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06 / 제4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4강(2)

❧ 페르시아 전쟁 이후의 아테나이
- 아테나이 사회 구성체와 정치 체제의 변화의 관계
-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찬 사람들의 인문주의
-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지는 헬라스 세계의 내분

 

2021.08.03 역사 고전 강의 — 06

오늘은 《역사고전 강의》 제4강을 계속해서 읽는다. 지난번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나이가 또 희랍연합군이 페르시아를 이김으로써 어떤 성취를 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희랍사람들이 팔랑크스를 통해서 근원적인 차원의 사회성이 생겼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폴리스의 위대함을 느꼈고 그것이 개인의 자부심으로까지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김으로써 아테나이 뿐만 아니라 라케다이몬 사람들도 헬라스 세계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뿌듯하게 했다.

그런데 그 전쟁이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차이가 있다고 했다. 차이가 어떤 것인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아테나이에서는, 마라톤 전투에서 공을 세운 중장 보병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공을 세운 경장 보병 및 해병 사이에 대립이 생겨났습니다. 구식 보병과 신식 해병, 자기 땅을 가진 농민과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노동자의 대립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다양한 계층 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아테나이 안에서 일어난 하나의 내전의 씨앗에 관한 얘기가 여기서부터 다루어진다. 역사가들도 이 부분에 굉장히 주목하겠지만 역사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신경을 써서 보게 된다. 그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전투를 치웠는가 하는 것이 그 체제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변화하고도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그것은 그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관심사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하나의 정치체제 그리고 그 정치체제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인 구성체, 사회체제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서 말을 해보면 우리 한국 사회에서 70년대에는 선거를 하면 여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여촌야도라는 말로 표현했다.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농촌에 있는 사람들이고,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이천년대의 한국에서는 여촌야도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그 당시와 지금의 사회구성체가 달라졌다. 고대 아테나이에서도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아테나이 시민들이라면 민주정 지지자들이고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상인, 직인, 농민, 병사, 수병, 노예, 외국인, 지주, 소작인 등 다양한 계층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사회적으로 변화가 많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부유한 보수주의와 가난한 민주정 지지자로 나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때는 따라서 민주정을 지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살라미스 해전 공을 해준 경장 보병, 해병이다. "아테나이 민주정 절정기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구식 보병의 지지를 받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가 죽자 다시는 귀족 출신의 집정관이 선출되지 않았습니다. 페리클레스 다음으로 집정관이 된 클레온은 신식 해병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아테나이의 민주정이 시작됩니다."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이루고자 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정치체제인 것 같지만 사실 그 민주정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아테나이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애소 민주정은 빈민정이라고도 불린다고 말했고, 사실상 고대 세계에서 민주정이라는 말은 경멸적인 용어였다. 따라서 아테나이가 마케도이아의 헬라스 세계가 멸망한 다음에는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이 다시는 서양에서도 훌륭한 정치체제로 복원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다음에 민주정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굉장히 경멸적인 의미로 썼다. 

제4강 70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아테나이에서는, 마라톤 전투에서 공을 세운 중장 보병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공을 세운 경장 보병 및 해병 사이에 대립이 생겨났습니다. 구식 보병과 신식 해병, 자기 땅을 가진 농민과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노동자의 대립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물론 아테나이가 그런 두 집단으로만 나뉜 것은 아닙니다. 상인, 직인, 농민, 병사, 수병, 노예, 외국인, 지주, 소작인 등 다양한 계층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부유한 보수주의와 가난한 민주정 지지자로 나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테나이 민주정 절정기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구식 보병의 지지를 받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가 죽자 다시는 귀족 출신의 집정관이 선출되지 않았습니다. 페리클레스 다음으로 집정관이 된 클레온은 신식 해병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아테나이의 민주정이 시작됩니다.

더군다나 아테나이는 나라 안에서는 민주정 체제를 유지했는데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굉장히 억압하는 이른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적 형태를 일삼았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8권에도 거론되어 있다. "언제나 돈 욕심이 많은 테미스토클레스는 다른 섬들에도 페르시아 왕에게 보냈던 바로 그 사자들을 보내 돈을 요구하며, 만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가 헬라스 함대를 이끌고 와서 그들의 도시를 포위 공격해 함락할 것이라고 위협하게 했다. 이렇게 위협하여 그는 카뤼스토스인드로가 파로스인들에게서 거액을 받아 내는데 성공했는데, 이들은 안드로스가 페르시아 부역한 탓에 포위 공격당하고 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헬라스의 장군들 중에 가장 명망이 높다는 것을 알고 겁이 나 돈을 보낸 것이다. […] 그렇게 테미스토클래스는 안드로스 섬을 기지 삼아 다른 장군들 몰래 섬 주민들에게서 돈을 갈취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도편추방을 당한다. 도편추방은 민주정을 유지하는 좋은 장치 중의 하나였다.

