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9장(2)

 

2021.12.28 옥스퍼드 세계사 9장(2)

《옥스퍼드 세계사》 9장 2번째 시간이다. 지난 번에 introduction을 설명하면서 힘주어서 이야기했던 부분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세계화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문화 세계화이다." 문화 세계화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서양 근대에서 성취한 그 어떤 것들을 과학이라든가 무슨 합리주의, 계몽주의 이런 것들을 성취하면 문명 사회가 되었다 라고 하는 이른바 서양 근대 이데올로기,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 그런 것들을 성취하면 문명화된 사회가 되었다 라고 하는 서양 근대 목적론, 즉 목적론적 근대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설정해놓고 가령 한국사를 읽는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서양 근대와 유사한 것들이 한국사에 어떤 시점부터 등장했는가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근대 맹아론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 시각을 강력하게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목적으로 쓰여지는 역사책들이 바로 글로벌 히스토리이다. 전지구적 관점에서 쓰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 근대에서 성취한 것이 인류 모두가 성취해야 할 목적이라는 것을 버리고 각각의 지역에서 각각의 고유한 전통과 고유한 목적에 따라서 움직여가는 세계, 즉 다극적 세계관이 펼쳐지는 것이 세계사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제9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절이 "종교 혼합주의와 각양각색 결과"이다. 분량은 굉장히 적은데 오늘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 부분은 꼭 충실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 이를테면 리우데자네이루, 고아, 베네치아의 축제를 살펴보면 공히 사순절 전야에 열리지만, 축제의 세부는 대부분 다르다. 메카 순례를 뜻하는 하지haji를 준비하는 무슬림들은 모두 무함마드가 애초 실천했던 금욕적인 극기를 재연하려 하지만, 그 방식은 지역별로 판이하다. 보존해온 모든 의례, 고수해온 모든 전통에는 변화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모든 공동체는 자기네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의례와 전통을 조정한다." 17세기 잉글랜드 내전기에 출연한 퀘이커파, 그 다음에 프란체스코회 영성파,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불교, 이런 종교들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가 세계종교의 지위로 도약한 시대는 문화의 여러 측면이 세속화된 시기이도 했다." 다시말해서 종교 혼합주의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종교라는 것도 어떤 것이 더 정통이고 더 이단인가를 따져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가 온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라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그런 목적론적 근대라는 것과 그것에 부록으로 달려있는 생각이 뭐냐면 서양은 과학을 채택해서 더 발전했고 동양은 과학을 채택하지 못해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일정 부분 서양은 과학을 채택해서 흔히 말하는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16, 17세기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지금 현재 21세기에는 그런가. 그건 아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러한 도식적인, 즉 즉 서양은 과학이고 동양은 윤리 도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경직된 이분법이고 목적론적 근대라는 이데올로기의 부록에 불과하다. 지금 21세기 서양의 과학이 발전했다. 과학이 발전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다. 기술이 뛰어나고 기계의 그런 것이 대단한다. 그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심성을 갖는 것을 과학이 발전한 것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과학적이다 그러면 서양 사람들이 더 과학적이어야 하고 과학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가 있다. 서양 사람들이 이른바 근대 과학이 등장했던 유럽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500년이 넘게 과학에 찌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다음에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우리가 가볍게 지나가겠다라는 것이 과학적 사고다. 그런데 백신 접종율은 뒤늦게야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에 비하면 그 사람들이 더 낮다. 아주 명백하게 반증 사례가 나온다. 과학적 심성구조를 갖추고 있느냐가 이게 과학 발전의 지표 중 하나일텐데 유럽사람들은 백신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집단으로 봐도 그렇고 개인으로 봐도 그렇다. 
제9장 406 세계화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문화 세계화이다.

제9장 429 오늘날 이를테면 리우데자네이루, 고아, 베네치아의 축제를 살펴보면 공히 사순절 전야에 열리지만, 축제의 세부는 대부분 다르다. 메카 순례를 뜻하는 하지haji를 준비하는 무슬림들은 모두 무함마드가 애초 실천했던 금욕적인 극기를 재연하려 하지만, 그 방식은 지역별로 판이하다. 보존해온 모든 의례, 고수해온 모든 전통에는 변화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모든 공동체는 자기네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의례와 전통을 조정한다.

