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5) ─ 혁명과 역사

 

2026.04.04 δ.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35) ─ 혁명과 역사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2

 

아리프 딜릭Arif Dirlik, 《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Revolution and History: The Origins of Marxist Historiography in China, 1919–1937, 1989)
+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
- 중국의 정치학. 정치를 정치지도자의 덕성德性의 관점에서 규정. 과거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지도자를 위한 
① 정치적 · 도적적 교훈을 추출 
② 권성징악을 고취하는, 본질적으로 도덕적 목적을 가지고 기능. 개인의 행위 중심 포폄褒貶 
③ 전례前例의 창고로서의 역사, 영속의 관점에 따른 역사 해석. 역사는 인간의 행동을 인도하는 영속적 도리道理들이 운명으로 발현되는 영역. 

- 역사 서술은 사건들의 서술 뿐만 아니라 인과 관계를 드러내보이는 노력과도 무관, 역사적 과정에 기반을 둔 해석으로 역사적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 경세역사학經世歷史學 
  나라를 다스리고 (경방經邦), 현실에 쓸모 있는(치용致用) 역사학. 즉 역사학과 정치적 실천의 결합 


⇒ 교화역사학敎化世歷史學 
  역사로써 마음을 다스리는(이사치심以史治心) 경향 
  역사를 이용하여 윤리倫理, 삼강三綱(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오상五常(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을 이루려는 경향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연구하여 경계를 삼는 것과 개인의 내심內心, 성찰省察의 결합.

+ 1920년대 중국에 수용된 마르크스주의 역사론
- 역사발전의 동력을 사회 경제구조의 내재적 힘들의 상호작용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전제 
 역사적 변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 
 정치적 · 지적 현상을 규정하고 형성하는 사회적 공간에 집중 도덕성의 초역사적超歷史的 개념에 기초한 전통적 유가적 역사론의 쇠퇴.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역사목적으로 인한 한계

- "중국 지식인에게 역사 연구의 모델을 제공했지만 역사현상이나 역사적 변화의 동력에 관한 포괄적 이론으로는 유가적 관점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은 ··· 당시 긴급하게 요구된 이론을 제공했다." 
- 역사적 동력에 대한 지식 확장 → 역사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 
  → 새로운 방법과 개념을 고안하려는 노력 촉진 
  → 중국 역사에서 작동해왔던 경제적 · 사회적 힘들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자료들을 찾기 위해 역사적 사료들을 재조사.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의 모호성, 역사 활용에 개입하는 초역사적 목적론으로 인한 문제, 예측에 부합하지 않는 자료 무시, 상이한 역사 문제들에는 그에 적절한 상이한 데이터와 개념들을 활용할 필요를 무시 

+ 1920년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부상의 시대적 배경, 경로
- "혁명운동으로 인해 중국에서 계급투쟁은 추상적인 문제에서 구체적인 문제가 되었고,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 전체와 대면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공산주의 퇴조기였던 이 시기에 마르크스주의는 중국의 사회 사상에 있어서 가장 역동적인 경향으로 부상했던 것이다."(p. 39) 

- 러시아 혁명을 알게 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해 최초로 진지한 토론 일본에서 이루어진 소개와 번역을 경유한 이해

- 이대교李大釗를 비롯한 이들의 특징
    1. 다른 자료에서 추출한 사회경제학적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과 자유롭게 혼합
    2. 경제학적 전이와 사상 방면의 변화 사이의 관계에 집중.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의 기본적인 문제는 에둘러갔다. 
    "역사에서 계급관계의 역할과 그것의 구조적 표현, 즉 특정한 계급관계에 대응하는 사회구성체의 문제"

- 중역본重譯本. 러시아의 사회분석, 레닌과 스탈린 번역본
  1927년 이후 마르크스 · 엥겔스 저작의 중국어 번역본 급증
  호민테른의 전략을 비판하고, 소련의 지도방식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마르스주의에 대한 독자적 이해를 제출.

