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유르착: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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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알렉세이 유르착 - ![]() 알렉세이 유르착 (지은이),김수환 (옮긴이)문학과지성사 |
1장 후기 사회주의: 영원한 제국
2장 형식의 헤게모니: 스탈린의 섬뜩한 패러다임 전환
3장 뒤집힌 이데올로기: 윤리학과 시학
4장 ‘브녜’에서 살기: 탈영토화된 사회적 환경
5장 상상의 서구: 후기 사회주의의 저편
6장 공산주의의 진짜 색깔들: 킹 크림슨,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
7장 데드 아이러니: 네크로미학, 스툐프, 그리고 아넥도트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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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9 "소비에트연방Soviet Union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고사하고요. 누구도 그걸 기대하지 않았어요. 어른이건 아이건 말이에요.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완전한 인상이 있었죠" 1994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유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안드레이 마카레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 출판된 회고록에서 그가 회상하기를, 수백만의 다른 소비에트 시민처럼 그 역시 영원한 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페레스트로이카(재건)의 개혁 조치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1986~1987년경 전까지는, 사회주의 시스템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다른 이들도 유사한 경험을 증언했는데, 그건 소비에트 시스템이 변함없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마카레비치와 많은 소비에트 인민은 곧장 또 하나의 특이한 사실을 깨달았다. 외견상 붕괴의 급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은 그들 스스로가 그것에 대비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시절을 특징짓는 아주 독특한 역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막상 그것이 실현되자 놀랍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개방, 공개 토론) 정책이 도입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급진적인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그것들 역시 국가 주도하에서 줄기차게 진행되었던 과거의 선례들, 그러니까 삶이 평소처럼 진행되는 동안 수없이 왔다 갔던 이전의 캠페인들과 다를 바 없을 거라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1~2년 만에 소비에트 인민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의식의 전환'과 '엄청난 충격'을 경험한 뒤, 서둘러 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기꺼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 순간을 다르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묘사하는 경험의 유형은 매우 유사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13 잡지를 읽고, 텔레비전 생방송을 시청하고, 똑같이 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급속도로 새로운 언어, 주제, 비교, 은유, 사상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그것은 담론과 의식의 심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이 과정의 결과로 1980년 후반에 이르자, 그토록 영원한 것처럼 보였던 국가사회주의가 어쩌면 종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광범위한 인식이 생겨났다. 체제 이행 이전에 소비에트연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탈리아의 문학 연구자 비토리오스트라다는 1980년대 후반에 소비에트 인민이 겪어야 했던 가속화된 역사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아무도 혹은 거의 아무도 붕괴가 ···· 그렇게 일찍, 그토록 빠른 속도로 찾아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 종말의 시점과 그것이 일어난 방식 모두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15 1980년대 후반에 관한 이와 비슷한 종류의 끝없는 다른 이야기들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많은 소비에트 인민에게 감히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막상 붕괴가 시작되자 곧장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흥분되는 사건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언제나 이미 체제 붕괴에 대비해왔으며, 사회주의 체제하의 삶이 흥미로운 역설들 가운데 형성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언제나 그 시스템은 정체된 동시에 난공불락의 것으로, 허약한 동시에 강력한 것으로, 황폐한 동시에 충만한 약속들로서 체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둘러 싼 매우 중요한 일련의 질문을 암시한다. 후기 소비에트 시스템의 본질은 무엇이며, 이런 역설들을 핵심으로 하는 삶의 방식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담론, 이데올로기, 사회적 관계, 시간의 차원에서 발생한 시스템 내부의 어떤 변화들이 이 역설을 예견했을까? 더 나아가 이 시스템 속에서의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본질은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은 어떤 형태로 코드화되고 유통되고 수용되고 해석되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붕괴를 가능하게 만든 조건에 관한 것이다.
27 사회주의의 핵심적인 모순 가운데 하나는 클로드 르포르가 근대성의 이데올로기 내부의 일반적 역설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 역설은 (계몽의 이론적 이념들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발화와 (근대국가의 정치적 권위의 실제 관심사 속에서 표명되는) 이데올로기적 통치 사이의 균열이다. 우리가 '르포르의 역설'이라고 부를 이 역설의 요지는, 이데올로기적 통치는 "자신의 기원에 관한 어떤 물음으로부터도 추상화되어 있어야만"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발화의 외부에 머물면서 그 발화를 불충분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65 이 책이 견지하는 관점은 권위적 담론의 수행적 전환과 뒤이은 그 담론의 규범화로 인해, 이 책에서 후기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195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포스트-스탈린 시기가 공유된 특징을 갖는 특정한 시기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다루는 몇몇 문헌은 30년의 기간을 더 짧은 두 시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해빙기라 불리는 흐루쇼프 개혁기와 침체기라 불리는 브레즈네프 시기가 그것이다. 1968년 여름에 소비에트연방이 체코슬로바키아에 개입한 사건이 흔히 두 시기를 상징적으로 나누는 사건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 두시기는 대략 두 세대와 상응하는데, 때로 (그들이 형성된 시기에 따라) '60년대 세대라고 불리는 윗세대와 이 책에서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라고 불리게 될 아랫세대가 그들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 아랫세대에 집중한다. 이들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에 성년을 맞은 사람들이다. 1980년대 중반에 소비에트 인구의 3분의 1가량 되는 대략 9천만 명이 15~34세의 연령대. 그러니까 내가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라고 부르는 집단에 속했다. 사회적 계층, 성별, 교육 수준, 민족, 직업, 지리적 위치, 언어가 이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경험한 방식에 차이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시기에 대한 특정한 이해, 의미, 과정을 공유하면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에 성인이 되었다.
549 실제로 소비에트 시스템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의 영속성에 관한 느낌은 실제로 전적인 오해가 아니었던 것이 소비에트 젊은이들에 의해 그토록 심오하게 재해석된 사회주의가 단지 국가 헤게모니의 수사학이 아니라, 창조적 세계와 상상의 공간들, 그리고 의미 있는 사회성의 형식들로 가득 찬 '정상적인(괜찮은)' 삶으로서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그 세계의 붕괴가 그토록 갑작스러운 것이었던 이유 역시도 이런 의미 있는 세계들이 삶을 그토록 복잡하고 충만하며 창조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며, 그 세계들 자체가 불변하는 권위적 형식들의 수행적 재생산에 의존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의 변화들이 시작됐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을 절대적으로 장악해버렸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이미 오래전에 발생하여 모두 그에 따라 살아오고 있던 것, 즉 시스템의 담론적 매개변수들의 돌연변이와 내적 전환을 메타담론을 통해 발설해버렸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후기 사회주의는 강력하고 역동적인 사회 시스템이 그것의 담론적 존재 조건이 달라졌을 때 어떻게 돌연 예상치 못하게 허물어져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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