제9장 430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가 세계종교의 지위로 도약한 시대는 문화의 여러 측면이 세속화된 시기이도 했다.

제9장 431 과학과 종교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관념은 (비록 종종 주장되긴 했지만) 19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널리 받아들여졌다.

또 하나 서양 근대에서 성취된 업적 중에 하나가 민주정이다. 민주정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정 국가에 살면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말자는 것은 체제 전복 세력이다. 민주정에서 다수의 의견을 따를 때 어떤 사람들은 다수의 폭정이라고 말한다. 또는 대중의 폭정이라고 말하는데 그것 말고는 민주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즉 민주정은 다수결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수의 폭정을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다수를 어떻게 해서 폭정으로 가지 않도록 다수가 무지해지지 않도록 교육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못배우고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소수의 부유하고 유식하고 넉넉한 사람들이 지배를 해야 하는가. 소수의 폭정은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서 소수가 폭정을 저지른 경우는 엄청나게 많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철인왕'이라고 하는, 철인왕은 플라톤 시대에는 생각해볼만한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철인왕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아테나이 시민이 다수의 폭정으로 가고 있으니까 다수의 폭정을 부정하기 보다는 그 다수가 똑바로 살면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고, 플라톤은 잘모르겠지만, 소수의 잘난 사람들이 다스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것 같기는 하다. 그건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배신이다. 즉 조지 스타이너가 말한 것처럼 betrayal이다. 그 배신을 못 이겨서 아마 소크라테스의 최후에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망상을 가끔 해본다. 어쨌든 서양 근대가 우리 인류에게 준 중요한 업적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첫째는 과학이고 둘째는 민주정이다. 재생된 민주정이다. 프랑스 대혁명. 그런데 민주정이라는 것이 서양의 경험에 따르면 파시즘으로 폭주한 경험들이 있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다수의 폭정이라는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50여년 전에 겪은 일이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장치는 공교육의 강화이다. 그쪽으로 가야한다.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서 소수의 엘리트가 통치해야 한다, 능력이 있는 자들이 통치해야 한다. 그것은 소수가 저지른 잘못의 역사가 훨씬 더 강력하고 굵기 때문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오늘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만 짚어보겠다. 407페이지의 "유럽 기독교권은 16세기에 조각이 났다." 종교개혁 이후로 벌어진 사태들이다. 그리고 유럽의 탐험가와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에 선교를 한 얘기들이 쭉 나온다. 그런데 유럽도 사실은 굉장히 광신도적인 이교도들도 등장하고 그랬다. 그리고 412페이지를 보면 유럽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신앙이 등장했다. "서유럽은 섭리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게 유럽의 개신교이다. 그리고 그것을 "유럽의 재기독교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기독교 종파들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이 전체가 또다시 기독교로 물들었던 것은 아니고 여전히 유럽에서도 곳곳에 비신앙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417페이지에는 성유물에 대한 기이한 숭배 얘기, 종교재판소 얘기가 있다. 그리고 동방 정교회 Orthodox Church. 서방의 로만 가톨릭이 정통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통이다 라는 뜻에서 Orthodox Church라는 이름을 붙여서 오늘날 붙이는 것이다. 419페이지를 보면 "동방 정교회의 '구교도들'은 한 세기 전에 라틴 기독교권에서 진행된 종교 개혁의 근본적 특징들을 반영하는 개혁 의제들을 거부했다." 즉 라틴 기독교권에서, 서방교회에서 로만 가톨릭도 종교개혁에 따라 즉 개신교의 반발에 따라서 자체 개혁을 진행시켰다. 그렇게 해서 몇가지 개혁 의제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그것이 동방 정교회에 가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해서 동방 정교회의 보수적인 세력들이 그것을 거부했다는 말이다. 

제9장 407 유럽 기독교권은 16세기에 조각이 났다. 

제9장 412 1517년 (당시) 아우구스티누스 수사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에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교회에 내걸기 한참 전부터 서유럽은 섭리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제9장 419 동방 정교회의 '구교도들'은 한 세기 전에 라틴 기독교권에서 진행된 종교 개혁의 근본적 특징들을 반영하는 개혁 의제들을 거부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목적론적 근대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에 부록처럼 딸려오는 과학의 서양, 몰과학의 동양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옥스퍼드 세계사》를 읽으면서 없애야 하는 가장 뿌리깊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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