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크리스천: 세계사의 탄생 ─ 전통과 주제와 서술 방식 | 케임브리지 세계사 1

세계사의 탄생 | 케임브리지 세계사 1 |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음, 류충기 옮김 세계사의 탄생 | 케임브리지 세계사 1 |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음, 류충기 옮김 - 10점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은이),류충기 (옮긴이)소와당

CHAPTER 1 서장: 책을 펴내며
CHAPTER 2 세계사의 세계사
CHAPTER 3 세계사의 진화
CHAPTER 4 진화와 단절, 그리고 시대구분 문제
CHAPTER 5 분화에서 통합으로: 세계사의 구심력과 원심력
CHAPTER 6 신앙, 지식, 언어
CHAPTER 7 기술과 혁신의 역사
CHAPTER 8 인류 역사 속 불과 연료
CHAPTER 9 가족사와 세계사: 가정화에서 생물정치까지
CHAPTER 10 세계사의 젠더화
CHAPTER 11 인류학은 세계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CHAPTER 12 이주와 인류의 역사



76 17세기 동안 역사에 "과학적" 혹은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보편사 저자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과학이나 철학이 의미하는 바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예컨대 스코틀랜드에서 "추측을 좋아하는 역사가들"로 알려진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 계몽주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애덤 퍼거슨(Adam Ferguson, 1723~1816), 존 밀러(John Millar, 1735~1801), 윌리엄 로버트슨(William Robertson, 1721~1793), 듀걸드 스튜어트(Dugald Stewart, 1753~1828), 역시의 실용성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등은 인간의 사회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은 "도덕 감정(moral sense)"이 인간의 공동체 생활뿐만 아니라 인류의 진화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학자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는 "과학적" 국사(national history) 연구로 들어서는 문은 라틴어, 로마법, 호메로스의 시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역사가들, 퐁트넬(Fontenelle, 1657~1757),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약(É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5~1780), 콩도르세 후작(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안로베르 자크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 장 에티엔 몽튀클라(Jean Étienne Montucla, 1725~1799) 등은 "인류의 정신(human spirit)" 혹은 사유가 야만적인 차원에서 시작해 계몽의 단계까지 상승했다가 틀에 박힌 "문명의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탐구했다. 독일의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계몽적 사유가 종교적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학자들과 입장을 같이했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는 유기체적 관점을 도입해서 문화의 특징을 단계적으로 유아기 아동기, 성년기 노년기로 구분했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인간의 "반사회적 사회성 (unsocial sociability)"의 역사 속에서 합리성을 추출해냈다(칸트는 반사회적 성향을 부정 일변도로 보지 않고, 그것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경쟁심을 유발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게 함으로써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해석했다. 채이병, <사회성과 반사회성 사이의 갈등>, <사회와 철학> 12호, 2006, pp. 217-240 참조- 옮긴이).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는 세계의 문화에서 "성스러운 상형문자(holy hieroglyph)", 즉 신의 흔적과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헤겔은 세계사의 중심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하는 데에서 "자유로운 정신의 진보"를 찾아냈다. 

83 종속 이론은 처음에 폴 배런 같은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 뒤 안드레 군더 프랑크에 의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저작은 다시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영향을 미쳐 세계 체제론을 구축하는 일련의 저서가 발표되었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현대의 세계 체제는 마치 15세기 유럽의 귀족 영지 체제와 마찬가지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데, 중심부(core, 선진 산업화 국가들), 주변부(periphery, 원자재를 생산하는 약소국가들), 반-주변부(semi-periphery, 중간지대의 국가들)가 그것이다. 

