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1) ─ 거성시요去聖時遙

 

2026.04.11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1)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1

 

거성시요去聖時遙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의 한 구절
"성인이 가신 때가 멀다" (성거시요聖去時遙)
"성인의 시대에 가기엔 때가 멀다." 즉 부처님의 시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

   요遙. 멀다, 아득하다, 길다, 서성서거리다, 음란하다.
   소요逍遙, 위음왈요謂淫曰遙, 고요이불민故遙而不悶(장자莊子 추수秋水)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개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지눌知訥(보조국사普照國師), 1205.  초심학인이 지켜야 할 범절, 수행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원효元曉. 수행의 방법

  자경문自警文. 야운野雲(우각우玗覺牛) 법규

1397(조선 태조6년). 사미과沙彌科의 기본교제로 규정

선문염송禪門拈頌(1226)

혜심慧諶(고려). 역대 선사禪師들의 공안公案과 평석인 염拈과 송頌을 편찬한 책
   염화시중拈花示衆(꽃을 집어 무리에게 보이다)

 


지난주까지는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를 읽었다. 토요일마다 했던 것들을 보니까 서양의 종교적 전통, 일단 기독교 전통에서 등장했던 문헌들이나 이런 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리고 유지기의 사통과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 사실 그것은 재미 삼아서 한 것도 있지만 고급철학연습 시간에 서양사 문헌, 즉 폴리비오스라든가 타키투스와 같은 사람들, 투퀴디데스에서 이어지는 텍스트들을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중국사는 어떠한가 해서 읽어 봐야겠다 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번 주부터는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책은 450페이지쯤 되는데 얼마나 할지 모르겠다. 굉장히 오래 할 것 같다. 

왜 《선학 강설》를 선택을 해서 하는가. 일단 이 책이 최근에 나왔다. 탄허 스님의 텍스트에 접근해 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탄허 스님의 책은 기본적으로 《현토 주해 능엄경》은 3권으로 되어 있는데 30년 전에 사서 3번 정도 필사를 해본 것 같다. 그다음에 《주역선해》는 한 번 읽었고, 그리고 《화엄경》은 23권으로 되어 있는데, 사놓았는데 지금보다 더 나이들면 읽어보려고 한다. 《선학 강설》을 보면 탄허 스님에 대한 소개가 있다. 이렇게 보면 1913년생이고, 독립운동가 율제 김홍규를 부친으로 해서 김제에서 출생했다. 그런데 보면 14세에 유학의 경전을 두루 설립한 데 이어 15세의 기호학파 최익현 계통의 대유 이극종 문하에서 노장사상과 제자백가를 배웠다. 그리고 도에 대한 의문에 답을 얻고자 한암 스님과 3년간 20여 통 서신을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1934년에 22세 때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다.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하며 오대산에 들던 길은 영영 탈속의 길이 됐다. 그래서 3년간 묵언 정진하고 15년 동안 오대산 등 동구 밖을 나오지 않고 수행을 해서 화엄경을 읽다가 대오각성했다. 다시 말해서 공부하다가 대오각성을 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20세기에 들어서 유학을 공부해서 과거 시험을 봐서 뭘 해야 되는데 일제 때이니까 불가능한 것이고, 절에 들어가서 무슨 암자에 들어가서 이렇게 면벽 수행을 하다가 깨달은 분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깨달아버렸다는 말이다.  

흔히 "절집에 글이 없다"라는 얘기를 한다. 오늘 읽을 부분인 "거성시요의 번역에 대하여"를 보면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去聖時遙(거성시요)하야에서 '거(去)'자가 '성인이 가신 것'이냐, 아니면 '성인과 내가 떨어짐'이냐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스님이 "옳지! 좋은 질문이다. 거 잘 물었어. 이런 것을 소홀히 지나치니까 선비들이", 선비들은 유학자들을 말한다, "절집에 글이 없다"는 소릴 하는 거야.", 여기서 절집에 글이 없다 라는 것은 절집에 책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중들이 무식하다, 글도 안 읽는다 라는 얘기이다. 탄허 스님이 화엄경을 읽다가 대오각성했다는 말, 화엄경이라고 하는 텍스트는 이제 앞으로 쭉 읽으면서 나오겠지만, 화엄경은 불교의 우주론이다. 우주론이라고 하면 안 되고 우주 서사이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 narrative of cosmos, 불교의 우주서사이다.  

