개 가지고 얘기한 것이라고 한다. 직관職官 이하 왕례王禮까지는 통전通典의 예전禮典, 선거選舉와 학교學校는 통전通典의 선거전選舉典이다.  

그다음에 낙樂, 병兵, 형刑은 마단림馬端臨이 더 추가해서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행사에 관련된 그런 것들이다. 그다음에 여지輿地는 산천이나 지리에 관한 부분이다. 여輿 자는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 할 때 여輿이다. 여輿 라고 하는 이 단어를 찾아보면 수레를 아우를 수 있는, 수레를 그 위에 다니게 하는 땅에 관한 얘기이다. 그래서 여지與地라고 하는 단어는 지도라는 뜻이다. 그다음에 하나 더 있는 게 통전通典에서는 변방, 국경을 지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마단림馬端臨의 책에서는 사예四裔라고 쓰여져 있다. 변방 너머에 사는 종족들을 가리킬 때 동이東夷 · 서융西戎 · 남만南蠻 · 북적北狄을 가리킬 때 사예四裔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마단림馬端臨의 경적經籍 이런 것들은 정초鄭樵의 예문략과 교수락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근거를 하고 있다.  

그다음에 제계帝系는 황제의 족보, 그리고 봉건封建는 제후들을 어떻게 봉했는가에 관한 것이고, 상위象緯는 천문에 관한 것이고 물이物異는 오행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것 역시 선행하는 작업들을 보고 좀 더 상세하게 밝혀서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두우杜佑의 통전通典과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비교를 하면서 "간결하고 엄격한 면은 부족하고, 상세하고 풍부한 면은 지나치다." 그래서 간엄부족簡嚴不足 상담과지詳贍過之라고 표현을 했다고 한다. 대체로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관해서는 이 정도만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얘기는 거기까지 하고 잡담을 하나 해보자면 중국사학명저가 끝나면 탄허 스님의 《선학강설》을 읽으려고 한다. 중국 사학명제를 읽는 이유는 아주 명료하다. 일단 레셰크 코와코프스키Leszek Kołakowski,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을 읽고나면 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를 읽어보려고 한다. 그 책을 요약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서 제가 공부한 것, 서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하면 적어도 중국 사상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까지는 읽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수준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저 스스로 예습을 하는 마음으로 한자에 익숙해지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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