123 맥널의 책이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미국에서 세계사 전공이 개설된 곳은 소규모 대학교의 몇몇 학과정도 뿐이었다. 유럽 학계도 나올 것이 없었다. 분명 가장 활발했던 역사학 분야는 기존에 이미 전 세계의 연결과 교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경제사 분야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근대 세계 체제》의 첫 권이 출간된 때가 1974년이었는데 이 책이 경제사학자들 사이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월러스틴은 불평등 무역에 기초를 둔, 지리적으로 확장된 경제 시스템의 출현과 관련된 상세한 연구 성과를 제출함으로써 기존의 어느 학파와도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월러스틴이 말하는 세계 체제 안에는 전 세계 모든 나라 및 모든 지역이 포함된다. 그중 어떤 지역은 중심부이며, 또 다른 지역은 반(半)주변부 및 주변부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세계 체제에 따라 큰틀에서 부(wealth)의 분포나 자유 및 강제 노동의 지형 같은 요소들이 결정되었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국민국가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고, 그들의 연구가 유럽 중심적 패러다임에 체계적으로 도전하려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세계 대부분 지역의 역사학계는 뚜렷한 보수적 색채로 남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126 많은 학자들은 냉전 이후의 새로운 연구 경향을 의미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라는 표현을 더 선호했다. "초국사(transnational history)" 혹은 "얽힌 역사(entangled history)"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127 지구사와 세계사의 의미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분명 글로벌 시대, 특히 냉전 종식과 세계화 양상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195 역사를 고대-중세-근대로 나누는 방식은 지중해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곳을 벗어나면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에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예컨대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고대와 중세가 서양의 라틴어권 지역처럼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리고 근대의 시작도 1500년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96 역사학자들은 대개 아메리카의 역사를 콜럼버스 이전 시대-식민지 시대-독립 이후의 3단계로 나눈다. 한 가지 시대구분 기준을 적용했을 때 생겨나는 이런 문제를 세계사 연구자들은 단지 눈감고 외면하는 식으로 회피할 따름이다. 

199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다른 분야의 학자들에게 맡겨둠으로써, 역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최초 20만 년을 누락한 것보다 더 무책임하게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의 외면과는 상관없이 실제로 세계화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흐름들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고 있다. 

\200 현생인류의 개체 수가 늘어남에 따라 아프리카에서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지구 구석구석으로 진출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이 커졌다. 일부 생물학적 변화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적 차이가 더욱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생물학적 및 문화적 분화가 이어졌고, 이를 일컬어 "분화의 시대 (age of divergence)"라 한다. 

211 세계화가 지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역사학이 예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기원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유용한 관점을 제공할 수는 있다. 물론 그 시작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지 않다. 사회과학에서는 흔히 세계화가 20세기 말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세계화의 뿌리가 1945년 이후 시기에 있었다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217 비단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이 근대 세계의 특징으로 급속한 변화를 주장하며, 기원후 1500년을 전후한 극적 변화가 수백 년을 이어온 세계적 변화의 축적이라고 말한다. 

238 '종교'라는 용어의 문제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종교'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하나의 범주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주로 기독교 선교사와 그들의 선교 대상이 된 사람들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범주였다. 

251 지금부터 우리는 역사학자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네 번의 변곡점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그들의 연구에서 이른바 더 넓은 세계의 의미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 검토해볼 것이다. 지성사 및 신앙의 역사에서 네 번의 변곡점이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즉 인간화 과정(선사 시대 인류의 출현), '축의'시대(종교의 발전), 유럽 과학 혁명, 그리고 최근에 시작되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세속화가 그것이다. 언어, 지식, 신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 지식, 신앙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258 이와 같은 신흥 과학에는 기술, 방법론, 사회 변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티븐 샤핀(Steven Shapin)은 그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그에 관한 책이다." 

294 기술 혁신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왜 어떤 사회는 혁신을 허용하고, 또 어떤 사회는 거부하는가? 사회 속에서 왜 어떤 혁신은 성공하고, 어떤 혁신은 실패하는가? 개인, 조직, 사회의 어떤 역할이 혁신을 권장하거나 혹은 방해하는가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무엇인가? 기술 혁신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321 카를로 치폴라(Carlo Cipolla)는 기술적 관점에서 서양과 타자의 만남을 고찰한 두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유럽 확장 초기 단계에서의 대포, 범선, 제국, 1400-1700》에서는 근대 초기 유럽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 신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으며, 《시계와 문명, 1300-1700》에서는 시계를 통해 유럽과 중국에서 시간과 시간 계측의 이해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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