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3) ─ 宋元學案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6
- 2026. 3. 22.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를 듣고 정리한다.
2026.03.21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3) ─ 宋元學案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2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
성립경위
• 황종희黃宗羲의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완성(1676)한 후 착수.
얼마되지 않아 사망. 그의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이어서 작업, 이후 황종희黃宗羲의 두 제자 황개원黃開沅과 고시顧諟가 나누어 편찬.
• 전조망全祖望이 내용을 보완, 즉 황백가의 미완성원고를 전조망이 보완했으므로 전조망의 원고는 상당 부분 황백가를 참조.
전조망은 보완작업 이후 사망(1705-1755)
전조망의 원고는 후일에 왕재재王梓材, 풍운호馮雲濠 두 사람이 심사 후에 인쇄(1838년, 도광道光 18). 전조망 사후死後 84년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는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지어서 1841(도광道光 21)에 완성. [1840. 제1차 중영전쟁, 아편전쟁]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는 1934(민국民國 26)에 인쇄.
명유학안明儒學案 → 송원학안宋元學案
(강희康熙) 송원명宋元明 세 시기時期의 이학理學 (건륭乾隆)
송원학안宋元學案에 관한 몇 가지 내용
• 명유학안明儒學案은 황종희黃宗羲 한 사람이 쓴 것, 자신의 양명학陽明學을 말하고 있으며 명대이학明代理學의 중심中心은 양명학陽明學이었으므로 그의 주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육왕학陸王學을 하던 황종희黃宗羲가 송대宋代의 이학理學, 즉 정주학程朱學에 대해 쓴다면, 그의 견해는 서로 융화되지 않는 학파이므로, 당연히 양명학陽明學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즉 송원학안宋元學案은 일종의 편견偏見을 면할 수 없다.
• 전조망全祖望 또한, 이목당李穆堂에게 배운 바도 있어서, 육구연陸九淵의 입장에 서있으므로, 이학理學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았다.
황종희黃宗羲의 송원학안宋元學案은, 그의 학문적 입각점 때문에, 육왕학陸王學의 조예 때문에, 깊이는 있으나 편견偏見을 면하기 어렵다.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은, 이학理學이 쇠衰한 시기이기도 하였고, 그 자신이 이학理學에 대한 조예가 없었으므로 저작의 한계가 있다.
•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보면, 송원학안宋元學案에서 전조망全祖望이 이론적理論的 논의論議가 부족하였으므로, 각 편의 소전小傳을 상세하게 쓰기 위해 자료資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이어받아 사료史料에 주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송원학안宋元學案은 송대이학宋代理學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아 "정교한 것을 가려내고, 그 내용이 상세했다"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늘은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에 대해서 말하도록 하겠다. 청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책에 대해서 전목 선생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황종희黃宗羲의 명유학안明儒學案, 그다음에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 그리고 다음번에 할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 이렇게 3개를 들고 있다.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까지 하면 사학명저강의를 정리하는 건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는 텍스트 자체가 중요한 것에 비해서 그다지 역사 책으로 쓴 탁월한 것은 아닌데 그 부분에 대한 강의 내용은 굉장히 길다. 왜 그런한가.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쯤 되면 전목 선생하고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 그리고 민국시대에서 대만으로 오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 전목 선생에게는 당대의 사건이겠다, 아무래도 국부천대國府遷臺 과정에서 맺힌 게 있으시니까 말도 많고, 그리고 이번에 강의 듣는 사람들한테 이번 기회가 마지막인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해서 얘기를 하니까 말이 많다.
