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곰브리치: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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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리처드 곰브리치 - ![]() 리처드 곰브리치 (지은이),한대성 (옮긴이)CIR(씨아이알) |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루트리치 불교비평시리즈
옮긴이의 말
개정판 입문서
서 언
약 어
I 논쟁, 방편, 비유 그리고 직해주의
Debate, Skill in Means, Allegory and Literalism
II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브라만 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생겨난 업 이론
III 은유, 비유 그리고 풍자
Metaphor, Allegory, Satire
IV 고대 논쟁의 재탐색:
팔리 경전에 나타난 정(定)에 대한 혜(慧)의 승리
V 앙굴리말라는 누구였는가?
Who was Aṅgulimāla?
옮긴이의 말
본 작업은 기본적으로 불교연구자들의 본질주의적 이해방식과 연구태도에 철퇴를 가하는 목적과 함께 문헌학적 지식과 사회철학을 어떻게 불교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저자는 부제를 '초기불교 가르침의 연기적 발단'이라고 명명하였다. 다수의 불교연구자들이 학문의 대상인 불교에 본질주의적 태도를 가지는 이유는 개별 학자의 자질 때문이라기보다, 불교학이 종교학, 특히 살아 있는 종교에 관한 학문이라는 특징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역자 역시 십여 년 전 본 저서를 처음 접할 때 일종의 반감이 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재번역하면서 숙독할 때 그 어떤 반감도 마음속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역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불교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은 먼저 종교로서의 불교에 흥미와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종교로서의 불법에 대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본질주의와 상통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로는 연구자 개개인이 불교단체와 협력하게 되는데, 비본질주의적 접근방법은 그들로부터 '이단','신성모독' 혹은 '불경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해주의는 literalism의 번역어로 붓다의 추종자나 주석가들이 단어의 의미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화자의 의도를 무시한 오류를 일컫는다. 반면에 교조적 직해주의(scholastic literalism)는 화자가 의도하지 않았거나 과거에는 구분하지 않았던 별개의 동의어에 차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이른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고 명명된 제2장은 저자가 명시적으로 밝혔듯 포퍼의 본질주의-비본질주의 이론을 브라만교와 불교에 각각 적용한 것이다. 저자는 포퍼의 이론을 빌려 본질주의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지만 비본질주의는 그것의 반립인 작용에 관한 물음이자 유명론이라 설명하고, 불교에 만연한 유명론을 실례로 들며 불교가 비본질주의라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불교는 우파니샤드의 존재론에 반대해 연기라는 작용에 관한 철학을 탄생시켰고, 마찬가지로 불교의 업이론 또한 그들의 존재론에 대한 대응으로써 발생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불교의 경전 체계자들은, 곰브리치에 따르면, 불교의 성자가 브라만보다 우월하기 원했기에 브라마계보다 더 높은 것을 가진 불교의 우주관을 만들었다. 가장 아래인 욕계 위에는 색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브라마계에 상응하고, 육체 없이 높은 명상상태의 마음만 있는 가장 높은 단계는 무색계인데, 그 계위에서는 열반의 성취가 확실시된다. 불교 우주관의 특징은 해당 세계가 명상상태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단계로 구성된 명상의 성취상태는 가장 낮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욕계를 초월한다. '브라만과 함께 살다'라고도 불리는 사무량심은 브라만의 우주관과 문자적 방식으로 상응하고,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명목적으로 브라마계에 환생한다. 하지만 불교경전 내에서 그것은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수직화된 구조로 나타나는 어느 한 경전에서는 사무량심이 '해탈'이라 불리는 여덟 명상 상태의 셋째부터 여섯째에 상응한다. 즉, 자는 '상서로움', 비는 '무한한 공간', 희는 '무한한 의식', 그리고 사는 '무한한 공성'에 각각 해당한다. 우주관에서 '상서로움'의 상태는 브라마계보다 위에 존재하며, 색계와 동일한데, 나머지는 낮은 것이 무색계에 다다른다. 깨달은 이의 주관적 상태가 객관적 상관물을 가진다는 초기불교의 사상은, 저자에 따르면, 소우주와 대 우주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인도고대 사상의 불교적 형태이다.
정과 혜의 패권경쟁은 ceto-vimutti와 pain-vimutti에 교조적 직해주의의 오류를 범한 것과 더불어 직후에 서술된 관련된 경전의 변형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은 원래 동일한 지시대상을 가진다는 것을 저자는 여러 실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초전법륜에서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ceto-vimutti로만 지시하고, paina-vimutti란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후자는 나중에 계위적으로 월등하다고 여겨진다. 반면에 일부 경전에서 그 두 해탈을 성취하는 사람의 차이에 대한 물음에 붓다가 근의 부등함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 그 두 개의 해탈이 차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근거라는 주장에, 저자는 이 본문이 교조적 논쟁의 산물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저자는 다시 열반에 관한 상투적 표현인 '누출을 고갈시킴으로써 혹자는 바로 이생에서 무루의 마음의 해탈과 직관에 의한 해탈을 깨닫고, 목격하고, 성취하고, 머무른다'는 문장 속에서 그 둘은 같은 것을 지시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유사하게, 다른 경구인 '그는 그렇게 알고 봄으로써 그의 마음은 애욕의 누출로부터, 존재의 누출로부터 해방되었고, 무명의 누출로부터 해탈되었다'에서 '안다'와 '봄'이라는 용어는 그 사람의 직관을 가리키는데, 그것들이 현재 분사이기에 cittam vimmutti와 동시발생적임을 지적하며 그 둘이 별개가 아님을 논증한다. 곰브리치는 그러한 명상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 pariñāvimutti의 재정의가 논쟁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승단의 변증론 때문에 일어난 서술적 사고라 생각하는데, 그 주장을 이어지는 절에서 보여주는 본문의 대조연구를 통해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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