생전 『신화엄경합론』의 현토 관행을 유촉했던 한암 스님의 뜻을 받들어 역경을 시작해서 10여 년에 걸친 대물사 끝에 200자 원고지 6만여 장에 달하는 『현토역해 신화엄경합론』 47권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게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신화엄경합론』을 비롯해 전통 강원 사미과의 『초발심자경문』과 『육조단경』 등을 우리말로 완역하는 등 승가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한 교재들이 탄허 스님의 손을 거쳐 번역되고 출간되었다. 속명은 김금택이고, 탄허는 법호이고, 법명은 택성이다. 그러니까 택성 스님이라고 해야 되는데, 탄허라는 말을 많이 쓴다. 탄허 스님은 정말 유가, 불가, 도교, 유불선에 능통하시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다.  

이 책은 2023년에 출간이 되었다. 크게 1장 고전의 교훈이 있고, 2장 치문(緇門)이 있고, 3장 서장(書狀), 4장 선요(禪要), 5장 도서(都序), 다 해서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불선을 넘나드는, 말하자면 고려시대부터 지금 탄허 스님에 이르기까지의 한반도 사상사이다. 한반도 사상사의 뼈대를 이루는 것들을 종횡무진으로 말씀하신 게 있다. 그러니 일단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서 정리를 하면 한반도 사상의 그 토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오늘은 "거성시요의 번역에 대하여"부터 보겠다. 이게 첫 부분인데 굉장히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거성시요去聖時遙 하야, 갈 거去자인데, 성인이 가신 것이냐 아니면 성인과 내가 떨어짐인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성聖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서 떨어진다가 되느냐 간다가 되느냐가 된다. 그래서 성인이 가신 때가 멀다 그러면 성거聖去라고 해야 된다. 성인이 가신 때가 시時, 요遙가 멀다이다.아득하다라는 뜻도 되고 길다라는 뜻도 되고 서성거리다 라는 뜻도 되고 음란하다 라는 뜻도 된다. 뜻이 4개인데, 이 4개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또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서성거리다 라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逍遙 학파, 그다음에 위음왈요謂淫曰遙, 음란한 것을 요라고 한다. 그다음에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보면 고요이불민故遙而不悶, 그러니까 멀다 또는 길다이다. 길이 멀다고 해서 고민하지 말라 또는 길다고 해서 고민하지 말라 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길고 짧음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괴로워하고 그러지 말아라 라는 얘기가 장자에 있다. 장자는 상대주의적 진리론, 서양 철학으로 말하면 소피스트하고 비슷한데, 소피스트는 그것을 주장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척도가 제일 좋은 거 아닌가 라고 가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소피스트는 인문주의 운동, 인간 중심주의의 운동이 되는데, 같은 상대주의라 할지라도 장자는 우주의 이치를 기준으로 삼아버린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인간을 한낱 미물에 불과한, 저 넓은 우주의 이치를 생각을 한 것이다. 노자 도덕경과 장자를 읽을 때 우리가 노장이라고 하는데 노자와 장자는 다르다. 도덕경은 병법서라고 하는 얘기가 아주 강한 학설이 등장했다. 그래서 거자오광의 《중국 사상사》를 하면서도 얘기를 할 텐데, 장자하고 노자하고는 분리해서 봐야 된다 라는 얘기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프로타고라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흔히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 운동이라고 얘기를 한다. 인문주의 운동이라고 것은 인간 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게 가장 잘 나와 있는 게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장자의 텍스트는 상대주의적인 진리론을 얘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상대적인 것이다. 이 우주는 딱 닫혀져 있는, 그것 자체로 하나로 닫혀져 있는 에너지의 계界이다. 그래서 고요이불민故遙而不悶, 길다고 해서 또는 멀다고 해서 고민하지 말아는 뜻이다. 

성인이 가신 때가 멀다 라고 하면 성인이 간 지가 꽤 오래됐네 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성거시요聖去時遙라고 해야 되는 것이고, 거성시요去聖時遙는 성인의 시대에 가기엔 때가 멀었다 라는 말이다.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부처님이다. 재미있는 게 유가에서 성聖 자는 도덕을 온몸으로 체현한 자이다. 유가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 도덕이 필요 없다. 그것을 체현한 사람이 유가에서는 성인이다. 그러니까 사회생활 만랩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데 부처님도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또 장자도 성인 얘기를 한다. 그러면 장자가 말하는 성인은 무엇인가.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인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다. 장자에서 성인은 이불민遙而不悶,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서 멀다고 해서 하는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가만히 들여다보면 장자의 언어와 부처님의 언어가 비슷하다. 그래서 불경이 처음 번역되어 들어올 때는 도가의 언어를 가지고 번역을 했다. 그래서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들은 도가의 언어들이 많다.  

