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7) ─ 撫州永安禪院僧堂記

 

2026.05.23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7)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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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영안선원승당기撫州永安禪院僧堂記
시고是故 석위구정析爲垢淨 열위인과列爲因果 판위정상判爲情想 감위고락感爲苦樂
이러하니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이르는, 우주론 - 우주 · 인간 매개론 - 인간론의 이치가 이러하니] 
분석을 해보면 [자꾸 쪼개보면] 더럽고 깨끗한 것이 되고 / 죽 늘어놓아보면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고 / 좋으니 나쁘니 판별을 하면, 감정과 생각이 나오고 / 느껴버릇하면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이 되고 만다. 

표류골닉漂流汨溺 극미래제極未來際
[그러한 석析, 열列, 판判, 감感에] 떠다니고 흘러다니고 골몰하고 빠지면 앞으로 올 끝머리에 이르고 만다.

연즉작차당자然則作此堂者 유손유익有損有益 거차당자居此堂者 유리유해有利有害
그렇다면 이 당을 지은 이는 손해도 있고 이익도 있고 여기서 지내는 이는 이로움도 있고 해로움도 있을게다.

여등비구汝等比丘 의지지宜知之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능단비로계汝能斷毘盧髻 절관음비截觀音臂 고문수목刳文殊目 절보현경折普賢脛 쇄유마좌碎維摩座 분가섭의焚迦葉衣

너희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육계肉髻를 자르고 / 관음보살의 팔뚝을 꺾어버리고 / 문수의 눈을 도려내고 / 보현의 장딴지를 부러뜨리고 / 유마의 자리를 부숴버리고 / 가섭의 옷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계표중도䯻表中道 위중도불수안야謂中道不須安也 
비로불의 육계(지혜의 상징)는 중도를 의미하는데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절관음비截觀音臂 관음유천수비觀音有千手臂 위불구대비접인야謂不求大悲接引也
관음의 천 개의 손과 팔은 대자비를 상징, 그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문수대지目表文殊大智 고괄거야刳括去也 우부야又剖也
문수의 눈은 큰 지혜를 뜻하는데 그것을 도려내고 베어내라는 것

경각야脛腳也 언불의보현만행야言不依普賢萬行也
경은 다리다. 부현의 만행에 의지하지 말라.

정명淨名 어십척방장於十尺方丈 용팔만사천사자좌容八萬四千獅子座 언불용기부사의신통言不用其不思議神通
유마(정명)는 가로 세로 10척(대략 1평)에 8만 4천 마리의 사자좌를 넣었는데 그것을 쓰지 마라. 

가섭迦葉 수석가금란가사授釋迦金襴袈裟 어계족산중입정於雞足山中入定 이대자씨하생以待慈氏下生 언불수전의야言不須傳衣也 
가섭이 석가의 가사를 받아 계족산에서 선정에 들어 미륵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나, 옷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시수자如是受者 황금위와黃金爲瓦 백은위벽白銀爲壁 여상감임汝尙堪任 하황일당何況一堂
이렇게 하는 사람은 황금으로 기와를 하고 백은으로 벽을 하더라도 너희가 오히려 능히 해볼 수 있다.  어찌 승당 하나야 말하게 뭐 있겠는가. [제대로 도를 깨우치면 아무리 휘황한 거창한 법당이 있다해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법당도 하나 있다면 더 말할게 없다.]

계지면지戒之勉之 오설불허吾說不虛
경계하고 힘써라. 내 하는 말이 헛되지 않다.

요상了常 자참열로십여년諮參悅老十餘年 진득기말후대사盡得其末後大事 개고덕소위蓋古德所謂 금강왕보검운金剛王寶劍云
요상이 종열從悅 스님에게 물어 참구한지가 10여년이고 궁극적이고 큰 일일 다 얻어 보관하니, 고덕이 일러서 금강왕보검이라 한다. 

원우칠년元祐七年 십이월십일十二月十日 남강적오관南康赤烏觀 설야옹로雪夜擁爐 서이위기書以爲記
원우 7년 12월 10일에 남강 적오관에서 눈오는 밤 난로를 끼고 써서 기記한다.

