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 10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재만 옮김/라티오

영국 노동계급에게
1845년 독일어 초판 서문
1887년 미국판 서문
1892년 영국판 서문

서론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대도시
경쟁
아일랜드 이주민
결과
산업의 단일 부문들 : 공장 노동자
산업의 나머지 부문들
노동운동
광업 프롤레타리아트
농업 프롤레타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태도

역자 후기

 


역자 후기

1.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산업혁명의 고전적 토양인 영국에서 이 혁명의 주된 산물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고전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2년부터 1844년까지 2년여 동안 아버지가 자본을 투자한 '에르멘 앤드 엥겔스 사'의 맨체스터 방적 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맨체스터는 경제적 군사적 패권국인 영국에서 런던에 이어 제2의 도시였고, 머지않아 전세계로 확산될 공업도시의 전형이었다. 엥겔스의 말처럼 “근대의 제조 기술은 맨체스터에서 완성되었다 자연력의 이용, 기계(특히 역직기와 자동방적기)에 의한 육체노동의 대체, 노동의 분업은 랭커셔 남부의 면공업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 근대 제조업이 노동계급에 미치는 영향은 필연적으로 여기서 가장 자유롭고 완전하게 나타나며, 제조업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트도 바로 여기서 가장 완전하고 고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증기력과 기계, 분업의 적용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위치 하락과, 그렇게 추락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력 또한 여기에서 최고조에 도달하고 가장 자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까닭에 맨체스터는 노동계급의 의식주를 비롯한 삶과 환경, 신체적 정신적 상태 생산관계, 고통과 투쟁 등을 관찰하기에 더없이 알맞은 곳이었으며, 이를 위해 엥겔스는 "중간계급의 사교와 만찬, 포트 와인과 샴페인에 등을 돌리고서 평범한 노동자들과 교제하는 데 여가를 거의 전부 바쳤다."

맨체스터가 노동계급의 고전적인 상황을 기술하는 작업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던 것 못지않게 엥겔스는 이 작업에 제격인 인물이었다. 엥겔스가 나고 자란 라인란트 주의 바르멘 일대는 '독일의 맨체스터'라 불렸을 정도로 면공업이 일찌감치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엥겔스 가문은 18세기 후반 섬유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했으며, 아버지 엥겔스 역시 바르멘과 맨체스터 두 도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유망한 기업의 동업자였다. 8명의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엥겔스는 본래 가업을 이을 운명이었다. 엥겔스는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아들이 급진적인 사상과 애국주의적인 문학에 물들고 신앙에서 멀어질 것을 걱정한 아버지는 아들을 김나지움에서 자퇴시킨 다음, 무역도시 브레멘의 수출사무실로 보내 도제 훈련을 받게 했다.

이 결정은 엥겔스가 자본가이자 공산주의자라는 모순적인(그리고 마르크스 가족을 먹여살린) 역할을 수행할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다. 엥겔스는 2년 반 동안 직원으로 일하면서 수출입 업무와 기업 운영을 익혔지만, 여가시간에는 청년 독일파, 슐라이어마허와 슈트라우스, 그리고 무엇보다 헤겔의 저작을 두루 읽으면서 급진적인 사상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 엥겔스는 헤겔 철학의 본산인 베를린에서 1년간 군복무를 하면서 청년헤겔파와 어울렸는데, (당대를 포함해) 모든 시대는 역사의 무한한 진보에서 일시적인 이행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역사 인식이었다. 군복무를 마친 엥겔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쾰른에 들러 헤겔 철학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프랑스의 정치사상을 혼합해 사회를 변혁할 실천적인 방안, 즉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한 모제스 헤스를 만났다. 헤스는 그날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당대의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날 때 뻣속까지 혁명가였던 엥겔스는 헤어질 무렵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다."

