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21) ━ 제2부 3장, 독일의 세계정책과 영국의 official mind

 

2022.11.01 몽유병자들(21) ━ 제2부 3장, 독일의 세계정책과 영국의 official mind

《몽유병자들》 제3장을 읽고 있다. 240페이지 늦깎이 제국 독일부터 시작해서 대전환점, 벽에 악마그리기로 되어있다. 오늘 읽는 부분은 독일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의 적대를 설명하는 큰 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당히 20세기가 들어서기 전에 중요한 맺고 끊는 지점들이 있다. 일단 밑줄쳐야 하는 부부들, 네모쳐야 하는 부분들을 보겠다.

"비스마르크 시대에 독일 외교정책의 주된 목표는 적대적인 강대국 연대의 출현을 막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독일이 강대국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섹션 제목이 "늦깎이 제국 독일"로 되어있는 것이다. 적대적인 강대국 연대의 출현을 막는다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프랑스, 영국 그리고 러시아 이 세 나라가 독일을 둘러싼 강대국들인데 이 세 나라가 계속해서 경쟁을 하느라 독일에게 정신을 쓸 수 없는, 압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다보면 독일이라는 나라는, 가령 독일이 영국과 사이가 좋아진다고 하면, 물론 프랑스와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우호관계가 있었는데, 프랑스와 러시아가 힘을 합해서 독일을 어떻게 할 것이다. 더군다나 영국은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이다. 독일은 그러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 세 나라와의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보니 그 나라들과 다툼을 벌여서도 안되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나타났는가.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지 말아야 했고, 다른 강국들이 세계 세력권을 두고 다툴 때 방관자로 남아야 했다." 그리고 각각의 나라들에 대해서, 국, 프랑스, 러시아에 대해서 을의 입장에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귀결은 독일제국의회의 구성을 결정하는 유권자들이 원치 않는, 무력한 국가라는 의식이었다. 식민지를 소유한다는 생각에 기존 유럽 제국들의 중간계급만큼이나 독일 중간계급도 매료되었다." 즉 식민지를 소유에 대한 중간계급의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을지는 몰라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다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될 때까지도 식민지가 없었다. 있다고는 해도 독일이 해외 식민지에서 뭔가를 한 것이 없다. 그것이 독일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우리는 무력한 국가이고, 식민지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식민지라는 설명 안에는 "값싼 노동력과 원료, 자국 수출품을 구입해줄 급증하는 토착민 또는 정착민 인구가 있는 엘로라도로 상상된" 식민지, 이 생각을 독일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Lebensraum, 즉 생활공간이라는 히틀러의 구상으로 귀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데 독일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다보니 히틀러는 해외가 아닌 유럽을 식민지로 삼아야 겠다라는 담대한 구상을 내놓게 된다. 어쨌든 이 당시 1887년에서 1907년 사이에 다른 세계 제국들과 독일 사이 자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본국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교환하고 거래할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독일은 자신의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게 되면 "변변찮은 남은 몫을 차지하려던 독일의 시도는 기성 제국 클럽의 강경한 저항에 부딪혔다. 유럽 강대국들 중에 가장 늦게 제국 테이블에 끼어든 독일이 차지할 공간이 얼마나 적게 남아있었는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이것이 첫번째 중요한 사건이다.

제3장 240 비스마르크 시대에 독일 외교정책의 주된 목표는 적대적인 강대국 연대의 출현을 막는 것이었다.

제3장 240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제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지 말아야 했고, 다른 강국들이 세계 세력권을 두고 다툴 때 방관자로 남아야 했다.

제3장 241 그 귀결은 독일제국의회의 구성을 결정하는 유권자들이 원치 않는, 무력한 국가라는 의식이었다. 식민지(값싼 노동력과 원료, 자국 수출품을 구입해줄 급증하는 토착민 또는 정착민 인구가 있는 엘로라도로 상상된)를 소유한다는 생각에 기존 유럽 제국들의 중간계급만큼이나 독일 중간계급도 매료되었다.


그 다음 비스마르크 실각 이후 1890년에 태도가 변하게 된다. 이른바 신노선이라고 하는 것을 들고 나온다. 그런데 독일은 외교를 참 못한다. 오늘날 독일은 강대국으로 여기지만 이때는 외교를 잘하지 못했다. 영국이나 특히나 이때는 세계제국이었기 때문에,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패권이 미합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이때만 해도 세계제국이었다. 영국이 특히나 해외에서 독일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막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시비를 거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영국과 독일 사이에 해묵은 원한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했으리라 본다. 여기서부터 벽에 악마를 그리기 위한 전단계들이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 독일에서는 영국에 저항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하게 내세운 정책 중에 하나가 해군주의이다. 이게 "마국 저자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이 엄청나게 유행시킨 '해군주의navalism'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것을 빌헬름 2세가 아주 굉장히 찬양하고 열성 독자였다고 한다. 머핸의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우라나라에 번역되어 있다. 해양력이 이제는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3장 249 마국 저자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이 엄청나게 유행시킨 '해군주의navalism'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머핸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1890)에서 앞으로 세계의 권력투쟁은 대구경 포를 갖춘 전함과 순양함으로 구성된 거대한 함대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해군 프로그램을 지지한 빌헬름 2세는 선박 애호가이자 머핸의 열성 독자였다.


