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10장(4)

 

2022.02.09 옥스퍼드 세계사 10장(4)

《옥스퍼드 세계사》 제10장 4번째 시간이다. "문화접촉과 사회 변화" 절을 읽는다. 말그대로 문화교류이다. 지난 번에도 동서문명교류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것에 이어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들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제국주의는 백인만의 악덕도 아니었고 그 악덕을 정당화하기 위한 종교 악용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독교권에서만 선교사들이 제국을 둘러싸고 분열되었다." 제국주의는 백인만의 악덕도 아니었다. 즉 제국주의는 백인만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국주의라고 하는 것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는 의미겠다. 그리고 그 악덕을 정당화하기 위한 종교 악용도 아니었다. 즉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기독교가 신이 우리 백인들에게 사명이니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인데 그런 것이 곡 제국주의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국주의라는 말 아래에다가 이해하는 바를 달리 생각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이 첫 문장을 입증하려는 사례들이 이 섹션에 들어가 있다. 

우선 카톨릭 수사들이 에스파냐령 멕시코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푸에블로 인디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지 위해 리오그란데강 상류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인디언들이 사제를 살해했다. 그렇지만 "유럽을 떠나는 것은 영웅적이고 진취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그리고 "순교 열의와 제국에 앞서 영적 정복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십중팔구 가톨릭교도의 포부였다." 선교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백인 정착민들이 어떻게 토착민들, 원주민들, 요즘에는 선주민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공동체에 들어가서 혼성 정체성으로 만들어내면서 혼합 공동체, 그리고 혼성 문화, 혼합 종교, 새로운 생활 방식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10장 484 제국주의는 백인만의 악덕도 아니었고 그 악덕을 정당화하기 위한 종교 악용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독교권에서만 선교사들이 제국을 둘러싸고 분열되었다. 

제10장 485 유럽을 떠나는 것은 영웅적이고 진취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제10장 485 순교 열의와 제국에 앞서 영적 정복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십중팔구 가톨릭교도의 포부였다.


그 다음에 "근대 초 전체 이주민의 85퍼센트는 유럽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강요나 강제를 당한,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광범한 이주 사례들을 간과한 것이다." 하는 얘기가 485페이지에 있다. 이것은 노예 무역의 결과들이 간과된 것이다. 어쨌든 노예로 끌려갔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새로운 가서 "새로운 자조 단체, 새로운 종교, 새로운 음악,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이런 혼성 문화들이 문화적으로 풍부함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했던 바도 간과할 수 없다. 

제10장 487 근대 초 전체 이주민의 85퍼센트는 유럽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강요나 강제를 당한,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광범한 이주 사례들을 간과한 것이다.

제10장 487 주인들의 그림자 아래에서 새로운 자조 단체, 새로운 종교, 새로운 음악,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 다음 근대 초 유럽이 인도의 항구들에 끼친 영향. 인도로 온 유럽인들, 즉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이런 사람들이 인도의 항구도시들에 살게 되면서 어떤 공동체들을 만들었는가. "포르투갈 남성은 상대가 힌두교도든 무슬림이든 인도 여성과 자유롭게 결혼했다. 아시아까지 길고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항해를 떠나겠다는 유럽인 여성이 거의 없었던 만큼 이민족 간 결혼은 불가피했다. 포르투갈어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소통하기 위한 공용어가 되었다." 이런 얘기. 굉장히 인상깊게 읽을 수 있다. "해외에 새로 정착한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은 적어도 토착민 이웃만큼이나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인은 아시아에서 줄곧 해안 지역에 머물렀다." 그런 까닭에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근대 초기 동안 아시아의 항구들에서 유럽인은 실로 오랫동안 대개 힘겹게 생존해야 했다. 거의 근대 초기 내내 그들은 현지인의 선의에 의존했고, 그 선의를 잃은 경우 존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들이 큰 소리 떵떵 치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 군사력에서 우위를 점했는데, 산업화를 이루어 화력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장기 전략은 '토착민처럼 생활하기'였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적인 침략이 있었던 것은 아주 분명한데 그것이 어느 정도였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데이터를 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들에 대해서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라든가 그런 것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순하게 도식적으로 '지리상의 발견', '대항해 시대' 그런 말로 뭉뚱그려서 이해하고 제국주의적 침탈 그런 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게 바로 이런 글로벌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교육을 해야 한다. 이슬람의 경우도 "중동에서 동쪽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전파됨에 따라 탄생지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아라비아부터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필리핀까지, 다채로운 이슬람 세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도 한국의 기독교와 유럽의 기독교가 정말 판이하게 다르듯이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 

제10장 489 포르투갈 남성은 상대가 힌두교도든 무슬림이든 인도 여성과 자유롭게 결혼했다. 아시아까지 길고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항해를 떠나겠다는 유럽인 여성이 거의 없었던 만큼 이민족 간 결혼은 불가피했다. 포르투갈어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소통하기 위한 공용어가 되었다.

제10장 489 해외에 새로 정착한 유럽인이나 아프리카인은 적어도 토착민 이웃만큼이나 심대한(흔히 더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인은 아시아에서 줄곧 해안 지역에 머물렀다.

제10장 489 근대 초기 동안 아시아의 항구들에서 유럽인은 실로 오랫동안 대개 힘겹게 생존해야 했다. 거의 근대 초기 내내 그들은 현지인의 선의에 의존했고, 그 선의를 잃은 경우 존속할 수 없었다. 

제10장 489 서양은 19세기 이후 군사력에서 우위를 점했는데, 산업화를 이루어 화력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제10장 489 그렇다 해도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장기 전략은 '토착민처럼 생활하기'였다.

제10장 490 이슬람은 중동에서 동쪽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전파됨에 따라 탄생지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아라비아부터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필리핀까지, 다채로운 이슬람 세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 다음 491페이지를 보면 여성주의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공적 영역은 여성도 개척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유럽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여성 통치자들이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해서 강조가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1792년의 저작이 올랭프 드 구즈의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 이런 책들이 나오면서 일단 이론적으로는 여성 평등이 학문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여성과 어린이가 정말 제대로 된 시민의 대접을 받기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제10장 491 공적 영역은 여성도 개척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10장 491 유럽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여성 통치자들이 등장했다. 

제10장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말하면 다문화적인 혼성 문화 공동체에 관한 논의, 여성과 아동이라고 하는 부분들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결론은 아주 짧은데 "우리는 근대 초 세계를 연결하고 변형한 행위자인 군주, 용병, 상인, 이주민의 행로를 추적했다." 그 다음을 보면 "우리는 근대 초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조망하고 동반구와 서반구의 상이한 사회들을 저마다 독특하고 일시적인 문화로 인식해야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말인 것 같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일단 동반구와 서반구라는 단어의 사용이 눈에 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말은 지금 굉장히 오염되어 있는 말인데, 동반구와 서반구, 지구의 이쪽과 저쪽이겠다. 그리고 상이한 사회들이 그것 자체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영구불변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여기서 일시적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항상 변화가능한 문화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글로벌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정말 새기고 있어야 할 문장인 것 같다. 필자가 깊이 있는 통찰을 해 놓은 이런 것들을 유념해서 봐야한다.

제10장 497 우리는 근대 초 세계를 연결하고 변형한 행위자인 군주, 용병, 상인, 이주민의 행로를 추적했다. 항해와 해운 기술로 말미암아 새로 알려진 지역들과 집단들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게 되었다. 

제10장 497 우리는 근대 초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조망하고 동반구와 서반구의 상이한 사회들을 저마다 독특하고 일시적인 문화로 인식해야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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