-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중국사회에 딱 맞아들지는 않았다.
   레닌이 민족해방테제에서 제시한 식민지나 半식민지국가를 설명하는 조건들을 중국적 상황에서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 중국사 시대구분에서 발생한 문제들, 봉건적, 노예제, 아시아적 생산양식

- 귀결.
중국역사발전을 설명하는 포괄적인 모델을 발견하는데 실패. 명목적인 범주를 중국 역사의 본질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며, 중국사회발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을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일반론에 그쳤다. 

-  마오쩌둥과 같은 혁명가들은 마르크스 역사개념과 사유방식에 둔감. 이들은 중국사회의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에 의거해 혁명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역사의 도움 없이도 승리에 이르렀다.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 강의, 지난주까지는 이 책에 있는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읽었다. 오늘은 총괄이라기보다는 전목 선생이 열심히 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는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이 있고, 그것이 1920년대에 마르크스주의가 들어오면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중국의 역사학에 끼친 영향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정리해서, 다시 말해서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론이라고 하면 유가적 역사론인데, 그것에 아주 뚜렷하게 대비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을 거론함으로써 중국의 전통적 역사론이 가지고 있는 특징 또는 한계 그런 것들을 밝혀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논의로서 총괄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을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이라고 하는 터키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혁명과 역사》라는 책이 있다. 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인데 원서가 Revolution and History: The Origins of Marxist Historiography in China,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이라고 하는 책이다. 1919년에서 1937년, 그러니까 20년 정도에 걸쳐서, 이른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이 등장할 때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다룬 책이다.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그것에 반응을 한 사람들을 보면 청나라 말기에 양계초梁啟超라든가 장병린章炳麟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유가적 지식인들인데, 양계초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사학, 신사학을 주창한다.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을 물리치고 가장 기본적으로는 인과적 해석을, 역사의 원인과 결과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데, 그리고 역사적 유물론이 제시하고 있는 출발점이라고 하는 게 사회 경제적 현상인데, 그런 것들,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기보다는, 그게 유가적 역사론의 특징이니까, 사회 경제적 현상들을 가지고 연구를 해보려고 하는데, 안 해보던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선행하는 어떤 업적이 없으니까 어디에 비벼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없었던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까 제대로 정의된 어떤 출발점도 없고, 그들의 출발점이 제대로 정의되지도 않았는데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 사회 경제사를 해보려다 보니 그들의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해야 될 것인가, 조밀한 방법론도 마련되지 않았고, 그리고 뭔가를 찾아서 이런 자료를 보면 되겠구나 라고 했지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구조 또는 방법론과 같은 원칙들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냥 새로운 국민, 새로운 백성, 새로운 문화, 그렇게 해서 비역사적이고도 더 나아가서 반역사적인, 얼핏 보면 현실 초월적인, 그런 입각점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양계초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인 사태들을 변혁해야 한다 라는 관심은 있는데, 그게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하고 그다음에 사상까지도 함께 변혁시켜야 한다 라는 것은 있는데, 거기에서 역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까지는 많이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을 청산해야겠다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과연 어떤 식으로 청산을 해야 사회 경제사로 갈 것인가. 거기까지는 못 가는 아주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1920년대에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수용된다. 그렇게 수용이 되는데 어중간하다. 이런 맥락 전체를 한번 살펴보는 게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정치학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라고 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물어볼 때 오늘날 우리도 그것을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학이나 우리나 또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서양에서 나온 역사 책들을 보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정치사이고, 그다음에 나온 아주 진지한 역사 책으로는 타키투스의 《연대기》라든가 《역사》라든가 이런 것들, 《게르마니아》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민족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연대기》를 보면 아우구스투스, 즉 옥타비아누스를 서술하는 부분들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역사책을 그렇게 간단하게 쓴 사람은 아니구나 라고 감탄하는 점들이 있다. 