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몽유병자들》를 듣고 정리한다.
2022.10.24 몽유병자들(20) ━ 제2부 3장, 1857년 유럽체제와 1907년 동맹체제
지금까지 《몽유병자들》 제1부와 제2부, 결론을 읽었다. 제2부 분열된 대륙은 가장 큰 범주적 원인(遠因)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일단 사건을 중심으로 따라간다고 하면 1부 사라예보로 가는 길들, 그 다음에 3부 위기, 그래서 사라예보 살인사건으로 해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까지. 1부와 3부는 상세한 사건들의 경과를 따라가고 있다. 제2부는 큰 덩어리이다. 제2부가 3,4,5,6장으로 되어있는데 3장 유럽의 양극화, 1887~1907, 20년 정도 사이에 벌어진 유럽의 세력판도의 변화를 다루고 있고 그것에 따라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유럽 외교정책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 그 다음에 거기에 끼어들어 간 것이 5장 얽히고설킨 발칸. 사실 세르비아도 발칸반도에 있는 사건이다. 발칸에서 벌어진 사건이 별거 아니었는데 왜 제1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는가, 그것이 바로 제2부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6장 마지막 기회: 데탕트와 위험, 1912~1914, 전쟁 발발 직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제2부는 덩어리가 큰 얘기들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덩어리가 큰 부분만 읽어보려고 한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를 보면 50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다룬다. 그런 것들을 투키디데스는 쭈욱 기록해놓았는데 그것을 어떤 지점에서 잘라야 하는지, 540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 중에 뭐가 중요한지를 사실 분석해내기 어렵다. 그럴 때 《몽유병자들》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투키디데스를 분석해 보고 했다. 그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투키디데스 트랩'이라는 것이 있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대국들 사이에 두려움이 있어서 그것이 군비경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사실 이 지점에서 가장 크게 벌어진 사건 중 하나이다. 그 다음에 프로파시스, 즉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증오 이런 것들도 제2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은 지도 2장을 가지고 설명해보려고 한다. 212, 213페이지에 지도가 있는데 지도가 중요하다. 1887년 유럽체제와 1907년 동맹체제.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1887년 유럽체제 독일과 러시아는 재보장조약으로 굵은 실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는 여전히 삼국동맹이다. 이것은 20년 후에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영국이 지중해협정을 통해서 이탈리아와 관계를 갖고 있고, 그리고 발칸반도에도 일정한 정도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선은 점선이다. 이것을 가지고 1887년의 유럽체제를 다극체제, 즉 복수의 세력과 이해관계가 서로 균형을 맞추며 불안정한 평형을 유지하는 체제를 드러낸다. 다극체제일 때는 아무래도 긴장이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쟁은 곧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20년을 건너뛰어 1907년 동맹체제를 보면 그림이 완전히 다른데 삼국동맹은 그대로이지만 프랑스와 러시아가 양국 동맹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영국과 러시아까지, 프랑스, 러시아, 영국 세 나라가 삼국협상 체제가 된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1887년에는 다극체제이고, 1907년에는 양극화이다. 양극화가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이렇게 얘기한다. "유럽 지정학적 체제의 양극화는 1914년 발발한 전쟁의 결정적 전제조건이었다." 이때 이제 양극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한쪽만 중심이 되는, 이를테면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압도할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그 다음에 다른 쪽에 있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군사력이 약하면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지금 현재 유럽 대륙을 보면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실 군사강국이다. 이탈리아는 지금 극우파가 들어섰다. 어떤 곳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전야를 방불케 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의 세력균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합중국의 군사력을 빼면 유럽의 군사력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러시아도 종이 곰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겨울 전쟁을 대비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지원이 유럽대륙에서뿐만 아니라 미합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이 밀려들어가고 있다. 짐작하건데 러시아가 이 전쟁을 이길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사실 초반에는 독일이 러시아쪽에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했으나 지금은 확실하게 가령 폴란드 같은 경우는 러시아와 철천지 원수이고, 헝가리도 그렇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다 나토로 들어왔는데, 나토로 편입되어 들어가고자 한다 하면 예전에는 독일에서 왜 받아주지 않았는가. 지도를 보면 독일이 러시아와 지나치게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가는 어찌될지 모르니 그랬던 셈이다. 사실 탁상공론에 불과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함으로써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군사력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버렸다. 그러다보니 독일이나 프랑스나 또는 핀란드라든가 스칸디나비아 3국들이 어디에 줄서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는 미합중국의 군사력이 정말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와중에 우리나라는 미합중국에 줄을 대고 미합중국에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들을 폴란드에 공급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처음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이나 프랑스가 어중간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이해가 된다.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 좋지 않다. 유럽대륙은 어쨌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제3장 212 독일과 러시아의 방어적 재보장조약(1887년 6월 18일)은 둘 중 하나가 이익을 얻고자 다른 유럽 국가와 전쟁하려는 시도를 단념시키는 조항을 포함했고, 양국 관계를 오스트리아-러시아 간 긴장관계의 악영향으로부터 차단했다.
