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를 듣고 정리한다.
2026.05.09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5)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2
육조혜능六祖慧能, 불립문자不立文字, 단경壇經
집공지인執空之人 체재일우滯在一隅 위불립문자謂不立文字, 공을 잡은 이가 한 모퉁이에 머물러서 불립문자를 말한다.
자미自迷 유가猶可 우방불경又謗佛經, 자기 스스로 혼미한 것은 오히려 괜찬지만 또 불경까지 비방하는가.
죄장심중罪障深重 가불계재可不戒哉, 죄장이 깊고 심하다. 경계하지 않겠는가.
성인聖人은 항상 배우고, 누구에게나 묻는다
중용자왈中庸子曰 복좌復坐 오어여吾語汝, 중용자가 말하기를 다시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서불운호書不云乎 유광극념惟狂克念 작성作聖 유성망념惟聖罔念 작광作狂, 《서전》에 말하지 않는가. 오직 미친 이도 생각을 지극히 하면 성인이 되고, 오직 성인이라도 생각을 잊으면 미친이가 된다.
시고是故 성인聖人 조차전패造次顚沛 미상불념정도이학지야未嘗不念正道而學之也, 그러므로 성인은 잠깐 사이에도 엎어질 때나 넘어질 때나 일찌기 정도를 생각해서 배우지 않음이 없다.
상경하上敬下: 계현戒賢, 제자 신찬神贊에게 법을 청하다.
염봉念蜂 (벌을 두고 읊은 시)
공문空門 불긍출不肯出 타(투)창야대치打(投)窓也大癡, 빈 문에 즐거이 나가지 않고 창을 자꾸 두드리니 크게 어리석구나.
⊙ 삼독三毒. 탐貪 · 진瞋 · 치癡
백년찬고지百年鑽故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백 년을 날개질로 뚫어본들 어느 날에 머리를 낼 기약이 있겠는가.
호개법당好皆法堂 불무영험佛無靈驗, 다 좋은 법당인데 부처가 영험력이 없어
불수무령佛雖無靈 능방광명能放光明, 부처가 영험은 없지만 능히 광명을 놓는구나.
⊙ 세계여허광활世界如許廣闊 불긍출不肯出 찬타고지鑽他故紙 여년거득驢年去得, 세계가 이렇게나 광활한데 나가려 하질 않고, 엉뚱한 낡은 종이나 뚫으려 하니 나귀해가 되서나 나가겠구나.
진성무염眞性無染 본자원성本自圓成 단리망연但離妄緣 즉여여불卽如如佛, 참다운 성미가 물듦이 없어가지고서 본래 스스로 원성하니 다만 망연(허망한 인연)을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이다.
나를 꺾지 않으면 배울 것이 없다(부절아무이학不折我無以學)
고故 주역왈周易曰 겸덕지병야謙德之柄也 서운書云 여유불긍汝惟不矜 천하막여여쟁능天下莫與汝爭能 여유불벌汝惟不伐 천하막여여쟁공天下莫與汝爭功, 그러므로 주역에 말하기를 겸은 덕의 병이라고 했고, 서전에 말하기를 '네가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능한 것을 다툴 이가 없다.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공을 다툴 이가 없다'하며.
안자왈晏子曰 부작익고자夫爵益高者 의익하意益下 관익대자官益大者 심익소心益小 녹익후자祿益厚者 시익박施益博, 안자가 말하기를 대저 작이 더욱 높아지는 자는 뜻이 더욱 낮고, 관이 더욱 큰 자는 마음이 더욱 작다. 녹이 더욱 두터운 자는 시가 더욱 박하다.
자하왈子夏曰 경이무실敬而無失 공이유례恭而有禮 사해지내四海之內 개형제야皆兄弟也, 자하가 말하기를 경하여 잃음이 없고 공하여 예가 있으면, 온 사해 안이 다 형제간이다.
토요일이 되었으니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을 읽어보겠다. 지난번까지 읽은 것은 1장 고전의 교훈이고, 이제 2장이 치문緇門이다. 치문緇門은 분량이 꽤 되고, 서장書狀도 선요禪要, 도서都序, 챕터 구분이 그다지 크게 없다. 제2장 치문緇門은 치문경훈緇門警訓이라고 하는데, 검을 치緇 자와 문 문門자이다. 치문緇門은 승려들이 모여 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까만 물을 들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세계를 치문緇門이라고 한다. 불교에 귀의한 스님들의 세계를 가리키고, 검을 치緇는 승복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치문경훈緇門警訓은 승려들이 공부하는데 교훈으로 삼을 만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제2장 치문緇門의 팔일성해탈문이라고 해서 육조혜능의 경계부터 보겠다. 여기 탄허 스님이 설명하시기를 "육조(六祖)가 이 말씀을 하지 않고 다른 조사(祖師)가 말했으면 '그 조사 글 잘하니까 그랬겠지.' 이럴 거야. 역대 조사 중에 제일 글 잘못한다는 조사가 이 육조다." 육조 스님이 남긴 말을 모아놓은 게 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있다. "육조 스님은 우리같이 무식한 양반은 아니지만, 이 양반이 글을 배운 데가 없기 때문에 무식한 조사라고 판 배긴 양반이 거든. 근데 육조가 『육조단경(六祖壇經)』 끄트머리에 제자들 앉혀놓고 한 소리여."
