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뒤 부셰: 바흐 - 천상의 선율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9

 

001 마르틴 루터 안에서의 요한 제바스티아 바하 
002. 수련기 
003. 위대한 오르간 연주자 
004.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005. 칸토르 바흐 
006. 음악의 헌정 
007. 기록과 증언 
008. 레코드 목록

 



92 음악감독의 의무는 막중했다. 시의 모든 교회들이 사용할 음악 프로그램을 짜야 했고, 매주 일요일과 축일에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네 시간 동안 거행되는 예배를 위해 모테트나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다. 행사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외에도 성 금요일을 위한 수난곡, 장례식을 위한 모테트, 결혼식 음악, 주문받은 오르간곡 등을 작곡해야 했다. 

새로운 일에 열중할 때면 늘 그랬듯이 바흐는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했다. 라이프치히에서 맞은 최초의 성탄절을 위해 그는 화려한 칸타타를 세 곡 내놓았다. 동시에 만과에는 신작 <마니피카트>가 연주되었다. 숱한 음악 외적인 의무를 수행하면서 그는 작곡할 시간을 따로 내야만 했다. 무려 300곡에 가까운 뛰어난 칸타타들은 모두가 이러한 의무 속에서 나온 것이다. 아쉽게도 그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곡은 200곡이 채 안 된다. 나머지 곡들은 소실되었거나 바흐 사후 프리데만이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대림절과 사순절의 마지막 3주간의 주일은 이러한 과중한 일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성탄절 부활절에 사용할 특별히 긴 예배음악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116 드레스덴 조약 이후 '대왕'으로 불린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의 공식적인 반주자로 일해 온 에마누엘을 통해 여러 해 바흐를 초빙해 오려 했다. 그러나 바흐는 응답을 계속 미뤄 왔다. 1745년, 프로이센 군대가 라이프치히를 포위했다. 전유럽을 휩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중 독일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였다. 주변의 들판은 방화와 피로 물들었다. 전쟁을 혐오한 바흐는 그의 후기 칸타타 하나를 평화의 왕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그는 군주들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리드리히 2세의 궁이 있는 포츠담으로 가기로 계획했다. 그것은 그 해에 태어난 에마누엘이 낳은 자신의 손자 아우구스투스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747년 5월 7일 저녁, 궁정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연주회가 열렸다. 음악애호가이자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인 프리드리히는 협주곡을 작곡하여 본인이 직접 독주부를 담당하기까지 했다. 바흐가 도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프리드리히는 음악가들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여러분, 노(老) 바흐 씨가 도착했습니다!" 손님을 맞은 왕은 조금 흥분하여 바흐를 궁의 이방 저방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이 구입한 질버만 유명한 악기 제조업자이 만든 피아노포르테 일곱 대를 보여주면서 바흐에게 일곱 대 모두를 연주해 보라고 했다. 바흐는 즉석에서 한 대씩 차례로 연주하여 프리드리히와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고는 왕에게 자신이 푸가를 만들 테니 주제를 제시해 보라고 했다. 왕이 주제를 건네자, 바흐는 즉흥적으로 매우 활기차고 치밀하게 3성부로 곡을 전개하여 모든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그의 연주에 깊이 감동한 프리드리히는 그에게 같은 주제로 6성부 푸가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바흐는 이번에는 자신이 주제를 고르겠다고 했다. 어떠한 주제는 그와 같은 난이도로 연주하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웅장하고 복잡한 6성부 푸가를 즉석에서 연주했다."라고 그 자리를 목격한 프리테만은 기록했다. 

프리드리히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바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그는 왕이 제시한 주제를 가지고 순수 다섯으로 구성된 곡들을 작곡했다. 3성부의 푸가와 정부의 푸가, 트리오 소나타와 10개의 카논 등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난해한 곡의 악보 첫머리에 바흐는 quaerite, et invenietis(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써넣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주제가 그토록 뛰어난 변주곡들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바흐는 이 변주곡들을 '음악의 헌정'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어 인쇄하여 1747년 7월 7일 왕에게 헌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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