 


토요일 오후이다.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을 읽어보겠다. 오늘은 무주영안선원승당기撫州永安禪院僧堂記를 읽어보겠다. 지난주에는 법당기法堂記였고, 오늘은 승당기僧堂記, 스님들에게 직접 얘기를 하는 것이다. 지난번 법당기法堂記는 법당을 세우는 사람인 화주, 진종유가 화주가 되어서 공사를 하던 중에 죽었고, 아들인 진단월이 안하려고 하니까 영안사의 장로가 의심을 풀어주고자 명감에게 무진 거사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아오게 해서 그 가르침을 진단월에게 들려준 것이다. 그 얘기를 보면 우주론 - 우주 · 인간 매개론 - 인간론의 이치가 이러하다는 얘기를 했다.  

시고是故 석위구정析爲垢淨 열위인과列爲因果 판위정상判爲情想 감위고락感爲苦樂
이러하니 분석을 해보면 [자꾸 쪼개보면] 더럽고 깨끗한 것이 되고 / 죽 늘어놓아보면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고 / 좋으니 나쁘니 판별을 하면, 감정과 생각이 나오고 / 느껴버릇하면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하니는 앞에서도 나온 얘기를 말한다.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이르는, 우주론 - 우주 · 인간 매개론 - 인간론의 이치가 이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굳이 따져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분석해서 자꾸 따져보면, 쪼개보면 더럽고 깨끗한 것이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나열해서 하다 보면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버리게 된다. 사실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를 알 수 없다. 좋으니 나쁘니 판별하기 시작하면 이제 감정이 일어나고 자꾸 그것을 느껴보려 하면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석析하지 말고 열列하지 말고 판判하지 말고 감感)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사실 이렇게 해버리면 분별지가 없어져 버리니까 불교가 허무주의, 분별없이 몰아넣느니 악한 놈도 선한 놈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버린다고 한다.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부처님은 훌륭한 분인데 배워야 한다.  

표류골닉漂流汨溺 극미래제極未來際
떠다니고 흘러다니고 골몰하고 빠지면 앞으로 올 끝머리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 해서 석析하고 열列하고 판判하고 감感하다고 하는 것은 이리저리 흘러다니고 골몰하고 또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골몰하다 보면 급기야는 오지도 않은 때, 그러니까 미래, 아직 오지도 않은, 앞으로 올 끝머리에 이르고 만다는 말이다. 

연즉작차당자然則作此堂者 유손유익有損有益 거차당자居此堂者 유리유해有利有害
그렇다면 이 당을 지은 이는 손해도 있고 이익도 있고 여기서 지내는 이는 이로움도 있고 해로움도 있을게다.

그러니까 내가 시간을 내서 이렇게 하는거 나한테 좋은 거 하나도 없어 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말을 하는 순간에 공덕이 날아간다. 아무 말 않고 officium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생명을 받아서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예수님을 믿든 부처님 말씀을 듣든 간에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멈춰져가지고 내놓았으니까 의무가 생긴다는 말이다. 

