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를 듣고 정리한다.
2026.05.02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4)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1
죽음과 장례의 법法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지수地水 선거先去 화풍火風 후거後去 와사종신臥死終身
지대 수대가 먼저 가고 화대 풍대가 나중에 가면 좋은 죽음이다.
오사誤死
화풍火風 선거先去 지수地水 후거後去 악사惡死
장자莊子 잡편雜篇 열어구列禦寇
오이천지天地吾以 위관곽爲棺槨, 나는 하늘과 땅으로써 관곽을 삼았다.
이일월以日月 위기벽爲璣璧, 해와 달로써 구슬과 둥근 옥을 삼았다
이만물以萬物 위자송爲齋送, 만물로써 보내는 물건(장삿거리)를 삼았다.
재상在上 오연식烏鳶食, 땅 위에 [내버리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고
재하在下 루의식螻蟻食, 땅 밑에 [묻으면] 땅강아지와 개미가 먹고
탈피여차奪彼與此 저것을 뻬앗아 여기에 준다
해가이호奚可以乎, 어찌 차마 할 수 있는가
화장化粧은 불교佛敎의 소승법小乘法
대승大乘에서는 풍장風葬, 수장水葬도 무방하다
현정론顯正論, 끝부분 강의
미진천하문장未盡天下文章 부득자황고금이不得紫黃古今而, 문장을 다하지 못하면 고금을 시비할 수 없는 것이다.
공부자지언孔夫子之言 왈무의무필무고무아曰毋意毋必毋固毋我, 공자의 말씀에 무엇을 하려하는 뜻함도 없고 꼭 기약하는 것도 없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다.
역우운易 又云 간기배艮其背 무아야無我也, 또 주역에는 그 등에 그침에 아我가 없고, (배背는 무견지지無見之地)
행기정行其庭 무인야無人也, 그 뜰에 다님에 사람이 없다 .
무인무아無人無我 하구지유何垢之有, 사람도 없고 나도 없으니 무슨 때[더러움]가 있겠는가
석가노지언釋迦老之言 왈무아무인曰無我無人 수일체선법修一切善法 즉득보리卽得菩提, 석가 늙은이 말에 무아무인으로 일체선법을 닦으면 곧 보리를 얻는다
성인지소이이세이동기심야聖人之所以異世而同其心也, 성인이 머무는 세상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은 것이다.
유제기이후有諸己而後 구제인求諸人 무제기이후無諸己而後 비제인非諸人, 자기 몸에 있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자기 몸에 없은 후에는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비난한다.
무악어기연후無惡於己然後 가이정인지악자가以正人之惡者, 악한 것이 자기 몸에 없은 후에, 다른 사람의 악을 바로 잡으며
여오교소위단악수선與吾敎所謂斷惡修善 요익유정자饒益有情者 하이이호何以異乎, 불교에 악을 끊고 선을 닦아서 유정[중생]을 넉넉하고 이익되게 한다는 것과 다를게 뭐 있느냐
전기약인專己略人 시차비피是此非彼 인지상정야人之常情也 통인달사通人達士 유의시종唯義是從 기이인아피차豈以人我彼此 이시비자호而是非者乎, 자기 몸을 오로지하고 다른 사람은 소략疏略하게 하고, 제 것만 다 옳다하고 저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통한 사람과 달한 선비는 오직 대의만 좇는 것이니 인아피차로써 시비하면 안된다.
부대작상지권이미연종화자不待爵賞之勸而靡然從化者 삼교지중三敎之中 불교佛敎 능연야能然也 개이오불대성대자지소감야蓋以吾佛大聖大慈之所感也, 작[벼슬]상[상]의 권유를 기다리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것은 삼교 중에서 불교가 그러하다. 모두 우리 부처님의 대성인이 큰자비로써 느낀 바이다.