집공지인執空之人 체재일우滯在一隅 위불립문자謂不立文字, 공을 잡은 이가 한 모퉁이에 머물러서 불립문자를 말한다. 공을 잡은 사람은 선승이라는 말이다. 도을 닦는 사람들을 집공지인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체재일우滯在一隅에서 일우一隅는 꼭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모퉁이에 머물렀다는 것은 편협하다는 말이다. 한 모퉁이에 있어서 그것만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것만 딱 붙들고 앉아가지고 문자를 멀리 해야 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탄허 스님은 "불립문자라는 것이 문자 쓸데없다는 소리가 아니거든. 다시 말하면 '문자는 주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 말이지, 문자가 쓸데없다 소리가 아니여."
자미自迷 유가猶可 우방불경又謗佛經, 자기 스스로 혼미한 것은 오히려 괜찬지만 또 불경까지 비방하는가. 문자 쓸데없다는 소리가 불경 비방이라는 얘기이다. 선승으로 하면 육조혜능은 어디 비할 데가 없이 도력이 높은 분인데 그런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문자 쓸데없단 소리가 불경 비방이다 이거야. 그러면 문자 쓸데없다고 불경을 함부로 비방하면 내생에 무슨 과보를 받느 냐? 내생에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무식한 과보를 받아. 이게 인과법칙이야." 공부는 그것 자체로 목적이다. 죄장심중罪障深重 가불계재可不戒哉, 죄장이 깊고 심하다. 경계하지 않겠는가. "죄장(罪障)이 깊고 중하느니, 가히 경계하지 않으랴"라는 말이다.
그다음에 “면학상에서 성인은 항상 배우고, 누구에게나 묻는다”를 보자. 중용자왈中庸子曰 복좌復坐 오어여吾語汝, 중용자가 말하기를 다시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중용자라는 양반이 앉아 있는데 누가 와서 서서 물어보는 모양이다. 서 있는 사람에게 대답을 해주려니까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앉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물을 때는 꼭 서서 묻는다."
서불운호書不云乎 유광극념惟狂克念 작성作聖 유성망념惟聖罔念 작광作狂, 《서전》에 말하지 않는가. 오직 미친 이도 생각을 지극히 하면 성인이 되고, 오직 성인이라도 생각을 잊으면 미친이가 된다. 미쳤다는 것은 정신이 혼미해도 라는 말이고, 생각을 잡고서 깊게 하면 성인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생각을 잊어버리면 미친놈이 된다는 것이다. 시고是故 성인聖人 조차전패造次顚沛 미상불념정도이학지야未嘗不念正道而學之也, 그러므로 성인은 잠깐 사이에도 엎어질 때나 넘어질 때나 일찌기 정도를 생각해서 배우지 않음이 없다. 조차造次는 잠깐 사이를 말하고, 전패顚沛는 이리저리 뒤집는 것을 말한다. 미상未嘗이 일찍이, 정도를 생각해서 배우지 않음이 없다.
그다음에 "상경하上敬下: 계현戒賢, 제자 신찬神贊에게 법을 청하다"를 보겠다. 상경하上敬下라는 것은 위로 존중하면서 아랫사람에게 묻는다는 말이다. 신찬神贊이라는 사람은 당나라 때의 승려인데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법제자이다. 신찬神贊이라는 사람이 도를 깨우친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 스승한테 와서 보니까 스승이 영 진도를 못 나가고 계셔서 이렇게 한마디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스승이 물어보는 것이다. 듣고 보니 제자가 깨우친 것 같으니까 제자한테 한번 물어봐야겠구나 해서 나온 게 지금 이 시이다. 제목이 염봉念蜂, 벌을 생각한다는 말이겠다. 벌을 두고 읊은 시가 염봉念蜂이다.
공문空門 불긍출不肯出 타(투)창야대치打(投)窓也大癡, 빈 문에 즐거이 나가지 않고 창을 자꾸 두드리니 크게 어리석구나. 여기 공문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 한 번 나온 것처럼, 집공지인執空之人, 허공을 쥐려고 사람이다. 진짜로 도를 깨우친 사람들은 쥐고 있지 않고 놔버리겠다. 공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아가지 않고 라는 말이다. 원문은 던질 투投 자라고 했는데, 아마 탄허 선생님이 타打 자라고 잘못 읽으셨는지 아니면 타打로 보는 것이 더 낫다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두드리는가, 벌이 두드리는 것이다. 벌이 와서 창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벌이 창문을 두드려봐야 깨지지 않을 것이다. 치癡 자는 어리석을 치癡 자이다. 불교에서 삼독三毒, 탐貪 · 진瞋 · 치癡가 있다. 탐貪과 진瞋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탐진의 동시성이라고 생각을 하면 되고, 치癡는 탐과 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치癡가 나오는 것이다.
