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7)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6
- 2026. 3. 2.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듣고 정리한다.
2026.01.30 📖 종교란 무엇인가(7)
콰메 앤서니 아피아의 종교에 대한 논의를 읽고, 이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 파생되는 것들 또는 이 글을 읽는 데 필요한,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들도 이것을 읽고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학문적인 어떤 입지도 꽤 많이 올랐기 때문에, 우선 처음부터 했던 얘기를 가지고 마무리를 해보겠다.
종교라는 말을 가지고 뭔가를 얘기한다고 하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오늘날 종교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들, 그런 것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종교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번에 읽으면서 뚜렷하게 알게 된 것처럼 사실 아무리 과거로 소급해서 잡아도 그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이 질문했다시피 세계 종교사를 쓰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 현상을 18세기 이후부터 규정된 현상으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렇다. 그래서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첫 문단에 그렇게 해놓다. "우리는 종교를 인간 존재의 오래된 특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바로 그 개념이 초기 근대(early modern era)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 수 있다." 초기 근대까지도 아니고 사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라고 본다. "고대 지중해, 고전기 중국, 콜럼버스 이전의 메소아메리카에는 신들, 신전, 제물, 의례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종교라고 하는 말에 딱 들어맞는 현상들인가. 그냥 사람들이 자연 세계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하나의 연장선상, 그런 것들 속에서 살아왔을 뿐이지 우리가 종교라는 말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제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쭉 살펴서 로마의 religio 개념을 생각해 본다. 이때는 경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양심의 가책, 엄정함, 그런데 내면의 양심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고대 세계에서는 내면이라고 하는 것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마음을 닦는다 라는 말을 하는데, 마음을 닦는다 라는 것이 유가의 오래된 가치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남송 시대 성리학에 와서야 그게 되는 것이다. 우리 동아시아 세계에서 마음 수련을 한다는 것은 불교가 개발한 것이다. 그것을 본받아서 성리학도 했던 것이니까 아무리 일찌감치 잡는다 하더라도 13세기 이전에는 그런 게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참 경건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때는 규칙이나 금기를 꼼꼼하게 준수하는 태도, 그리고 의례를 잘 지키는 것,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doing the right thing in the right way,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한다, 이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은 양심을 지킨다 라는 것이 아니다. 제례를 잘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정체》에서 보면 처음에 소크라테스가 피레우스 항구로 갔다가 아테나이로 돌아오는데 폴레마르코스가 부른다. 가보니까 폴레마르코스의 아버지 케팔로스가 경건한 사람이더라는 말이다. 재물을 바치고 있는 것, 그런 사람들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거기다 대고 그렇게 말한다. 그게 올바르면 아니다. 벌써 플라톤 정도 되는 사람은 이건 좀 아닌데 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플라톤은 이건 아니잖아 라는 생각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어쨌든 그 시대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로는 예배 실천의 준수 그리고 라티움어로 cultus, ritus, superstitio, 관습, 의례, 의무 이런 것들이 있다. 사회적 예법을 가르키는 용어들이 있었다. 그리고 전쟁 시에는 신이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이 불러들일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evocatio, 초혼招魂, 신을 불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샤마니즘을 우리는 종교라고 하지는 않지만 본래적인 아주 오래된 의미에서는 종교이다. 신들이 편을 바꿀 수 있도록 시도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을 거쳐가면서 종교라고 하는 것의 잠정적인 정의를 내려보면, 권위를 근거 짓는 성스러운 텍스트가 있고, 기원을 서사화하는 예언자적 창시자가 있고,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신학 교리의 묶음이 있고, 그다음에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의무가 있고, 그런 것들이 종교이다. 그런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로마의 religio 시대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권위를 근거 짓는 성스러운 텍스트는 전혀 없고, 기원을 서사화하는 예언자적 창시자도 당연히 없는 것이고, 정통과 이단 이런 것은 더욱이나 없다. 19세기 후반에 세계 종교를 연구를 하게 되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definition이 모색되기 시작을 했던 것이다.
그런 모색의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 그다음에 허버트 스펜서, 에드워드 타일러, 막스 뮐러,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 그다음에 에밀 뒤르켐, 에밀 뒤르켐 같은 경우에는 후계자들이 기능주의적 definition을 추구했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게오르크 짐멜은 열려라 참깨Open Sesame라고 하는 얘기, "우리가 그것의 해법을 위해 단 하나의 단어만을 요구하는 단일 문제로서 종교의 기원과 본성에 접근하려고 고집하는 한, 우리에게 둘러져 있는 그 시빌라적 박명 속에서 결코 어떤 빛도 비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해놓고 나서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뭔가를 지칭한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를 한다. 대체로 보면 영미철학적 전통을 꼭 한 번씩은 짚고 넘어간다. 그래서 숄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Naming and Necessity》과 이언 해킹 얘기를 했다. 인과적 지시 이론 그다음에 이언 해킹의 역동적 명명론과 그리고 변증법적 실제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역사적 존재론, 《우연을 길들이다》를 얘기했다. 미셜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도 읽으면 된다. 《우연을 길들이다》는 토마스 쿤과 미셸 푸코를 결합한 groundbreaking한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지난번까지 역동적 명명론에 대한 논의를 했다.
명명을 둘러싼 논의가 종교를 이해하는 데 어떤 함의를 주는가.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간에 종교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대충은 알고 있다. 그 이름을 뭐라고 하든 간에 장미는 장미이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사람이 윌리엄 수도사이다. 윌리엄 수도사가 오캄 사람 윌리엄William of Ockham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 유명한 중세 보편 논쟁의 유명론nominalism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름일 뿐이다. 실제는 따로 있다.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간에 그것은 그것대로 있다. 물 자체는 있다. 사물 자체가 있는 것이다. 종교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단일한 딱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필요한 angle을, 우리가 어떤 측면에서 사태를 보느냐 하는 것을 정하고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해서 사례를 선택해서 이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을 말할 때는 우리가 얘기하고 싶다고 하면 실천 중심의 접근을 해야 되는 것이다. 유대교를 보면 된다. 그 사람들은 의례와 준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다음에 "니케아 신경이나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명제들은 난해하고 논리적으로 일견 불일치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고백하는 행위는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니케아 신경이나 아타나시우스 신경 이런 것들을 다 총괄해서 칼케돈 신조로 집약이 되었다. 의례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칼케든 신조를 받아들이는, 그 신조를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폭넓게 얘기를 해보면 그 맨 마지막 문단에 그게 있다. The map may not be the territory, but we’d be lost without it. 지도는 영토가 아니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견딜 만한 거짓tolerable falsehoods, 개연성 있는 참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참으로써 증명된 것은 아니고 거짓의 가능성은 있으나 참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 또는 일단 한번 견딜 만한 거짓tolerable falsehoods을 가지고 시작을 해보는 것이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고민하지 않고 시작을 해보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참으로 개념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론적인 것만 가지고는 무엇을 할 수가 없다. 굉장히 강한 신념을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거의 종교 수준이네 라는 말도 한다. 따라서 이런 것을 외면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떤 작동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가 아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아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떤 것에 대해서 이름을 붙인다고 할 때 그 이름이 어떻게 붙게 되었는가. 그것을 지금까지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논의하면서 그런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름이 붙었는데 그 이름이 왜 이렇게 이름이 붙었어 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특정한 존재자의 이름이 붙게 된 상황을 좀 주의 깊게 검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하는 것들, 그런 변화들을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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