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가즈오: 일본외교의 과오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3. 2. 14.
일본외교의 과오 - 오구라 가즈오 지음/제이앤씨 |
프롤로그
서장 일본이 살아갈 길을 찾아서
제1장 만주사변, 국제연맹 탈퇴
제2장 군축회의 탈퇴, 일·독 반공협정 체결
제3장 일·중 전쟁과 내셔널리즘
제4장 일·독`이 3국 조약 체결
제5장 일·소 중립조약 체결
제6장 남방진출
제7장 일·미 교섭
제8장 종전외교
제9장 종장 "과오"의 해부
제9장 종장 "과오"의 해부
세 가지 오판
234 외교정책에 과오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판단하는 첫째 기준은 원래 특정 상황이나 조건 하에서 외교정책 담당자가 정세판단을 정확히 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러저러한 정세판단 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변수를 전부 검토하고 그 안에서 가장 타당한 선택을 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달려 있다. (또 좀더 시간을 길게 잡는다면 일단 선택한 정책을 정세의 변화에 따라 과감하고 신속하게 전환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유연성의 유무도 문제가 된다.)
우선 정세판단의 문제부터 살펴보자면 제2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10년 내지 20년 간에 외교당국의 정세판단에는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
첫 번째 잘못은 중국 대륙에서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고양 및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더욱이 중국의 반일, 항일, 모일 만을 문제시하는 방향으로 몰아간 데에 있다.
어째서 일본의 지도자들은 같은 아시아의 중국 민족에 대하여 독립과 영토 보전, 경제 발전에의 희망을 가볍게 취급해서, 그것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대로 그것을 억압하려고만 서둘렀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일본이 아시아의 식민지나 반식민지화한 국가들의 자기통치 능력과 자기관리 능력에 대해 불신하고 국제적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서구 열강의 행태를 따라해야 한다는 야망이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서>에서 일본의 대중국 정책은 명분이 서지 않는 것이라고 규탄하고 있으나 그 깊은 곳에는 일본이 아시아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세판단 상에서의 두 번째 큰 잘못은 유럽에서의 파시스트 그룹과 민주세력 사이의 투쟁에 대해서 민주세력이 진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또 원래 유럽의 정치가 권력투쟁이나 이해관계의 조정 이상으로 미래 세계의 비전에 대한 이데올로기 논쟁이라는 점을 일본의 정치 지도자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도 문제시된다.
세 번째는 미국의 정치와 외교정책의 방향에 대한 판단의 잘못이다.
배일이민법이 상징하는 것처럼 일본을 "적"으로 보고 이질적인 침입자로 간주한 미국사람들의 마음이 어 느 사이에 일본에 대한 징벌적인, 또는 도의적인 어프로치를 강하게 해서 현실적인 이해조정에 미국이 가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본 측 에서의 깊은 통찰이 없었던 것이 미 · 일 교섭을 당초부터 "저주받은 교섭"이 되게 해버린 하나의 원인이다.
"선택"의 잘못
236 정세판단에 큰 잘못이 있었다면 당연히 정책의 선택에도 잘못이 생긴다. 국제연맹으로부터의 탈퇴, 군축 조약의 폐기, 3국 동맹의 체결 ― 이 모두를 <조서>에서는 중대한 과오로 보았다. 이 중에 군축조약의 폐기의 문제를 제외하면 군부의 압력이 아무리 강했더라도 외교당국이 최후까지 계속 "거부"했다면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선택의 시비는 물론이고 선택의 폭도 문제가 된다 연맹탈퇴, 중국과 평화 협상의 좌절, 군축 회의로부터의 탈퇴, 그리고 3국 동맹 — 그러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외교당국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실은 정책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져서 좋든 싫든 그러한 선택을 하게끔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어째서 일본은 이렇게 궁지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외교정책의 여건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국제 환경과 국내여론(또는 국민감정)이 외교적인 선택의 폭을 좁혔기 때문이다.
외교의 이념
239 국내 여론을 계발하고 국제 사회에 대해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호소력 있는 이념이 필요하다.
