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10) ─ 禪敎一致 十所以

 

2026.06.20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10)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3

 

선교일치禪敎一致 십소이十所以
선과 교가 합치되는 열 가지 까닭
선과 교를 모두 해야 하는 열 가지 까닭

유십소이有十所以 수지경론권실須知經論權實 방변제선시비方辨諸禪是非 우수식선심성상又須識禪心性相 방해경론이사方解經論理事 
열 가지 까닭이 있다. 반드시 경전의 방편과 실질적인 내용을 알아야만 여러 선수행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 낼 수 있고 선수행의 본질과 드러남을 반드시 식별할 줄 알아야 경전(에 쓰인 바)의 근본적 이치와 현실에서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일一 사유본말師有本末 빙본인말고憑本印末故
첫째, 스승은 근본과 말단이 있다. 근본에 의지해서 끝에 있는 것을 식별해내는 까닭이다.
근본은 석가모니이다. 그것을 알면 누가 참 스승인지를 분별해낼 수 있다.

이二 선유제종禪有諸宗 호상위조고互相違阻故
둘째, 선은 모두 그 족보가 있다. 서로 어긋나고 막히는 까닭이 이것이다.
선의 여러 종파에 관한 것

삼三 경여승묵經如繩墨 해정사정고楷定邪正故
셋째, 경전은 먹줄과 같아서 어긋남과 올바름을 바르게 정하는 근거이다.

사四 경유권실經有權實 수의요의고須依了義故
넷째, 경전은 방편 [상황에 맞게, 예 등을 들어 말한 것]과 궁극적 뜻을 담은 것,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반드시 요의了義 [뜻을 이론적으로만 설設한 것]에 의거해야 하는 까닭이다. 

오五 양유삼종量有三種 감계수동고勘契須同故
다섯째, 헤아리고 추측하는 것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따져묻고 서로 들어맞는지 [계합契合] 살펴서 같게 해야 한다.

비량比量. 견주어서 안다. index
성언량聖言量. 성인의 말에 비추어 보아 안다
현량現量. 내가 보아서, 확인해보고 안다

육六 의유다반疑有多般 수구통결고須具通決故
여섯째, 의심이 여러가지로 있으니 반드시 여러가지를 갖추어서 통하여 결정하고, 명쾌하게 해야 한다.

칠七 법의부동法義不同 선수변식고善須辨識故
일곱째, 법고 뜻이 같지 않으니 잘 분별하여 한다

팔은 심통성상心通性相 명동의별고名同義別故
여덟째, 마음은 성과 상을 관통하므로 이름과 같으나 뜻은 다르다

본말本末 현상現象
본체와 드러남

구九 오수돈점悟修頓漸 언사위반고言似違反故
아홉째, 깨달음과 닦음, 갑자기와 차츰, 이 말들이 서로 어긋나는 듯하기 때문이다.

십十 사수방편師授方便 수식약병고須識藥病故
열째, 스승이 주는 방편에는 약이 되는 것도 있고 병이 되는 것도 있으니 반드시 잘 식별해야 한다.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생각한다.
독일정처獨一靜處 전정사유專精思惟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오늘은 선교일치禪敎一致 십소이十所以를 읽는다. 선종과 교종이 있는데, 선은 앉아서 도만 닦는 양반들이고, 교종은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는 양반들인데, 그것을 서로 합치해서 공부를 해야 된다, 그러니까 선만 해서도 안 되고 경전만 읽어도 하면 안 되고 모두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까닭이 10가지가 있다. 오늘은 10가지가 뭔가를 쭉 살펴보고, 그다음에 각각에 대해서 설명을 해놓아야 되는데, 이 책을 보면 네 번째까지만 설명을 해놓았다. 

갑자기 지금 이렇게 뒤로 갔다. 지난번에 치문緇門까지 읽었는데, 치문緇門도 다 읽은 건 아니고 골라서 몇 개만 읽었다. 그런데 제3장이 서장書狀이다. 편지글인데 서장을 통독을 해 보니, 서장이라는 게 서로 주고받은 편지이다. 주고받은 편지니까 이 말을 왜 했는지 또 이렇게 왜 답장을 했는지 상황을 좀 알아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데 상황을 모르니까 한문 문장만 읽어가지고는 그 속 뜻까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넘어가고 그다음에 선요禪要를 보니까 이건 정말로 설법을 쭉 해놓은 것이어서, 거기까지는 이렇게 텍스트로 된 것들은 보겠는데 여기는 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한 150페이지 정도를 건너뛰어서, 지금 이렇게 선교일치의 10가지 까닭을 하면 뒷부분으로 가버리게 된다. 그러면 이것을 다 하고 나면 책 뒤쪽 페이지까지 가버렸으니까 더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우리나라 조계종은 선불교인데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경전도 공부를 해야 된다. 절집에 글이 없다는 말을 항상 조심하고 있는 게 탄허 스님의 말씀이다. 아함경에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생각한다. 독일정처獨一靜處 전정사유專精思惟. 그런데 해보면 골똘히 생각이 안 된다. 골똘히 생각을 조금 하다 보면 졸리고 잠들게 된다. 그러니 책을 읽어야 한다. 책만 읽다 보면, 남의 얘기만 자꾸 읽다 보면, 내 머릿속이 그러지 않아도 어리석은데, 다른 사람 얘기만 자꾸 읽다 보면 내 생각은 없이 이렇게 가득 차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번 읽어보겠다.

