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05 / 제4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4강(1)

❧ 페르시아 전쟁 승리의 의미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 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희랍인들은 뜻이 맞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패권을 향한 쟁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 ⟪옥스퍼드 세계사⟫, 1장(2)

 

2021.07.31 역사 고전 강의 — 05

《역사고전 강의》를 읽고 있다. 지난 번에 제3강을 이야기하면서 페르시아 전쟁의 큰 대결국면에 대해서 거론을 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서, 특히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있고, 그 사건들에 관한 일종의 반성적 성찰을 해보는 것이 역사철학적 사유다 라고 아주 단순하게 규정한다며, 지금 《역사고전 강의》를 읽으면서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 그자체를 해명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의 의미를 추적해 보고 그것이 여타의 여러가지 인간의 정신적인 상황들, 그 삶의 구조적인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져보는 역사철학적인 논의가 우리의 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고전 강의》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 사유를 하고 어떤 식으로 반성적 고찰을 하는가 하는 방법을 익히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살라미스는 해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입니다. […] 같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벌어진 전투지만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전술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두 전투에 들어 있는 의미도 상당히 다릅니다." 여기서 전략과 전술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전략은 "이 해전은 페르시아 전쟁을 종결지었고 그 이후로 희랍 세계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인 말이 작용하는 범위이다. 살라미스 해전은 패르시아 전쟁에서 벌어진 하나의 전투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그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 투입된 아테나이 폴리스, 넓게는 희랍세계 전체에 투입된 자원 역량이라든가 또는 그 전투를 승기로 이끌어낸 사회적인 구조적 장치라든가 도구라든가 이런 것들의 변화가 있었다. 그런 것은 전투에 집약되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전투 자체만 살펴보면 알 수 없는 것, 그런 점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마라톤 전투는 전략적인 의미가 좀 떨어진다. 그런데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또 전투의 기술이 작용하는 방식의 차이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술적으로도 다르다는 말이다. "마라톤 전투에서는 중장 보병의 팔랑크스가 평원에서 싸웠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는 경장 보병이 탑승한 전함이 바다에서 싸웠습니다." 이게 전술적으로 다른 지점이고, 이런 이런 전술적인 차이를 만들어낸 직접적인 요인은 아테나이의 집정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전함을 200척 건조했다는 점에 있다.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전투의 양상이 달라질 것을 예측하고, 전함을 건조했다. "국가 차원에서 월급을 주고 군인을 고용할 필요가 생겼으며, 돈을 벌기 위해 배에 올라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땅이 없는, 즉 무기를 소유할 능력이 없는 경장 보병이었습니다." 여기도 일단 전술의 차원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이로써 중장 보병에 밀려 시민으로서의 발언권이 세지 않았던 경장 보병이 전쟁의 주역이 될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전쟁이 끝난 후의 아테나이 정치에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전략적인 차원이다. 아테나이 정치라는 더 넓은 범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략과 전술의 구별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3강 63 살라미스는 해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입니다. 이 해전은 페르시아 전쟁을 종결지었고 그 이후로 희랍 세계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벌어진 전투지만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전술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두 전투에 들어 있는 의미도 상당히 다릅니다. 마라톤 전투에서는 중장 보병의 팔랑크스가 평원에서 싸웠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는 경장 보병이 탑승한 전함이 바다에서 싸웠습니다. […] 국가 차원에서 월급을 주고 군인을 고용할 필요가 생겼으며, 돈을 벌기 위해 배에 올라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땅이 없는, 즉 무기를 소유할 능력이 없는 경장 보병이었습니다. 이로써 중장 보병에 밀려 시민으로서의 발언권이 세지 않았던 경장 보병이 전쟁의 주역이 될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전쟁이 끝난 후의 아테나이 정치에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게 됩니다.


제4강의 목차를 읽겠다.