엥겔스는 맨체스터로 떠나기에 앞서 영국 산업의 심장부를 관찰할 이론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자본주의의 작동기제에 대한 이해, 역사의 경로와 그 경로를 통제하는 초역사적인 원리를 동시에 찾는 헤겔의 역사철학, 자본주의적 산업체제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공산주의를 융합한 사상, 장차 마르크스주의로 발전할 사상이 엥겔스의 이론적 토대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의 분투, 그들의 슬픔, 그들의 기쁨을 숙지하고,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을 직접 관찰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동시에 필요하고 믿을 만한 자료에 의지해 나의 관찰을 보완할 기회"였다.


2.
독일어 초판 서문에서 엥겔스는 이론적 실천적 목적과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기술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에 관한 지식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이론들에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론들이 존속할 권리가 있는지 판단하고, 또 찬반양론이 분분한 온갖 감상적인 공상과 환상을 끝장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이론적 목적은 사회주의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한편 공상적 사회주의를 배척하는 것이요, 실천적 목적은 "오늘날 모든 사회운동의 실질적인 토대이자 출발점"인 노동계급의 실상을 조사해 사회운동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저술의 배경으로 영국을 택한 첫째 이유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은 대영국, 특히 잉글랜드 본토에서만 완전한 고전적 형태로 존재한다. 더욱이 이 주제를 조금이나마 철저하게 제시하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자료는 영국에서만 공식 조사를 통해 완전하게 수집되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독일의 사회질서는 영국의 사회질서와 그 바탕이 동일하며, (···) 영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곤궁하게 만들고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 근본 원인들은 독일에도 있으며, 길게 보면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국 노동계급에 관한 연구가 독일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노동계급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틀과 방법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1.
노동자들은 자신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동산動産으로 다루는 상황에 여러 방식으로 대응했다. 일부는 폭음과 성적 방탕 같은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들었고, 일부는 궁핍을 견디지 못하고 비행과 범죄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1824년 결사금지법이 폐지된 이후 자유롭게 결사할 권리를 획득한 노동자들은 엥겔스가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파악한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우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형성했다. 초창기부터 "노동조합의 목표는 집단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권력으로서 고용주를 상대하고, 고용주의 이익에 맞추어 임금을 조정하고, 기회가 있을 때 임금을 인상하고, 전국에 걸쳐 각 직종의 임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임금률이 어디서나 관철되도록 자본가와 합의하려 했고, 임금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용주의 피고용인들에게 파업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 조합들의 역시는 어쩌다가 한 번씩만 승리를 거두는 기나긴 패배의 연속이다. 조합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동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는 경제법칙은 당연히 바꿀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조합들은 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강력한 힘들을 상대로는 줄곧 무기력하다." 더욱이 부르주아지는 법의 보호를 받고 파업분쇄자를 동원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손쉽게 깨뜨릴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궁핍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의 멍에를 다시 메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실제로 파업은 대부분 노동자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결말로 끝난다."

노예와 같은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역사의 진보를 포착했던 엥겔스는 실패로 점철된 노동조합의 저항에서도 진보적 요소를 발견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파업이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인 경쟁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조합과 여기서 기인하는 파업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이 경쟁을 철폐하려는 노동자들의 첫 시도이기 때문이다. 조합과 파업은 부르주아지의 패권이 오로지 노동자들 간의 경쟁 즉 노동자들의 응집력 부족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리고 조합은 아무리 편파적이고 아무리 편협한 길이라 해도, 바로 현존 사회질서의 핵심 중추를 겨냥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 사회질서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현존 사회질서 전체에 가장 쓰라린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지점은 경쟁이다." 또한 엥겔스는 파업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전조를 본다. "파업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결정적인 전투가 다가오고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파업은 회피할 수 없는 거대한 투쟁에 대비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군사학교다."