유십소이有十所以 수지경론권실須知經論權實 방변제선시비方辨諸禪是非 우수식선심성상又須識禪心性相 방해경론이사方解經論理事 
열 가지 까닭이 있다. 반드시 경전의 방편과 실질적인 내용을 알아야만 여러 선수행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 낼 수 있고 선수행의 본질과 드러남을 반드시 식별할 줄 알아야 경전(에 쓰인 바)의 근본적 이치와 현실에서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다. 

10가지 까닭이 있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경전과 경론이다. 경전에서 논하고 있는 것, 권실이다. 권權이라고 하는 것은 권세 권자이기는 한데, 권이라고 하는 건 방법, 방법론, 그러니까 예를 들어 말하면 이렇고 하는 것이다. 저는 책을 쓸 때 "예를 들어 말하면"을 잘 안쓰는데,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은 그때 상황 속에서 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어떤 상황을 마주쳤을 때 부처님이나 예수님, 공자님의 글을 읽어보면 예를 들어 말하면 비유를 들어 말하면 이런 게 많다. 왜 그러한가. 전후 설명이 쭉 있다. 상황 설명이 있는 가운데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는 상황이 아니다.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말하면 읽는 사람은 그 예가 왜 갑자기 나왔지 하게 된다. 

권權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진 것인데, 그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실질적인 내용을 알아야만, 모든 선수행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가 있고 또 반드시 식별해야 된다. 선이라고 하는 것의 심心, 핵심이다, 여기서 마음이 아니다. 선수행의 핵심과 상相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선수행의 핵심과 겉으로 드러난 것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경전에 쓰인 바의 근본적 이치와 현실에서의 쓰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선은 어떤 때 좋고 경은 어떤 때 좋은가. 그리고 이것은 경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은 선에 속하는 것이다 하는 것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된다는 얘기이다.  

그 10가지를 한번 보자. 

일一 사유본말師有本末 빙본인말고憑本印末故
첫째, 스승은 근본과 말단이 있다. 근본에 의지해서 끝에 있는 것을 식별해내는 까닭이다. 근본은 석가모니이다. 그것을 알면 누가 참 스승인지를 분별해낼 수 있다. 

어떤 선생이 진짜 원조 선생인가 그리고 저 선생은 지금 원조로부터 내려와서 몇 번째 선생인가 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원조 스님은 석가모니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본이라는 게 석가모니이고, 말이라는 게 몇 대조냐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스승에게는 저 근본이 되는 스승님이 있고, 그 스승에서 내려와서 지금 나에게 말하는 스님이 누구냐 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근본에 의거해서 끝에 있는 것을 식별해 낸다. 우선 스승을 잘 알아야 한다. 

이二 선유제종禪有諸宗 호상위조고互相違阻故
둘째, 선은 모두 그 족보가 있다. 서로 어긋나고 막히는 까닭이 이것이다.

선에 여러 종파가 있다. 그러니까 식별해 내야 된다. 식별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경전에 의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는 진짜배기 스승을 식별해 내야 된다. 이를 식별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래 배우면 된다. 그다음에 족보가 있다. 족보가 있다는 것은 가령 철학사에 나온 거 다 가르쳐 주는가, 하나만 가르쳐주는가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마르지 않는 우물이 하나 있다. 그 우물에서 물이 여기저기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한 줄기만 잡아서 이것이 진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그러니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라고 하는 것이 선유제종禪有諸宗이다. 이쪽 우물이 진짜 물이야라고 말하는 놈들은 사실은 서로 어긋나고 막히는 길목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이제 경전 얘기이다. 첫 번째가 스승 얘기이고 두 번째가 선종 얘기, 셋째가 경전이다. 

삼三 경여승묵經如繩墨 해정사정고楷定邪正故
셋째, 경전은 먹줄과 같아서 어긋남과 올바름을 바르게 정하는 근거이다.