백년찬고지百年鑽故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백 년을 날개질로 뚫어본들 어느 날에 머리를 낼 기약이 있겠는가. 신찬神贊이라는 스님이 이 시를 지었다. 이를 스승인 계현戒賢이 들어보니까, 탄허 스님이 설명하시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경 보는 거 가 지고 조롱하는 거 같거든. 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이튿날 인자 그 목욕을 하는데 등을 문지르라 하니까 등을 문지르면서", 계현戒賢 스님과 제자 신찬神贊이 주고받은 얘기로, "다 좋은 법당인데 부처가 영험력이 없어. 부처가 영험은 없지만 능히 광명을 놓는구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호개법당好皆法堂 불무영험佛無靈驗, 다 좋은 법당인데 부처가 영험력이 없어. 불수무령佛雖無靈 능방광명能放光明, 부처가 영험은 없지만 능히 광명을 놓는구나. 원출전인 경덕전등록에는 어조가 훨씬 강하다고 한다. 세계여허광활世界如許廣闊 불긍출不肯出 찬타고지鑽他故紙 여년거득驢年去得, 세계가 이렇게나 광활한데 나가려 하질 않고, 엉뚱한 낡은 종이나 뚫으려 하니 나귀해가 되서나 나가겠구나. 가만히 보면 말이 안된다. 여년거득驢年去得, 당나귀 해가 되어서야 득하겠구나. 당나귀 해란 없다. 토끼 해나 되어서야 말 해가 되어서야 호랑이 해가 되어서야 용 해가 되어서야 이렇게 해야 되는데 당나귀는 없다. 십이간지 중에 나귀가 없으니까 영원히 못 깨우칠 것이라는 말이다.
탄허 스님의 설명을 보면 "그 괘씸면하기는 한데 희한하거든. 어저께 벌을 두고서 읖은 것도 자기 경보는 걸 조롱하는 거 같고, 오늘은 목욕하는데 조롱하는 거 같고 말이여. 그래서 목욕 다 하고 나서 불렀어. 야 네가 어제 그 벌을 두고 읊는 것도 나를 조롱하는 것이고, 오늘 등을 문지르면서 네가 나를 조롱했으니 뭔 소식이냐? 물으니까 이실직고를 했어. 사실은 제가 남방에 가서 공부하다가서 뜻을 좀 얻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상경하(上敬下), 법상(法床)을 차려놓고 법을 청한 거야. 자기가 제자 노릇을 하고 설법해 달라고. 그게 상경하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는 거. ··· 어진 것을 기른 거야. 그러니까 뭐라고 설법을 했는고 하니, 그 시식(施食)에도 있는 그거를 봤어." 진성무염眞性無染 본자원성本自圓成 단리망연但離妄緣 즉여여불卽如如佛, 참다운 성미가 물듦이 없어가지고서 본래 스스로 원성하니 다만 망연(허망한 인연)을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배운다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옛 사람들의 말이 이렇게 은근히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다음에 "나를 꺾지 않으면 배울 것이 없다(부절아무이학不折我無以學)"를 보자. 고故 주역왈周易曰 겸덕지병야謙德之柄也 서운書云 여유불긍汝惟不矜 천하막여여쟁능天下莫與汝爭能 여유불벌汝惟不伐 천하막여여쟁공天下莫與汝爭功, 그러므로 주역에 말하기를 겸은 덕의 병이라고 했고, 서전에 말하기를 '네가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능한 것을 다툴 이가 없다.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로 더불어 공을 다툴 이가 없다'하며. 여유불벌汝惟不伐, 그러니까 불긍不矜은 자랑하는 것이고, 벌伐은 떠벌리는 것, 떠벌리면서 자랑하는 것이니까 더 안 좋은 것이다.
그다음에 안자왈晏子曰 부작익고자夫爵益高者 의익하意益下 관익대자官益大者 심익소心益小 녹익후자祿益厚者 시익박施益博, 안자가 말하기를 대저 작이 더욱 높아지는 자는 뜻이 더욱 낮고, 관이 더욱 큰 자는 마음이 더욱 작다. 녹이 더욱 두터운 자는 시가 더욱 박하다. 벼슬이 높은 놈일수록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관익대자 역시 벼슬이다. 그다음에 녹익후자는 녹을 많이 받는 것, 관, 작, 녹 모두 벼슬하고 관련된 것이다. 또 자자하왈子夏曰 경이무실敬而無失 공이유례恭而有禮 사해지내四海之內 개형제야皆兄弟也, 자하가 말하기를 경하여 잃음이 없고 공하여 예가 있으면, 온 사해 안이 다 형제간이다. 오늘 이 구절들을 보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주말에 즐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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