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30) ━ 제2부 5장 얽히고설킨 발칸, 리비아공습과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

 

2023.01.10 몽유병자들(30) ━ 제2부 5장 얽히고설킨 발칸, 리비아공습과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

지난주 《몽유병자들》제5장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었다. 오늘은 지난 번에 읽은 것에 이어서 리비아공습, 이게 이탈리아-리비아 전쟁 또는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발칸난투극, 갈팡질팡 즉 385페이지부터 429페이지까지를 사태의 전개에 관련되는 것들을 생략한 채 큰 줄기를 잡아서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가를 보면서 좀 보겠다. 왜냐하면 지금 "1914년을 앞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개요 부분에서 이야기되었다. 그런데 1914년을 앞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당연히 지정학적인 여러가지 것들이겠지만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작용한 요소들은 아주 분명하게 군사적인 것만은 아니다.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그 사람이 갑자기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의 일종의 심성구조로부터 길어올려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무엇인가를 잡아보는 것이 사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또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 그리고 1914년을 앞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알아두면 우리가 근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 동아시아 근현대사인데, 1900년대를 전후한 즉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유럽 열강들이 자기네 본 바닥에서는 어떻게 굴었나,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 지역에 공습을 한다는 것은, 저 멀리 떨어진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들이 왔을 때 어떻게 굴 것인가를 자기네 본 바닥에서는 어떻게 했는지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큰 덩어리들을 읽어보겠다. 연대를 보면 제1차 모로코 위기가 있었고, 1911~1912년에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발칸전쟁이 두 번에 걸쳐서 벌었는데 그게 바로 1912~1913년이다. 그러면 1911~1913년까지는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14년을 앞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은 표면에 나타난 것은 전쟁인데 그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그 전쟁에 대응하는 여타 열강들은 도대체 어떤 방식의 정책을 어떤 종류의 정책을 구사했는가를 보겠다.

제5장 384 1914년을 앞둔 수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리비아공습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387페이지를 보면 "발칸반도에 대혼란을 가져온 연쇄 전쟁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와 발칸은 꽤 떨어져있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 전쟁이 발칸반도의 전쟁으로까지 번져갔는가. 다시말해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공습한 것이 왜 발칸으로 번져갔는가. 당연히 지금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공습한 사태에 대해서 명칭을 붙이기를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라고 한다. 즉 북아프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발칸 지역까지도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아프리카 지역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약한 고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한 고리에서 일종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유럽에서 프랑스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공습했다고 하는 것은 프랑스와도 일정한 정도로 대치국면에 들어서거나 아니면 프랑스와 협상을 해서 일정한 정도 양보를 얻어내거나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당연히 리비아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장악하고 있었던 지역이니까 오스만-튀르크 제국과도 한 판 붙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당연히 "오스만 주변부에 대한 발칸 국가들의 전면전에 청신호를 보낸 격"이 되는 것이다. 발칸이라는 것만 놓고 생각해보면, 발칸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배후에 있는 세력이 바로 오스만-튀르크 제국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칸 반도와 북아프리카만 가지고 생각하면 북아프리카의 싸움이 발칸으로 번져간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 이것을 보면 "발칸에서 오스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합동 군사작전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실제 조치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발칸 국가들은 이탈리아의 침공 이후에야 비로소 싸울 마음을 먹었다." 중요한 지점이다.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침공했다. 그런데 리비아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세력 아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만만한 상대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옮겨가는 것이다. 세력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확인이 되면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이라고 하는 것이 발칸 국가들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 된 것이다. 세르비아 외무부의 정치적 수장이었던 미로슬라브 스팔라이코비치는 1924년에 이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과정을 개시한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트리폴리 공격을 꼽았다.  이탈리아의 트리폴리 공격을 세르비아 외무부의 정치적 수장이었던 사람이 평가하는 것, 이것이 의미가 있는 대목이다. "뒤이은 모든 사태는 그 첫 공격의 진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뒤이은 모든 사태라는 것은 제1차세계대전까지 포함하는 것이겠다. 그러면 이탈리아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공격했는가. 당연히 식민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388페이지를 보면 "다른 나라처럼 이탈리아에서도 식민주의가 득세하고 있었으며”, 1900년대 초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는 식민주의라는 것이 국가의 공식정책이었다. 오늘날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것이다. 이게 유럽 열강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89페이지를 보면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국민에 대한 학대를 막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포식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이었다." 그렇다면 식민주의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유럽 열강의 표준 심성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이 동아시아에 와서 얼마든지 군사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식민주의를 충족시키고 자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군사적으로 밀고 들어온다. 유럽 열강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열강으로 들어간다, 탈아입구를 국가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던 일본도 어느 정도 자기네가 유럽 열강과 어깨를 대등하게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자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과 식민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시아에 속해 있는 나라이면서 자기네가 아시아는 아니다 라고 하는, 유럽 열강과 대등한 상대이고 마치 자기 나라가 유럽 열강인 것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동아시아 근현대통사》 7,8장을 보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일본은 미국의 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독자적인 외교 방향을 세우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아시아로 다시 되돌아올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해상 자위대의 잠수함 기술이 굉장히 놀랍다. 왜 그러한가.  동해에 소비에트 연방의 극동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 러시아의 극동함대가 동해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 미해군 7함대가 동해를 관리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일본에 일종의 아웃소싱을 줬다. 그러니까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는 것이 일본에서 잘하던 일이다.  동해 지역에 미국에서 필요한 것을 하기 위해서 일본에 아웃소싱을 준 것이 굉장히 많다. 그런 식으로 일본이 했던 것이다. 그러니 유럽 열강의 표준관행이라고 하는 것 표준 심성구조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이것을 《몽유병자들》을 통해서 알아두는 것도 굉장히 필요하다.

