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첫시간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첫 시간
❧ 역사적 태도와 통찰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서 내 판단의 근거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


❧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
통사: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
주제사, 부문사: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 책 읽기
각국사: 각국의 역사를 다룬 책 읽기, 연표와 지도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책들 읽기
역사·역사철학 고전
함께 읽는 책: ⟪옥스퍼드 세계사⟫, 교유서가, 2020.

 

2021.07.17 역사 고전 강의 — 첫시간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이 책의 해설을 시작하겠다. 역사고전강의는 2011년에 강의를 하고, 2012년에 출간을 하였다. 사적인 인생사에서 보면 역사고전강의는 굉장한 책이다. 본인에게는 중요한 책이다.

우선 《역사고전 강의》를 해설하기 앞서 왜 이것을 하는지 말해보면 《역사고전강의》는 《철학고전강의》와 달리, 《철학고전강의》에서 다룬 책들은 사실 따로 많이 공부를, 하나의 텍스트를 최소한 15년 정도 읽었던 책들이고, 그래서 강의를 할 무렵이나 지금이나 텍스트들에 대한 관점 또는 해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한 관점이 그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1990년이니 30년 전인데 선생님에게 배우고 그 뒤로도 혼자서 읽고 그 텍스트를 보는 해석의 관점이 두 번 정도는 바뀐 것 같다. 요즘 이 책을 보면 이제는 앞으로는 10년 정도 더 읽으면 바뀔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정신현상학을 다룬 해설서들이 새롭게 출간되면 구입해서 읽는다. 그러니까 《철학고전 강의》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개정할 필요가 별로 없다. 텍스트를 보는 관점 자체가 그렇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고전 강의》는 벌써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다. 역사책도 아니고 역사고전강의가 10년 정도 되었는데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업데이트는 자치하고 업그레이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고전 강의》를 보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역사책 자체가 업데이트 되는 것이 많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던 터에, 사실은 작년부터 고급철학연습이라고 하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사상사 강의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역사고전 강의》에서 다뤘던 부분을 더 넓게 깊게 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냥 《역사고전 강의》를 업데이트 하기 보다는 사상사 강의를 해서 그것을 책으로 내는 것으로 업데이트를 대신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역사고전 강의》라는 책 자체를 절판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면적으로 다 낡은 얘기가 되지는 않았다. 자잘한 해석들, 히스토리컬 팩트는 조금 바뀔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역사철학적 시각은 개정할 부분이 없고 해서 여전히 이 책은 유효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완하는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인 얘기에 들어가기 앞서서 《역사 고전 강의》 첫 시간에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역사적 태도와 성찰이라고 하는 것은 먼저 앞서 경험한 사람들이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서 내 판단의 근거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으로는 통사가 있다. 통사라고 하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이다.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렇게 배우면 이게 바로 암기 과목으로서의 역사가 된다. 또 각국사, 주제사, 부문사는 비슷하기는 한데 영역이 다르다. 주제사, 부문사는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 책 읽기이다. 그 다음에 각국사가 있고, 연표와 지도가 있다. 그리고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책들 읽기가 있다.

