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형 역해: 밀린다 왕의 물음

 

헌사 / 서문 / 약어표 / <밀린다팡하>의 역사적 배경
1부 대론對論
1. 무아
2. 윤회
3. 업
4. 마음
5. 수행
6. 열반
7. 붓다
2부 딜레마Dilemma
1. 딜레마Dilemma
2. 마무리_197
[해설]
[부록] '내'가 없는데 누가 윤회하는가_265



176 무위법1
밀린다왕: 업으로부터 생겨난 것들이 있고, 원인이 있어서 생겨 난 것들도 있고, 때에 따라 생긴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나가세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허공과 열반입니다.
밀린다왕:'승리자(붓다)'의 뜻을 왜곡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고 대답하신 것 같습니다.
나가세나: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대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밀린다왕: 어쩌면 허공의 경우에는 스님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은 다릅니다. 붓다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반에 이르는 길을 수백 가지는 제시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열반이 어떤 원인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까요. 
나가세나 붓다께서 '열반에 이르는 길'을 여러 가지 말씀하신 건 사실입니다만, '열반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밀린다왕: 스님, 지금 저는 어둠에서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의혹에서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만약 한 아이의 아버지가 있으면 우리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열반을 성취하는 원인이 있다면 우리는 열반이 생기하는 원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세나: 아, 그러나 열반 자체는 [어떤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이 생기는 원인을 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열반에 대해서는 생겼다, 혹은 생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열반은 과거, 현재, 미래에 속한 것도 아닙니다. 혹은 눈, 귀, 코, 혀, 몸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밀린다왕: 그렇다면 열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나가세나: 열반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정하고,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고결한 제자는 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밀린다왕: 그러면 열반이 어떤 것인지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나가세나: 바람은 존재합니까?
밀린다왕: 예, 그렇습니다.
나가세나: 그러면 바람이 어떤 것인지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십시오.
밀린다왕: 바람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바람은 늘 그렇게 존재합니다.
나가세나: 바로 그와 같습니다. 열반은 존재합니다만 그것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허공은 그 속에 있는 물건들처럼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교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열반인데, 붓다도 열반과 무위법을 거의 같은 의미로 쓰기도 했다. 라훌라는 〈What the Buddha Taught〉에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시각의 결과가 아니듯이 열반은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열반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중생은 다만 무명(즉 착각)에 빠져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대명천지에 혼자 눈을 감고 어둡다고 하듯이 중생이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위의 대화 역시 열반 자체는 어떤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늘 바람이 불듯이 본래 존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흔히 열반이 수행에 의해 획득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열반은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지시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들을 대하는 인식의 전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인식의 전변은 수행을 차곡차곡 쌓아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뒤집히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지는 않지만 뼈를 깎는 '수행의 결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그것을 "[깨닫는] 지혜도 없고, [열반을] 얻는 일도 없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수행은 왜 하는가? 수행은 열반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아니라, 감은 눈을 뜨기 위한 안간힘이요, 자신의 미망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나가세나는 "열반을 성취하는 원인"은 있지만 "열반이 생기는 원인"은 없다고 구별해서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항상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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