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델로 로소: 베를린 국립 회화관

 

베를린 국립 회화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4 | 윌리엄 델로 로소 베를린 국립 회화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4 | 윌리엄 델로 로소 - 10점
윌리엄 델로 로소 (지은이),최병진 (옮긴이)마로니에북스

서문
베를린 국립 회화관
작품들
미술관 안내
화가 및 작품색인

 


8 찬바람이 불어오던 1998년 아침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하인츠 힐머(Heinz Hilmer)와 크리스토프 새틀러(Christoph Sattler)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견고하고 장엄한 건축물을 기획했다. 이들은 베를린의 쿤스트포룸 구역에서 베를린 국립회화관을 기획했다. 이곳에는 냉전 시대에 동베를린에 있었던 보데 미술관(Bode-Museum)과 서베를린에 있었던 다렘 미술관(Museum in Dahlem)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고대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명화 컬렉션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의 점령지였던 동베를린에 위치한 보데 미술관의 소장품들과 미국이 점령했던 서베를린에 있던 다렘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것이다. 현재 미술관은 50여 개의 전시실이 위치한 2층에서만 900여 점의 그림을 전시하며, 1층에 있는 스튜디엔 갤러리에는 400여 점의 그림이 걸려 있다. 관람객들은 통일성 있는 2km 정도의 동선을 따라서 산책이 가능하며 조토, 카라바조, 판 에이크, 멤링, 뒤러,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베르메르와 같은 유럽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구 미술사의 전통을 이해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베를린 국립 회화관은 현재 소장품에 비해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한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1,600여 점의 작품들이 수장고에서 전시를 위해대기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베를린 서쪽에 위치한 쿤스트포룸 지역에 건설된 베를린 국립회화관은 다렘 미술관의 컬렉션을 기준으로 기획되었다. 이미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지나는 동안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오랜 검토 후에 1986년 힐머와 새틀러는 새로운 미술관을 다렘 미술관의 작품 수에 맞춰 적절한 규모로 기획했다. 하지만 이들이 역사적인 변화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미술관의 기획도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86년 건립을 시작했던 미술관이 완성된 후에 여러 박물관이 통폐합되는 과정을 겪었고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었던 두 미술관의 컬렉션이 베를린 국립회화관의 지붕아래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새로운 회화관은 규모가 컸지만 역설적으로 공간은 부족하게 되었다. 다행히 회화관 내부에는 발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의 분수 조형물만 설치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협소하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베를린 국립 회화관의 새로운 건축이 주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벽에 창문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을 양편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천장에 배치된 조명은 작품 감상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은 매표소를 지나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볼 수 있는 과리노 과리니(Guarino Guarini)의 설계가 연상되는 돔이 있는 긴 회랑으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관람객에게 두 개의 동선이 제시된다. 우측 동선을 따라가면 중세부터 17세기까지 연대순으로 독일, 플랑드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좌측 동선을 따라간다면 동일한 연대로 기획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몇몇 프랑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미술관은 다른 색상의 카펫트를 통해 지리적인 기원을 알려준다. 독일어 안내문이 있지만 이 공간은 별 다른 안내가 없어도 눈이 가는 대로 수많은 과거의 명화를 보고 관찰할 수 있다. 조토의 <성모의 죽음>이 보이고, 다른 편엔 마사초의 <카르미네 교회의 대좌(제단화)>가 놓여 있다. 다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 히에로니무스>가 보이고 만테냐의 패널화 세 점과 라파엘로의 <솔리의 성모>와 <테라 누오바의 성모>를 보게 되며, 티치아노의 <베누스와 오르간 연주자>, 카라바조의 <승리의 큐피트>가 뒤를 잇는다. 다른 편에는 티에폴로의 명화들과 카날레토의 베두타(vedute)들도 보인다.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전시실로 들어가면 판 에이크의 작품 세 점과 페트루스 크리스투스, 판 데르 베이든, 판 데르 후스, 브뢰헬, 루벤스, 베르메르, 렘브란트(이 중에는 <금빛 투구를 쓴 남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한때 베를린 박물관의 상징이었으며, 유파에 따라 지금의 방에 전시되었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뒤러와 홀바인, 벨라스케스와 무리요, 그리고 라 튀르와 샤르댕의 작품이 펼쳐진다. 

한편 수장고로 이어지는 계단의 천장에는 원래 베네치아의 모체니고 팔라초(Palazzo Mocenigo)에 있었던 세바스티아노 리치(Sebastiano Ricci)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탈리아는 이 작품들의 반환을 요청했고 독일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벌였다. 이 작품은 1941년 안드레아 디 로빌란트(Andrea di Robilant)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에게 판매한 것이었다. 독일의 독재자는 이 작품을 가지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고, 린츠 박물관에 기증했었다. 이탈리아의 보타이(Giuseppe Bottai)는 이 작품의 판매를 반대했지만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압력으로 이 작품을 넘겨야 했다. 오랜 법정 공방 후에 판사들은 독일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이 작품은 베를린 국립 회화관에 남았다. 어쩔 수 없지만 이곳을 방문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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