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B. 골든: 중앙아시아사 ━ 볼가강에서 몽골까지

 

중앙아시아사 - 10점
피터 B. 골든 지음, 이주엽 옮김/책과함께

한국어판 서문
서문: 민족들의 교차로

1장 유목 생활과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의 출현
2장 초기의 유목민들: “전쟁은 그들의 직업이다”
3장 하늘의 카간들: 돌궐 제국과 그 계승 국가들
4장 실크로드의 도시들과 이슬람의 도래
5장 초원 위에 뜬 초승달: 이슬람과 투르크계 민족들
6장 몽골 회오리바람
7장 후기 칭기스 왕조들, 정복자 티무르, 그리고 티무르 왕조의 르네상스
8장 화약의 시대와 제국들의 출현
9장 근대 중앙아시아의 문제들

연대표

더 읽을거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왜 중앙아시아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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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민족들의 교차로

15 중앙아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지역 혹은 민족을 이룬 적이 없다.  중앙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은 씨족, 부족, 신분 지역, 종교에 기반을 두었고, 이것들은 보통 서로 중첩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에게 정치적 경계선은 큰 의미가 없었다. 유목국가는 영토가 아니라 사람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온 중앙아시아는 중국, 인도, 이란 지중해 지역, 보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중앙아시아는 샤머니즘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같은 종교들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적, 언어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선은 늘 유동적이었는데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근본적으로 상이했던 두 생활양식을 포괄했다一곧 서로 다른 생태적 지위에 있었던 오아시스 지역의 정주민과 스텝 지역의 유목민이다. 고대와 중세 시기의 외부 관찰자들은 중앙아시아를 "문명 세계"의 주변부로 여겼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가들은 근대 이전 시기의 가
장 큰 제국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를 유라시아 역사의 "심장부" 또는 "중심축"으로 여긴다.

중앙아시아는 지구 육지의 약 7분의 1을 차지하며 면적은 207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오늘날 서중앙아시아는 이슬람이 지배적인 곳으로 구소련에 속했던 신홍 독립 국가들인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으로 구성된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서투르키스탄”으로 불렸다"━투르키스탄 Turkistan은 페르시아어로 '투르크인들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국가들의 명칭과 경계는 소련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소련은 중앙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언어 집단들을 정치적으로 결정된 영토에 따라 나누었는데, 이때 정치적 동기가 크게 작용했다. 이슬람권 중앙아시아에는 "동투르키스탄"이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신장 지역도 포함된다. 신장에는 토착민인 위구르인과 여타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무다리야강에서 신장에 이르는 지역 대부분은 과거에는 주로 이란어파 언어들이 사용되었지
만 오늘날에는 투르크어파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의 교체는 1500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투르크-페르시아 Turkopersia' 문화 세계가 형성되었다. 북부 이웃 국가들과 민족 및 언어를 공유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이 '투르크―페르시아' 문화세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동중앙시아는 불교가 지배적인 지역으로 몽골(오늘날 몽골 공화국과 중국의 내몽골자치구로 분리되었다)과 만주로 구성된다. 티베트는 언어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구별되는 지역이지만 다양한 시기에 걸쳐 중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볼가강과 서시베리아 사이의 삼림-스텝 forest-steppe 지대에는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무슬림 투르크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인들은 헝가리, 우크라이나, 러시아, 중동까지 진출했고 따라서 정치적·문화적으로 중앙아시아는 이들 지역까지 연결되었다.

중앙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생태 지대인 스텝은 대大초원 prairie, 사막, 반半사막 지역으로 구성되며 만주의 삼림 지대와 알타이 산맥에서 헝가리까지 이어져 있다. 일 년의 3분의 1 이상은 눈에 뒤덮여 있지만 스텝의 풍성한 목초지는 많은 동물의 생명을 유지해줄 수 있다. 중간중간 오아시스들이 있는 타는 듯이 더운 사막들도 초원들과 더불어 스텝의 가장 특징적인 지역인데 특히 중앙아시아의 남부 지역에서 그렇다. 이곳의 기후는 매우 건조해서 20세기 초 영국━헝가리계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 경은 로프노르 Lop Nor(동東신장)의 잘보존된 중세 시대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한 물건들의 자극적인 냄새 를 여전히 맡을 수 있었다. 눈 덮인 산에서 녹아내리는 물로 강들이 형성되지만 여름의 열기는 이 강들을 물웅덩이나 마른 강바닥으로 바꾸어 놓는다. 중앙아시아에서 침식과 건조화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다.

