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종교란 무엇인가(6)

 

2026.01.28 📖 종교란 무엇인가(6)


콰메 앤서니 아피아의 종교에 관한 간단한 글을 읽어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읽는 김에 naming에 관련된 몇 가지 얘기들을 덧붙이고 있다. 이것을 읽는 이유는 그냥 알고 있으면 좋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종교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저런 게 과연 종교일까라고 하는 의문이 있다. 저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것, 종교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뭐라고 정확하게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현상들, 사회적 현상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질병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질병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자연종인데, 결국에는 사회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서 뭔가를 할 때 거기에 뭐라고 이름을 붙일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얘기이다. 

오늘은 이언 해킹Ian Hacking의 역동적 명명론dynamic nominalism, 그것을 달리 보면 변증법적 실체론dialectical realism이고, 또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역사적 존재론historical ontology까지도 얘기가 된다. 이언 해킹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혁명적으로 진전되는 것이지 지식이 누적되어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는 토마스 쿤의 과학사 패러다임 이론하고, 그다음에 미셸 푸코의 지식 담론 권력 얘기를 과학 · 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존재론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월요일에 링크를 걸어두었던 《우연을 길들이다The Taming of Chance》라는 책, taming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의미 있는, 길들인다 라고 하는 것, 순화馴化라는 말이 있다. 요새는 가정화라는 말을 쓴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제1권 《세계사의 탄생》을 보니까 가정화라는 말이 나왔다. 예전에는 순화馴化, 말 마馬자를 왼쪽에 쓰고 내 천川자를 쓰면 말을 냇가에 데리고 온다, 그러니까 말이 자기가 알아서 오는게 아니라 사람이 데리고 오는 것이니까 그게 순화인데, domestication, 요새는 가정화라는 말로 번역을 한다. 다시 역사적 존재론까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Taming the Prince》는 하비 맨스필드Harvey C. Mansfield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군주를 길들이는 것에 관한, 그런데 길들이는 것은 아니고 훈육시킨다도 아니고 어쨌든 군주가 조금씩 조금씩 case by case로 뭔가를 해나가면서 바꿔나가고 이렇게 하는 것, 이런 것을 taming이라는 말을 쓴다. taming이라는 말이 아주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이언 해킹은 역동적 명명론이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변증법적 실제론이라고 말한다. 오늘 그것을 한번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크게 보면 이 논의가 역사적 존재론으로까지 간다. 존재론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groundbreaking book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정초를 뒤흔드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역사적 존재론을 열었다 라는 평가는 좀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존재론을 연 사람은 헤겔이다. 역사적 존재론이라는 것은 역사가 존재론적 의의를 갖고 있다라는 것이다.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고 불변의 것만이 존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는 우연의 산물인데, 이 우연의 산물인 역사가 어떻게 존재론적 우위를 갖는가. 그것의 자리를 잡게 해준 사람이 헤겔인데 헤겔 얘기는 신학적인 측면이 조금 있다보니까 제대로 포인트를 딱 잡아서 세속화, 완전 말 그대로 신학적인 것을 다 털어내버리고 그것을 역사적 존재론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이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다. 《Das Problem des geistigen Seins》, 정신적 존재의 문제에서 딱 자리를 잡았다.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주해에 보면 하르트만 얘기가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다. 그것도 이제 하르트만의 객관적 정신론인데, 헤겔의 객관적 정신론을 정리를 해서 사회철학과 역사철학, 사회철학 차원에서는 어떤 것이고 사회철학이 정태적 차원의 구조적 차원의 것이라면 시간적이고 역동체 차원에서의 역사철학, 이렇게 세분화해서 논의를 만들어 가지고 헤겔 객관적 정신론을 완성시킨 사람이 하르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언 해킹이 역사적 존재론까지 정리를 했다고 말해버리면 그건 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역동적 명명론, 본격적인 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어떤 분이 세계 종교사 책은 없는지 질문을 했다. 세계 종교사 책은 없다. 안타깝게도 없다. 지금 종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따져 묻는 것과 관계가 있다. 아직 어떤 것을 종교로 하고 할 것인가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계 종교사를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떤 것을 철학이라고 할 것인지는 그래도 조금 정해진 바가 있다. 그러니까 철학사가 쓰여지는 것인데, 사실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는 서양 철학사이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철학이 있잖아 라고 해버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 개념을 가지고 들춰보면 없더라는 얘기이다. 이게 유럽 중심주의이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개념이 획정, 구획을 정해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종교사를 일단 쓰기가 어렵고, 그다음에 인류학에서 많이 연구를 해버렸다. 문화인류학에서 이런 것도 종교의 범주에 넣어보자라고 연구한 게 많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개별 종교들의 역사는 있는데 그것을 다 묶어서 세계 종교사라는 것을 쓸 수 있는 상황은 못 된다. 옛날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종교 이런 것에 대해서 개론을 쓴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엘리아데의 그 얘기가 고전적인 것이어서 사회과학에서 더 이상 의미 있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저는 엘리아데를 싫어하는데, 파시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 읽으려고 한다. 파시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이 사람의 책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 어떤 엄청난 이유가 없는 한 안 읽으려고 한다. 명명을 둘러싼 논의가 종교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금요일에 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말을 하면 종교라는 개념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오늘은 이언 해킹의 역동적 명명론, 변증법적 실체론, 좀 더 함축을 넓혀서 역사적 존재론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보겠다. 역동적 명명론이라고 하는 것에서 세 가지를 생각하면 된다. Making up people, 인간을 만들다. 인간 종이라고 하는 것의 특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먼저 이름을 짓는다. 월요일에 말한 것처럼 저 사람은 술을 많이 먹어, 알코올 중독자야 라고 말하면 알코올 중독자라고 이름을 딱 지은 순간 그 사람이 내가 알코올 중독자로 분류되는구나 하고 본격적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현실적으로 리얼리티를 생성시킨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만 해도 그냥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알코올 중독자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는 것, naming 효과이다. 그러니까 역동적 명명론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효과가 많다. 의미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분류된 사람들이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고, 그럼 술을 더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짜 알코올 중독자이고, 벗어나야겠다 하는 사람은 계속 무언가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름이 붙었을 때 그 이름에 따라서 행위를 변화시키고, 그다음에 이 변화가 다시 또 범주를 수정하는, 그러면 노력하는 알코올 중독자도 나올 테고, 이렇게 되면 이름과 그 이름에 의해서 이름이 붙어진 사람 사이에 서로 왔다 갔다 하는, interactive relation, 상호작용이 생겨난다. 그것을 Looping effect, 고리 효과라고 부른다. 이언 해킹이 만든 말들이다. 그러고 나니까 현실의 인간들이 이름과 지식에 반응하여 끊임없이 변화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제 Moving Targets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 개념이 연결이 된다. 