독일의 해군전략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는데 문제가 무엇인가. 여기에 보면 독일은 명민하게 정책을 만들어내는 국가를 운영하는 기술이 많이 부족하다. "국제문제에서 자유재량을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정책 개념에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실패한 지점들이다. 게다가 "독일의 군함건조는 1900년경 벨트폴리티크Weltpolitik, 말그대로 '세계정책'이라고 알려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이 세계정책이라고 하는 것을 제시하는데 이것도 앞에서 식민지를 쟁탈하려는 것과 맞물려 있다. "당대의 수많은 열망과 한 덩어리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는데 세계정책이라는 단어는 "독일 중간계급과 민족적인 고급언론의 분위기를 포착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말해서 식민지를 얻고자 하는 열망, 그것이 무엇으로 드러났는가. 세계정책이라는 말로 표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정책은 외국 수출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의미했고 더 넓은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을 제약하는 대륙 동맹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세계정책은 독일제국의 이질적인 지역들을 결속하는 데 일조할 진정으로 기획에 대한 욕구를 표현했고, 제국들의 연회에 뒤늦게 참석한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의 존중을 받으려면 그들을 따라잡으려 발버둥쳐야 한다는 거의 보편적인 확신을 반영했다." 여기까지 보면 세계정책 그리고 독일의 해군전략 그런 것들이 비스마르크 실각 이후로 등장했던 사태들인데 결정적인 문제는 그것이 일괄성 있는 정책 또는 미래의 목표와 결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흔히 하는 말로 빅피쳐가 없는 상태에서 그런 얘기들이 막연하게 둥둥 떠다니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식민지도 얼마 얻지 못했다. "1900년을 전후한 시기 독일 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결함은 국제 정세가 독일에 불리한 방향으로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일 것이다." 즉 해군주의라든가 세계정책이 있기는 있는데 이게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구상되지 못했을뿐더러 독일이 가지고 있는 정책을, 가령 일반성 있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국제 정세와 맞물려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벌써 이때부터 국제 정세라고 하는 것과 국내정치가 긴밀하게 맞물려 들어갔는데 20세기 초 베를린의 정책수립자들은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영국이 러시아와 대립하는 부담과 독일 함대의 성장 때문에 베를린과 관계 개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믿음이 헛된 것임을 결국은 전쟁을 통해서 알게 된다. 

제3장 251 국제문제에서 자유재량을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정책 개념에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3장 254 독일의 군함건조는 1900년경 벨트폴리티크Weltpolitik, 말그대로 '세계정책'이라고 알려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제3장 255 한동안 세계정책이라는 단어는 독일 중간계급과 민족적인 고급언론의 분위기를 포착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 단어가 널리 쓰인 이유는 당대의 수많은 열망과 한 덩어리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3장 255 세계정책은 외국 수출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의미했고 더 넓은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을 제약하는 대륙 동맹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세계정책은 독일제국의 이질적인 지역들을 결속하는 데 일조할 진정으로 기획에 대한 욕구를 표현했고, 제국들의 연회에 뒤늦게 참석한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의 존중을 받으려면 그들을 따라잡으려 발버둥쳐야 한다는 거의 보편적인 확신을 반영했다.

제3장 257 1900년을 전후한 시기 독일 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결함은 국제 정세가 독일에 불리한 방향으로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점일 것이다.

 

그 다음에 대전환점. 대환점의 핵심적인 사건은 러일전쟁이다. 러일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고, 유럽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주변부 또는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더이상 하지 않고 유럽 대륙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게 된다. 유럽에서 완전한 패권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이나마 패권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하니까 러시아는 독일의 행동을 대폭 줄이는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유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발칸반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러면 역시 이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위협이 된다.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알 수가 없다. 러일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가는구나. 그런데 러시아와 독일은 친척간이다. 차르는 빌헬름2세와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러시아의 각료들이 그것을 반대한다. 독일로서도 아쉬웠을 것이다. 국제적인 고립을 타계하기 위해서 동쪽과 서쪽의 선택지를 모색했는데 서쪽에서도 그렇고 프랑스도 독일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 없다고 나오고 러시아 역시 독일을 외면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1907년 새롭게 등장한 국가체제가 독일에게는 불리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을 제외한 나라들은 새로운 동맹을 맺게 된다. 그런데 그런 동맹을 맺는 것이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 당시 독일은 그 중에서도 약한 나라였다. "러시아의 경우 일본에 패전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의 세력 다툼을 잠정적으로 해결하고 나자 여전히 제국적 비전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인 발칸반도로 외교정책의 초점을 부득이 옮겨야 했다." 독일에 불리한 일만 계속 벌어지게 된다.

