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2) ─ 주역周易, 겸괘謙卦 ䷎

 

2026.04.18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2)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1

 

주역周易, 겸괘謙卦 

겸謙, 덕지병야德之柄也 ("겸은 덕의 자루다.)
                              └ 자루, 근본, 권세

공자孔子는 주역周易 64괘卦 중 이 겸괘를 제일 칭찬한다.

천도天道 휴영이익겸虧盈而益謙(하늘의 도는 꽉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한 것에는 보탠다.)
                                └ 어지러지다, 무너지다, 줄다

지도地道 영이류겸變盈而流謙 (땅의 도로 봐도 가득 찬 데는 변한다.)

인도人道 오영이호겸惡盈而好謙 (사람의 도도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귀도鬼道 해영이복겸害盈而福謙 (귀신의 도[천지신명]의 찬 것은 해치고 겸손한 것은 복을 준다.)

겸지시의謙之時義 대의재大矣哉 (겸의 때와 듯이 그렇게도 좋구나.)

논어論語 태백泰伯
여유주공지재지미如有周公之才之美 (주공과 같은 성인의 재주와 아름다운 것이 있어도)
기귀인이교차인其貴人也驕且吝 (그 사람의 의중이 교만하고 인색하면)
[사교차인使驕且吝]
기여其餘 부족관야이不足觀也已(그 나머지는 지극히 보잘 게 없다.)

정자程子 [이천伊川 정이程頤, 명도明道 정호程顥] 註
인자仁者 교지근본驕之根本 (인색한 것이 교만의 근본이고)
교자驕者 인지지엽仁之枝葉 (교는 인색함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상시지천하지인嘗試之天下之人 (천하 사람에게 시험을 해보니)
미유교이불인未有驕而不吝허고 인이불교자야吝而不驕者也 (교만하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인색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원문原文
개교자인지지엽蓋驕者吝之枝葉 인자교지본근吝者驕之本根 고상험지천하지인故嘗驗之天下之人
미유교이불인未有驕而不吝 인이불교자야吝而不驕者也 (논어집주論語集註 태백泰伯)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수인득인修仁得仁 겸양위본謙讓爲本 (인을 닦고 인을 얻는 것은 겸양이 근본이다.)

 


탄허 스님의 선학강설 오늘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주역周易의 겸괘謙卦에 대하여를 읽는다. 주역周易만 읽는 게 아니라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 나와 있는 얘기, 그다음에 정이천程伊川, 정명도程明道가 쓴 정자程子, 그러니까 논어집주論語集註에 있는 내용, 그다음에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있는 내용, 지난주에 이건 얘기했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알 수가 없는 이런 저런 텍스트들에서 떠오르는 대로 적어주시니까 얼마나 좋은가. 이 책 한 권 읽으면 주역周易도 읽고 그다음에 논어論語도 읽고 그다음에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도 읽고, 그다음에 정이천程伊川, 정명도程明道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도 읽고, 서너 페이지를 읽으면서 한 번에 이런 관련된 것을 읽을 수 있으니까 좋다. 

겸謙이라는 글자라고 하는 것은, "겸謙은 덕지병야德之柄也"라고 되어 있다. "겸손하다는 것은 덕의 자루다." 병柄 자가 자루라는 뜻도 있고 근본이라는 뜻도 있다. 덕의 근본이 겸손이다. 덕 있는 사람은 겸손하다. 이것을 읽으면서 급격하게 생각되는 것, 공자孔子는 주역周易 64괘卦 중에 이 겸괘를 제일 칭찬한다 라고 얘기한다. 겸이라고 하는 것은 처신의 문제이겠다. 처신이라고 하는 것은 몸을 어디다 두느냐의 문제일테고, 몸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서 처세도 생겨난다. 처세라고 하는 것은, 사실 몸을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서 처세라고 하는 것도 생겨나지 않겠나 싶다. 그러니까 몸을 놀리는 것은 내 몸뚱아리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니까, 몸을 놀리는 것이 처세의 근본이 되지 않겠나 한다. 처세라고 하는 것과 처신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밀접하게 붙어 있다. 그러니까 처신을 할 때는 겸謙이 드러날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이고, 여기에 보면 겸謙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되어 있다.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덕의 근본이다. 덕의 자루다. 그래서 이 겸괘謙卦를 보면 위에 땅이 있고 아래 산이 있다. 그러니까 산이 땅 아래에 있는 것이 겸손이라는 얘기이겠다.  