그런 이름들을 붙임으로 해서 사람들은 행위가 바뀌고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달라진다. 자기에게 명령된 것을 반응할 수 없는, 호랑이가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랑이로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런 것과는 다르게 인간은 그런 이름이 붙게 된 상황을 주의 깊게 검토를 한다. 인간종은 그것을 듣고 바뀐다. 그래서 어떤 이름을 붙였을 때 어떤 효과가 나오는가를 또 따져본다. 이 존재자에게 귀속된 어떤 naming이 있는데, 이 naming의 인과적인 역할은 어떠한가, 이런 이름을 붙일 때는 어떠하고 저런 이름을 붙일 때는 어떠한가 이런 것도 따진다. 그다음에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따진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을 보면 나온다. 그런 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인간종human kind 또는 사회적 종social kind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들은 통칭 분류와 대상이 상호작용하는 종이라고 해서 interactive kind라고 한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가면, 분류라고 하는 것은 태고 쪽부터 있던 게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분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것은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구성물에 따라서 인간종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서 변화를 한다.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라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라는 말이다. 변증법이라는 말의 가장 널리 쓰이는 용법이 역동적 상호작용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현실 존재가 변화하고 있는데 그 현실 존재를 real이라고 해서 dialectical realism이라고 부른다. 인간 존재도 중요한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가 살아가는 곳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일어나는 배경이 역사적이다. 그래서 이것을 역사적 존재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정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의 공동정신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써있다. 그렇다고 헌법에 쓴 순간부터 갑자기 나라가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온갖 독재를 다 겪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의 이념이고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시간적 역동적 차원을 거쳐오면서, 특히나 최근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래로 아주 역동적으로 갑자기 민주주의가 역사 속에서 실현되고, 이제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 사회 공동체의 공동 정신이 되었다. 문서로써 전해져 왔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 이렇게 따져 묻는 방식이 역사적 존재이다. 민주주의는 역사적 존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현실로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헌법 조항에만 있던 것을 구체적인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작동하는 과정을 보니까 민주시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Making up people, Looping effect, Moving Targets 이런 것들을 다 따져서 물으면 근본적으로 역사적 존재론의 논의가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객관적 정신론이다. 하르트만이 여기까지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것을 가져다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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