그리고 전목 선생이 중국사학명저강의를 한 것을 다시 읽어보면서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역사가들의 서술 방식이, 꼭 중국의 역사가만이 아니라 로마의 역사가도 이런 것들을 하는구나, 예를 들면 호칭이 있다. 나중에 황제가 된 사람을 아직 황제가 되지 않았을 때부터 황제라고 지칭을 한다든가 하는 것, 그러니까 호칭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데 그런 것들을 보면 역사가들은 민감하게 그렇게 반응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시 읽게 된다. 책을 읽는다고 하는 게, 다른 책을 여러 가지로 이렇게 저렇게 읽으면서 경험이 쌓여가지고, 그것이 또 다른 새로운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고, 그런데 막상 그것을 깨닫고, 어설프게는 읽었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읽은 것을 축적해서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새로운 책을 읽을 때 가이드라인도 되고, 또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도 뚜렷해지고 하는구나를 자각하게 된다.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에서는 내성외왕內聖外王, 심정적으로는 그의 정신은 성인이어야 하고, 성인이라는 게 기독교의 성인이 아니다.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단어는, saint라는 단어를 중국에서 만들어진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을 했는데, 중국에서 원래 성인이라고 할 때 사용되고 있던 용법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의 성인은 초월적인 신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사람이거나, 그러니까 한 방의 도를 깨우친, 구원의 뜻을 알아차린 사람이거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심지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해서까지도 구원의 복음을,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노력한 사람을 가리킬 때 성인이라고 한다. 내면으로는 얼마나 덕을 쌓았는지 보다는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업적으로 가지고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유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덕을 얼마나 쌓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덕을 쌓은 사람이 밖으로는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군이 되시옵소서 라고 얘기를 한다. 그렇게 덕을 갖춘 사람이 정치를 하면 훌륭한 정치가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과연 그러한 지는 잘 모르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는 아주 명료하게 서구 근대적 정치 개념을 가지고 있고, 제가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부터가 중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과거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또는 펼쳐 보였던 덕과 내성외왕의 상관관계 또는 상응관계들을 평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지도자들을 위한 정치적 · 도덕적 교훈을 추출해내는 것이 중국의 정치학의 목표이고, 그런 것에 충실히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교과서로써 또는 전범으로써 작용하고자 하는 게 역사이다. 역사의 목적 자체가 정치 지도자의 도덕 교과서, 사례 모범집이다. 사례 모범집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역사이다. 그게 바로 전통적인 유가적 역사론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권선징악을 고취하고 본질적으로는 도덕적 목적을 가지고 기능하는 것이다. 개인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포폄褒貶, 칭찬과 질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통전通典과 같은 제도사와 같은 것들이 등장을 한다. 그래서 전목 선생도 그런 제도사가 참 드물지만 귀하다, 소중한 역사적인 진전이 있다, 또는 경적지經籍志, 경전과 서적에 대한 것들이 나중에 나타난다. 그러나 중국 역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하는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이다. 기전체紀傳體라고 하는, 왕의 행실과 그 당시 좀 두드러진 사람들의, 훌륭한 사람만을 서술을 하는 게 아니라 못된 짓을 한 사람도 서술해서, 그러니까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이 핵심이 되는, 기본적으로는 전기, 그래서 기전체紀傳體 사서가 출발점이다. 무엇보다도 역사는 전례前例, 앞서서 어떤 사례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전례前例의 창고로서의 역사, 그리고 영원한 불변의 초월적인 도가 있다. 유가에서 설정한 도가 있다. 그것의 관점에 따라서 역사를 해석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역사라고 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행동을 인도하는 영속적인 도리들이 각각의 운명으로, 그러니까 그런 도리가 있는데 그 도리가 어떤 특정한 시대 속에서 특정한 인물에게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영역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그 사건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것의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되고,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객관적인 조건들도 따져봐야 되는데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역사 서술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유가의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경세역사학經世歷史學, 교화역사학敎化世歷史學이다. 이 두 가지가 전혀 다르지 않다. 경세經世라고 하는 건 나라를 다스린다, 경방經邦, 현실에 쓸모 있는, 치용致用, 다스리는 데 쓸모 있는 그러니까 치용이다, 그래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다스리는데 쓸모가 있는,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같은 것이 사실은 제도사라고는 해도, 그것에 직접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덕만 쌓아서 되겠는가 제도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해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다스려야 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성인이 다스려야 한다. 성인이 다스려야 되는데 성인이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역사책을 읽으면서 교화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사치심以史治心, 역사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경향을 중시한다. 