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파루티: 모차르트 - 신의 사랑을 받은 악동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

 

1. 신이 주신 재능
2. 신동에서 작곡가로
3. 음악가와 하인
4. 깨져버린 환상
5. 이제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6. 볼프강을 위한 레퀴엠
기록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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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773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용솟음치듯 창작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당시 모차르트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우선 빈에서 작곡을 의뢰받은 토비아스 필리프 폰 게블러의 영웅적인 드라마 <이집트 왕, 타모스>를 위한 합창이 곁들여진 부수 음악이었다. 그것은 <마술피리>를 작곡하기 18년 전으로, 이미 그는 선과 악, 빛과 어둠 간의 대결에 몰두해 있었다. 이어서 교향곡 제25번 K. 183>과 <교향곡 제28번 K.200>을 작곡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모차르트의 진정한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교향곡 제25번에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G단조를 사용하여 깊은 비극적 숨결이 느껴지고, 또 그 얼마 전에 작곡된 것으로 보이는 교향곡 제28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열여덟 살의 작곡가에게서 나오는 이런 강렬하고 놀라운 힘은 1774년에 작곡된 <교향곡 제29번 K. 201>에 계속 이어졌는데, 이것은 단순한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서곡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음악에서의 교향곡과 확연히 달랐다. 

이 단계에서 작곡가로서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창조적 흐름의 방향을 바꾸었으며 또한 음악 장르에도 영향을 주었다. 귀엽고 오락적인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독창성은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한층 뚜렷한 모습으로 확인되었다(그 이전의 네 개 협주곡은 이미 언급했듯이 라우파흐, 쇼베르트, 바흐 들의 작품을 적용한 것에 불과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K. 175>는 오랫동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남았는데, 마지막 부분을 고쳐 쓰긴 했지만, 1782년 빈에서 이 작품을 다시 연주하기도 했다. 자신만만한 약동감과 충만한 기쁨은 진정 생명력 넘치는 젊은이의 작품이라 할 만했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선율, 단순한 반주자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오케스트라 취급법은 숙달된 거장의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다. 

126 <레퀴엠> 작곡
모차르트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에게 남아 있는 힘을 위대한 두 작품. 슈타틀러를 위한 <클라리넷 협주곡 K.622>와 <레퀴엠>을 위해 쏟아 부었다. 이미 <티투스의 자비>를 쓸 때도 그러했듯이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그를 도왔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결국 미완으로 남았다. 

11월 말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손발이 붓고 부분적으로 마비가 오기도 했다. 볼프강은 죽기 전날까지 작업에 전념했다. 그의 악보는 라크리모사의 여덟 번째 마디에서 끝나 있었다. 12월 4일, 병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볼프강은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침착했다. 신부들은 프리메이슨 단원의 임종을 지켜보기를 주저했다. 밤늦게 혼수상태에 빠진 볼프강은 12월 5일 새벽 1시를 넘기지 못하고 영원히 잠들었다. 

장례식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처럼 검소하게 치러졌다. 절친한 친구 몇 명만이 고인을 배웅했다. 콘스탄체는 완전히 지쳐 버려 장례행렬을 따라올 수도 없었다. 시신은 십자가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공동분묘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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