황종희黃宗羲와 전조망全祖望과 장학성章學誠, 이 사람들의 책이 청대의 사학명저라고 말하고 있고 분류가 되고 있는데 조금 어중간한 게 사실 황종희黃宗羲의 명유학안明儒學案이다. 황종희黃宗羲라는 사람 자신이 명말청초明末淸初 시대의 유학자인데, 쓰기는 청나라 때 썼다고는 하지만 청대에 완성된 책이다. 그렇지만 황종희黃宗羲는 죽을 때까지도 명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황종희黃宗羲는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쓴 다음에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착수했다. 이 순서가 조금 미묘한 지점이 있다.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냐 하면 황종희黃宗羲는 명나라 때 유학자이고,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죽었다. 그러면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썼다 라고 하는 말은 자신이 공부해 온 학파의 전통에 대해서 쓴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해보면 제가 가령 도이치 사상사를 썼다고 하면 제가 공부한 그 맥락 속에서 뭔가를 쓴 것이다. 박사 학위 과정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또 석사 과정에서 영국 철학인 홉스 철학을 공부를 했다. 그러면 영국의 사상 전통과 도이치 관념주의 사상 전통을 묶어서 가령 홉스에서 헤겔까지는 쓸 수 있다. 그런데 홉스도 르네상스 말기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홉스의 생각들을 알아보려면 홉스 이전의 사상들도 알아야 하니 뭔가 궁리를 해서 이전의 것을 쓴다고 하면 루터부터 써야 한다. 그러면 아무래도 홉스나 헤겔보다는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상의 틀이라든가 기본적인 지향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주 달라버리면 자신이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것에 입각해서 편견을 가지고 보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이 지금 송원학안宋元學案이라든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이라든가 이런 것들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완성한 다음에 나보다 이전의 어떤 사상에 대해서 써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착수한 게 송원학안宋元學案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우리는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이라고 말하지만 시작은 황종희黃宗羲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것을 쓰다가 말고 황종희黃宗羲가 사망했다. 그러다 보니까 그의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이어서 작업을 하고, 황백가黃百家가 이어서 작업을 하던 것을 또 자기 아버지의 제자인 황개원黃開沅과 고시顧諟가 나누어서 편찬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원고가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그것을 전조망全祖望이 내용을 보완을 했다. 다시 말해서 황백가黃百家의 미완성 원고를 전조망全祖望이 보완했고, 그랬으니까 전조망全祖望의 원고라고 해도 상당 부분은 황백가黃百家를 참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전조망全祖望은 또 보안 작업을 하고 인쇄를 하고 죽은 게 아니라 보안 작업 이후에 사망을 했다. 전조망全祖望은 1705년에서 1755년이니까 50세에 죽었다. 전조망全祖望의 원고가 남아있었는데, 그것을 후일에 왕재재王梓材라는 사람과 풍운호馮雲濠라고 하는 사람이 그것을 살펴본 다음에 인쇄를 했다. 전조망全祖望이 죽은 게 1755년이고 그 인쇄를 한 게 1838년이다. 아주 오래 걸렸다. 그렇게 해놓은 다음에 일단 인쇄를 하고 그다음에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는 송원학안宋元學案에다가 자기네들이 보충하는 뭔가를 썼다. 그래서 1841년에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라는 것을 완성했다. 그게 청나라 도광道光 황제의 21년이다. 이때가 언제인가.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완성한 다음에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착수한 것이 강희제康熙帝 때이다. 역사 연대를 보면 1840년에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 제1차 중영전쟁이 일어났다. 참 오래 걸린 일이다.
그다음에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가 쓴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는 인쇄가 되지 않고 있다가 1937년, 1841년에 완성됐는데 1937년에 인쇄가 되었으면 그것도 거의 한 100년 후이다. 그렇다면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완성한 강희제康熙帝 때부터 시작해서 건륭제乾隆帝 때 송원학안宋元學案이 착수가 되었고, 그다음에 도광제道光帝 때 완성이 되고, 그리고 송원학안宋元學案과 관련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는 민국民國에서 완성이 되었다. 강희제康熙帝, 건륭제乾隆帝, 도광제道光帝, 민국民國 이렇게 거의 250년 넘게 걸린 일이다. 클라우스 뮐한이 쓴 《현대 중국의 탄생》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해치우려고 했던 것은 오래된 중국이다. 그리고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오래된 중국 안에 들어간 게 이런 것이다. 강희제康熙帝 때 명유학안明儒學案이 쓰여지고 건륭제乾隆帝 때 송원학안宋元學案이 착수가 되었고, 그다음에 민국民國에 와서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가 인쇄되었다. 긴 호흡으로 250여 년에 걸쳐서 뭔가를 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중국공산당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과업에 착수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렇게 성립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살벌하다.