그러니까 윤리를 확립하고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이루려는 경향, 정말 역사가 해야 될 일인데 굉장히 거대하다. 이게 형이상학적인 것인데, 서구적인 의미에서 역사형이상학이라고 하면 역사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역사 또는 헤겔의 절대적 정신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 이런 것들일 텐데, 그것보다는 현실 세계 속에서 군신君臣과 부자父子, 부부夫婦 간의 삼강三綱을 세우고, 오상五常,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을 이루는 데 역사가 도움이 된다. 그것만이 아니라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연구하여, 역사책을 읽어서 항상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이사치심以史治心, 역사로써 마음을 다스리면서 동시에 치란治亂과 흥망興亡을 연구하는 것, 이게 역사의 궁극적인 쓸모가 되겠다. 그래서 경세역사학經世歷史學이라든가 교화역사학敎化世歷史學이라든가 이를 묶어보면 감계역사학鑒戒歷史學이다. 그런데 감계역사학鑒戒歷史學이라고 하는 말만 가지고는 뚜렷하게 내용이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감계역사학이라는 말을 저도 쓰곤 했는데, 요새는 경세역사학, 교화역사학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지 않겠나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라고 하는 것은 서구적인 의미에서 그런 역사 개념이 들어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이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 이것을 깔고 있다,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1920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수용되었다. 역사 발전의 동력을 사회 경제 구조의 내적 힘들의 상호작용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만들긴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사회적 경제적 구조는 또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제약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제도를 우리가 만들지만 그 제도가 사람의 행동을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라고 볼 수 있다. 그게 객관적인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역사적 변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변화시킨다. 항상 구조와 행위자 사이에 끝없는 딜레마이다. 그러니까 구조를 바꾸려면 사람을 굉장히 심하게 바꿔야 구조가 바뀔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 마르크스주의는 구조를 바꾸는 데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격발시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까 레셰크 코와코프스키Leszek Kołakowski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에서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점진적으로 사람을 바꿔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거 아니라 한 번에 일단 타격을 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기동전이냐 아니면 진지전이냐 이런 얘기들도 그런 것들 때문에 나오겠다. 그런데 어쨌든 1920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수용되면서 도덕성이라고 하는 초역사적 개념에 기초한 전통적 유가적 역사론이 쇠퇴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역사목적론, 결국엔 어찌 되건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밝은 내일을 이룩할 것이다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그런 것도 또 한계가 있다. 역사목적론이라고 하는 것도 초역사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라고 하는 게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한계라는 또 있다. 그런데 아리프 딜릭은 이렇게 얘기한다. "중국 지식인에게 역사 연구의 모델을 제공했지만 역사현상이나 역사적 변화의 동력에 관한 포괄적 이론으로는 유가적 관점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부분들이 있고, 도대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고 그렇다. 당장 필요한 긴급하게 요구되는 그런 것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서 사용한다. 중국 사람들만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닌 경우에는 항상 필요한 것만 가져다 쓰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구조다 라고 하는, 역사적 동력에 대한 의식이 확장되고 그러면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인가, 도덕성인가 하는 것들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 보다 보니까 새로운 방법과 개념을 고안해야 되겠구나 하는 그런 것들, 그러면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들어와서 중국 역사에서 작동해 왔던 경제적 · 사회적 힘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자료들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본기本紀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다른 것들, 경제적인 것들을 찾기 위해서 역사적 사료들을 재조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온전히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또 1920년대만 해도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이 그렇게 활발하게 전개되어 있지도 않고 이론적으로도 정교화된 상태도 아니었다. 고작 소비에트에서 연구되고 있었을 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에릭 홉스봄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도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 정도까지도 안 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인 문제는 초역사적 목적론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생각하기에 초역사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런 자료들은 무시하고 그렇게 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 역사론 자체가 완성되지 않은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20년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혁명을 해야 되겠다, 그런데 전통적인 역사론만 가지고는 안 되는구나, 그리고 혁명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계급 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막연한 얘기여서 구체적인 문제가 되었고, 그런데 1920년대 중국에서 공산주의는 퇴조기였다. 