제2차대전 전(前)의 일본의 외교 이념은 식민지인 한국, 대만의 안정된 경영과 만주의 권익과 옹호였다고 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만주나 중국의 특수사정에 대한 어필이나 대동아공영권 사상도 결국은 일본의 제국주의 외교의 전략과 이념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조서>는 이념이라는 말을 시용하지 않고 "정책의 근본"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정책의 근본"에는 어떠한 이념이 있었던가. 그것은 앵글로색슨의 세계 지배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은 일시적으로 인종평등이라는 이념을 내세웠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국 정책이나 식민지 정책에 이것을 활용해서 국제적인 장소에서 호소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외교이념을 국제 사회에 호소하는 것은 국민 레벨(즉 국내정치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념과 신조에 따른 정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어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파트너의 선택
240 제2차대전 전 일본은 일시적으로 영국을 파트너로 선택했고 또 단기간이었지만 독일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어느 쪽과도 전략과 전술을 공유하는 일은 있었어도 외교이념을 공유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영·일 동맹의 목적과 본질은 러시아 진출의 견제와 중국 및 극동에서 서구식 식민지주의의 보전에 있었으며 미래 국제사회를 위한 본연이 자세에 대한 이념을 공유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일본은 "선진 민주주의 공업국가"로서 미국과 서구의 국가들과 국제질서의 자세에 대한 이념을 공유하면서 이 국가들과 이른바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다.
일본외교의 이념도 "인류 안전보장의 확보" 즉 환경오염, 테러,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국제 전염병, 식량 부족과 식수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문제의 해결에 종사하기 위해서 모였던 선진국 민주주의 공업국가 8개국의 수뇌회담 즉 서밑은 반대운동을 하는 시민의 대규모 데모대로 둘러싸이는 상황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회합의 뒷면에 돈 있는 자의 이기주의와 민주주의의 위선을 보았다.
243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오늘날 해외에 병사를 파견하는 일을 일본이 국내 법률상의 규정과는 관계없이 국제적 조건(예를 들면 파견할 나라의 동의나 국제연합의 결의 등)에 따르고 있는 것은 과거의 경위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한 나라의 외교이념이 국내 사정으로 짓밟히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파트너의 존재는 불가결한 것이다.
오늘날 미·일 안보조약에 대해서 이것은 일본 평화헌법의 정신을 지키며 일본의 군사행동이 국내 사정에 의해서만 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브레이크로서 중요한 것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경청할 만한가치가 있는 견해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의 방위를 위한 목적을 넘어, 그리고 극동 내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적도 넘어, 중동 분쟁이나 세계적 테러 활동 방지라는 지구적 규모의 협력을 위해 프레임 워크가 되어있을 때 미일안보조약이 일본의 불합리한 군사행동에의 브레이크만이 아니고 일본이 본래 원하지 않는 군사행동에 참가하거나 협력하도록 유발하는 메카니즘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고전적 설문을 한 번 더 심각하게 고려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일본의 파트너 선택에 대해서도 미국은 물론이고, 무역경제면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한국, 안전보장 면을 생각하면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환경이나 국제전염병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중국 등과 파트너십의 강화와 외교이념의 공유를 권유해야 할 것이 아닌가.
"과오"의 반성의 원점
244 이상의 "과오"에 대한 분석과 해부를 통해 새롭게 <조서>의 결론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지금까지 본 것 이상으로 강한 인상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그때 일본이 은인자중해서 전쟁에 돌입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떠했을까 전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석유도 부족하고 철강도 부족해져서 점점 가난하게 된다. 전쟁만 없었더라면 살아가는 데 아무 부족이 없었을 것이다. ······
여기서는 헌법 제9조의 원래 정신과도 비슷한 (외교이념으로서) 반전사상이 들어나 있다.
즉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외교의 수단으로서는 일절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자위를 위한 무력행사나 위협은 허용된다 하더라도 이는 외교 목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허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본이 미사일을 격파하는 방위체제를 만들어 두는 것이 자위의 개념으로서는 있을 수 있으나 상대국이 이쪽에서 주장하는 외교목적(예를 들면 원자력발전소의 국제사찰)을 거부한다면 미사일공격을 이쪽에서 행한다는 정책은 외교정책으로서는 취할 수 없는 일이다.
방위논의와 외교논의는 서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위논의가 그대로 외교논의가 되어버린 것에 전전의 일본외교가 저지른 과오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닐까.
'책 밑줄긋기 > 책 2023-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리 비어드: 고전에 맞서며 ━ 전통, 모험, 혁신의 그리스 로마 고전 읽기 (0) | 2023.02.28 |
---|---|
마이클 왈저: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급진주의 정치 (0) | 2023.02.19 |
케네스 O. 모건: 옥스퍼드 영국사 (0) | 2023.02.19 |
후지타 쇼조: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0) | 2023.02.17 |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2 (0) | 2023.02.14 |
전희준: 기독교 교파 한눈에 보기 - 신학, 성례, 교회 정치 체제를 중심으로 (0) | 2023.02.07 |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1 (0) | 2023.02.01 |
D. 로즈: 헤겔의 <법철학> 입문 (0) | 2023.01.31 |