제4강 65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희랍인들은 뜻이 맞는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패권을 향한 쟁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마라톤 평원과 살라미스 앞바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은 이것을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전쟁을 이겼을 때 전쟁에 대해서 자기들이 생각한 전쟁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이 중요한데 이를 자유의 승리로 규정한다. 원초적인 의미의 기록자로서 역사학자들은 '자유의 승리'로 했다는 문헌이 있다고 그치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철학적인 고찰을 하기 때문에 자유의 승리라는 것이 헬라스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행간을 읽어서 알아내야 될 중요한 요점들이라고 하겠다. 똑같은 사건이고 똑같은 해프닝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아예 나아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해 봐야할 필요가 있다. "승리는 그들에게 번영과 영광을 안겨주지만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페르시아 전쟁이 한참 격렬하게 치러질 때에는 단합해서 페르시아를 물리쳐야 겠다는 당면한 목표가 강력했기 때문에 불신과 공포는 없었겠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생겨난다. 적어도 페르시아 전쟁에서 시작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 적어도 백년가까이 되는데 그 기간동안 헬라스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여러가지 심성상태는 꼭 역사 기록만 가지고 알아낼 도리는 없다. 반성하는 사유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 깊은 불신과 공포가 아무래도 뜻이 맞는 나라들(폴리스)끼리 동맹을 맺게 하고, 그 동맹은 아주 자연스럽게 패권을 향한 쟁투로 진전된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희랍인들과 패권을 향한 쟁투가 강조된다.

《역사》 8권 40장부터 11장까지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굉장한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구체적인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는 역사의 기록으로 많이 남아있으니 우리는 조금은 도외시하고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의 원천이었는가를 본다. 그것은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 인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페르시아 인들》은 페르시아 인들 입장에서 쓴 드라마이다. 페르시아군 전령이 패배를 알리는 장면이니까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것으로 가정하고 쓴 이야기이다. 284~285행을 보면 "오오, 살라미스, 내게는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이여. 오오, 아테나이여, 너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는구나." 코로스와 사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 인들》에서 코로스와 사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테나이 사람인 아이스퀼로스가 가지고 있는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생각을 여기다 집어넣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 인들》 비극으로 경연대회에서 우승할 때 코레고스(이를테면 제작자)가 페리클레스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볼 때 아테나이 시민들의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페르시아인들을 몰살했다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것은 아테나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근본적인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윌리엄 맥닐은 《세계의 역사》에서 희랍 사람들이 팔랑크스를 통해 "근원적인 차원의 사회성"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팔랑크스는 마라톤 전투의 승리의 원천이 되었다. "서로 힘을 합하여 어깨를 겯고 벌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폴리스의 위대함을 느꼈고 그것이 개인의 자부심으로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헬라스 사람들은 팔랑크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고 "근원적인 차원의 사회성"의 원천이겠다. 그런데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아주 독자적인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제4강 70 윌리엄 맥닐은 《세계의 역사》에서 희랍 사람들이 팔랑크스를 통해 "근원적인 차원의 사회성"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서로 힘을 합하여 어깨를 겯고 벌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폴리스의 위대함을 느꼈고 그것이 개인의 자부심으로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헤로도토스가 8권 40장부터 11장까지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서 썼는데, 그 전에 이미 3권이나 7권에서 헬라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심성, 특성을 밝혀서 말한다. 3권 80장을 읽어 보겠다. "민중 정치는 첫째,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니 그 이름부터 가장 좋고, 둘째, 독재자가 하는 못된 짓을 하나도 하지 않소. 민중 정치에서 관리들은 추첨으로 선출되고 직무에 책임을 지며 모든 안건이 민회에 제출되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독재정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힘을 늘리기를 제의하오. 국가는 민중에 달려 있기 때문이오." 이런 말을 한다. 그러자 페르시아의 왕인 다레이오스가 군주정을 갖추게 된 경위를 밝힌다. 그런데 아테나이 사람들은 민중정치, 참주정에 대한 정치체제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민주정이 독재정을 이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냥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했을 뿐인데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 정치체제의 우월함을 부여한다. 심지어 완전한 의미에서의 민주정도 아닌 스파르테, 즉 라케다이몬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그대는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도, 자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아 그것이 달콤한지 아닌지 모르신단 말이오. 그대가 자유를 경험했더라면 우리에게 창뿐 아니라 도끼를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했을 것이오." 바로 이 구절이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아테나이 인들은 헬라스의 자유를 지키는 길을 택해 페르시아에 부역하지 않은 나머지 헬라스 전체를 분기시킴으로써 신들의 도움으로 페르시아 왕을 물리쳤던 것이다. 그들은 무섭고 두려운 델포이의 신탁에도 불구하고 헬라스를 포기하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침입자들을 맞아 싸웠다." 