제5장 387 발칸반도에 대혼란을 가져온 연쇄 전쟁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1911년 이탈리아의 침공은 오스만 주변부에 대한 발칸 국가들의 전면전에 청신호를 보낸 격이었다.

제5장 387 발칸에서 오스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합동 군사작전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실제 조치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발칸 국가들은 이탈리아의 침공 이후에야 비로소 싸울 마음을 먹었다. 세르비아 외무부의 정치적 수장이었던 미로슬라브 스팔라이코비치는 1924년에 이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과정을 개시한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트리폴리 공격을 꼽았다. "뒤이은 모든 사태는 그 첫 공격의 진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5장 388 다른 나라처럼 이탈리아에서도 식민주의가 득세하고 있었으며, 리비아가 로마제국의 북아프리카 곡창지대였던 시절을 '기억'하던 이탈리아왕국은 트리폴리타니아를 식민지 지펴으이 중심에 놓았다.

제5장 389 자국민에 대한 학대를 막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포식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유럽 열강의 표준 관행이었다.


그 다음에 390페이지를 보면 동방문제가 나온다.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을 둘러싸고 전개된 유럽 강국들의 전략적 경쟁과 정치적 고려를 총칭하는 표현”, 동방은 직접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을 가리키는데 오스만 제국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 아래 또는 직접적으로 통치 아래 있던 지역들까지 말하는 것일테니까 당연히 북아프리카 지역도 동방문제라고 하는 것 아래에 묶일 수 있게되는 것이다.  그 다음 유럽 열강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 앞서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유럽 열강이 공식적인 또는 표준적인 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식민주의가 있고 그 다음에 자국민에 대한 학대를 막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나오는데 392페이지에 나온데 "일종의 폐소공포증"이다. "시간이 얼마 없고 자산이 줄어들고 위협이 증대하는 환경에서 행동을 지체하는 것은 심각한 불이익으로 되돌아오리라는 의식",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기에서 거론하는 것이 이탈리아가 쇠락해가는 오스만 해군에 대해서 내버려두면 오스만 해군에게 뒤쳐지게 될 것이라는 것, 그렇게 추정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는데도 폐소공포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식민주의라든가 시간적 폐소공포증이라든가가 유럽 열강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랍지역에 등장한 것이 395페이지를 보면 "이탈리아-오스만 전쟁은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유럽 국제체제를 교란"했는데 그 중 하나가 " 현대 아랍 민족주주의 출현을 자극한 중요한 초기 촉매들 중 하나였다." 이때는 삼국협상에 속하는 국가들이든 삼국동맹의 국가들이든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적대적인 행위를 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아랍 민족주의라는 것이 출현할 수 있는, 대응책으로서, 이쪽의 공통적인 심성구조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청신호를 보냈고 발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발칸전쟁으로 유럽 협조체제는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이렇게 되면 유럽에서는 유럽의 나라들끼리 서로 싸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결정적인 사태가 398페이지에 있는 터키해협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촉발원인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현재의 터키가 현대의 나토 회원국인 이유를 보여준다. 터키 해협문제라는 것이 하나의 연속적인 연속 속에 놓여있다는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발칸난투극은 1차 발칸전쟁, 2차 발칸전쟁이 벌어진다. 지도를 보면 휴전선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1차 발칸전쟁, 2차 발칸전쟁은 우선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이 지역에서 확실하게 세력을 잃고 물러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 발칸에 개입하고자 하는 유럽의 열강들이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중에 가장 심란하게, 발칸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고 일종의 민족적인 그런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였기 때문에 러시아가 여기서 갈팡질팡하게 되었다는 지점까지 생각할 수 있다. 

제5장 390 동방문제(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을 둘러싸고 전개된 유럽 강국들의 전략적 경쟁과 정치적 고려를 총칭하는 표현 ─ 옮긴이)

제5장 392 일종의 폐소공포증(시간이 얼마 없고 자산이 줄어들고 위협이 증대하는 환경에서 행동을 지체하는 것은 심각한 불이익으로 되돌아오리라는 의식)

제5장 395 오늘날 대체로 잊힌 이탈리아-오스만 전쟁은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유럽 국제체제를 교란했다. 이탈리아의 점령에 맞선 리비아의 투쟁은 현대 아랍 민족주주의 출현을 자극한 중요한 초기 촉매들 중 하나였다.

제5장 397 발칸전쟁으로 유럽 협조체제는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제5장 397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5장 398 터키해협 문제(동지중해에서 러시아의 권력을 견제하는 문제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는 현대 유럽 체제의 상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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