14.
엥겔스는 영국 부르주아지를 "도덕적으로 깊이 타락하고, 이기심에 눈이 멀어 구제불능 상태로 전락하고, 내면에 좀이 쓸고, 도무지 진보하지 못하는 계급"으로 평가한다 이들이 "훌륭한 남편이자 가장이고, 개개인을 보면 다른 덕목들도 두루 갖추고 있으며, 평상시 교제할 때 다른 모든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고 점잖아 보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계급으로서 이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리사욕, 특히 금전적 이익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부르주아는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노동으로 추상화한다. "제조업자는 자본이고 공원은 노동이다. 설령 공원이 이런 추상화를 강요받지 않더라도, 지신은 노동이 아니라 다른 속성들과 더불어 무엇보다 노동력이라는 속성을 가진 인간임을 역설하더라도, 시장에서 '노동'이라는 상품으로 사고 팔리지 않겠노라고 마음먹더라도, 부르주아는 합리적인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부르주아는 자신이 공원들과 구매와 판매가 아닌 다른 어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주아는 공원들을 인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면전에서 언제나 사용하는 호칭처럼 일손으로 여긴다. 칼라일의 말마따나 부르주아는 '현금 지급이 인간과 인간의 유일한 연계다'라고 역설한다.”

신구빈법은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법은 맬서스의 인구법칙에 따라 입안되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언제까지나 인구과잉 상태이므로 빈곤과 비참, 곤궁, 비도덕성이 반드시 만연하게 된다. 인간이 지나치게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류의 몫 즉 영원한 운명"이다. 그러므로 "자선과 구빈세는 경쟁을 통해 피고용인들의 임금을 대폭 끌어내리는 과잉 인구를 부양하고 그 수가 늘어나도록 부추길 뿐이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허튼수작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과잉 인구'를 활용하고 쓸모 있는 인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반대할 여지가 가장 적은 방식으로 굶어 죽게 하고 자식을 너무 많이 낳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 "반대할 여지가 가장 적은 방식"으로 부르주아들이 궁리해낸 것이 바로 1834년에 제정된 신구빈법이다. 이 법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빈민은 법죄자이고, 구빈원은 감옥이고, 입소자는 법의 테두리 밖에, 인류의 테두리 밖에 있는 역겹고 혐오스러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무산계급은 오로지 착취당하기 위해, 유산자들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면 굶주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처럼 극심한 계급 적대의 귀결로 혁명을 전망한다. "사회의 구성요소들이 전부 명확하게 규정되고 선명하게 구분되는 영국만큼 예언하기 쉬운 곳은 없다.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평화롭게 해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사회적 전쟁을 피할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마지막 문단에서 엥겔스는 "오늘날 국지적이고 간접적으로 전개되는 부자들에 대한 빈민들의 전쟁이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전쟁이 되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역사적 예견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렇지만 계급투쟁이 사회적 전쟁으로 발발하리라는 엥겔스의 이 예측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젊은 혈기의 역사적 단견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내재적으로 초월해 역사의 다음 단계인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계기로서 제시한, 또는 그러한 이상적 목적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5.
후대의 학자들이 밝히고 엥겔스 자신도 훗날 인정했듯이, 이 책에는 저술 당시 24세였던 엥겔스의 젊음과 장점들뿐 아니라 단점들까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엥겔스는 부르주아지를 과소평가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도덕적으로 깊이 타락하고, 이기심에 눈이 멀어 구제불능 상태로 전락하고, 내면에 좀이 쓸고, 도무지 진보하지 못하는 계급"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엥겔스가 맨체스터를 떠난 이후 20년간 이어진 빅토리아 시대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부르주아지는 사회를 한층 확고하게 장악하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 단결을 깨뜨리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밀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또한 엥겔스의 예측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트는 균질화되지 않았다. 노동자 대다수의 생활은 낮은 수준에서 오르내리는 데 그쳤지만, 생활수준이 꾸준히 높아진 일부 공장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은 노동계급 내에서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 애썼다. 달리 말해 계급 내 경쟁은 완화되지 않았다. 비판을 많이 받은 또 다른 단점은 엥겔스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엥겔스는 마치 자신의 이론이 대일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모레 정도면 견고한 사살이 될 것처럼 썼지만, 목전에 닥쳤다던 그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단점들이 있음에도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고전적인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저작이자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연구의 토대를 놓은 문헌이라는 이 책의 입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 들어서도 세계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 노동자들과 직접 교류하고 당시에 산업의 심장부였던 맨체스터를 구석구석 돌아다닌 경험에 자신의 이념을 투영해서 쓴 이 책을 대체할 저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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