제4강 71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자유 개념을 깨닫고 에개 해의 헤게모니를 쥐게된 아테나이는 나라 안에서는 민주정 체제를 유지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형태를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제4강 71 언제나 돈 욕심이 많은 테미스토클레스는 다른 섬들에도 페르시아 왕에게 보냈던 바로 그 사자들을 보내 돈을 요구하며, 만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가 헬라스 함대를 이끌고 와서 그들의 도시를 포위 공격해 함락할 것이라고 위협하게 했다. 이렇게 위협하여 그는 카뤼스토스인드로가 파로스인들에게서 거액을 받아 내는데 성공했는데, 이들은 안드로스가 페르시아 부역한 탓에 포위 공격당하고 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헬라스의 장군들 중에 가장 명망이 높다는 것을 알고 겁이 나 돈을 보낸 것이다. […] 그렇게 테미스토클래스는 안드로스 섬을 기지 삼아 다른 장군들 몰래 섬 주민들에게서 돈을 갈취했다. ━ 《역사》 8권 112장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보고 아테나이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를 죽인 사람들이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테미스토클레스나 알키비아데스 이런 사람들이 사실 아테나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말을 잘하고 잔꾀에 능하고 배신을 일삼는 사람들, 그래서 에개 해 패권을 잡았고 부유함의 절정에 이르렀다. 제국주적인 행태를 스스로 저지르면서도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테나이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도 뭐든지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게 바로 쿤스트베르크라는 말을 가지고 설명해 놓은 것이다. 이 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상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휴머니즘이다. 인문학은 인문주의, 휴머즘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이상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인문주의이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보면 그것이 고귀함 같은 것은 아니다. 인공물로서의 국가.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키아벨리아야말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가장 절정기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인문주의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대 헬라스에서 있어서 아테나이의 전형은 오뒷세우스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테나이가 성취한 생각의 싹이 서양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그 맥을 이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공물 개념, 즉 사람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알지 못하면 서양의 역사와 예술, 철학과 과학을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공물 개념은 사람이 하는 일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아테나이가 남겨 놓은 중요한 정신사적 업적입니다." 이런 문단은 사실 역사가들이 하는 얘기가 아니다. 본인처럼 역사철학 연구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제4강 74 아테나이가 성취한 생각의 싹이 서양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그 맥을 이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공물 개념, 즉 사람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알지 못하면 서양의 역사와 예술, 철학과 과학을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공물 개념은 사람이 하는 일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아테나이가 남겨 놓은 중요한 정신사적 업적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당대에 벌어진 사태를 보고 참다운 것이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 반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기록이고, 그 기록에 대한 반성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역사와 역사철학이 맞물리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아테나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전쟁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의 심성을 피폐하게 한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랍세계는 심각한 내전에 들어서게 되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전쟁 중에 쓰여진 것이 플라톤의 《국가》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올바름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것이 그냥 올바름이 좋다, 똑바로 살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잔혹함에 대한 반응이다. 《국가》 469e를 읽어보면 "그러므로 시체를 벗기는 짓과 적이 시신을 갖고 가는 걸 방해하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는가?" "단연코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시체를 벗긴다는 것은 시체에 붙어있는 방패나 이런 전리품을 챙기는 짓을 말한다. 

제4강 75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랍세계는 심각한 내전에 들어서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전쟁이 한창일 때 쓰인 텍스트 중의 하나는 플라톤의 《국가》입니다. 플라톤의 이 대화편은 올바름이 무엇인지, 그러한 올바름을 실현하려면 어떠한 공동체를 이룩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책입니다.

제4강 75 "그러므로 시체를 벗기는 짓과 적이 시신을 갖고 가는 걸 방해하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는가?"
"단연코 그만두어야만 합니다." ━ 《국가》 469e

희랍에서는 시신을 땅에 묻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것이고, 전투가 끝나면 양편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 자기 편의 시신을 수습하는 절차가 있었다. 그래서 이민족과 싸우는 페르시아 전쟁은 polemos라고 하고, 동족끼리 싸우는 건 stasis라고 했다. 내분이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퀴디데스는 이것을 polemos라고 한다. 투퀴디데스가 보기에는 헬라스 사람들끼리 내분을 벌인 것인데도 마치 이민족과 싸우듯이 격렬하게 생각해서 이것을 polemos라고 한 것이고, 플라톤은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내전이라고 한 것이다.

제4강 75 플라톤은 이민족과 싸우는 건 '전쟁'이지만 동족끼리 싸우는 건 '내분'이라고 용어를 달리해서 말했습니다.

제4강 75 희랍에서는 시신을 땅에 묻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양편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 자기 편의 시신을 수습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제4강 75 플라톤은 이민족과 싸우는 건 '전쟁'이지만 동족끼리 싸우는 건 '내분'이라고 용어를 달리해서 말했습니다.

이런 지점들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넘어가게 하는 지점이다. 제5강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넘어가는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아닌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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