"성낙훈 씨, 국내에서 한문을 제일 잘한다는 분이었는데, 아시는가? 돌아가셨는데 고전에 대단한 권위자였다." 성낙훈 선생은 1911년생으로 탄허 스님보다 2년 앞선 분이다. 한학자이시고, 민족문화추진회 발족 최대회원이고, 성균관대학 동양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성낙훈 선생은 유학자인데, 일제때 탄압받는 지식인이셨다. 그래서 절에 도피해 있었다. 이때만 해도 승려들하고 유학자들하고 교류가 아주 활발했던 때이다. 우리나라 유학이라고 하는 게 중국의 송나라 때 성리학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게다가 탄허 스님은 유학을 하시던 분이다.  그래서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을 보면 꼭 불교 얘기만이 아니라 온갖 얘기가 다 나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넘쳐나던 전승이라고 하는 게 싹 나오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한반도 사상을 공부하기에 아주 좋다. 현상윤 선생의 《조선사상사》는 간명하다. 규모가 있기는 한데, 원문을 봐 가면서 그 행간을 읽기에는 모자라는 점이 있다.  

"성낙훈 씨, 국내에서 한문을 제일 잘한다는 분이었는데, 아시는가? 돌아가셨는데 고전에 대단한 권위자였다. 그이가 돌아가고 나니까 누구니, 누구니 그러지만 살아있을 때는 당할 사람이 하나도 없고 국내 제일이었지." 이 말들이 멋있다. "문장의 재기로는 천재였어. 그 친구가 10년 중 노릇을 했거든. (승려의) 이력을 다 하고 금강산 유점사에서 강도하고 그러다 해방이 되니까 그 시간을 다했지." "그런데 여기 나한테 놀러 왔었다. 내가 염송을 보고 있을 때," 염송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선문염송禪門拈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시대 혜심慧諶이라고 하는 승려가 역대 선사禪師들의 화두, 공안公案과 그 공안에 대한 논평과 해석을 염拈과 송頌을 편찬한 책이 바로 선문염송禪門拈頌이다. 선승들에서 내려오는 얌과 송이다. 탄허 스팀이 그것을 읽고 계셨던 모양이다. 염拈은 집다 라는 말이다. 염이라고 해도 되고 점이라고 해도 된다. 아난 존자가 부처님에게 도를 물으니까 길게 설명을 안 하시고 연꽃을 하나 집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난 존자가 웃어서 깨달았다 라고 하는 것이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라는 얘기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은 꽃을 집어 무리에게 보이다 라는 말이다. 말로 안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읽고 있는데, "어린 학인들이 초심 가져와 묻길래", 초심이라고 하는 것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다. 이제 막 마음을 일으킨 사람, 발심한다고 한다, 그 사람이 스스로에게 경계할 때하는 문서이다. "'거성시요'라는 것은 '성인에 가기엔 때가 멀었다'라는 뜻이다 하니까 "옳지!" 그랬다. 그게 성낙훈 씨가 한 소리야. 그렇게 해석하는 걸 처음 들었다고. 다들 "성인간 때가 멀었다" 이런다고 한탄하면서, "하! 그거 천하에 쉬운 격인데, 성인이 가신 때가 멀었다면 성거시요라고 그러지 왜 거성시요라 그랬겠느냐." 그래. '성인에 가기'가 거성이다. 성인 시대에 가기엔, 부처님 당시 같은 시대에 가기엔 때가 멀었다. 문장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어린 학인이 초심 가져와 묻길래, 왜 어린 학인인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고 하는 것은 그 3개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개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처음 마음을 먹은 학인을 경계하는 문서이어서 초심학인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초심학인이 지켜야 할 범절과 수행을 묶어 놓은 것으로 1205년에 나온 텍스트이다. 그리고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그보다 이전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수행의 방법을 담아놓은 텍스트이고, 자경문自警文은 우각우玗覺牛라고하는, 야운野雲 선사가 세놓은 법규라고 한다. 그래서 이 세 개를 묶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 태조 6년, 1397년에 사미과沙彌科의 기본 교재로 규정이 되었다. 60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있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거성시요去聖時遙라는 네 글자를 읽는 데 우리가 필요한 지식과 또는 역사가 꽤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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