첫시간 19 이와 같은 태도와 행위, 즉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서 내 판단의 근거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을 역사적 태오와 통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역사고전강의》를 녹음하면서 ⟪옥스퍼드 세계사⟫도 함께 설명해 나가려고 한다. ⟪옥스퍼드 세계사⟫가 바로 글로벌 히스토리를 추구하는 책이다.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책들을 읽고 그러고 나서 역사 또는 역사철학고전이다. 역사철학고전들을 읽고 논문을 쓸 때만 해도 글로벌 히스토리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이 분야가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러한데 처음 역사책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예전에는 통사부터 읽으라고 했으나 요즘에는 오히려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책들부터 읽으라고 말한다.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 이런 거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특히나 지금 같은 시기는 더욱 그렇다. 예술도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예술을 하는 것과 그냥 모르고 있는 사람이 예술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위대한 예술가,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역사를 공부하여야 한다.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꼭 읽어야 한다. 역사라는 과목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내가 어떤 능력을 갖출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리학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역사고전강의》를 읽을 때 아주 공들여서 써놓은 부분이 목차이다. 목차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서술형으로 되어 있어서 보통의 목차와 다르다. I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II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III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IV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이렇게 4개의 시대구분이 있다. I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는 플라톤까지 보는 것이고, II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는 헬레니즘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고전강의》를 처음 읽는 분들은 목차를 한번 써보기를 권한다. 목차를 써보면 세계사가 이렇게 가는 구나라고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글로벌 히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옥스퍼드 세계사⟫. 역자 후기를 보자. "문명 이전 인간은 물론이고 우주, 지구, 환경, 기후, 생명체, 질병 등 비인간 동인들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아까 통사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이 아닌 "우주, 지구, 환경, 기후, 생명체, 질병 등 비인간 동인들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또한 "철 지난 서구 중심주의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다양성이 저자들 각각의 서술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 이 책 자체가 세계사 전체를 조망하는 데 필요한 시각의 다양성을 예증하는 셈이다." "또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할 때 유념해야 할 두가지 중요한 장기 추세를 알려준다. 하나는 인류가 처음부터 줄곧 자연에 속박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태양 극소기, 계절풍, 엘리뇨 등 지구 기후계의 변동은 문명의 흥망을 좌우해왔다.  […] 근래의 전례없는 자연재해와 기후 위기는 우리가 오만하게도 자연의 한계를 시험하려다 파국을 자초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다른 하나는 때때로 창궐하여 문명과 사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전염병의 위력이다. 저자들이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듯이 페스트, 두창, 출혈열,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은 인구를 급감시키고 경제를 마비시켜 지정학적 판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654 과거에는 역사의 주된 내용이 인간의 활동, 특히 문명인의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넓어져 문명 이전 인간은 물론이고 우주, 지구, 환경, 기후, 생명체, 질병 등 비인간 동인들까지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이른바 '빅 히스토리' 분야의 책들은 으레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옥스퍼드 세계사⟫ 654 철 지난 서구 중심주의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 역사에서 어떤 비가역적 추세나 바람직한 목표를 상정하지도 않는다. 문명의 발달 수준을 잣대로 각 문화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옥스퍼드 세계사⟫ 655 또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할 때 유념해야 할 두가지 중요한 장기 추세를 알려준다. 하나는 인류가 처음부터 줄곧 자연에 속박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태양 극소기, 계절풍, 엘리뇨 등 지구 기후계의 변동은 문명의 흥망을 좌우해왔다.  […] 근래의 전례없는 자연재해와 기후 위기는 우리가 오만하게도 자연의 한계를 시험하려다 파국을 자초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다른 하나는 때때로 창궐하여 문명과 사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전염병의 위력이다. 저자들이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듯이 페스트, 두창, 출혈열,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은 인구를 급감시키고 경제를 마비시켜 지정학적 판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 

⟪옥스퍼드 세계사⟫는 제1부 빙하의 자식들, 제2부 점토와 금속으로, 제3장 온난해지는 세계로, 제4부 기후의 반전, 제5부 대가속, 《역사고전 강의》는 네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은 다섯 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각 파트가 3개이다. 이것들을 적절하게 쪼개서 《역사고전 강의》와 병행하여 진도를 맞춰가겠다.

《역사고전강의》 차례

I 고대 지중해 세계와 폴리스 시대
제1강 진화를 멈춘 인류는 도구와 관념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문명 단계로 들어선다. 이 단계의 중요한 사건인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역사는 이러한 고난의 기록이자 그 기록에 대한 통찰이다.

