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를 듣고 정리한다.
2026.07.04 📖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12)
탄허呑虛,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Tan-Heo-03
선교일치禪敎一致 십소이十所以, 경여승묵經如繩墨
삼자三者 경여승묵經如繩墨 해정사정자楷定邪正者 승묵비교繩墨非巧 공교자工巧者 필이승묵위빙必以繩墨爲憑 경론經論 비선非禪 전선자傳禪者 필이경론위준必以經論爲準
셋째, 경은 승묵과 같다. 그릇됨과 올바름을 분명하게 정한다는 것은, 먹줄이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정교한 일을 하는 이는 반드시 먹줄에 의거하고 경론이 선은 아니지만 선을 전하는 이는 반드시 경론을 기준으로 삼는다.
중하근자中下根者 단가의사但可依師 사자관근師自觀根 수분지수隨分指授 상근지배上根之輩 오수원통悟雖圓通 미궁불언未窮佛言 하동불견何同佛見
중하의 근기를 가진 이는 다만 선생에 의지할 수 있는데 스승이 스스로 그 근기를 보고 분수에 맞게 지시하고 가르친다. 상근의 근기를 가진 이는 깨달음이 크게 통하기는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의 말씀에 통달하지 않으면 어찌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에 이르겠는가.
문問 소재所在地 개유불경皆有佛經 임학자任學者 전독감회轉讀勘會 금집선요今集禪要 하필변경何必辨經
묻는다. 그것이 있는 바는, 모두 불경에 있거늘, 공부에 임하는 이는 띄엄띄엄[이리저리] 읽고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서 알게 되는 것에 맡기면 되는데, 이제 선禪의 요지를 모으는데 어찌[굳이] 경을 분별해야만 하는가?
답答 차의此意 즉기차지문即其次之文 변시답차문야便是答此問也 문운文云
답한다. 이 뜻은 다음의 이 글이 곧바로 이 물음에 답한 것이다. 그 문에 말하길...
궁리진성窮理盡性 이지어명以至於命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 오늘은 선교일치禪敎一致 십소이十所以 중 경여승묵經如繩墨을 읽는다.
삼자三者 경여승묵經如繩墨 해정사정자楷定邪正者 승묵비교繩墨非巧 공교자工巧者 필이승묵위빙必以繩墨爲憑 경론비선經論非禪 전선자傳禪者 필이경론위준必以經論爲準
셋째, 경은 승묵과 같다. 그릇됨과 올바름을 분명하게 정한다는 것은, 먹줄이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정교한 일을 하는 이는 반드시 먹줄에 의거하고 경론이 선은 아니지만 선을 전하는 이는 반드시 경론을 기준으로 삼는다.
경여승묵經如繩墨, 경은 먹줄과 같다, 즉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해정사정자楷定邪正者, 그릇됨과 올바름을 분명하게 해서 정한다. 그러니까 그릇됨과 올바름을 뚜렷하게 해서 정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교巧라고 하는 글자는 정교精巧하다고 할 때의 교이다. 아주 세밀하다, 자잘한 것까지 다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지침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비교非巧이니까 승묵비교라고 하면, 우리가 종이를 반틈으로 자르려고 하면 선을 긋는데 그게 승묵이다. 비록 거기다가 선을 그었다 하더라도 정확하게 이게 잘라지질 않는다.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승묵과 같은데 경전이라고 하는 게 하나에서 열 가지 다 알려주는, 부처님이 되는 길을 하나에서 열 가지 다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승이 있는 것이다. 스승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늠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교非巧라고 하는 것은 그 먹줄이 비록 정교하지는 않지만, 정교하지는 않아도 어쨌든 최소한의 기준은 된다는 얘기를 뒤에 이어 붙인다. 공교자工巧者, 정교함을 추구하는 자는, 필이승묵위빙必以繩墨爲憑, 반드시 승묵를 가지고, 즉 도구로 삼아 근거로 삼는다. 그러니까 경전을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선자傳禪者 필이경론위준必以經論爲準, 경론이 선은 아니지만 선을 전하는 이는 반드시 경론을 기준으로 삼는다.
중하근자中下根者 단가의사但可依師 사자관근師自觀根 수분지수隨分指授 상근지배上根之輩 오수원통悟雖圓通 미궁불언未窮佛言 하동불견何同佛見
중하의 근기를 가진 이는 다만 선생에 의지할 수 있는데 스승이 스스로 그 근기를 보고 분수에 맞게 지시하고 가르친다. 상근의 근기를 가진 이는 깨달음이 크게 통하기는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의 말씀에 통달하지 않으면 어찌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에 이르겠는가.
근根이라는 게 근기, 기본. 그러니까 여러 가지 말로 표현이 될 수 있겠다. 중하근자中下根者 단가의사但可依師, 중하의 근기를 가진 이는 다만 선생에 의지해야 한다. 스스로는 안 된다. 사자관근師自觀根, 스승이 스스로 그 근기를 보고, 수분지수隨分指授, 그 사람의 분수에 맞게 지시하고 가르친다. 분수에 맞게 라는 것은 저 사람의 수준에 맞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가르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상근지배上根之輩 오수원통悟雖圓通, 상근의 근기를 가진 이는 깨달음이 크게 통하기는 하여도, 미궁불언未窮佛言 하동불견何同佛見 부처님의 말씀에 통달하지 않으면 어찌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에 이르겠는가.
문問 소재所在地 개유불경皆有佛經 임학자任學者 전독감회轉讀勘會 금집선요今集禪要 하필변경何必辨經
묻는다. 그것이 있는 바는, 모두 불경에 있거늘, 공부에 임하는 이는 띄엄띄엄[이리저리] 읽고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서 알게 되는 것에 맡기면 되는데, 이제 선禪의 요지를 모으는데 어찌[굳이] 경을 분별해야만 하는가?
문問 소재所在地 개유불경皆有佛經, 있는 바는 모두 불경에 있는데, 그 소재가 모두 불경이다. 임학자任學者 전독감회轉讀勘會, 공부에 임하는 자는 이리저리 읽고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서 앞게 되는 것에 맡기면 되는데, 금집선요今集禪要 하필변경何必辨經, 선禪의 요지를 모으는데 왜 하필 경을 분별해야만 하는가.
답答 차의此意 즉기차지문即其次之文 변시답차문야便是答此問也 문운文云
답한다. 이 뜻은 다음의 이 글이 곧바로 이 물음에 답한 것이다. 그 문에 말하길...
즉기차지문即其次之文, 변시답차문야便是答此問也, 문에 답한 것인데, 이 문장이 완성되어 있지 않다.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한 것이라는 말이다. 전독감회轉讀勘會라는 말은 독서의 방법이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읽어라 하는 것인데, 그것도 혼자서 맨날 전독감회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시간 낭비이고 몸만 상한다. 처음부터 딱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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