석지언釋之言曰 적이상조寂而常照 조이상적照而常寂, 부처님 말씀에는 적하되 항상 비치며 조하되 항상 적하다 하시고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을 몇 구절 읽어보겠다. 죽음과 장례의 법法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지수地水 선거先去 화풍火風 후거後去 와사종신臥死終身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수화풍地水火風, 흙, 물, 불, 바람, 이를 four elements라고 하는데, 서양철학사에도 나온다. 이른바 동양 철학, 동양 철학이라고 하는 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어휘가 정확하지는 않고,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부처님이 말씀을 했다고 하는데 "출전 미상"이라고 각주에 붙어 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지수화풍은 자연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가 자연과 하나이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는 것으로 물리학자들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부처님 말씀이나 물리학자들의 말이나 같은 얘기이다. 그런데 지대 수대가 먼저 가고, 화대 풍대가 나중에 가면, 와사종신臥死終身, 와사종신臥死終身이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바이다. 누워서 죽음으로써 신체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자리에 누워 죽었다는 것이 와사종신臥死終身이다. 착오할 때 오誤 자가 있는데, 오사誤死라고 하는 것은 잘 못 죽은 것이다. 땅이 먼저 가고 그다음에 물이 먼저 가고, 그런데 탄허 스님은 "지대 수대가 먼저 간다는 건 며칠 앓고 죽으면 창자는 썩거든."라고 했다. 지地라고 하는 게 단단한 부분이고 수水는 물이겠다. 몸의 단단한 부분이 먼저 가고 몸에 있는 물기가 마르면 그것이 지대 수대가 먼저 간다는 말이겠다. 그다음에 이제 화대 풍대라고 했는데, 몸에 열이 빠지고 그다음에 바람이 빠지고 그런다는 얘기이겠다. 그런데 화풍火風 선거先去 지수地水 후거後去 악사惡死라고 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탄허 스님은 "총을 맞아 죽는다든지 나가서 떨어져 죽는다든지 물에 빠 져 죽는다든지 해서 지대 수대는 멀쩡한데 화대 풍대가 떨어져버리면 그건 대개 악사라고 한다. 대체로, 대체로 그런 것이다. 전부가 그렇다 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장자莊子 잡편雜篇 열어구列禦寇에서 유명한 구절을 설명하신다. 장자가 죽을 때가 되니까 제자들이 후장厚葬을 치르려고 했다. 후하게 장례를 치르려고 하니까 장자가 야 이놈들아 무슨 얘기냐 이런 얘기하면서 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이천지天地吾以 위관곽爲棺槨, 나는 하늘과 땅으로써 관곽을 삼았다. 관棺이 무엇이고 곽槨이 무엇인가.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 일단 관에다가 넣는다. 그런데 그렇게만 안 하고 위에다가 덧널을 대는 경우가 있다. 마왕퇴에서 무덤 유물들을 보면 2중, 3중으로 하는 것인데, 관棺이라고 하는 건 내관, 안쪽에 있는 것을 내관이라고 하고, 겉에다가 또 하나 대는 것을 덧널이라고 하는데, 이를 곽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으로서써 관곽을 삼았다. 탄허 스님은 "하늘과 땅이 내 관각이다 이거야"라고 말씀하신다. 그다음에 이일월以日月 위기벽爲璣璧, 해와 달로써 구슬과 둥근 옥을 삼았다 구슬을 단 깃대를 삼는다는 말이다. 장사를 지낼 때 그렇게 한다. 그다음에 이만물以萬物 위자송爲齋送, 만물로써 보내는 물건(장삿거리)를 삼았다. 위자송爲齋送은 노잣돈을 말한다. 저승 갈 때 쓰시라고 넣어주는 것을 자송齋送이라고 한다. 만물이 내보내는 물건 아니냐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오장구기불비야吾葬具豈不備邪, 나의 장례가 어찌 마련되지 않았다 하는가. 천지로써 내관과 외관을 삼고 해와 달로써 기벽을 삼고, 그다음에 우주 만물이 내 저승 가는 길에 노잣돈을 마련해 주는데 그렇게 걱정하겠느냐는 말이겠다. 그러니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라는 얘기이다. 