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시라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운명의 날 - 10점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에코의서재

프롤로그

1.축일의 재앙
2.혼돈 속의 질서
3.지진이 남긴 것들
4.알리스 우보, 올리시포, 알우시부나, 리스보아
5.황금시대
6.성직자와 철학자
7.화염을 뚫고 나온 불사조처럼
8.쟁취된 계몽

에필로그 - 신의 섭리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로
참고문헌



프롤로그

8 격렬하게 요동치던 땅이 잠잠해지고 무시무시한 파도로 해안가를 덮쳤던 테주강이 잔잔해진 뒤에야, 모든 것을 집어삼킨 거대한 불길이 꺼진 뒤에야, 비로소 생존자들은 리스본의 종말을 경고한 예언들을 기억해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언자, 점쟁이, 광신도, 성직자, 수도시들은 포르투갈의 멸망을 예언해왔다. 멸망의 조짐과 징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태중의 아이를 사산하는 여자들이 줄을 이었고, 혜성이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갔으며, 수녀가 열에 들떠 이상한 꿈을 꾸었을 뿐 아니라 복수의 천사들이 리스본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환영이 나타났다. 예언자들은 이를 진노하신 하느님이 리스본을 파괴할 것이라는 전조라고 주장했다. 가뭄, 기근, 외적의 침략, 지진, 폭풍우, 해충의 습격 등 그들이 예언한 리스본 종말의 모습은 다양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홍수와 화재였다. 성직자들은 끝도 없이 리스본의 죄악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포르투갈이 독실한 가톨릭 국가이며, 지나칠 정도로 경건할 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스본주민들이 죄악에 물들고 도덕적 타락에 빠져 음란, 탐욕, 나태, 부패를 저지르고, 외국의 이교도들과 어울린다고 호통쳤다. "이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속죄하라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들이여! 두려워하라!"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으며 요한계시록을 제멋대로 인용했다. "무섭도다! 무섭도다! 거대하고 부유한 도시, 바빌론이여! 네가 일시에 하느님의 벌을 받았구나! 자줏빛, 진홍빛 고운 모시를 입고, 금과 보석, 진주로 치장한 위대한 도시여! 그렇게도 많던 재물이 일시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최후의 날━당대 사람들은 리스본 지진을 그렇게 기억한다. 사실 1755년 11월 1일은 최후의 날에 다름 아니었다. 땅과 바다, 불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리스본을 돌이킬 수 없는 폐허로 만들었다.



에필로그

244 2005년 11월 1일, 만성절인 이날의 리스본은 250년 전 그날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희미한 북동풍마저 불지 않았다. 마침 월요일어서 많은 리스본 시민들은 연휴를 즐기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갔다. 리스본은 평소답지 않게 조용했다. 유령이라도 나올 듯했다. 바로 그때, 250년 전 지진이 처음 시작되었던 오전 9시 30분 정각에 리스본 전역의 교회들이 이 비극적인 참서를 기념하기 위해 종을 울렸다. 각양각색의 종소리가 리스본을 수놓았다. 해마다 울리는 이 종소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념의식이다. 이 종소리를 통해 시민들은 리스본을 초토화시킨 무서운 재앙만이 아니라 리스본의 기적적인 부활도 함께 기억한다. 그들에게 만성절은 재앙을 상징하는 날임과 동시에 리스본 부활의 축일인 셈이다.

기념행사의 목적은 역사와 집단기억을 보존하는 데 있다. 리스본 지진 250년을 맞은 2005년 11월 1일은 리스본 지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날이었다. 이날 리스본에서는 국제 지진학 학회가 열렸다. 많은 학회 참가자들에게 리스본은 지진학을 탄생시킨 성지나 다름없었다. 리스본 지진과 그 영향에 대한 강연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했고, 국립 고대 미술관에서는 재앙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또한 지진 당시 불에 탄 모습 그대로 보존된 카르무 수도원 탐방도 있었다. 포르투갈 신문들은 지진과 관련된 특별 기사를 요란하게 실었으며 방송국들은 리스본 지진 250주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250년 전과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다행스럽게도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었다.

리스본 지진이 유럽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이유는 엄청난 인명과 재산 손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역사적 시기와 장소 때문이기도 했다. 현대 지진학자들은 리스본 지진의 규모를 대략 M=9(메르칼리 진도 등급) 정도로 추정한다. 한 마디로 파괴적인 지진이다. 진앙지는 리스본 남서부 100킬로미터 연안이었다. 지진과 뒤 이은 해일과 화재로 리스본에서만 1만 5,000명에서 6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히 모든 것을 쓸어간 지진이었다.

하지만 지진의 파괴성 못지않게 당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지진이 일어난 장소와 시간이었다. 유럽인들이 기억하는 한 리스본 지진만큼 거대한 자연재해가 유럽을 덮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리스본은 세계적인 수도이자 활기찬 항구 도시였다. 유럽인에게 리스본은 멀리 떨어진 페루의 리마나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와는 달랐다. 리스본뿐 아니라 포르투갈의 여러 지역과 에스파냐 남부, 북아프리카도 지진 피해를 입었지만 역시는 이 지진을 리스본 대지진이라고 불렀다.

