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코젤렉, 오토 브루너: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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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라인하르트 코젤렉.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 엮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원석영 옮 - ![]() 라인하르트 코젤렉,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 (엮은이),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원석영 (옮긴이)푸른역사 |
번역서를 내면서
Ⅰ. 서론
Ⅱ. 고대 그리스어에서의 사용
Ⅲ. 각국어로 수용
Ⅳ. 사전 분야
Ⅴ. 정치학적 개념에서 역사철학적 개념으로: 18세기와 프랑스혁명
Ⅵ. ‘위기’와 위기들: 19세기
Ⅶ. 전망
읽어두기: 주석에 사용된 독어 약어 설명
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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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012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Krisis' 개념은 법률과 신학과 의학 분야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개념은 엄격한 양자 택일을 요구했다. 옳음 아니면 그름, 구원 아니면 벌, 삶 또는 죽음.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 개념은 거의 예외 없이 의학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마치 의학개념이듯이 말이다. 17세기 이후 먼저 서유럽에서, 그 후 독일에서, 이 개념의 은유적인 의미 확장이 정치학,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마침내 역사학에서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18세기 말경 세속적인 해석을 거쳐 혁명적인 사건들에 적용된 최후의 심판이라는 의미에서의 신학과 종교적 색채가 이 개념에 다시 가미되었다. 이러한 은유적 다의성과 유연성으로 인해 이 개념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일상언어 속으로 침투해 표어가 되었다. 이 말의 도움 없이 결정적인 악센트가 가해질 수 있는 삶의 영역이란 우리 세기에 거의 없다.
대략 1780년 이후부터 역사에서 '위기Krise'는 새로운 시대 경험에 대한 표현이자 시대 변혁의 요소와 지표가 되었으며, 사용 빈도를 감안한다면, 그 정도가 실제로는 훨씬 더 강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위기'라는 말은 그것에 따라붙는 감정들만큼이나 다층적이고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있다. 연대기적인 의미로 파악할 때, '위기'는 지속을 가리키며, 이것은 단기적 혹은 장기적인, 그리고 더 나은 상태로 또는 더 나쁜 상태로의 과도기를, 또는 전혀 다른 어떤 상태로의 전환기를 가리킨다. '위기Krisis'라는 말은 경제학에서처럼 자신의 귀환을 알릴 수도 있고, 심리학이나 신학에서처럼 실존적 해석의 모범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 탐구와 해석은 제시된 모든 사례에 참여한다.
Ⅶ. 전망
078 위기 개념Krisenbegriff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다양성은 19세기 이후 양적으로는 상당히 널리 펼쳐졌지만, 정확성이나 명확성과 관련해서는 얻은 것이 거의 없다. '위기Krise'는 단지 몇몇 학문적인 맥락에서만 범주적 엄격함을 띠고 사용되는 표어로 남아있을 뿐이다. 슘페터Schumpeter는 국민경제에서조차 이를 부정한다. 이 때문에 그는 "순환경기에 대한 분석에서 위기라는 표현에 어떤 기술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단지 호황 국면과 불황개념들에게만 그런 의미를 부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커다란 세계경제 위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 비판적인 글들과 위기라는 타이틀로 제시된 글로벌한 세계 해석이 늘어났다. 폴 발레리Paul Valéry는 정신의 위기에 관한 에세이를 세 편 썼다. "군사적 위기가 끝난 지금 이제 경제적 위기가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섬세한 지성의 위기는 그 본질상 매우 알아차리기 어려운 모습을 띤다(그러한 위기는 은폐의 세계/위선의 왕국 그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성의 위기는 그 진정한 상태, 그 양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y Gasset는 기원전 1세기와 르네상스를 비교하면서 자기 소외와 냉소주의와 거짓 영웅주의와 흔들리는 확신, 수박 겉핥기식의 교육과 야만화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세기의 위기를 해석하고자 했다. 근대 인간의 종말은 대중의 봉기와 함께 이루어졌다. 이에 반해 후이징가Huizinga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로의 길을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어떤 상태이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위기Krisis가 진보적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한 단계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이전에 우리의 위기 의식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다. 후설Hussert은 '위기Krisis'라는 주제를 역사철학적으로 확장했고, "유럽 학문의 위기"를 점점 더 드러나는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했다. 이성의 계시를 따르는 그리스어 '목적Telos'은 데카르트 이후 주체-대상 간의 분리에 의해 점점 더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사실을 추구하는 학문과 일상 세계 간의 틈을 다시 메우려는 것이 현상학의 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이미 위기 개념이 지난 세기에 확장시킨 역사철학의 틀을 ─ 그것의 분석적인 특성과 무관하게 ─ 벗어날 수 없다. '위기Krisis'는 과도기로 해석되는 우리 시대의 새로움을 계속 입증해준다.
또 다른 변형은 부정신학에서 두드러진다. 세계 종말의 도입을 세계사에 의무화한 채 남아있는 이론 말이다. 리하르트 로테Richard Rothe가 이미 1837년에 말했듯이, 위기Krise는 세계에 내재하고 있는 지속적인 위기이다. "전술 기독교 역사 일반은 우리 세대의 거대한 지속적인 위기Krisis이다." 물론 로테는 여전히 그 위기를 진보적으로 파악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 위기를 실존주의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모든 목적론적인 배음들을 벗겨낸다. "신은 모든 대상성을 결여한 모든 위기의 근원이다. 세계의 심판관이며 비존재das Nicht-Sein이다. 그러나 소위 '구원의 역사'는 모든 역사의 지속적인 위기이지, 역사 안의 혹은 곁의 역사가 아니다." '위기'는 자신의 종말적인, 그리고 과도기적인 의미를 대가로 치렀다 ─ 그것은 전적으로 (기독교적으로 파악된) 역사의 구조적인 범주가 되었다. 역사가 종말론을 독점했다.
모든 인문사회학에서 '위기Krise'라는 말은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물론 역사학에서도, 시대나 구조를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정치학은 그 개념을 명확히하고자 했고, 그것을 '갈등'과 구분했다. 그 개념은 의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심리학과 인류학과 인종학과 문화사회학"으로 확장되었다.
얼마 전부터 의학에서는 그 말을 과잉 사용한 기록이 있다. 간결한표어들을 위해 '위기'가 기본 어미나 접두어로 기능하는 합성어가 2백 개가 넘게 만들어졌다. 'krisengeschüttert' 같은 형용사적 합성어는 젖혀두더라도 말이다. '위기'는 연관을 필요로 하듯이 연관을 지을 능력이 있으며, 의미를 추구하듯이 의미를 규정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 말의 모든 사용을 특징짓는다. '위기'라는 말은 그 의미가 상대적으로 애매해서 격앙된 분위기나 문제 상황들을 에둘러 표현할 수 있듯이 '소요', '갈등', '혁명' 등과 교체 사용이 가능하다. "불명확하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만약의 대안적 해석을 위해 내용의 진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개념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추월될 수 없고, 강력하고, 교체 불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하는 힘은 임의의 대안들의 불확실성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그 말의 사용 자체가 정확한 규정을 회피하는 역사적인 '위기'의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개념이 전문용어로 사용될 수 있으려면, 학문은 그 개념을 측량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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