그다음을 보면 재상在上 오연식烏鳶食, 땅위에 [내버리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고, 이런 것을 풍장이라고 한다. 재하在下 루의식螻蟻食, 땅 밑에 [묻으면] 땅강아지와 개미가 먹고, 탈피여차奪彼與此 저것을 뻬앗아 여기에 준다. 그러니 저것을 빼앗아서 여기에다가 준다는 말로, 까마귀와 솔개가 먹으면 저것일테고 여기는 땅 아래이겠다. 그러니 해가이호奚可以乎, 어찌 차마 할 수 있는가. 이도 저도 다 똑같은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다음에 보면 탄허 스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육체가 지수화풍으로 이게 생겼으니까, 매장도 가하고, 수장도 가하고, 화장도 가하고, 풍장도 가하고, 다 가한 거다. 중생이 괜히 집착해가지고서 꼭 땅에다가 묻어야 된다고 자꾸 유자(儒者)들이 주장 하지. 그런데 이 화장법은 이게 불교의 소승법이거든. 대승적 견지에서는 풍장도, 수장도, 매장도 다 무방하다. 그러니 예전 조사들은 꼭 굳이 화장만 하지 않았다. 육조 스님도 시체를 그냥 탑 속에다 그냥 넣어 뒀다." 다시 탄허 스님은 "근데 왜 소승법은 화장을 하느냐 하면 소승은 대개가 진리를 타파 못하고, 그냥 하나하나 만사가 억지로 끌어서 닦는 그 경지가 소승의 길이거든. 그러니까 10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이것이 헛것인 줄 모르고 평소에 집착하고 있다 이거다. 그러니까 홀딱 끄실러가지고서는 어디 강 같은데 빽따구를 훅 뿌려버리면, '아! 이게 없구나, 본래 이게 없는 게로구나!' 하고 그때사 조금 안다 이 말이여. 그렇게 화장은 소승법으로 나온 거다."라고 말씀하신다.
현정론은 고려시대 말의 기화己和 스님이 쓰신 것이다. 앞에 "기화 스님의 출가기"를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기화 스님의 당호가 함허涵虛이다. 탄허 스님은 삼킬 탄呑 자에다가 허무할 때의 빌 허虛자인데, 이 양반은 담는다는 것이다. 1376년에서 1433년이면, 1392년이 조선 건국이니까 세상 물정을 아실 때 조선이 세워진 것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유학 책을 읽으셨던 모양이라. 그래서 쓰신 것이 현정론顯正論이고 올바름을 드러내는 논이다. 그런데 쓰신 책 중에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라는 게 있는데 지금도 전통 강원의 교재로 쓰고 있다고 한다. 각주를 보면 현대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한국 불교 전통의 근원을 이룬 인물 가운데 한 분이다.
미진천하문장未盡天下文章 부득자황고금이不得紫黃古今而, 문장을 다하지 못하면 고금을 시비할 수 없는 것이다. 탄허 스팀은 "함부로 옳으니 그르니 이따위 소리 하지 말거라 이거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천하의 문장을 다 하지 못하면, 그러니까 역사에서 뭐 이렇게 끝내주는 문장이다 하는 것을 읽지 않으면이라는 말이겠다. 부득자황고금이不得紫黃古今而의 번역은 고금을 시비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자황이 어떻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스님들이 걸치고 다니는 것을 가사袈裟라고 하는데, 그 가사 색깔이 자색인 것을 자황 가사라고 한다. 자황고금은 예나 지금이나 자황을 얻지 못한다 라고 해석하면 말이 된다. 그래서 자황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가사를 못 받는다, 즉 공부 안 하면 스님이 못 된다는 말이겠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 않은데 일단 그렇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니까 자황을 꼭 스님이라고만 하지 않고 사람 노릇을 못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다음에 공부자지언孔夫子之言 왈무의무필무고무아曰毋意毋必毋固毋我, 공자의 말씀에 무엇을 하려하는 뜻함도 없고 꼭 기약하는 것도 없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다.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나와있다고 하는데, 이 얘기를 탄허 스님이 꺼낸 이유가 공자님도 이런 경지를 얘기하신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역우운易 又云 간기배艮其背 무아야無我也, 또 주역에는 그 등에 그침에 아我가 없고, 이 말은 무슨 말인가. 