지진이 발생한 시간 또한 중요했다. 지진이 일어난 오전 9시 30분은 교회력에서 가장 엄숙한 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을 맞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려는 신자들이 리스본의 성당들에 빼곡하게 들어찬 시간이었다. 이 재앙이 하루만 일찍 일어났거나 일주일만 늦게 일어났어도 그렇게 심오한 철학과 신학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 했을 것이다.

자연재해는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법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한 사회가 재앙을 해석하고 혼란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가 지닌 통념과 편견, 희망, 공포를 읽을 수 있다. 리스본 지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자연에 대한 구태의연하고 절대적인 신념에 발이 묶여 시대에 뒤떨어진 포르투갈 사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 깊은 종교적 통념의 권위를 뒤흔든 것은 리스본 지진의 긍정적인 면이었다, 계몽주의 사상의 낙관주의 또한 그 못지않게 타격을 입었다. 리스본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낙관주의 철학에 볼테르가 언제쯤 의문을 품었을지, 아니 의문을 품기나 했을지 모를 일이다.

리스본 지진 이후에 세상은 갑자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듯했다. 하느님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았고 자연은 더 이상 자비롭지 않았다. 독실한 성직자부터 계몽주의 철학자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문에 인류는 조금 더 현명해졌을지 모른다. 볼테르에 따르면 "유럽은 서로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유럽 여러 지역을 흔든, 특히 리스본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지진으로 유럽은 새로운 공포를 경험했다."

정부의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면 카르발류가 이끈 노련한 재해 대책은 근대적 재난 관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리스본 지진의 엄청난 규모를 생각해보면 카르발류의 선구적인 대책들은 대단히 효율적이었으며 현명했다. 그는 놀랄만큼 신속하게 시체를 묻고 생존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했으며 약탈과 부당 이득 행위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조치를 내렸다. 또한 그가 추진한 바이샤 지구 재건축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리스본을 근대적인 도시계획의 전범으로 만들었으며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실용성과 미학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리스본 지진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755년에는 지진 소식이 역마차를 통해 유럽 전역에 알려지는데 여러 주가 걸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자연재해 소식과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단 몇 해 사이에 우리가 접한 자연재해의 종류는 끔찍할만큼 다양하다.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났고, 이란과 파키스탄에서는 지진이,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에서는 홍수가, 니카라과에서는 이류가 발생했다. 서아프리카는 메뚜기의 내습으로 일본은 태풍으로, 볼리비아는 가뭄으로 고통을 겪었고, 남아시아는 쓰나미로,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여러 국가의 정부와 수많은 자원봉사자, 교회와 시민단체, 비정부기관들에서 엄청난 기금과 물자 원조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마치 다음 차례는 우리일지 모르니 발 벗고 나서 서로 돕자고 호소하는 무엇인가가 우리의 집단의식 속에 있는 듯하다. 지구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아와 질병 같은 '조용한' 재앙이 쓰나미나 허리케인보다 더 무섭다고들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빚어내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에는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끔찍한 재해의 장면에 이끌리는 인간 심리에 어떤 도덕적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우리에게 그런 심리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 각국 정부의 재해대처 능력은 서로 다르겠지만 많은 정부 지도자들이 카르발류의 결단성과 단호함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국가들은 자연재해 대처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항상 훌륭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쓰나미 조기 경보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대부분 빈곤한 인도양 연안의 국가들은 경보 체계가 부족한 탓에 2004년에 남아시아를 덮친 쓰나미의 희생자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예가 명백하게 보여주듯 당국의 권위가 무너지고 적절한 지도력과 재앙에 대처할 의지가 없다면 선진국조차도 자연재해 앞에서 무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뉴올리언스의 비극과 비교했을 때 리스본은 상당히 본받을 만한 사례다.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 과학과 산업, 기술은 혁명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도 인류는 자연재해를 해석할 때 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법무부 보좌관은 이슬람 종교 방송국인 알마지드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에 대해 "세상의 창조주가 주신 코란을 읽은 사람이라면 왜 그 나라들이 파괴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고 죄악을 저질렀으며 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코란을 읽은 사람이라면 쓰 나미가 바로 그 결과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신의 응징이라는 오랜 생각은 이슬람 세계에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뉴올리언스의 은퇴한 대주교인 필립 M. 하난은 카트리나에 대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미국 시민들은 성적 방종과 가족 해체, 마약 중독, 연간 4,500여 건에 이르는 낙태 수술과 몇 몇 신부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에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이 우리에게 내리신 벌을 달게 받이야 합니다 ·····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비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카트리나도 허리케인 리타도 그에 대한 징벌일 뿐입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로 자연재해를 해석하는 이들의 말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말라그리다와 웨슬리를 비롯한 여러 성직자들의 설교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어쩌면 진보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팡글로스처럼 지나치게 낙관적인지도 모른다. 리스본 지진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재앙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신의 섭리도, 형이상학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분노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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