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 | 한길그레이트북스 98 | 루트비히 포이에르 바흐 외 기독교의 본질 | 한길그레이트북스 98 | 루트비히 포이에르 바흐 외 - 10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은이),강대석 (옮긴이)한길사

폭풍처럼 몰아친 책 『기독교의 본질』|강대석
제1판 서문
제2판 서문
제3판 서문
서론
제1장 일반적인 인간의 본질
제2장 일반적인 종교의 본질
제1부 종교의 참된, 인간학적 본질
제3장 오성의 본질로서의 신
제4장 도덕적 본질 또는 율법으로서의 신
제5장 육화의 비밀 또는 심성본질로서의 신
제6장 고통받는 신의 비밀
제7장 삼위일체와 성모의 비밀
제8장 로고스와 신적 형상의 비밀
제9장 신 안에서 세계창조 원리의 비밀
제10장 신비주의 또는 신 속의 자연의 비밀
제11장 섭리와 무에서의 창조의 비밀
제12장 유대교에서의 창조의 의미
제13장 심정의 전능 또는 기도의 비밀
제14장 신앙의 비밀---기적의 비밀
제15장 부활과 초자연적 탄생의 비밀
제16장 기독교적 그리스도 또는 인격신의 비밀
제17장 기독교와 이교의 차이
제18장 독신생활과 수도원 생활의 기독교적 의미
제19장 기독교적 천상 또는 인격의 불멸성
제2부 종교의 참되지 못한, 신학적 본질
제20장 종교의 근본적인 입장
제21장 신의 실존에 나타나는 모순
제22장 신의 계시에 나타나는 모순
제23장 신의 본질 일반에 나타나는 모순
제24장 사변적 신론에 나타나는 모순
제25장 삼위일체에 나타나는 모순
제26장 성체에 나타나는 모순
제27장 신앙과 사랑 사이의 모순
제28장 결론
부록: 설명.주의사항.인용구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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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나는 지금까지 여러 저술 속에서 종교와 기독교, 신학과 사변적 종교철학에 관한 생각들을 분산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그때그때 잠언적이고 논쟁적인 방식으로 말해왔다. 나에게 호의를 가졌든 갖지 않았든 간에 독자는 내가 이러한 생각들을 이 책 안에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생각들이 성숙하게 되었고, 철저하게 되었고, 근거를 얻게 되었다. 곧 어떤 것이 적절하고 필요한가에 따라 나의 생각들이 보존되고, 개혁되고, 제한되고, 확장되며, 온건하게도 되고 첨예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들이 여기서도 결코 완전하게 다 논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은 주의해주기 바란다. 그 이유는 내가 모든 애매한 일반론에 혐오를 느끼며 다른 모든 저서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다만 아주 한정된 주제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독자들은 다음의 것을 주의해주기 바란다. 이 책에는 기성종교(positive Religion) 또는 계시의 철학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만 있다는 것이다. 뒤에 밝혀지겠지만, 이 책에는 기독교적 신화학이 지니는 유치하고 공상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철학을 위한 요소나 사변적인 종교철학이 가지는 현학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철학을 위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독교적 신화학은 역사에서 전해지는 모든 옛날이야기를 그럴듯한 사실처럼 꾸며놓는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이전의 스콜라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앙조항을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진리로서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철학을 위해 종교를 희생하고, 기독교적 신화학은 종교를 위해 철학을 희생한다. 전자는 종교를 사변적 자의 노리갯감으로 만들며 후자는 이성을 공상적·종교적 유물론'의 노리갯감으로 만든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을 종교가 말하게 하는데 스스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 훨씬 낫다. 기독교적 신화학은 이성 대신에 종교가 말하게 한다. 자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종교철학은 종교의 형상들(Bilder)을 자기자신의 사상으로 간주하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신화학은 종교의 형상들을 사실로 간주한다.  

철학과 종교는 일반적으로 양자의 특수한 차이를 제외하면 동일하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곧 사유하고 있는 본질과 믿고 있는 본질은 동일한 하나의 본질이므로 종교의 형상이 동시에 사상과 사실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모든 일정한 종교나 모든 신앙방식은 다 같이 하나의 사고방식임이 자명하다. 어떤 인간이 적어도 자신의 사유능력이나 표상능력에 모순되는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적을 믿는 자에게 기적은 이성에 모순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자연적인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게 기적은 아주 자연스러운 표상인 신의 전능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결과다. 신앙에서는 무덤에서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아주 분명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태양이 진 뒤 다시 떠오르는 것이나, 겨울 다음에 봄이 깨어나는 것이나, 땅속에 심어진 씨앗에서 식물이 싹트는 것과 같이 분명하고 자연스럽다. 자신의 신앙과 조화를 이룰 수 없고 그렇게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따라서 신앙이 이미 인간에게 스며들어 있는 진리임을 그만두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신앙 또는 종교와 이성 사이의 모순이 아주 강하게 표현된다. 스스로와 일치하는 신앙도 물론 자신의 대상을 불가해한 것으로, 이성에 모순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이러한 신앙은 기독교적 이성과 이교적 이성, 계시된 이성과 자연적 이성을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할 뿐이다. 신앙의 대상은 불신에 대해서만 반(反)이성적이다. 이들 대상을 믿는 자는 그 진리성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들 대상이야말로 그들에게 최고의 이성으로서 통용된다. 

기독교적 또는 종교적인 신앙과 기독교적 또는 종교적인 이성 사이의 이러한 조화 가운데서도 신앙과 이성 사이의 본질적인 구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신앙도 역시 자연적 이성을 무시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적 이성은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이성, 일반적 이성. 일반적 진리와 법칙을 지니고 있는 이성일 뿐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 신앙은 또는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이성은 특수한 진리의 총체, 특수한 특권 및 예외의 총체며, 따라서 특수한 이성이다. 더 간단하고 날카롭게 말하면 이성은 규칙이며 신앙은 규칙의 예외다. 

46 제1부에서 나는 신학의 참된 의미가 인간학이며 신적인 본질의 술어와 인간적인 본질의 술어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 따라서 신적인 주어 또는 본질과 인간적인 주어 또는 본질 사이에도 역시 어떤 차이도 없고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학적인 술어의 경우에서와 달리 술어가 주어의 우연적인 특성, 곧 그 속성이 아니라 주어의 본질을 표현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술어와 주어 사이에는 아무 구별도 없으며 술어를 주어의 위치에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연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이나 포르피리우스의 서론을 제시하려 한다. 제2부에서 나는 이와는 반대로 신학적인 술어와 인간학적인 술어 사이에 만들어진 또는 오히려 만들어져야 할 구분은 무나 무의미로 끝나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합당한 예를 들어보자. 제1부에서 나는 종교에서의 신의 아들이 실제의 아들이라는 것, 곧 인간이 인간의 아들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적인 관계를 신적인 관계로서 파악하고 긍정하는 종교의 진리 또는 본질을 찾아낸다. 제2부에서는 이와 반대로 신의 아들은 종교 자체에서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그 반성에서 자연적 인간적 의미에서의 아들이 아니라 자연과 이성에 모순되는, 그것과 전적으로 다른, 무의미하고 비이성적인 방식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인간의 감관이나 오성을 부정하는 곳에서 나는 종교의 비진리성과 부정적인 면을 발견한다. 따라서 제1부는 신학이 인간학이라는 직접적인 증명이며 제2부는 간접적인 증명이다. 그러므로 제2부는 필연적으로 제1부로 되돌아간다. 제2부는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제2부는 다만 앞에서 밝혀진 종교의 의미가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반대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제1부에서는 주로 종교를 취급하고 제2부에서는 신학을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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