등짝은 무견지지無見之地이다. 볼 수 없는 땅이다. 누구나 앞만 보지 등은 못 본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볼 수 없는 땅, 무견지지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는 아我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 눈에 안 들어오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행기정行其庭 무인야無人也, 그 뜰에 다님에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안 보면 뜰을 다녀도 사람을 안 보면 없는 거나 다름없다. 무인무아無人無我 하구지유何垢之有, 사람도 없고 나도 없으니 무슨 때[더러움]가 있겠는가. 때는 시기가 아니라 몸의 때이다. 사람이 없으니 내가 없고, 사람을 안 보니 아我가 일어나질 않고, 그러니 먼지도 없겠다. 석가노지언釋迦老之言 왈무아무인曰無我無人 수일체선법修一切善法 즉득보리卽得菩提, 석가 늙은이 말에 무아무인으로 일체선법을 닦으면 곧 보리를 얻는다. 일체의 하나이고 모두인 선한 법을 닦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보리, 즉 진리를 얻는다. 성인지소이이세이동기심야聖人之所以異世而同其心也, 성인이 머무는 세상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은 것이다. 성인이 머무는 곳이라는 것은 성인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성인의 마음이 있는 곳이라는 말이겠다. 성인이나 나나 무아무인에서 수일체선법을 하면 내가 성인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다. 유제기이후有諸己而後 구제인求諸人 무제기이후無諸己而後 비제인非諸人, 자기 몸에 있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자기 몸에 없은 후에는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비난한다. 한문에서는 대체로 보면 기己는 나를 가리키고 인人은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다시 풀어서 보면 , 유선어기연후有善於已然後 가이책인지선可以責人之善, 선이 자기 몸에 먼저 있은 연후에, 가히 다른 사람의 선을 책하여, 선을 하라고 할 수 있다. 무악어기연후無惡於己然後 가이정인지악자가以正人之惡者, 악한 것이 자기 몸에 없은 후에, 다른 사람의 악을 바로 잡는다. 불교에서도 그러하다. 여오교소위단악수선與吾敎所謂斷惡修善 요익유정자饒益有情者 하이이호何以異乎, 불교에 악을 끊고 선을 닦아서 유정[중생]을 넉넉하고 이익되게 한다는 것과 다를게 뭐 있느냐. 유정이라고 하는 건 중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기약인專己略人 시차비피是此非彼 인지상정야人之常情也 통인달사通人達士 유의시종唯義是從 기이인아피차豈以人我彼此 이시비자호而是非者乎, 자기 몸을 오로지하고 다른 사람은 소략疏略하게 하고, 제 것만 다 옳다하고 저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통한 사람과 달한 선비는 오직 대의만 좇는 것이니 인아피차로써 시비하면 안된다. 좋은 말이다. 이것을 오늘의 문장으로 삼아보려고 한다. 그다음에 부대작상지권이미연종화자不待爵賞之勸而靡然從化者 삼교지중三敎之中 불교佛敎 능연야能然也 개이오불대성대자지소감야蓋以吾佛大聖大慈之所感也, 작[벼슬]상[상]의 권유를 기다리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것은 삼교 중에서 불교가 그러하다. 모두 우리 부처님의 대성인이 큰자비로써 느낀 바이다.
마지막에 보면 한마디가 있다. 이 구절도 해설이 난감하게 "여기서 녹음이 중단됐다"라고 되어 있다. 석지언釋之言曰 적이상조寂而常照 조이상적照而常寂, 부처님 말씀에는 적하되 항상 비치며 조하되 항상 적하다 하시고 적이라는 것은 고요하다는 것이다. 고요하지만 항상 비추어 보고, 비추어 보되 항상 항상 고요하라. 어떤 말씀인지를 참으로 모르겠는데, 고요하다는 게 어떤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가리키는 것 같고, 비친다는 게 돌이켜 본다는 말이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있지만 그러면서도 반성을 그치지 말아라 하는 얘기가 아닐까, 그 두 가지를 계속해라 라는 뜻인 것으로 이해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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