제3장 267 러시아의 경우 일본에 패전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의 세력 다툼을 잠정적으로 해결하고 나자 여전히 제국적 비전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인 발칸반도로 외교정책의 초점을 부득이 옮겨야 했다.


그 다음에 벽에 악마 그리기를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독일과 영국은 전통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270페이지를 보면 영국 외교정책의 '공식 정신official mind'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국 외교정책의 '공식 정신official mind' 속에서 영국-독일 관계의 역사는 독일의 도발에 대한 암울한 기록으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여기 한 문단 전체가 독일의 도발에 대한 암울한 기록으로 되어있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영국에서 독일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어떤 입장을 전제하고 들어가는가, 그것을 official mind라고 하는데, 사실 그 official mind는 오로지 팩트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운 점이다. "이런 주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새로운 가상 현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했다."그 가상의 것이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쳐서 구체적인 행동을 미묘하게 제어하고 또는 규제하고 또는 방향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지점이지만 해명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가. "왜 그토록 독일을 적대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구체적인 행위는 없다고 말한다. "반독일파가 아주 구체적인 사건을 문제 삼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은 독일의 허풍섞인 야욕과 타국을 괴롭히는 '행실', 카이저의 예측불가능성, 독일의 군사력이 유럽의 세력균형에 가하는 위협 등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했지만, 국제적 관례에 어긋나는 독일의 실제 행위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한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그 다음에 영국이 가지고 official mind 중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독일 민족국가라는 것이다. 독일이 민족국가여서는 안된다라는 것. 더군다나 1862년 당시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을 하게된다.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역사가 되풀이된다 라고 게으르게 말해서는 안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276페이지를 보면 "독일의 경제력은 오늘날 중국의 경제력과 마찬가지로 강대국 지도부의 정치적 불안감을 고조했다. 그러나 영국 정책수립자들 사이에서 반독일 태도가 우세를 점할 필연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 이제 영국의 official mind라는 항목과 계속해서 연결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독일 관계를 바라보고 이해할 관점을 결정했고, 독일을 영국을 위협하는 주적으로 "발명"했다. 여기서 "발명"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국의 외교정책은 (20세기 미국의 외교정책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위협과 침공을 초점 조정의 빌미로 삼는 시나리오에 달려있다. 19세기 중엽에 영국 정치 엘리트층은 프랑스의 침공 공포에 주기적으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그러니까 가상 적도 아니고 어쨌든 official mind 속에 재네들이 언젠가는 우리를 쳐들어올거야 하고 했던 나라들이 프랑스에서 러시아에서 독일로 옮겨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려움, 공포, 헬라스어로 prophasis이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다. 그러다가 1907년의 지도를 보면 어떤 의사결정을 거쳐서 이렇게 되었는가, 이제는 구체적인 행위로 적시할 수 있는 사건들로 이어지게 된다.

제3장 270 영국 외교정책의 '공식 정신official mind' 속에서 영국-독일 관계의 역사는 독일의 도발에 대한 암울한 기록으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제3장 270 이런 주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새로운 가상 현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했다.

제3장 270 왜 그토록 독일을 적대하게 되었을까?

제3장 271 반독일파가 아주 구체적인 사건을 문제 삼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은 독일의 허풍섞인 야욕과 타국을 괴롭히는 '행실', 카이저의 예측불가능성, 독일의 군사력이 유럽의 세력균형에 가하는 위협 등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했지만, 국제적 관례에 어긋나는 독일의 실제 행위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한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제3장 276 독일의 경제력은 오늘날 중국의 경제력과 마찬가지로 강대국 지도부의 정치적 불안감을 고조했다. 그러나 영국 정책수립자들 사이에서 반독일 태도가 우세를 점할 필연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제3장 276 영국의 외교정책은 (20세기 미국의 외교정책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위협과 침공을 초점 조정의 빌미로 삼는 시나리오에 달려있다. 19세기 중엽에 영국 정치 엘리트층은 프랑스의 침공 공포에 주기적으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다음주에는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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