제2강 희랍 세계의 저 아래에는 지중해가 있다. 동 지중해, 즉 에게 해라는 지리적 조건 아래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던 희랍인들은 여기저기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제3강 희랍의 야망은 페르시아와 충돌하고,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낳는다. 이 전쟁은 그것과 관계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사건들의 묶음이자 그것들의 복합적 귀결이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원초적 과제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조사하고 연구한 탐사 보고서 《역사》를 쓴다. 이로써 그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4강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 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희랍인들은 뜻이 맞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패권을 향한 쟁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제5강 한편에는 아테나이 쉬마키아가, 다른 한편에는 펠로폰네소스 쉬마키아가 있다. 이 두 동맹은 전쟁을 시작한다. 투퀴디데스는 이 전쟁의 경과를 기록함과 동시에 인간 활동의 법칙을 찾고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다. 이로써 역사가의 반성적 과제를 수행한 투퀴디데스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제6강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의 공격에 맞서 '비기는 전쟁'을 시도하고, 적에게 '약탈당하지 않았다'는 심성으로 살아온 앗티케의 농민들은 도시로 피난을 간다. 전쟁 첫 해가 지난 후 치러진 장례식에서 아테나이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장엄한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에는 '희랍의 학교'로서의 아테나이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흐른다.

제7강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아테나이의 역병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역병은 아테나이 사람들의 인내심과 도덕심을 무너뜨리고, 동족을 향한 대량 살육의 추악한 전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젖힌다.

제8강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제9강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는 보편적인 선善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제10강 희랍의 폴리스들은 서로를 죽이면서 공멸의 길을 향해 가고 이 세계는 다시금 페르시아가 지배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게 해와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 제국으로 흡수된다. 번영은 오만을, 오만은 싸움을 부르고 싸움에 지친 사람들은 편안함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든다.

II 로마와 중세 가톨릭 제국 시대
제11강 '영원한 제국' 로마는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 부르면서 '세계'를 제패한다. 이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굳건해졌으나 제국의 시민들은 농노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제12강 시민들은 이제 신민이 되어 강력한 일인자들 아래의 병졸이 된다. 일인자 중의 한 명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 정복을 시도한다. 그가 쓴 보고서 《갈리아 원전기》는 로마 군대의 식민지 침략과 지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알려 준다.

제13강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트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제14강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 초기는 엄밀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중세는 로마제국 말기의 지주-전사 연합체를 이어받아 그것을 밑바탕에 두고, 그 위에 기독교를 얹어서 로마 가톨릭 제국을 세운다.

제15강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 '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제16강 천국의 열쇠를 쥐었다고는 하나 기독교가 로만 가톨릭 제국의 통일성을 장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세속의 황제들은 교황에게 도전한다. 후기에 접어들어 여기 저기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이 제국은 해체의 징후들을 드러낸다.

제17강 중세 제국 해체의 뚜렷한 표상 중의 하나는 신권에 반대하여 세속권의 우위를 선포한 텍스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동서 교역의 산물이기도 한 14세기의 흑사병은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기존 질서의 전반적 붕괴를 가속화한다. 동시에 새로운 체제의 맹아도 싹트기 시작한다.

제18강 로만 가톨릭 제국 말기의 사태를 가리 킬 때는 '르네상스'보다는 '화약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시기 종교개혁의 주체였던 프로테스탄트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지배에 대한 열망을 광신적으로 뿜어 낸다.

제19강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17세기 사람 비코는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시대정신에 맞서 신의 섭리와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의 《새로운 학문》은 비감한 텍스트이다.

제20강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III 근대 국민국가 체제와 세기말
제21강 종파 분쟁으로 시작된 30년 전쟁은 정치적 쟁투를 숨기고 있었고, 근대적 영토 국가 성립의 씨앗을 뿌린다. 사람들은 기독교 공화국의 신도가 아닌 근대 국가의 '국민'이 되어 간다. 이는 국민군이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제22강 종파 간의 피흘림은 종교의 위력을 무너뜨리고,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는 근본 범주는 자연과학이 만들어 낸다. 과학과 기술은 긴밀하게 얽히고 유력자들의 후원과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사회적 권위의 자리에 오른다.