놀랍게도 식물은 이런 사막에서도 살아남아 봄에는 꽃을 피우고 긴 여름과 겨울에는 휴면한다. 제라프샨,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 같은 강에서 물을 공급받는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역에서는 농업이 번성한다.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은 아랄해(사실 거대한 호수라 할)로 흘러든다. 아랄해는 현재 심하게 오염된 상태다. 중앙아시아의 강들은 일 년의 절반 이상 수면이 부분적으로 얼어붙는다. 중앙아시아의 강 유역들은 대문명을 탄생시킨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강유역들과는 달리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교역과 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지 않는다. 몽골의 오르콘강, 셀렝게강, 케룰렌강은 대유목제국들 안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물고기잡이를 제외하고는 강들을 활용하지 않았다. 강을 이용한 이동은 주로 동물 가죽으로 만든 펫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정도에 불과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이웃 정주민들이 유목민들에 대해 남긴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은 유목민들을 "황량한 야만인의 Barbarians의 땅"에 사는 집단으로 보는 등 문화적 편견을 담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투란' 즉 (훗날 투루크화된) 아무다리야강 이북의 이란인 유목 세계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Persia"라고도 불린) '이란 Iran'의 관계를 악과 선의 대립으로 묘사했다. 유목민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던 중국어 단어들은 영어로 'barbarian(야만인)'이라고 관례적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사실 이 단어들은 "속민" "이방인" "아만인"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녔었다 중국사가들은 유목민들의 관습, 음식, 동물 가죽과 털과 펠트로 만든 의복을 "미개하다"라고 여기며 유목민들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21 중앙아시아 역사에서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민족 및 언어의 이동과 이에 따른 새로운 민족들의 형성이다. 언어들은 보통 하나의 어족으로 분류된다. "어족"은 하나의 공통 언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들로 구성되지만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생물학적 조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인도-유럽어족과 알타이어족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주도한 두 집단이다.

인도-유럽인들은 기원전 4500년과 4000년 사이에 흑해 초원에서 거주한 언어 공동체였다. 기원전 3000년경 혹은 2500 년경 이 공동체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그 지파들은 중앙아시아, 님아시아, 서아시아와 지중해 북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인도-유럽인들이 사용한 언어는 남아시아의 인도어파(인도아대륙의 힌디어, 우르두어, 펀자브어, 여타 언어들), 이란·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의 이란어파(페르시아어, 타직어, 파슈토어, 여타 이란어파 언어들), 바스크어,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여타 핀어군, 핀어군의 먼 친척인 헝가리어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언어로 발전했다.

알타이어는 남시베리아, 동몽골 만주에서 사용되었다. 알타이어는 터키어 및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우즈벡어, 카자흐어, 위구르어 같은 다양한 투르크어파, 몽골·내몽골, 중국과 러시아의 몽골 인접 지역, 볼가 지방의 칼미키야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몽골계 언어로 구성된다. (현재 거의 소멸된) 만주인과 만주 지역의 군소 퉁구스족들이 시용하는 언어들도 알타이어에 속한다. 일부학자들은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를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학지들은 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알타이제어가 하나의 어족을 이룬다는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여러 알타이어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이 수 세기 동안 이루어진 상호 영향과 어휘 차용의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중앙아시아의 역사가 상세히 보여주듯, 중세와 현대의 "민족"들은 보통 여러 종족과 언어 집단이 오랜 시간 융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특히 현대에는 적지 않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민족"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언어가 확산되는 과정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복, 대규모 이동, 이에 따른 전면적 민족 교체가 언어 확산의 한가지 모델이다. 또다른 모델은 점진적 침투, 상호영향, 이에 따른 두 언어 상용이다.

그런데 새 언어를 전파하는 이주민들 또한 많은 경우 여러 민족과 언어의 융합으로 형성된 집단이었다. 새로운 민족 이동과 함께, 이 집단에서 사용하는 이름과 언어가 릴레이 경주에서처럼 또 다른 집단에 이전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집단명과 공통 언어를 가진 민족들도 사실은 여러 다양한 민족의 혼합집단일 수 있다. 민족들의 이동은 복잡한 모자이크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민족언어 지도는 수천 년 넘게 이어져온 민족들의 혼합 과정을 한 특정 시점에 찍은 스냅 사진에 불과하다. 민족들의 형성 과정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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