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김세라: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유시민.김세라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유시민.김세라 - 10점
유시민,김세라 (지은이)은빛

인사말 진실 찾기의 긴 여정 문정현(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
프롤로그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나 / 유시민
1장 하얼빈의 어린이, 평양의 여고생
2장 한국전쟁을 견뎌낸 피난민
3장 행복한 ‘남북통일 가족’
4장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5장 믿음으로 싸웠다
6장 마치지 못한 노래
7장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에필로그

 


인사말 진실 찾기의 긴 여정
4 우홍선 씨의 부인 강순희 님은 참으로 고귀한 분입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정의와 진실을 외쳤고, 또한 좌절과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통 중에 최악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혁당은 박정희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작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를 가까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천주교 세례를 받고 더 큰 힘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식민지 백성으로 불우하게 보내야 했으며, 해방을 맞았지만 새로운 국가는 그를 편히 두지 않았고 결국은 전쟁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은 극복의 대상이지 두려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여자의 몸으로 당시로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다니던 한국은행에 입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다정다감한 남편을 만나 새로운 행복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셋 얻어 토끼 가족 같은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되는 줄만 알았는데, 남편이 어느 날 '간첩'이 되어 감옥에 갇히던 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결심합니다. '남편은 억울하게 갇혔다.' '남편은 무죄다.' 외치기 시작합니다. 우선 도서관을 찾아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게 되었고, 정치인들과 종교계 등 사회 저명인사를 찾아다니며 남편은 무죄다. ''인혁당 재판은 엉터리다.’ 공판조서마저 조작되었다.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그 목소리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고, 드디어 신문 지상에서도 인혁당 사건의 조작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으로 인혁당 사건의 조작 사실을 공개적인 성명서를 통해 세상에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만 197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토록 믿었던 민주주의는 그를 배신했고, 공명정대한 재판을 해 달라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목소리는 묻혔으며, 월요모임과 목요기도회 등에서 하느님께 외친 그의 간절한 소망은 외면당하는 듯했습니다. 

"남편 죽고 나니까 이놈의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았지. 사건을 조작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결국 죽였잖아요.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거야. 얼굴에 화장하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뭐 좋다고 저러고 다니나 싶고, 사람들이 다 이상해 보이고, 몇 달을 누워 있었어요. 못 일어나겠더라고." 본문 197쪽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다시는 못살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는데, 저도 사형 소식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사형수의 부인들이었습니다. 남편도 없는 데다가 간첩의 가족이라는 사회적인 비난이 그들에게 쏟아질 텐데 어떻게 잘 버텨 나갈 수 있을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산소에 가다 푸른 하늘을 보면 남편 넋이 거기 있는 것 같았어요. 진짜 그런 느낌을 받았어. '어쩌면 저 푸른, 당신의 푸른 넋이 머무를 것 같은 저 푸른 하늘에 나 이제, 나 외롭다고 응석부리고 싶다.' 뭐, 그런 글을 쓰기도 했어요. 그렇게 남편이 그리우니까 박정희를 미워하는 마음도 커졌어요. 내가 산소에서 어떻게 한 줄 알아요? 박정회 살인마! 천벌을 받아라!' 세 번씩 외쳤어요. 한 번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꼭 세 번 했어.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쳐다봤지. 거기서 일하는사람들은 내가 맨날 그러니까 다 알았고." 본문 200쪽 

강순희 님에게는 그런 하루하루가 남편이 무죄임을 다시 한번 더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하여 그 긴 32년의 세월이 지나 2007년 재심재판부는 인혁당 사형수들이 무죄였다고 확정을 지었습니다. 저도 그의 노력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위원회'를 지금은 작고하신 이돈명 변호사님과 함께 만들어 재심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렇게 하여 2000년에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드디어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였던 거죠. 

제 다리에는 1975년 4월, 그 고통스러운 현장의 기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강순희 님을 비롯해 사형수 가족들과 한마음 한 뜻이었기에 아픈 다리를 일으켜 세워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재심 재판부의 판결을 듣던 순간에는 마치 험난한 진실의 바다에서 거친 폭풍우를 뚫고 무사히 귀항한 선장의 마음과 흡사했습니다. 그제야 제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순희 님의 삶은 진실 찾기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기록이 세상의 빛을 봅니다. 이전에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책도 여러 권 나왔지만, 이렇게 그 사건의 기록 속에 묻혔던 한 개인의 일상들을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드러낸 책은 처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사가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세세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 큰 힘을 쏟아 주신 유시민 작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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