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헹엘: 하나님의 아들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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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 마르틴 헹엘 - ![]() 마르틴 헹엘 (지은이),이영욱 (옮긴이)감은사 |
초판 서문
제2판 서문
약어표
제1장 문제
제2장 비판
제3장 바울서신의 증거
제4장 종교사학파의 주장
제5장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종교사
제6장 초기 기독론의 발생에 관한 문제
제7장 히브리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에 달린 자와 높여진 자
제8장 신학적 추론
고대 신명/인명 한국어 음역 및 색인
성구 및 고대 문헌 색인
18 수치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한 유대인 국사범과 이렇게 처형당한 자를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한) 선재했던 신으로 고백하는 것 사이의 모순 ─ 내가 아는 한 고대 세계에 이와 유사한 것은 없다 ─ 은 최초기 기독론의 발생이 난해했을 것임을 보여준다.
19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리스의 언어와 사상으로 형성된 고대 교회의 교리가 기본적으로 최초기, 곧 첫 20년 동안 발생한 견해를 단순히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35 바울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하나님의 아들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말할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의 중보자'로서의 기능을 말할 때 매우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44 "주 예수"(롬 10:9; 고전 12:3; 빌2:11)라는 형식구는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여 하나님에 의해 높여지고 다시 돌아올 예수에 대한 교회의 기본적인 신앙 고백에서 사용됐다. 이렇게 '주'는 예배와 신자들의 개인 생활 속에서 통용되는 칭호가 됐고, 반면 언어적으로 더 복잡한 형태인 '하나님의 아들'은 예외적인 경우로서 확실한 신학적 진술의 핵심부에서 다루어졌다.
48 더욱이 종교사학파가 그린 예수상과 불트만이 벨하우젠(Wellhausen)에 이어서 묘사했던 예수의 선포 사이에는 ─ 불트만은 예수의 선포를 '순수하게 유대교적이고 순수하게 예언자적인' 가르침으로 묘사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예수의 유대교로의 복귀를 완성시켰기 때문에 ─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80 스토아철학의 '로고스' 가르침은 2세기가 되어서야 변증가들에 의해 기독교 사상으로 수용됐다. 요한복음의 서론에 나타나는 '로고스'는 추상적·신적 “세상의 이성"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며, 스토아철학이 아닌 유대 지혜전승에 기초하고 있다.
90 예수에 대한 예배는 일종의 "극단적으로 기형적인 미신"으로서 그로 인한 처벌이 뒤따랐다. 그래서 기독론의 '헬레니즘화'는 가현설로 인도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의 인성과 죽음은 단지 “보이는 것"(가현)으로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144 기독론에 선재 개념이 도입된 것은 내부적 필요성 때문이다. 에버하르트 융엘이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판단했던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것은 신화론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결과론적이다."
147 약 50년 후에 나타난 요한복음 서론의 로고스 기독론은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과 전통적인 지혜 기독론이 결합된 것에 따른 논리적인 결과일 뿐이다. 이때 물론 항상 신화적인 사변의 위협을 받아 온 '지혜'(Sophia)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명료했던 '로고스'에게 길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148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었다"(요 1:1) 내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10:30)와 같은 요한복음 기독론의 핵심 진술은 신약 기독론의 목표이자 완성이다.
173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십자가의 수치와 분리될 수 없다. 네 번째 복음서 저자는 이 사상을 고전적인 형태로 묘사했다. 곧, 십자가에 달린 자가 높여진 자라는 것이다(요 3:14; 8:28). 반대로, 그리스어를 사용했던 누가가 선재하는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 및 십자가의 구원 의미와 모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교회의 기독론을 둘러싼 긴장감 넘치는 투쟁은 이 역설적인 변증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174 전통적인 그리스식 신개념에 있어서, 선재하는 아들의 고난 개념은 견딜 수 없이 거리꼈던 것이었고, 여전히 거리끼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발전했던 주후 2세기의 식자들도 견딜 수 없는 이 역설적인 기독론 고백에 직면하여 영지주의적인 가현설(Doketismus)로 도피했다.
177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시를 드러냈던 최초기 기독교의 묵시론적 전체 틀은 처음부터 기독론의 발전을 다른 여지없이 그 방향으로 향하도록 밀어붙였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자기 고지(Selbstmitteilung), 곧 메시아 예수 안에서 말씀하고 행동하신 바를 더할 나위 없이 전적으로 궁극적인‘종말론적인’-형태로 명시하는 데 있었다.
182 '하나님의 아들'은 고정된, 상실될 수 없는 기독교 신학의 메타포가 됐고, 그 메타포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곧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예수의 기원, 그와 하나님의 각별한 관계, 그의 참 인간 됨(Menschlichkeit)을 모두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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