제3장 214 유럽 지정학적 체제의 양극화는 1914년 발발한 전쟁의 결정적 전제조건이었다.
"유럽 지정학적 체제의 양극화는 1914년 발발한 전쟁의 결정적 전제조건이었다. 1887년이었다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관계의 위기가 아무리 심각했다 해도 유럽을 대륙 전쟁으로 끌고 가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럽을 양분한 두 동맹 블록이 전쟁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 그러나 두 블록이 없었다면 1차 세계대전은 실제 발발한 대로 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유럽 대륙의 양극화가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의 먼 원인이 되고, 그것이 전간기를 거쳐 제2차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냉전시기가 굉장히 위험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대륙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피하려고 했고, 냉전의 대리전쟁들이 한국전쟁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1887년의 다극체제가 변화하게 된 것은 강력한 독일 제국이라는 통일국가가 출현했던 것이고, 그것이 특히 프랑스에 굉장한 공포를 주었다. 물론 독일제국은 더군다나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지면서 그것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비스마르크는 계속해서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영국과도 일정한 정도를 다극적 외교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는 한 가령 발칸 반도에서 위기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겠다. 그러나 219페이지를 보면 불가리아와 벌어진 사건이 하나 있다. "한동안 불가리아 위기는 발칸 지역의 불안정성에 잠재하는 엄청난 위험, 즉 대수롭지 않은 한 약소국이 언젠가 두 강대국을 구슬려 전쟁으로 향하는 행동 방침을 취하게 할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제1차 세계대전 때 세르비아 사태의 일종의 전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서 가져온 구도를 가지고 우크라이나도 전쟁준비 상태를 보면 어쨌든 전쟁에 관한 한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벌어진 위협, 위험이 엄청난 전쟁으로 향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굉장히 등골이 오싹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비스마르크가 퇴임하면서, 이것은 세계사에서 계속 거론된 문제 중에 하나다. "비스마르크의 후임자 레오 폰 카프리비 재상이 1890년 봄 러시아의 재보장조약이 소멸되도록 놔둔 것은 이런 감정 기류에 부응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게 바로 "독일과 러시아가 재보장조약을 갱신하지 않자 프랑스와 러시아가 관계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그렇게 되면서 프랑스는 자기네가 계속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독일에 대해서 적어도 억제정책이라도 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러시아와 관계를 획복할 길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동맹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동맹이다. 이게 이제 제3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군사동맹을 맺었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와중에 영국이 중립을 끝내게 된다. 이제 "영국의 숙적 러시아가 크림 전쟁(1853~1856) 이후 강요받은 합의로부터 풀려"나게 되고, 프랑스와 러시아가 힘을 합하게 되니까 영국이 그동안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 나라 저 나라와 여러가지 다극적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제 영국은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이길 공산이 커보이는,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것은 19세기에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주권을 놓고 벌인 패권다툼을 말한다. 그러니 영국으로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그런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던 것이다. 지금 그러다보니 영국은 러시아가 세력을 좀 더 팽창해서 더군다나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니 아무래도 과거 영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적대관계는 두더라도 적어도 러시아가 영국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던 것이다. 그게 바로 영국와 프랑스, 러시아가 세력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동맹을 맺게되는, 그러다보니 1907년 체제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러시아 팽창주의 새시대가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는데 1871년 디즈레일리는 이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 쟁탈전에서 발생한 부정적 에너지가 역으로 유럽을 긴장으로 고조시키게 된다.
제3장 214 1887년이었다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관계의 위기가 아무리 심각했다 해도 유럽을 대륙 전쟁으로 끌고 가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럽을 양분한 두 동맹 블록이 전쟁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제3장 214 그러나 두 블록이 없었다면 1차 세계대전은 실제 발발한 대로 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3장 219 한동안 불가리아 위기는 발칸 지역의 불안정성에 잠재하는 엄청난 위험, 즉 대수롭지 않은 한 약소국이 언젠가 두 강대국을 구슬려 전쟁으로 향하는 행동 방침을 취하게 할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제3장 220 비스마르크의 후임자 레오 폰 카프리비 재상이 1890년 봄 러시아의 재보장조약이 소멸되도록 놔둔 것은 이런 감정 기류에 부응한 조치였다.
제3장 221 독일과 러시아가 재보장조약을 갱신하지 않자 프랑스와 러시아가 관계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제3장 223 영국의 숙적 러시아가 크림 전쟁(1853~1856) 이후 강요받은 합의로부터 풀려날 전망이었다.
제3장 235 러시아가 이길 공산이 커보이는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19세기에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주권을 놓고 벌인 패권다툼)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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