제4강 68 "민중 정치는 첫째,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니 그 이름부터 가장 좋고, 둘째, 독재자가 하는 못된 짓을 하나도 하지 않소. 민중 정치에서 관리들은 추첨으로 선출되고 직무에 책임을 지며 모든 안건이 민회에 제출되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독재정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힘을 늘리기를 제의하오. 국가는 민중에 달려 있기 때문이오." ━ 《역사》 3권 80장

제4강 69 아테나이인들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민주정이 독재정을 이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들의 정치체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4강 69 "그대는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도, 자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아 그것이 달콤한지 아닌지 모르신단 말이오. 그대가 자유를 경험했더라면 우리에게 창뿐 아니라 도끼를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했을 것이오." ━ 《역사》 7권 135장

제4강 69 그런데 아테나이 인들은 헬라스의 자유를 지키는 길을 택해 페르시아에 부역하지 않은 나머지 헬라스 전체를 분기시킴으로써 신들의 도움으로 페르시아 왕을 물리쳤던 것이다. 그들은 무섭고 두려운 델포이의 신탁에도 불구하고 헬라스를 포기하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침입자들을 맞아 싸웠다. ━ 《역사》 7권 139장

제4강 59 이 구절은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페르시아 전쟁을 서술한 궁극적인 계기로 보입니다.

이 부분을 거듭 읽는 이유는 하나의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 개개인의 삶의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있을 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역사철학의 과제인데, 이러한 역사철학의 과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를 보는 시각을 하나의 고정적으로 만들어낼 뿐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바꾸기도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방금전에 읽었던 7권 135장, 139장은 즉 노예가 된다는 것,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 헬라스의 자유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들은 헤로도토스의 저작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역사철학적 저작으로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하겠다.


이어서 《옥스퍼드세계사》를 읽는다. 
"제1장 빙하 시대에 출현한 인류: 한 적응적 종의 출현과 확산"은 지평선 너머, 인간 알아보기, 빙하 시대와 인류, 지구 전역에 정착하기, 결론, 결론을 빼면 4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난 번에 인간 알아보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읽었다. 인간 알아보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해부학상 현생인류, 유전학상 현생인류가 있다. 여기에 더해서 문화적 현생인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절이 빙하 시대와 인류이다. 이 부분은 지질학적인 얘기들이 자세하게 쓰여있다. 천천히 읽어보았으면 한다. 지역 생태의 패턴을 결정하고 식량 자원의 분포와 신뢰도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질학적인 것이다. 지질학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우주의 문제이다. 지구의 공전 궤도, 자전, 자전축 기울기 즉 이심률, 세차운동, 자전축 경사각 43페이지 위에 있는 도표를 보면 시간이 백만년 단위이다. 문장 하나도 남김없이 천천히 읽어보는 것이 좋다. 45페이지를 보면 대양 수온과 대륙붕이 나오는데 "해류의 순환에도 주목해야 한다."  판구조 운동과 사막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48페이지를 보면 "초록 아라비아와 초록 사하라가 주기적으로 출현했다." 51페이지 "사막, 대륙붕, 우림, 사바나, 판구조 운동 같은 밀기-당기기 요인들은 서로 맞물리는 지구 이심률의 주기, 세차 운동의 주기, 자전축 경사도의 주기만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 과정에서 호미닌(사람족), 호미닌 아래 호모(사람속), 사람 속 아래에서 종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 호미닌은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 바로 빙하기 시대와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 다음 다재다능한 인류가 지구 전역에 정착했는데 테라2와 테라3이 나온다. "지구 전역에 정착하기"는 좀 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56페이지를 보면 "기술 진전이 이루어지려면 새로운 목표를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맥락이 필요하다. 실리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돌촉 화살이 쓸모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석기 시대에는 트위터가 필요 없었다." 돌촉 화살은 기술이다. 트위터도 기술이다. 그러면 그러한 기술들이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이 무엇인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7페이지에 있는 네가지 문화적 맥락이 중요하다. 바로 이 네가지 문화적 요소가 해부학상 현생인류, 유전학상 현생인류에 더해서 문화적 현생인류의 특징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겠다.

《옥스퍼드세계사》 1장 56 기술 진전이 이루어지려면 새로운 목표를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맥락이 필요하다. 실리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돌촉 화살이 쓸모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석기 시대에는 트위터가 필요 없었다.

결론 부분을 살펴보면 "산드리아스기 말, 이제 남극 대륙을 뺀 모든 대륙이 테라3의 세계에 포함되었을 때, 세계 인구는 현재 가장 정확한 추정치로 700만 명이었다. 그 다음 1만 10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70억 명으로 늘었다." 그 과정에서 700만명이 여러가지 문화적인 기재들을 통해서 70억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세계사》 1장 67 산드리아스기 말, 이제 남극 대륙을 뺀 모든 대륙이 테라3의 세계에 포함되었을 때, 세계 인구는 현재 가장 정확한 추정치로 700만 명이었다. 그 다음 1만 10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70억 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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