나무를 자를 때 아주 능란한 목수나 이런 사람들은 눈대중으로 되겠지만 우리는 거기다 줄을 그어야 된다. 그래서 경전이라고 하는 건 최소의 기준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악하고 어긋남과 올바름을 정하는 근거이다. 외르크 프라이의 《요한복음과 만나다》에서 옮긴이의 말을 보면 외르크 프라이 교수의 지도 교수인 마르틴 헹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신약 성서만 아는 사람은 신약 성서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무서운 말이다. 경여승묵經如繩墨은 참 좋은 말이다. 경여성묵이다. 경전은 먹줄과 같아서, 경전을 읽어야 한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은 철학사를 늘 곁에 두고, 여러 종류의 철학사가 나와있는데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를 읽고 또 읽어서 뭔가를 해보면 좋다. 

사四 경유권실經有權實 수의요의고須依了義故
넷째, 경전은 방편과 궁극적 뜻을 담은 것,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반드시 요의了義에 의거해야 하는 까닭이다.

경전은 경유권실經有權實, 권과 실이 있다. 상황에 맞게 예 등을 들어서 말한 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궁극적 뜻을 담은 것이 있다. 그러니 반드시 요의了義에 의존해야 한다. 부처님의 아함경을 읽으면 예를 들어 말한 게 굉장히 많다. 그런 것만 계속 읽다 보면 본래의 실實이 무엇인지 줄거리가 무엇인지를 딱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요의了義, 뜻을 이론적으로만 설設한 것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부처님의 궁극적인 뜻을 담은 경전, 불요의不了, 즉 방편만을 얘기한 것을 계속 읽다 보면 사람의 머릿속에 예만 남는다. 예만 남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반드시 요의了義를 공부를 해두어아 한다. 어렵더라도 일단 요의了義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오五 양유삼종量有三種 감계수동고勘契須同故
다섯째, 헤아리고 추측하는 것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따져묻고 서로 들어맞는지 [계합契合] 살펴서 같게 해야 한다.

양量이라고 하는 것은 헤아린다는 뜻이다. 헤아리고 추측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감계수동勘契須同 해야 되는 까닭이다. 감계勘契는 따져 묻고 서로 들어맞는지를 살펴서 갖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헤아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가 비량比量, 둘째가 성언량聖言量, 마지막이 현량現量이다. 비량比量은 견주어 보는 것이다. index이다. 그러니까 sign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index, 지표라고 하고, 둘째가 icon, 축약해서 기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세 번째가 상징, symbol은 설명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비량比量은 비교해 봐서 아는 것, 그래서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불을 뗐으니까 연기가 나겠지,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비량比量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다음에 성언량聖言量, 성인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성인의 말씀도 여러 가지가 있다. 공자님 말씀인 논어를 읽어보면 이렇게도 있고 저렇게도 있다. 현량現量은 내가 확인해보고 아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다 해봐야 되는 것이다. 헤아리고 추측한다 할 때는 이 세 가지를 다 해야 되겠다. 

육六 의유다반疑有多般 수구통결고須具通決故
여섯째, 의심이 여러가지로 있으니 반드시 여러가지를 갖추어서 통하여 결정하고, 명쾌하게 해야 한다.

의심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 고요한 곳에서 앉아서 도를 닦다 보면 생긴다. 그러니까 이를 한번 비교해서 얘기해 보자 라고 할 때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되겠는가. 경전으로 가야 된다. 의심이 여러 가지로 있으니 반드시 여러 가지를 갖추어서 통결해야 된다. 그렇게 해서 이제 명쾌하게 해야 되겠다. 서로 토론을 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칠七 법의부동法義不同 선수변식고善須辨識故
일곱째, 법고 뜻이 같지 않으니 잘 분별하여 한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규칙이고, 의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숨어 있는 뜻이다. 규칙과 속에 숨어 있는 뜻이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잘해야 한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규칙이니까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변통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변통을 하다 보면 끝없이 변통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본래의 의도가 무엇인가 그것도 잘 봐야 될 것이다.  

팔은 심통성상心通性相 명동의별고名同義別故
여덟째, 마음은 성과 상을 관통하므로 이름과 같으나 뜻은 다르다

여기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관통한다는 말이다. 성性은 본성이고 상相은 겉으로 드러난 쓰임이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본체는 이러한데 겉으로 드러나서 쓰임은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름은 같으나 뜻은 다른 까닭이다. 이것은 경전에 의거해야 되는 것인지 선에 의거해야 되는 것인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모르겠다. 이건 역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아무리 닦아도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르니까 경전을 보라는 뜻으로 본다. 

구九 오수돈점悟修頓漸 언사위반고言似違反故
아홉째, 깨달음과 닦음, 갑자기와 차츰, 이 말들이 서로 어긋나는 듯하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닦음, 고요한 곳에서 홀로 골똘히 생각을 한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깨달음과 닦음, 갑자기와 차츰, 이 말들이 서로 어긋나는 것 같다. 내가 어느 지점쯤에 왔는지 식별을 하려면 경전을 봐야 된다.

십十 사수방편師授方便 수식약병고須識藥病故
열째, 스승이 주는 방편에는 약이 되는 것도 있고 병이 되는 것도 있으니 반드시 잘 식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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