《현대 중국의 탄생》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아 안 되네 라고 하는 상태인데, 그때 우리가 뭔가 모자란 게 있지 않았을까 해서 이론적 반성이 시작되고, 그때 마르크스주의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이미 선행에서 공부가 되었던 일본을 거쳐서 오게 되는 것이다. 이대교李大釗와 같은 이들은 이런저런 자료에서 추출한 사회경제학적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과 자유롭게 혼합한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만의 특징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사상을 받아주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한다. 자기네들이 기왕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가지고 땜질하듯이 해보는 것이다. 푸쓰녠, 즉 부사년傅斯年 같은 사람들은 아주 순진한 실증주의를 채택을 한다. 어떻게 해서 서구의 역사 실증주의가 들어오는가. 역사가는 이제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사실들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역사가는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사료들을 제대로 비판적으로 찾아내서 그 사료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역사적 서술은 충분하다 하는 얘기도 있지만, 그보다 좀 더 나아가서 경제학적인 어떤 전위와 사상 방면의 변화 사이의 관계에 집중을 해서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이 해야 되는 바를 사실은 에둘러 간 셈이다. 사회경제학적 개념을 가져다가 자의적으로 한 점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역사에서 계급 관계를 추출해내고 그것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구조적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다. 중세는 이러했고 고대에는 이랬고 요즘엔 이렇다 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사회적인 계급들의 명칭들을 나열한다. 그게 바로 계급 관계의 역할과 그것의 구조적 표현, 그리고 특정한 계급 관계에 대응하는 사회의 구성체를 보여줘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라고 하는 것은 사회 구성체와 정치적 제도로 이루어져서 그것을 레짐regime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레짐regime이라고 하면, 한국 사회의 사회 구성체,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 구성체와 민주정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제도, 이 두 개가 결합해서 레짐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초창기에 마르크스주의적인 개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중국 역사 속에서 계급 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론적 역사론을 아주 자의적으로 받아들여서 기술이 발전하면 역사가 발전하고 그렇다. 그렇게 되면 사회진화론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사회진화론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의 차이를 식별해내지 못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도이치어로 된 마르크스의 원전을 읽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되었을테고, 그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역본을 가지고 러시아의 사회 분석이나 레닌과 스탈린이 나온 것들을 가지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코민테른의 전략을 비판하고 소련의 지도 방침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독자적 이해를 제출하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중국 사회에 딱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자각을 했다. 중국의 혁명가들이 가지고 있던 반러시아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있다. 그리고 레닌이 민족 해방 태제에서 제시한 식민지와 반半 식민지를 설명하는 조건들을 중국적 상황에서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못하기도 했지만 안 하기도 했다. 레닌이 말한 민족 해방 태제가 중국에 꼭 들어맞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1920년대 중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가. 마르크스주의 역사론을 공부하긴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중국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포괄적인 모델을 정립해 내는 데는 실패했다.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좀 있었던 것 같다. 명목적인 범주는 중국 역사의 본질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으며, 중국의 역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하고 잘 들어맞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사회 발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는, 일반론에 그쳤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람이 모택동이다. 이들은 중국 사회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서구 사회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복잡했고 그와는 다른 종류의 복잡함이 있었다. 중국 사회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는 마르크스주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제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 강의는 마무리를 하고, 그야말로 시대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영원한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듯한 탄허 스님의 책을 다음 주부터는 읽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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