제23강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제24강 낙관적 진보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갈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망에 들뜬 콩도르세는 역사 속에서 실현할 '완전한 인간'에 관한 계획서를 작성한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제25강 18세기는 현대사회의 '기원'이다. 이 시기에 정치혁명,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통신 혁명, 사회혁명, 국제관계 혁명, 문화혁명 등의 힘이 퍼져 나간다. 세계는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낙관적이고 찬연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제26강 '새로운 세계'의 법칙은 '상품화'이다. 인간, 토지,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상품이 된 이것들은 산업혁명이 이루어 내고 있는 기술혁신의 틀 속으로 들어가 이윤을 만들어 내는 원자재가 된다.

제27강 산업혁명은 근대 산업도시를 만들었고, 그 도시에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살고 있다. 청년 엥겔스는 산업혁명의 도시 맨체스터와 노동자들을 관찰한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이 모든 것을 전형적으로 집약한다.

제28강 '근대화'된 맨체스터는 근대 도시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구현한다. 노동자들의 거주지와 삶은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은폐된다. 그들에게는 낙관적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간 정신의 진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제29강 산업도시에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의 살인 행위가 벌어지는 반면, 부르주아계급은 이윤 추구를 위해 냉혹한 계산을 되풀이한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총 봉기에 의한 부르주아계급의 타도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제30강 19세기에 만개한 근대화는 수많은 찬양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들은 이윤 추구가 인간의 파괴적 정념을 다스리는 처방전이 되리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자본주의 정신은 '훌륭한' 정신인 것이다. 이 자신감은 20세기에 이르도록, 아니 지금까지도 소멸되지 않는다.

제31강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나 혁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을 탄생시킨 혁명은 계몽주의적 엘리트 지식인 콩도르세를 처형하면서 대중들에게 힘의 과시와 체제 장악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집단심성'의 위력을 드러내면서 '대혁명'이 된다.

제32강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대혁명의 여파에 노심초사한다. 영국의 버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지식인들이 대혁명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어쨌든 혁명은 인류가 끝없이 향해 가야 할 이상을 하나 덧붙인다.

제33강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인류 역사의 진행 경과를 고민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는 설계도가 난무하는 법이다. 헤르더는 역사의 최종 목적을 내세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세속화한 듯한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은 인류 도야의 학교로서의 세계사를 말한다. 이로써 미래의 전망을 세우는 역사철학이 또 하나 등장한다.

제34강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8년 혁명의 선언서, 《공산당 선언》을 작성한다. 그들은 근대 세계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의 등장 과정과 업적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문헌은 묘사로 가득 찬 듯하지만 미래의 전망을 세우기는 마찬가지다. 다가올 세상의 주인공이 신의 섭리나 인류 일반이 아닌 프롤레타리아계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제35강 부르주아계급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문명을 창출했고, 이로써 19세기는 그들의 시대가 된다.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부정하였기에 폭력으로 완벽하게 진압된 파리코뮌 같은 프톨레타리아계급 운동은 그러한 운동이 있었다는 것만을 역사가 기록할 뿐이다.

제36강 19세기 세계에서는 국민경제들 사이의 경쟁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부르주아계급은 유한계급으로 변태하고, 세계에는 세기말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운동이 아직은 절멸되지 않은 상태이다.

제37강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쉽게 단결하지 못한다. 그들이 공동의 계급의식을 갖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정체성만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프톨레타리아계급 운동 내부에서도 전선은 분열되었다.

IV 제1, 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제38강 절정은 파국에 앞선 것일 뿐이다. 두 번에 걸친 20세기의 세계대전들은 19세기 부르주아 전성기의 거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대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진보와 이성에 대한 신념을 파괴했고, 인간은 국가라는 거대 행위자가 등원하는 부품으로 전락한다.

제39강 어떻게 해서든 파국과 절멸은 막아야 한다. 한가하게 이상주의를 말할 때가 아니다. 에드워드 카는 전간기에 쓰인 《20년의 위기》에서 질타와 처방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쟁은 자기운동을 가진 체재가 벌이는 최악의 결과다.

제40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미합중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시대이다. 황금시대도 있었으나, 더욱 짧아진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순환고리는 다시 저점을 향하고 있다. 대규모의 체재 전환기라는 조짐은 있는데 인간 행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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