이제 내용을 한번 보면,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쓴 황종희黃宗羲는 양명학자이다. 명나라 유학은 양명학陽明學이다. 그리고 송나라의 유학은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 주자朱子 이런 사람이 대표하는 정주학程朱學이다. 송나라의 유학과 명나라의 유학 이 두 개를 묶어서 이학理學이라고 부른다. 황종희黃宗羲는 육왕학陸王學을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송대宋代의 이학理學, 즉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 주자朱子 이런 사람의 정주학程朱學에 대해서 쓴다고 하면 일단 익숙하기는 한데 생각의 방식이라든가 멘탈리티가 다른 쪽이다. 그러니까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명유학안明儒學案은 굉장히 잘 썼겠지만 송원학안宋元學案을 쓴다고 하면 아무래도 정교한 것을 가려내고 내용이 상세한 경지까지는 가기는 어려울테이고, 게다가 이딴 것도 학문이라고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황종희黃宗羲는 대가이다. 그러니까 황종희黃宗羲가 원고를 남긴 것을 보면 전조망全祖望이 보고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쓴 것들을 이어받아서 한다고 하는데 약간 난감했을 것이다. 전조망全祖望은 그 정도로 엄청난 학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목당李穆堂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배웠는데 이목당李穆堂이라는 사람이 전조망全祖望보다는 학문적으로는 위급이다. 그런데 이목당李穆堂 역시 육왕학陸王學, 육구연陸九淵의 입장에 서 있으니까 편견도 있고, 송나라 이학理學, 즉 정주학程朱學에 대한 조예가 깊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전조망全祖望의 송원학안宋元學案이라고 하는 것은 송나라 시기에 정주학程朱學 그 자체에 대한 아주 굉장한 업적을, 상세한 서술을 남긴 업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성립 과정을 보면 그렇고, 전조망全祖望이라는 사람도 그렇고, 황종희黃宗羲는 대가라고는 하지만 명나라 학문에 탁월한 사람이고, 이목당李穆堂이 썼다 하더라도 그다지 그럴 것 같다.
전조망全祖望이든 이목당李穆堂이든 황백가黃百家든 이런 사람들이 송원학안宋元學案을 쓰면서 자신이 처해 있는 육왕학陸王學에 대한 어떤 입각점, 그런 것들이 좀 곤란했을 것이다. 황종희黃宗羲는 깊이는 있으나 편견을 면하기는 어렵고, 전조망全祖望은 명나라 때 정주학程朱學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면 못할 바는 없다 라는 느낌이었다면 청나라에 와버리면 공부하기가 어렵다. 청나라 시대에는 고증학考證學이 발전하기도 했고 정주학程朱學이라고 하는 것을 청나라 때 한다고 하면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가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지었는데, 이렇게 보면 송원학안宋元學案에서 전조망全祖望은 자기가 이론적인 논의가 부족하니 소전小傳을 상세하게 쓰고 자료를 많이 모아 놓는다. 그러니까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료史料에 주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송원학안宋元學案은 송대이학宋代理學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아 "정교한 것을 가려내고, 그 내용이 상세했다"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착수하고 끝내고, 그다음에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착수하고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이어서 작업을 하고, 그다음에 그것을 또다시 황종희黃宗羲의 두 제자가 작업을 하고, 또 거기에다가 전조망全祖望이 작업을 하고, 게다가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까지 지어서 1840년에 쭉 이어서 낸 것, 이것은 정말 대륙의 길고 긴 호흡의 하나의 사례가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제 장학성章學誠의 문사통의文史通義 하나만 남았다.
그것을 마치면 탄허 스님의 텍스트로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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