"천도天道는 휴영이익겸虧盈而益謙하고", 하늘의 도는 꽉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한 것에는 보탠다. 주역周易을 보면 꽉 찬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없다. 주역周易의 태도가 기본적으로 꽉 찬 것을 안 좋아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그래서 꽉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한 것은 보탠다. 겸손한 것에는 이익을 준다는 말이다. "지도地道는 영이류겸變盈而流謙하고", 땅의 도로 봐도 가득 찬 데는 변한다. 가득 찬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겸손한 대로 흘러간다는 얘기이다. 물은 낮은 골짜기로 흘러가듯이, 가득 차 있는 물은 낮은 골짜기로 흘러간다. "인도人道는 오영이호겸惡盈而好謙하고", 사람의 도도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괜히 미움을 받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났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겸손하면 참 잘 살게 되고 모두 좋아한다. "귀도鬼道는 해영이복겸害盈而福謙하나니", 귀鬼라고 하는 것은 귀신의 도라고 하는데, 천지신명이라는 의미로 보아서, 천지신명의 길도 찬 것은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준다. 그러니까 가득 찬 것을 해친다는 말은 오만한 자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땅의 도로 봐도 그렇고, 하늘의 도를 봐도 그렇고, 사람의 도를 봐도 그렇고, 또 천지신명의 도을 봐도 그렇고, 그래서 공자가 "겸지시의謙之時義 대의재大矣哉"라고 했다. 겸의 때와 뜻이 그렇게도 좋구나.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고 한다. "여유주공지재지미如有周公之才之美어도", 만일 주공과 같은 성인의 재주와 아름다운 것이 있어도, 주공 같은 성인의 재주와 아름다움이 있어도, "기귀인이교차인其貴人也驕且吝이면", 그 사람의 의중이 교하고 인하면, 교만하고 인색하면, 여기서 교만과 인색이 서로 연결되는 얘기가 태백泰伯에 나온다는 것이다. 사교차인使驕且吝, 교만하고도 인색하면, "기여其餘는 부족관야이不足觀也已니라", 그 나머지는 지극히 보잘 게 없다. 그러니까 사람을 봐서 그 사람이 교만하고 인색하다고 하면 볼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것을 정자程子, 정이천程伊川과 정명도程明道 선생이 주석을 달기를 "인자仁者는 교지근본驕之根本이요", 인색한 것이 교만의 근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 사람 참 교만해 라고 얘기할 때 인색하다는 것이다. "교자驕者는 인지지엽仁之枝葉이라", 교는 인색함의 지엽, 끄트머리라는 것이다. 인색한 사람이 교만하다. 교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후덕한 사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하고 나하고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같은 동료다, 평등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인색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교만함과 인색함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교만한 사람이 인색하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서 인류애가 없는 것이다. 교만하다는 것은 남을 깔보는 것이고, 남을 깔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자기가 베풀겠다는 마음이 없고, 저 사람이나 나나 동류라는 것, 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런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주註를 보면 교는 인색함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상시지천하지인嘗試之天下之人컨데", 천하 사람에게 시험을 해보니,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살펴보니까 라는 말이겠다. "미유교이불인未有驕而不吝허고 인이불교자야吝而不驕者也라", 그러니까 교만하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인색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인과 교는 따라붙는다 라고 탄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인과 교는 인색한 것과 교만함은 따라붙는다. 인색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돈을 아끼고 재물에 인색한 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마음 씀씀이를 말하는 것이다.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인색한 사람이다. 인색을 꼭 돈과 재물로만 연결시킬 게 아니라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볼 필요가 있겠다.  

원문原文을 보면, 개교자인지지엽蓋驕者吝之枝葉, 무릇 교만함이라고 하는 것은 인색함의 지엽, 밖으로 나타난 것이요, 인자교지본근吝者驕之本根, 인색함이라고 하는 것은 교만함의 근본이다. 인색한 마음이 있으니까 겉으로 교만함이 나오는 것이다. 고상험지천하지인故嘗驗之天下之人, 그러므로 천하의 사람에게 시험 삼아서 해보니 미유교이불인未有驕而不吝 인이불교자야吝而不驕者也, 교만하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인색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두 개가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서 있다는 얘기이겠다. 

그런데 이 얘기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도 있다는 얘기이다. "수인득인修仁得仁은 겸양謙讓이 위본爲本이지", 인을 닦고 인을 얻는 것은 겸양이 근본이다. 그래서 여기 탄허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유불선 삼교에서 성인 말씀이 똑같다. 부처님 말씀은 또 말할 것도 없고, 노자의 말씀도 그렇고, 전부 다 그래."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색한 마음, 관용이 없는 마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마음, 그런 것이 교만한 처신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런 교만한 처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당장에는 잘 나 보일지는 몰라도 말본새 이런 것으로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겠다 라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래야 저절로 자연스럽게 교만한 태도가 안 나오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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