여등비구汝等比丘 의지지宜知之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의지지는 앞으로 할 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냥 어조사로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능단비로계汝能斷毘盧髻 절관음비截觀音臂 고문수목刳文殊目 절보현경折普賢脛 쇄유마좌碎維摩座 분가섭의焚迦葉衣
너희는 할 줄 알아야 한다.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육계肉髻를 자르고 / 관음보살의 팔뚝을 꺾어버리고 / 문수의 눈을 도려내고 / 보현의 장딴지를 부러뜨리고 / 유마의 자리를 부숴버리고 / 가섭의 옷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우리가 상투를 튼다고 그러는데, 아직 관례를 올리기 전에 두 갈래로 트는 것을 쌍계雙髻라고 한다. 비로보살은 어찌나 지혜가 출중하지 정수리에 머리가 솟아 올라가지고 상투처럼 보인다고 해서 육계肉髻라고 한다. 살로 틀어진 상투라는 말이다. 쌍계雙髻는 두 갈래, 사람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가운데를 간다는 것을 중도라고 한다. 그래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육계肉髻는 지혜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불교에서 도를 닦는 것은 중도에 이르르고자 하는 것인데, 중도를 잘라내라는 얘기는 쌍계를 가라는 얘기인가. 그것이 아니고 비로자나불의 육계를 자른다는 것은 중도에 이르러야겠다는 그것마저도 잊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문장이 다 역설이다.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유마대사, 가섭존자는 모두 최고 일진들이다. 비로보살은 지혜가 머리 위로 솟아버렸다. 내가 그 지경으로 가야겠다고 하는 것도 집착이다. 그것도 마음에서 비우라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팔이 있어서 사람들을 다 안아준다. 관음보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그다음에 문수보살은 눈으로 그 지혜를 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contemplatio, 관조하는 사람이다. 눈을 도려내려는 거스 그것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목표로 삼되 목표에 이르면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보현보살은 실천하는 분이다. 온갖 걸음걸이를 다 하는 분이니까 그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유마 대사는 사자좌로 유명하다. 한 평 정도 되는 방 안에다 8만 4천 사자좌를 넣었다고 하는 신통술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도 쓰지 마라. 그다음에 가섭은 석가모니의 제1 제자이다. 가섭은 석가모니의 가사를 받아서 계족산에서 들어가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해설을 보면 계표중도䯻表中道 위중도불수안야謂中道不須安也 / 비로불의 육계(지혜의 상징)는 중도를 의미하는데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그다음에 절관음비截觀音臂 관음유천수비觀音有千手臂 위불구대비접인야謂不求大悲接引也 / 관음의 천 개의 손과 팔은 대자비를 상징, 그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문수대지目表文殊大智 고괄거야刳括去也 우부야又剖也 / 문수의 눈은 큰 지혜를 뜻하는데 그것을 도려내고 베어내라는 것
경각야脛腳也 언불의보현만행야言不依普賢萬行也 / 경은 다리다. 부현의 만행에 의지하지 말라. 
정명淨名 어십척방장於十尺方丈 용팔만사천사자좌容八萬四千獅子座 언불용기부사의신통言不用其不思議神通 / 유마(정명)는 가로 세로 10척(대략 1평)에 8만 4천 마리의 사자좌를 넣었는데 그것을 쓰지 마라.  
그 불가사의한 신통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다음에 가섭迦葉 수석가금란가사授釋迦金襴袈裟 어계족산중입정於雞足山中入定 이대자씨하생以待慈氏下生 언불수전의야言不須傳衣也 / 가섭이 석가의 가사를 받아 계족산에서 선정에 들어 미륵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나, 옷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계족산은 가섭의 신통력을 상징하는 산이다.

여시수자如是受者 황금위와黃金爲瓦 백은위벽白銀爲壁 여상감임汝尙堪任 하황일당何況一堂 / 이렇게 하는 사람은 황금으로 기와를 하고 백은으로 벽을 하더라도 너희가 오히려 능히 해볼 수 있다. 어찌 승당 하나야 말하게 뭐 있겠는가.
도만 제대로 닦으면 된다는 것이다. 

계지면지戒之勉之 오설불허吾說不虛
경계하고 힘써라. 내 하는 말이 헛되지 않다.

요상了常 자참열로십여년諮參悅老十餘年 진득기말후대사盡得其末後大事 개고덕소위蓋古德所謂 금강왕보검운金剛王寶劍云
요상이 종열從悅 스님에게 물어 참구한지가 10여년이고 궁극적이고 큰 일일 다 얻어 보관하니, 고덕이 일러서 금강왕보검이라 한다. 

말후대사는 궁극적인 큰일,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일어날 가장 중요한 일을 얻어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고덕은 고승대덕의 준말, 오래된 덕 높은 스님들을 말한다. 그렇죠. 그것을 무릎 고덕이 일러 소위 금광왕보검이라고 한다. 

원우칠년元祐七年 십이월십일十二月十日 남강적오관南康赤烏觀 설야옹로雪夜擁爐 서이위기書以爲記
원우 7년 12월 10일에 남강적오관에서 눈오는 밤 난로를 끼고 써서 기記한다.

오늘 한 얘기 중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육계肉髻를 자르고 / 관음보살의 팔뚝을 꺾어버리고 / 문수의 눈을 도려내고 / 보현의 장딴지를 부러뜨리고 / 유마의 자리를 부숴버리고 / 가섭의 옷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좋고도 좋은 말이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늘 기억을 해야 한다. 왜 알면서 또 읽어야 되는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궁극적인 목적을 너무 성급하게 추구하면 안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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