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향: 영국사 -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책 머리에
서문

제1부 구조
1 다민족 국가, 영국의 탄생
2 영국인의 정체성
3 통치제도
4 제국
5 개혁가들
6 지주와 중간계급
7 노동게급
8 미래를 향하여

제2부 시간
1 여명 : 로마/앵글로색슨 시대
2 태동 : 중세
3 도약 : 튜더 시대
4 혁명 : 스튜어트 시대
5 성숙 : 긴 18세기
6 황금기 : 1815-1870
7 조락 : 1870-1914
8 교차로에서 : 1914-

<표1> 영국의 역대 국왕
<표2> 영국의 역대 수상
참고 문헌
인명 색인

 


9 영국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99년 조사에서 유럽의 젊은 이들은 영국을 다음의 5개 요소와 결부시켰다. 즉 셰익스피어, 런던, BBC방송, 비틀스, 그리고 왕실이 그것이다. 이런 피상적 인상 외에 영국의 역사에는 '최초'와 '최대'라는 단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은 18세기 후반부터 한 세기 이상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발달시키고,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국을 거느렸다. 그만큼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높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역사에서 유혈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역사는 이를테면 모범생의 역사이다. 대규모 유혈혁명을 겪지 않은 채 근대 세계를 수백 년 동안 선도해왔던 것이다. 

11 영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수천 년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즉 영국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섬이 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24만 5,00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6,044만 명(2005년 현재)이 살고 있는 온대성 기후의 영국은 가장 큰 섬인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9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브리튼에는 20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에 처음으로 인류가 이주했다. 이때 브리튼은 아직 유럽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약1만 년 전 대빙하시대가 끝나고 빙하가 물러나면서 섬이 되었다. 

영국의 첫 번째 특징은 섬나라라는 사실이며, 이것이 영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우선 국민국가로의 발달이 대륙의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빨랐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섬이기 때문에 국가의 통치를 중앙집중화하는 것이 지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수월했다. 중앙집중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그것은 중앙으로부터 파견된 관료가 직접 통치하는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다. 잉글랜드에서는 지방 유력자들이 왕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소위 '합의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고, 관료제는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19세기 초에도 중앙정부로부터 녹을 받는 관리의 수는 1만6,000명에 불과했으며, 이들조차 주로 세금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영국에는 거대한 상비군이 필요 없었고, 따라서 과세수준이 대륙국가들에 비해서 두드러지게 낮았다. 17세기 초 영국이 징수한 세금의 총액은 프랑스의 1/3-1/4 정도에 머물렀다. 헨리 8세 때부터 증강되기 시작한 해군은 1588년 무적함대의 격파로 그 위력을 과시했는데, 지상군이 평화시에 무용지물일 때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선박들은 전시에는 군함으로, 평화시에는 무역에 이용되는 상선이었다. 선박은 건조 비용이 상당하지만 유지비용은 지상군보다 더 낮았다. 해군은 또한 절대왕권의 권력행사의 도구가 되지 않아 의회가 해군의 증강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비약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과세수준이 낮았으므로 부유층의 재산축적이 가능했고, 전시에는 비교적 국민의 큰 불만 없이 전시재정이 동원될 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영국의 인구는 프랑스의 반에도 못 미쳤지만 세수입의 절대액에서는 프랑스를 능가했다. 상비군이 없었고 관료제가 미약했다는 사실은 곧 절대왕정을 지탱해주는 두 기둥이 영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대륙국가들보다 민주주의의 이른 발달에 기여했다. 영국 역사에서는 튜더 왕조를 절대왕정이었다고 간주하지만, 그것은 외국의 절대왕정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근본적인 한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섬나라라는 사실이 영국의 역사를 이처럼 근본적으로 조건지었던 것이다. 

영국의 두 번째 특징은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웨일스와 합병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을 형성할 때까지는 영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으로 구분하여 칭할 것이다. 웨일스는 이미 16세기에 잉글랜드에 합병되었다. 연합왕국을 이루기 전에 각 지역은 각기 다른 기원과 역사를 가지며 서로 갈등과 투쟁을 벌였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각기 다른 역사를 모두 서술하는 것은 이 책의 목표를 넘어선다. 따라서 책의 제1부 제1장에서 각 민족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후에는 주로 잉글랜드의 역사를 다루기로 한다. 

13 영국의 세 번째 특징은 근대 세계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의회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발달시킨 나라라는 것이다. 잉글랜드 의회는 13세기 이래 존재하는 단 하나의 회의체로서 통치자와 피통치자, 중앙과 지방 사이의 효과적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 즉 왕과 국민의 접촉이 의회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의회는 처음에는 다양한 신분의 국민 모두를 대변하는 집단이 아니었고, 정기적으로 소집되지도 않았으며, 왕에 대한 반대세력이 아니라 왕의 정부의 일부분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점차 다양한 신민들을 대표하게 되었고, 왕권의 견제기관으로 발달했다. 의회가 진정한 영국민 전체의 대의기관이 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그것은 지주 엘리트로부터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참정권이 확대되면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혁명적이라기보다 점진적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영국의 헌정 발달에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폭력이 주요 역할을 했다. 14-15세기의 장미전쟁, 17세기 중엽의 혁명, 왕의 처형과 공위기간 등은 대륙인들이 공포의 눈으로 바라본 과격한 사건들이었다. 따라서 영국 정치가 보여주는 지속성이란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1688년 이후 영국은 크게 피를 흘리지 않은 채 근대화를 이룩했고, 점진적 개혁이 지속되었다. 참정권만이 아니라 시민권의 발달에서도 영국은 다른 나라들을 앞섰다. 영국민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일찍이 발달시킨 자유에서 국민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요인을 찾았다. 즉 모든 영국민은 자유인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으로서 자유롭기 때문에 영국민은 자유로우며, 이것이 영국민을 다른 나라와 구별짓는 가장 큰 요인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민정신은 유럽에서 최초로 시민사회를 발달시킴으로써 더욱 강해졌는데,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영역은 영국의 경우 이미 17세기 말-18세기 초부터 시작되었고, 시민사회와 더불어 국민의식도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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